심사평

 

 

올해 창비신인시인상 공모에는 총 979명이 옥고를 보내주셨다. 심사위원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응모작들을 검토한 뒤 이 가운데 5인의 작품을 최종 검토작으로 삼아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작품의 심사란, 쓰기를 먼저 시작한 존재로서 짚어 읽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읽는 존재로서 내어다보아야 한다는 사실. 모든 과정 내내 선자(選者)들은 이를 상기하며 임했다.

「붕괴후기」 외 4편은 작품 속에 부려놓은 이미지를 단순한 표현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고투, 의식의 짊어짐 같은 것들이 언어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5편 모두 시체의 부패 단계와 대응되는 느슨한 연작 형태를 띠는 가운데 불필요한 작위가 감지되어 아쉬웠다. 오히려 개별 작품들의 제목과 순서를 무시하고 읽었을 때 더욱 필연적이고 풍부한 미감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동전이 하는 일」 외 4편은 소소한 경험을 시로 만드는 특별한 재주와 감각을 보여주었다.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평범한 행동을 하면서 문득 생각에 빠지는 순간들을 유연하게 펼쳐놓는다. 언뜻 평범하게 읽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하루하루가 매순간 아주 특별하게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처와 아픔을 조용히 끌어안고서 자기만의 질문을 던지며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전하기도 한다. 과장하지 않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시적 개성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신인에게 기대되는 패기와 새로움이 적다는 평가도 있었다. 자기 생각의 바깥으로 나와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과의 부딪힘과 파열을 시적 에너지의 중심부에 적극적으로 끼워 넣기를 바란다.

「가뭄」 외 4편은 최종심에 올라온 다른 작품들과 변별점을 가지고 있어 눈에 띄었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세계에서 시가 출발한다는 점이다. 분명 장점이긴 하나 읽으면 읽을수록 주저하게 되는 점도 있었으니, 몇군데서 산문적인 관형어들이 보인다거나 시의 결말이 정해진 규칙에 충실하다는 점 등이었다.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좀더 치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구체적인 세계에서 시작되는 시는 그 세계의 생동감을 물고 들어오되 그와는 또다른 시적 지평을 창조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투쟁을 놓아버리면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후퇴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선자들은 시인이 한걸음 더 정진하기를 기대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발코니」 외 7편은 말을 부리는 독특한 감각과 길들여지지 않은 감정의 파동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생생하고 역동적인 한편 위태로운 지점 또한 없지 않았다. 때때로 설익은 정념이 고스란히 누설되어 시적 호소력을 감쇠시킨 것이다. 그러나 「발코니」만은 심사자 전원을 사로잡은 매혹적인 작품이었음을 밝혀두고 싶다. 죽음의 이미지가 덧입혀진 일상의 순간을, 그것을 견디는 낱낱의 감정을 섬세하고 독창적인 필치로 그려낸 수작으로 보았다. 그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미주의 노래」 외 4편은 고요하고 단정한 언어를 구사하는 작품이었다. 이 고요와 단정을 통해 시인은 모호한 미감을 발생시키고 때로는 구체성 짙은 삶의 비의를 드러낼 줄 안다. 아울러 이러한 모호와 구체의 간극은 정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진지한 사유를 통해 확장되고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이에 더해 하나의 선명한 장면을 다른 선명한 장면과 겹쳐놓는 미학적인 단절을 통해 예기치 못한 것들을 환기하는 능력도 돋보였는데, 이 지점에서 절제와 객관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었다. 감각의 자유로운 발산도, 이 발산을 통해 멀리 나아간 아름다움도 마냥 좋은 것이지만, 종내에는 시와 삶의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어야 더 반가운 것이 된다는 사실을 「미주의 노래」 외 4편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미주의 노래」 외 4편을 제20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작으로 정한다. 당선자께서는 더 넓은 시의 영토와 유연한 언어를 가져주셨으면 한다. 아울러 무엇보다 “미주의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미주의 노래일 뿐”인 것처럼. 시인 스스로의 고유함으로 마음껏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마음껏 닿고 싶은 세계에 닿기를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다시 한번 축하를, 낙선을 하게 된 분들에게는 몇번이고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린다.

박소란 박준 이근화 황규관

 

 

 

수상소감

 

 

189_468

유혜빈

1997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

H를 스쳐 간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그를 자주 우는 아이로,

누군가는 그를 어설픈 아이로.

누군가에게는 아주 투명한 마음,

누군가에게는 여름의 표정.

 

2

누군가와 가까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거리를 주는 일과도 같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일은 서로 상처 입힐 수 있는 필연을 동반하는 것이라고요. 내가 기꺼이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내가 내는 생채기를 묵묵히 감내해주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가장 가까이서 나를 견뎌주는 정희 엄마, 진한 아빠, 지언 이모, 혜인, 채진 고맙습니다. 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옥자 할머니, 미 할머니 고맙습니다. 내가 어디서 맞고 다니는 건 못 참는 여중 여고 친구들, 국문과 친구들. 서로를 견디는 일을 함께 배우고 있는 학현에게 고맙습니다. 명동의 계성여고와 경희대 국문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옥출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때 일군 땅에서 아직도 거두는 중입니다. 배우는 기쁨을 알려주신 민승기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무렴, 나에게 가장 고맙습니다. 자고로 시인은 울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는 내가 제일 고생입니다. 우는 일은 몸과 마음을 다 쓰는 일인지라, 참으로 힘들 것인데…… 우는 만큼 활짝 웃기를 나에게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눈물과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께 기쁨으로 돌려드립니다. 부족한 시에 눈길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아파하며 쓰겠습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