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신동엽창작상 발표

 

고 신동엽(申東曄) 시인의 문학과 정신을 기리고 역량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신동엽 시인의 유족과 창비사가 공동제정한 ‘신동엽창작기금’이 올해부터 ‘신동엽창작상’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제22회 수상자를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11월 24일(수) 오후 6시 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22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손택수(孫宅洙) 시집 『호랑이 발자국』

 

심사위원

본심: 신경림 이시영 서영채

예심: 박형준 전성태

 

2004년 7월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

 

 

■ 수상자 약력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 국문학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 당선. 2003년 시집 『호랑이 발자국』 출간.

 

 

심사평

 

예심위원들의 노고를 거쳐 본심에 오른 심사대상 작품은 모두 열한 권이었다. 그중에서 장정일·김영하 등 90년대 이후의 ‘매혹의 텍스트들’에 대한 섬세한 독법을 담고 있는 신수정의 평론집은 좀더 본격적인 비평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좋겠다는 심사자들의 의견에 따라 제일 먼저 제외되었다. 그리고 시와 소설의 성취를 평면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작년의 수상자가 소설가였던데다가 금년은 소설보다는 시 쪽의 그것이 더 수월하다는 데 쉽사리 의견이 모아졌다. 자연스레 우리에게 남은 작품은 젊은 시인 여섯 분의 시집,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의 대상이 된 작품집은 손택수의 『호랑이 발자국』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시집은 2003년 1월에 상재되자마자 시단의 호평을 받았고 여러 상의 심사대상으로 올랐을 뿐 아니라 작년 바로 이 자리에서도 강력한 수상 후보였다. 그의 시의 남다른 강점은 아무래도 적확한 언어구사 능력에 있는 것 같다. 그는 한편 한편의 시에서 절대 서두르는 법 없이 사물의 가장 살아 있는 순간을 정교하고도 빼어난 언어감각으로 형상한다.1960년대 이성부의 뛰어난 시 「서울식 해녀(海女)」의 활달한 변주인 「방어진 해녀」 같은 작품이 그러한 예인데 우리는 그 시에서 “갯내음 물씬한 사투리”와 함께 “파도소리 그저 심드렁/갈매기 울음도 다만 무덤덤”을 뚫고 불쑥 솟구쳐오르는 해녀를 실제보다 더 싱그럽게 느낀다. 또하나 그의 뛰어남을 보증해주는 상표는 그의 시가 뿌리박고 있는 경험적 실감이다. 그와 동시대의 젊은 시들이 경험되지 않은 현실을 경험하느라고 난삽한 관념어들과 씨름하는 동안 그는 저만큼 훌쩍 건너뛰어 고강도의 실제 현실과 맞선다.

 

모래밭 위에 무수한 화살표들,/앞으로 걸어간 것 같은데/끝없이 뒤쪽을 향하여 있다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앞으로/앞으로 드센 바람 속을/뒷걸음질치며 나아가는 힘, 저 힘으로

 

새들은 날개를 펴는가/(…)

―「물새 발자국 따라가다」 부분

 

한편 유홍준의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도 만만치 않은 성과를 담은 시집이다. 이 시집은 여러 면에서 앞의 것과 대비된다. 손택수가 경험에 기반하여 대상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려고 하는 반면, 유홍준은 경험된 실제를 그로테스크하게 비틀어 그것의 어떤 부분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주로 육체의 왜곡과 과장을 통해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우리 현실의 불모성이다. 섬뜩한 죽음의 이미지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그의 시를 읽노라면 이 세계가 마치 커다란 죽음의 자루를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손택수가 우리 시의 오래된 제재(題材) 중 하나인 가난의 스산함을 노래하되 강력한 낙관에 기대고 있다면 그는 애초부터 여기에 있지 않은 거짓 희망을 부정하고 그곳의 입구에 고통의 선혈이 낭자한 ‘죽음의 천국(paradise)’을 세운다. 그리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들 중 어떤 것은 일품이고(예를 들면 상상력의 전복을 보여주는 「해변의 발자국」이나 「안경」, 그리고 “유리공은 새처럼/주둥이가/길다”로 끝맺는 뜨겁지만 서늘하게 아름다운 시 「유리새」 등), 어떤 것은 작위가 넘쳐 그것 스스로의 활발한 시적 운동을 멈춘 것도 있다.

이밖에도 체험의 직접성과 상상력의 대담성이 돋보이는 박성우의 『거미』도 한 심사자에 의해 수상 후보로 추천되었으나 시 창작기법상의 상투성 등이 지적되어 보류되었다. 그러나 「보름달」 「민달팽이」 같은 시는 재기와 함께 비유가 살아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자동기술을 연상시키는 문혜진의 화려하고도 새로운 감수성에도 유의했으나 언어가 그 형식에 걸맞은 실내용을 확보하지 못한 채 텍스트 위를 기호처럼 미끄러지고 있는 듯했다.

