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아주 당연한 일조차 그것이 왜 당연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복잡하다. 명료하고 명백해 보이는 일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일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일 자체가 전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턱에 새끼발가락을 찧는 고통을 상상해보라. 그 감각이 온전히 특정 신체 일부에 한정되어 있다고 느끼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중추신경계로부터 비롯된 통합적인 신경생물학적 결과이다. 그 과정을 설명하는 일은 무척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절단된 신체로부터 느끼는 환상통 같은 질환은 우리의 일상감각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곧, 평소와 다르고 예외적인 경우가 오히려 전체적인 감각구조를 환기시키는 셈이다.

소설 쓰는 일이 여기에 비견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연해 보이는 현실로부터 당연하지 않은 사례와 감각의 발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예외적인 발견을 다시 독자와의 소통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어려움을 예고하는 행위이다. 전자가 개별적인 새로움을 발현시키는 문제라면 후자는 그 새로움을 보편의 언어로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문제이다. 동시에 이는 신인상 심사라는 예외적인 독서 과정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평가지표이기도 하다. 둘 중 어느 쪽에 더 우위를 두며 읽을 것이냐는 선자의 선택과 취향에 의존하겠지만,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누락됐다고 판단될 때는 결격의 문제로 다뤄진다.

올해 25회를 맞은 창비신인소설상은 모두 1453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소재나 주제의 경향을 따로 언급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었는데, 6명의 심사위원이 개별 예심을 통해 선별한 작품은 10명의 응모자가 보내준 21편이었다. 그중 앞서 언급한 두가지 기준에 상대적으로 더 부합한 4편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유지연의 「여기 모두 친절한 사람들」은 ‘공유 작업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려한 전개와 일관된 주제의식이 장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익숙함이나 기시감이라는 아쉬움으로 문제 삼을 수도 있었다. 소재적 친밀함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는 구성과 인물의 단조로움이 해석의 단조로움으로도 이어진 탓이 컸다. 안정된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점에서는 다수의 동의를 받았으나, 그밖에 새로운 무언가를 더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강승혜의 「유영」과 홍기라의 「안나의 방」은 상대적으로 인물의 매력이 부각된 경우였다. 먼저 「유영」은 가뭄으로 말라가는 마을을 배경으로, 로컬리티와 기후위기의 문제를 개인의 출향 충동과 엮어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었다. 특히 떠나려는 자(‘은하’)와 남으려는 자(‘이담’) 간의 대비가 틀에 박힌 구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했다. 요컨대, “뿌리째 뽑힌 분재” 같은 저수지의 풍경을 통해 메시지의 설득력을 높이면서도, 주변인물 ‘이담’에 대한 사연을 공들여 소개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독특한 서사를 구사하고 있었다. 다만 ‘은하’의 출향 충동이 지속적인 서사의 전개로 발전되지 못한 채 인물의 상황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쳤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로 인해 풍성하고 매력적인 사연들이 결말에 이르러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겼고, 함께 응모한 작품에서 그런 문제가 더욱 선명한 탓에, 「유영」을 우선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선작을 두고 마지막까지 경합한 「안나의 방」은 “정래는 토요일 새벽 안나에게 청혼을 해왔다”라는 평이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후로는 품 속에 칼을 숨긴 채 생활하는 ‘안나’의 녹록치 않은 사연들로 채워지는데, 특히 ‘안나’에게 ‘자기만의 방’이 지닌 의미와 그로부터 형상화되는 캐릭터의 힘은 단연 발군으로 꼽혔다. 그럼에도 인물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불행의 양상이 전형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더욱이 자신에 대한 폭력을 방조하던 이의 빈집에 칼을 두고 온 이후 전개가 앞선 내용과의 일관성을 해치며 다소 작위적으로 읽히기도 했다. 함께 응모한 작품에서 그런 문제들이 더 크게 지적되었는데, 강렬한 캐릭터가 빠지자 주제의식이 평이해지고 산만한 전개와 설정이 더욱 부각되었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주영하의 「굴과 모래」는 소재적 참신함과 더불어, ‘굴’과 ‘모래’ 간의 연결성을 포착한 관점이 새로웠다. 더구나 다른근사한 소설들이 그렇듯 「굴과 모래」 역시 낯선 장면들로부터 보편의 가치를 환기시킬 만한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관련해서 눈여겨볼 부분은 ‘굴이 사라져가는 세계’로부터 결국 당도하게 될 미래가 ‘모래의 세상’일 거라는 이 소설의 우화적 구성이 또다른 세계를 유추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곧, 굴의 세계로 진입하기 이전의 ‘그’와 ‘아내’가 견뎌야 했던 세계 역시 그다지 우아하지는 않았다는 점, 세상은 새롭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망해갈 것이라는 점. ‘예언’이라는 명료하게 닫힌 미래가 그것을 보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무심하고 염세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어째서인지 새삼 연대와 애도의 가치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그로부터 더 나은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 때문이 아니라, 아주 나쁜 세계에서 우리를 겨우 버티게 할 만한 최소한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비범한 상상력으로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통찰을 이끌어낸 이 작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함께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강경석 임현 정이현 정주아 최민우 황정아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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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周瑛河

