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24회를 맞은 창비신인소설상에는 모두 1470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백신이 개발되면서 종식이 앞당겨지리라 기대했던 코로나사태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새 국면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짙은 피로를 드리우고 있다. 그 와중에 도착한 응모작들은 지치고 암담한 현실을 글쓰기를 통해 이겨내려는 결연하고도 곡진한 마음의 징표처럼 느껴졌다. 여섯명의 심사위원은 어려운 시절의 복판을 함께 통과해나가는 동료 시민의 일원으로서, 응모자들이 보내준 결기와 곡진함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응모작들의 성취와 한계를 짚어나갔다.

이번 응모작들에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격차를 둘러싼 민감한 의식을 표출한 작품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주로 부동산 문제와 부의 세습 문제, 그리고 직장 내 위계를 중심으로 불평등의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작품들이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하는 절망과 분노의 중심에 계급적 구조가 공고해짐으로써 더 나은 삶의 전망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게 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소설들이 ‘청년 실업’의 현실에서 무기력한 ‘루저’의 삶을 형상화했다면 이제는 회사에 들어가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며 성실하게 분투함에도 나아지지 않는 삶의 조건에 대한 비판이 상대적으로 우세해졌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장르적 상상력에 과감하게 기댄 작품들의 편수도 크게 증가했다. 기존의 문학적 관습을 탈피해 새로운 문법을 실험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에서 이색적인 소재를 발굴하고 나름의 자율적인 세계관을 세공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함에도 그와 같은 소재와 설정이 왜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을 끝내 해소할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18편의 본심 후보작 중 아래의 네편이 마지막까지 경합했다. 먼저 「소라가 침대 밑에 숨긴 것」은 강렬한 정념을 냉정한 문장의 밀도 아래 은닉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었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위해 가짜 생일파티를 반복하는 가운데 주인공이 어린 시절 감내해야 했던 끔찍한 기억들이 소환된다. 고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도 엄마를 향한 화자의 복합적인 감정을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어 작가의 개성과 재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트라우마라는 주제의 기시감을 완전히 불식시키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아우어 홈」은 문장에 촘촘히 스며 있는 깊은 여운과 공백으로 몇번이나 다시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품이었다. 낯선 풍경이 주는 이질감과 쉽게 거리를 좁힐 수 없는 관계가 주는 어색함을 통과하고 난 뒤, 소설은 세명의 여성 인물을 함께 더 먼 곳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이 어색하고 희미한 유대는 무심하지만 동시에 무해한 마음들에서 비롯하는 것일 텐데 그 위로의 힘이 단단했다. 다만 작품이 섬세하게 타진하는 존중과 위로의 마음이 인물 간 맺어지는 서사적인 역동성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이 더 필요한 듯했다.

「드문」은 쓰레기 폐기장에서 벌어진 젊은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서사화했다. 이 작품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맞물리면서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을 비판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선을 마련했다는 점에 모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죽음을 가운데 두고 발생한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결말 장면의 도식성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현실의 노동이 터 잡은 생생한 장소에 대해 이 소설이 보여주는 고유한 감각이 인물들의 사연 속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어 숙성된 작품으로 뻗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작품은 「윤 소 정」이다. 세 여성 인물 사이의 우정과 균열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무언가를 드러내듯 감추고 감추듯 드러내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능란함이 단연 돋보였다. 범상한 사건과 관계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걸 자신만의 리듬과 스타일로 풀어내는 능력은 이후 작가가 쓸 다른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기도 했다. 특유의 서스펜스가 쉽게 해이해지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강도 높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면 역시 작가가 지닌 소설적 가능성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압도적인 스타일의 힘이 보여주는 매력에 끌리면서도 소설이 호소하는 주제의식의 무게에 대해 오랜 토론을 벌인 끝에 우리는 작가가 보여준 독특한 개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데 마음을 모았다.

어려운 시절,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 또 한명의 새로운 작가가 우리 곁에 서게 되었다. 머잖아 언젠가 만나게 될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진심이 담긴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김미월 김성중 백지연 윤성희 이주란 한영인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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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령

1989년 경기 광명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소설 전공 수료.

 

 

 

저는 어렸을 때 작은 마을에서 살았는데, 또래 여자아이들이 없어서 언니들과 놀았습니다. 언니들이 학교에 가게 되자 엄마를 괴롭혔습니다. 심심해, 시간이 안 가, 나도 학교 보내줘. 엄마는 저에게 책을 읽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어릴 때는 큰아빠네서 물려받은 세계명작동화를 읽었고, 특히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쓴 소녀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좀더 크고 나서는 엄마 화장대에 놓여 있던 양귀자, 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열일곱살 때 다리에 암이 생겨 항암치료를 받고 세번이나 다리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침대에 누워서 보낸 날들에 제가 알고 있던 가장 긴 소설인 『토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도 몇번이나 다시 읽을 정도로 그 책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말은 맞았습니다. 이야기는 시간을 빨리 가게 해주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후로 저는 제 삶에 몰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신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졸업작품에 건필해라!라고 적어서 돌려주신 임철우 선생님,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처음으로 소설처럼 보이는 글을 써본 것 같습니다. 공부의 재미를 알게 해주신 한만수 선생님과 모자란 소설을 꼼꼼히 봐주신 이장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후로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고 취업하면서 삼년간 글을 쓰지 못하다가 올해 초에 쓰게 된 소설이 「윤 소 정」입니다. 부족한 소설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소설을 처음 썼을 때 합평해준 소설 모임 동료들, 혜령씨 지연언니 소연이, 앞으로 계속 같이 쓰고 읽어줘요. 저의 몇 안 되는 친구들, 가희 송희 세진이 소연아, 더 자주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산책하자!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와 놀아주고 있는 수진이 언니, 내가 봐도 재미없는 소설에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제가 아팠던 일에 아직까지도 저보다 더 아파하시는 엄마 아빠, 저 때문에 청소년기를 혼자 보내야 했던 동생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