비평가 유종호 선생은 어느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훌륭한 문학작품은 따지고 보면 모두 제가끔의 방식으로 훌륭한 작품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손택수는 경험적 실감으로 미덥고 유홍준은 그 차가운 응시가 칼날처럼 산뜻하고 현대적이다. 그야말로 일장과 일단이 있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인 끝에 심사자들은 올해의 수상자로 날카롭고 예기로우나 무언가 편벽성이 느껴지는 현대성보다는 그 정통적인 묘사기법이 일견 낡아보이지만 생활의 실감이 폭넓게 구현된 쪽을 택하기로 했다. 다시 읽어보아도 「화살나무」 「옻닭」 「아버지의 등을 밀며」 등 『호랑이 발자국』의 낱낱의 작품들은 올해부터 명칭을 바꾼 ‘신동엽창작상’의 첫 수상작으로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시집 전체로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깊은 신뢰감을 준다. 젊은 시인의 기량이 마음껏 발휘된 오래 공들인 두 권의 첫시집에 경의를 표하며 한사람에게는 아쉽지만 격려를, 또 한사람에게는 더없는 축하를 보낸다.

申庚林 李時英 徐榮彩

 

 

수상소감

 

반딧불이 해안에서

 

손택수

 

스무해 넘게 살고 있는 집 뒤로 산 하나가 솟아올라와 있다. 산에 들면 숨이 턱끝까지 차올 무렵쯤 해서 멀리 바다가 나타난다. 바다는 몽골의 넓은 초원처럼 거칠 것이 없이 펼쳐져서 내 꽉 막힌 시선을 마구 뛰어다니게 한다. 부딪칠 것 하나 없는 바다에 눈을 방목하고 있으려면 울적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기뻐서 날뛰던 가슴설렘도 뛰어다닐 만큼 뛰어다니고 나선 지칠 대로 지쳐 평정을 얻게 된다.

수상 소식을 듣고 하루종일 바다를 바라보다 왔다. 동해 쪽 기장 바다에서 달맞이고개를 지나 해운대와 광안리를 안고 오륙도 너머 태종대까지 이어지는 바다. 그 해안선은 자갈치 아지매의 허리에 찬 전대끈처럼 억세고도 질기다. 생선 함지박을 이고 이커서니 일어설 때 그들의 이마에 자글자글한 주름처럼 끝없이 강인하게 꿈틀거린다. 그러나 그 주름에 왜 그늘이 없겠는가. 일렁이는 물주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면 아침마다 ‘재칫국 사이소’하고 지나가는 아낙의 고단한 발걸음 소리, 골목 사람들에게 창피하다고 밤만 되면 나타나서 새벽 무렵까지 빈병과 골판지를 주우며 다니는 이웃 할머니의 녹슨 수레바퀴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서른해 가까이 바라본 바다는 그런 삶의 주름들을 폈다가 오므리면서 내게 부력을 선물해준다. 주저앉았다가 꿈틀 바닥을 짚고 일어서게 한다. 덧나는 상처들로 하여 푸른 바다는 그래서 영원히 젊다. 저 싱싱하고 탱탱한 물주름들, 자갈치 아지매들의 머리에 무거운 함지박을 떠올리듯 어선들과 여객선과 섬들을 불끈 이고 있는 바다.

이 바닷가에 반딧불이가 나타난 건 몇해 전이었다. 부산에 웬 반딧불이일까. 나는 내륙으로부터 쫓기고 쫓긴 반딧불이들이 건너왔을 법한 도시의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시와 바다의 경계에 우뚝한 산정에서 어느날은 바다를 바라보았고, 또 어느날은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 경계에 나타난 늦반딧불이, 유배라도 온 것일까. 여기서 더 밀리면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을 텐데. 반딧불이들이 마지막 벼랑끝에서 마치 절명시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곧 사그라지고 말 것만 같은 목숨과 목숨을 부딪치며 어떤 접선신호를 보내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안타깝게 깜박이는 불빛을 따라 반딧불이 축제가 열리더니 해안순환도로가 나고 반딧불이 모양의 가로등이 서기 시작했다. 한적하던 바닷가에 사람들이 몰려든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이제 인간들에게 실망한 반딧불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서식지를 잃어버린 반딧불이들은 그 뒤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반딧불이 서식지라는 푯말만이 혼자 덩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계류를 따라 오른 약수터 부근에서 올해 나는 다시 그 불빛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손을 내미니 내 죄많은 손바닥을 간질이며 기어다니는 놈들도 있었다.

‘시란 바로 생명의 발언인 것이다’라고 말했던 게 신동엽이다. 나는 신동엽의 ‘찡그림 속의 살아픈 言語’가 지닌 힘을 믿는다. 끝없이 찡그리는 저 물주름과 좍 펴진 수평선 위로 욱신욱신 떠오르는 불빛이 내 한 생을 이끌어왔다. 남쪽 끝 해안 이 부끄러운 점멸을 다감하게 지켜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유족들, 창비사에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