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22회를 맞은 창비신인소설상에는 모두 941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일상성의 미묘한 감각들을 탐구한 소설에서 사회 전반의 주요 이슈를 현장적으로 다룬 소설까지 다채로운 경향의 작품이 투고되어 새로운 문학의 상상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되었다. 최근 문학의 경향에 호응하듯이 민감한 사회적 현안들을 직접적 소재로 취한 작품도 많이 늘어났다. 비정규직 문제, 교육현실의 폐해, 국가폭력의 문제, 성적 불평등의 문제를 소설적으로 투시하려는 의욕적인 시도가 많았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사회의 주요 이슈를 다루려는 일부 작품들이 공간이나 소재의 설정에 제한되어 서사적 구체성이나 해석의 깊이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 후 손쉬운 정답 이상을 진전시키지 못하여 소설적 주제가 약화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주었다.

예·본심 과정에서 응모작과 관련된 심사위원을 제척한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 올해 심사에서는 백지연 신샛별 최민우 3인이 최종 당선작을 선정하였다.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다음 4편이다. 우선 「산책」은 잘 읽히는 문장과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국가폭력과 분단현실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족서사의 구도 속에 침착하게 배열하여 현재적으로 의미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서사의 핵심인물인 주인공이 증언의 역사적 주체들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흐릿하여 주제의 전달력을 약화하고 있다. 관찰자의 태도가 균형적 시선의 의미를 얻기보다는 상황과의 관련성을 유보하는 방식으로 흐르는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나의 마이마이」는 기발한 구성과 흥미로운 사건 전개, 문장의 속도감을 통해 개성적 매력을 뽐내는 작품이다. 발랄하고 솔직한 화법과 어우러진 이야기의 매끈한 흐름과 변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극적 상황의 구성에 치중하여 소설이 정작 주제로 삼은 윤리와 속죄의 문제가 인물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다루어지지 못한 점이 걸렸다. 함께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인물을 방관자로 놓아두기보다는 적극적인 해석과 발화의 주체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벨롱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집요한 소설적 정념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트라우마를 겪은 주인공이 자신의 체험과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넘어설 수 있는가를 탐구하고 있다. 인물들이 내뿜는 강렬한 정서와 기운은 운명과 예감을 뛰어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내비친다. 윤리와 도덕을 가장한 관습적이고 표피적인 질문들을 거부하는 소설적 발언 역시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추상화된 공간의 설정과 사건의 작위성, 모호한 결말 처리는 소설의 완성도와 주제적 공감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결점으로 여겨진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묘비 세우기」는 안정적인 구성과 흡인력 있는 문체, 서사적 완결성을 지닌 작품이다. 함께 응모한 작품 역시 사실주의적 기율을 소홀히 하지 않는 탄탄한 서사적 직조술을 보여주어 신뢰를 갖게 하였다. 이 소설이 다루는 죽음과 애도, 삶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최근 문학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온 주제기도 하다. 얼핏 보면 소박할 수도 있을 소설의 도입부를 지나 한걸음씩 나아가면 삶의 심연에 대한 도저한 성찰이 그 깊이와 폭을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떠난 이가 간직했던 삶의 신념과 가치는 어떤 방식으로 존중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스스로 던지는 질문과 기꺼이 감당하려는 ‘이후’의 시간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세계이기도 하다. 소설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웃음과 눈물, 좌절과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 미래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단순한 생계로 치부될 수 없는 존엄하고 귀한 삶의 세부를 바라보는 이 애정적이고 견고한 소설의 시선은 읽는 이에게 더없는 위로를 안겨준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쓰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귀한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응원과 감사를 드린다.

김성중 백지연 신샛별 최민우 편혜영

 

 

 

수상소감

 

185_506정은우

1989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나는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아왔다. 분수는 가능성이자 한계였고, 안전선이자 경고였다. 지망생들 대다수가 그렇듯 나도 글을 쓸 시간을 사기 위해 돈을 벌었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건 심술궂은 농담 같았다. 퇴근 전철이 뚝섬유원지역에서 건대입구역을 지날 때면 한강의 야경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자문했다. 이런 가분수의 삶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두가 나를 모르는 외국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 불안하고 가망 없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실력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선의였다. 그 댓가 없는 선의들이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소설을 쓰라고,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들은 나를 계속 나아가게 했다.

 

지금 나는 또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내가 쓴 문장들의 삶까지 기꺼이 떠받치고 나아가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릴지언정 내가 쓴 문장들과 쓰게 될 문장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받은 선의들에 대한 보답일 테니까.

 

나는 고집이 세서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부족한 만큼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런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번듯한 모습을 보인 적은 드문 제자라도 늘 격려와 꾸중을 아끼지 않으신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음악과 미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눈뜨게 해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피붙이처럼 소중한 고등학교 친구들 민지, 윤진, 승은, 지연에게 고맙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았다. 재미도 없고 서투른 내 곁에 있어준 민정, 단비, 유정 언니, 주미, 태연, 윤지, 승희, 고은, 소연, 가윤 언니, 윤혜 언니, 국영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재미있는 사람들 덕분에 싫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요령도 없고 표정도 숨길 줄 모르는 나에게 누구보다도 든든했던 문우들인 근범 오빠, 선영 언니, 종훈, 보배, 지윤, 소영 언니, 재림, 성주, 성진 오빠. 그들이 있어 힘든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네가 원하는 만큼 나아가보라고 해주셨던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꼭 소설가가 되어 네 글을 쓰라고 말씀해주셨던 김진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쓰고 또 쓰겠습니다. 지면이 부족해 다 적지 못했지만 제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분들 모두 제 스승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