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23회를 맞은 창비신인소설상에는 모두 1,417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응모작의 숫자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활용해 세계에 대한 이해와 감응을 심화시켜나가려는 의지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존의 문학적 관습을 뛰어넘는 작품들이 그만큼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일인칭 화자가 많이 등장했지만 화자가 놓인 주관적 위치를 반성적으로 구조화하는 시선의 부족으로 표면적인 일상의 나열에 그치고 만 경우가 많았고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 또한 전형적인 가족서사의 틀을 답습하는 데 그친 경우가 다수였다. 그럼에도 세월호참사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사고 같은 사회적 비극을 소설화하면서 재현 불가능성에 짓눌리거나 상투적인 사회비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문학적 성취에 도달한 작품들을 만날 때는 한국문학이 여러 사람의 마음과 함께 조금씩 깊어져가는 증거를 마주한 듯 든든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

여섯명의 심사위원이 올린 14편의 본심 후보작 중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모두 네편이었다. 먼저 「세상의 사과」는 의도적인 단문의 활용을 통해 작품 전체의 생동감을 살려나가는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무책임한 엄마를 희미한 꼭짓점으로 둔 채 서로 의지하는 자매의 삶을 담백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대화로 그려낸 점 또한 매력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약했고 소설의 심층에 자리 잡은 여러 인물의 ‘마음’이 내내 어떤 ‘쿨함’에 의해 그 밀도를 제약받는 느낌 또한 아쉬웠다.

「와리가리(Swinging Punch, 2020)」는 일종의 ‘시대착오’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세태 묘사가 흥미를 끄는 작품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레트로게임 오락실은 먼바다의 섬처럼 위태롭지만 동시에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그 외딴 섬과 같은 오락실에서 만난 인간 군상과 끝내 패배하는 인물의 뒷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탄탄한 문장 역시 작가에 대한 믿음의 근거가 되었지만 이 작품을 감싸고 있는 기시감을 불식시키는 데는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대학원에 적을 둔 채 어정쩡한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캐릭터가 진부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주말부부」는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시종 냉정한 하드보일드 문체를 구사하면서 평범한 일상에 내재한 균열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포착해내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 놓인 소통 불가능한 지점을 서늘하게 예각화하면서도 흔히 예상하는 가족소설의 문법에서 훌쩍 달아나버리는 의외성 또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하드보일드 톤의 서술과 현실에서 한발짝 떠 있는 것 같은 설정들이 이 작품을 끌고 가는 데 있어 필연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끝내 지우지 못했다. 독특한 스타일이 크게 힘을 발휘한 작품이었지만 그 스타일을 통해 표현하려는 고유의 문제의식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에는 함께 제출된 다른 소설의 미흡함이 끝내 걸렸다.

토론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된 「이름 없는 마음」은 무엇보다 인물을 살릴 줄 아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반가웠다. 이 작품은 아픈 손가락 같은 동생 현권을 자신의 집 근처로 데려와 챙기려는 누나의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는 일종의 실패담인데 예정된 실패로 달려가는 길목에 배치된 이야기들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화자의 갈팡질팡하는 마음 곁에 나란히 서서 그 마음을 물끄러미 응시하게 되는 독특한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이는 현권이라는 인물에 대한 개성적인 묘사가 크게 한몫하지만 일종의 조연이라 할 수 있는 조금 밉지만 비난하기는 어려운 남편의 형상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따금 필요 이상으로 설명적인 문장이 눈에 띄거나 상대적으로 준희라는 인물이 소략하게 처리된 부분 등 아쉬움도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미안함과 지겨움을 왕복하는, 누구나 아는 마음을 흐릿한 웃음으로 저릿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 작가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이란 무얼까. 어쩌면 그 역시 손쉽게 특정하기 힘든 ‘이름 없는 마음’이겠으나 적어도 응모된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그 마음에 기꺼이 자신을 연결시켜준 모든 응모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강경석 김세희 김유담 양윤의 천운영 한영인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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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나

1992년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 관두고 딱 11월까지. 그때까지를 인생의 방학이라 여기고 소설을 쓰기로 했다. 대체로 오전에 집안일을 끝내놓고 오후엔 그 이름에 종종 의문이 드는 ‘독서실 까페’로 가서 책을 읽고 소설을 썼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잠시 고개를 들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소설이라는 것이 너무 좋아서 내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을 때, 워크넷과 빈 문서 사이를 헤맬 때, 나와 같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 뒤통수들이 용기를 주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걸 쌓아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그냥 하는’ 신비한 사람들. 앞으로도 그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그 사람들이 되어 계속 쓰고 싶다.

 

소식을 알리자 ‘이력서를 뽑아준 회사가 어디냐’며 심드렁해하다가 상금 액수를 듣고 하느님을 찾은 엄마, 기념수건이라도 제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 아빠, 소설에 대해 알려주시는 척, 실은 삶을 알려주신 윤성희 선생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한편 한편의 완성을 기다려준 남편 좁쌀영감. 그는 내 소설을 읽고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이만하면 됐다는 말을 듣고 싶냐, 아니 그건 최악의 평가다.’ ‘큰일이다. 필요하다면 절에 들어가라.’ 덕분에 쓰는 동안 수행하는 심정 또한 가져볼 수 있었다.

어렵게 입학한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책과 사유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끝으로 초라한 제 소설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별자리 운세에서 올해 나는 ‘빚을 갚을 운’이라고 했는데, 이제 와 보니 그 운세가 시시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 이름을 적지 못한 이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내게 따듯한 마음을 빌려준 이들에게, 올해가 가기 전 기쁜 마음으로 빚을 갚으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