1978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우리는 교토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며칠간 함께 여행했다. 그녀는 고베에서 나고 자랐다. 외동딸에 건축설계사였고 고베지진 때 고등학생이었으며 오래 투병 중인 아버지가 계셨다.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내게 종종 엽서와 작고 예쁜 선물을 보내왔다. 기뻐하면서도 답하지는 못했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 그녀가 한국에 왔을 때는 같이 간 까페에서조차 몇시간씩 혼자 두었다. 진심을 다하고 싶었지만 보여줄 시간도 힘도 없었다. 그것이 부끄러웠다.

얼마 뒤 동일본대지진이 열도를 덮쳤다. 검은 파도가 해안마을을 집어삼키는 초현실적인 장면을 목격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그녀였다. 두려움에 떨며 전화했지만 불통이었다. 급히 메일을 썼다. 다음 날 충격과 애도로 가득한 답장이 도착했고 우리는 오랫동안 울며 통화했다.

소설은 어떤 사람과 시절에 반드시 빚을 지며 쓰인다. 그로부터 다시 몇년이 지나 연락이 끊기고 우리가 각자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갔을 때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제목과 서두를 써내려갔지만 뭘 더 써야 할지 몰라 7년을 서랍 속에 두었다. 노트를 다시 찾아낸 날, 그녀의 재난이 가까운 현실로 나를 관통하고 지나갔던 순간이 되살아났다.

한때는 소설이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다. 이제 그 시작은 자신일지라도 이야기의 끝은 자신과 타인의 사이 또다른 지점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써내지 못한 시간이 무서울 정도로 길었던 것도, 소설이 오로지 나에서 시작되고 끝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장 큰 빚은 정상민에게 졌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지금처럼 살 것이다. 엄마 이명자, 아빠 주재범. 두분의 끝없는 사랑이 저를 되살릴 때가 많았다. 어머니 정문숙, 아버지 정지영. 비할 바 없이 내게 소중한 분들이다. 나의 형제들, 명관과 민회. 함께 성장하며 가자.

동료 이소정이 아니었다면 작품에 우체국 소인조차 찍지 못했을 것이다. 내 보물 류송아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전한다. 오래 곁에 있어준 권은정과 이미정에게도 깊이 고맙다.

박상우 선생님은 다시 소설 쓰기를 시작했을 때 한치의 의심 없이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을 주셨다. 동시에 혹독했다. 큰 행운이었다. 문우들께도 같이 공부했던 시간이 진심으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멀리 계신 엄창석 선생님, 심영보 국장님은 글쓰기가 가장 어려웠을 때 마음 쉴 곳을 내어주셨다.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