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신인문학상

 

제3회 창비신인시인상 발표

 

 

우리 시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제3회 창비신인시인상’의 당선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소설상과 함께 11월 26일(수) 오후 6시 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3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김광선 「조리사 일기 1」 외 4편

 

심사위원

예심: 박영근 이선영 박형준

본심: 황현산 이시영

 

2003년 10월

(주)창비

 

 

 

심사평

 

 

세해째 신인시인상을 심사하면서 느낀 소회 중의 하나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자기만의 시적 전범을 창출하려는 진정한 모험의 정신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모두들 선행시(先行詩)의 “그림자를 의식하”면서 안전한 전범들을 추종하고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주향호만이 고독한 모험을 감행하고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시들은 안타깝게도 초현실적 상상력이 지나친 나머지 모두 공중분해되고 ‘작품’으로 지상에 무사귀환한 시가 「붉은귀거북과 새와 여자」 한편뿐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심사자들은 그의 과감한 도전정신에 격려를 보낸다. 익숙한 것들을 거부하려는 그의 방법적 자각이 언젠가는 꼭 시의 몸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주향호와 대척점에 선, 약간의 일탈적 상상력이 있으며 그러나 절대로 대기권을 벗어나는 등의 위험한 여행을 감행하진 않으며 언제나 작품으로의 안전귀환을 우선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임영옥의 시들이었다. 11편의 응모작들이 고른 성취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도 「고요 발전소」나 「도루묵 구이」 등이 과시하고 있는 손색없는 형상력은 일단 심사자들을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매혹의 그늘을 찢고 한발짝 더 들어가서 보면 그의 시는 ‘보이는 손’에 의해 지나칠 정도로 제작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독자들의 반향을 정밀 예상하면서 거울을 보고 자기연출한 것 같은 그의 시들은 앞의 시 외에 「목화꽃 피는 기억의 오후」 같은 수일한 서정에도 불구하고 이 낯익은 세계를 더욱 낯익은 방법으로 복제하는 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창조적 성취가 뿜어내게 마련인 어떤 돌연한 시적 기운 같은 것이 없었다. 언어들이 그냥 자기들끼리 자족하면서 시로 성큼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시적인 글쓰기에 골몰하고 있는 듯한 「공기는 울음 주머니를 감춘다」의 이인주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 시의 성취가 있기 위해선, 미안한 말이지만, 온몸에 의한 우리 삶의 성취가 먼저 있어야 한다.

김미령과 김광선은 여러모로 대조적인 시인이었다. 김미령은 「두루마리가 세계를 가로지를 때」 같은 시에서 섬뜩할 정도의 시적 재능으로 현대의 숨가쁜 풍경들을 재현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을뿐더러 「때늦은 예감」이나 「낡음에 대한 예의」 같은 시에선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누추와 잔잔한 슬픔들을 “터미널 바닥엔 무심한 검은 기름때” 혹은 “배추 속잎같이 아득하고 희부연 저녁” 등으로 드러낼 줄 아는, 독특한 슬픔을 지닌 시인이다. 그리고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으며 흐트러지기 쉬운 시적 대상을 단일한 구도 아래 통어하고 방임할 줄 아는 대담한 안목 또한 갖추고 있는 듯하다. 반대로 김광선은 비애와는 거리가 먼, 우직할 정도로 정직하고 다소곳한 천품(天稟)의 시인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애초부터 기교와는 상관없이 천품의 발언으로서의 그것이어서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읽는이에게 직핍한다. 이것은 그의 시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현대시의 익숙한 독법으로 ‘작품’과 ‘나’ 사이에 경험적으로 이 미적 ‘여과장치’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사자들은 처음에 “소 한 마리분의 내장을/부위별로 정리해놓고 가을도 끝난/나무 아래 섰다”로 시작되는 그의 「조리사 일기 1」을 읽고 당황했으나 일체의 시적 필터 없이 온몸으로 전해오는 그의 꾸밈없는 육성에 그대로 감응하고 말았다. 그의 언어는 아직 서투르고 때로는 교훈적이며 곳곳에 촌스러운 자기다짐과 탄식으로 어룽져 있으나 시 이상의 시로 우리를 압도하는 바가 있다. 되바라지기 쉬운 언어를 천금 같은 삶의 무게가 지그시 눌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김미령의 독특한 개성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빼어난 시의 육질을 빚어낸 그에게 당선의 영예를 안기기로 했다.

 

하나의 진실

욕되지 않는 빛깔 앞에서

선명해지리

–「조리사 일기 12」 부분

 

마지막 관문에까지 이르러 작품으로서의 기량을 빛낸 「참 따뜻한 봉제공장」의 이춘대, 「아내」의 박재범, 「개구리잡기」의 이유훈, 그리고 오선희, 박경아 제씨들에게도 행운과 건투를 빈다.

[黃鉉産 李時英]

 

 

 

당선소감

 

 

김광선

김광선

1961년 전남 고흥 출생.

‘젊은 시’ 동인.

 

 

 

 

열일곱, 버리듯 도망치듯 떠나온 고향땅, 홍안의 섬소년은 섬처럼 홀로 떠돌았다. 희미한 산동네 연탄불도 꺼진 쪽방이거나 공장 한켠 합판으로 둘러친 기숙사에서 양말 구린내와 막걸리병, 라면냄비와 함께 뒹굴었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내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기록했다. 먼 훗날, 어제를 돌이켜볼 일이 생겼을 때 거름으로 쓰리라고, 푸념이든 절규든 욕설이든 내 삶을 사랑하듯 내 글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정잡배처럼 만나 글을 쓰고 밤새 토론을 하고, 십수년 세월 깜박깜박 조는 듯 절망도 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도 하고 이러쿵저러쿵, 세상 입담에 귀기울일 즈음 뜻밖에도 가슴 벅찬 소식에 왠지 모를 피로가 물자락처럼 켜켜이 밀려온다.

 

머리 숙여 두 분 심사위원님과 창비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행복했듯이 이 행보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하고 단근질하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믿음으로 지켜봐준 ‘젊은 시’ 동인들과 여러 문우들, 그리고 변변한 것 하나 갖추지 못한 남편을 묵묵히 따라준 내 아내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