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2017615일 열린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에서는 나희덕 박성우 염무웅 정홍수를 제35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17531일까지)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시·소설·평론 부문에서 2인에게 수상한다.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이 올린 11편이 아래와 같이 심사대상이 되었다.

유계영 『온갖 것들의 낮』, 이설야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안미옥 『온』, 한인준 『아름다운 그런데』(이상 시), 정용준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최민우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 김려령 『샹들리에』, 백수린 『참담한 빛』, 기준영 『이상한 정열』, 김정아 『가시』(이상 소설).

심사위원들은 724일 모임에서 이설야 시집, 임솔아 시집, 김정아 소설집, 김려령 소설집으로 대상을 압축하고 장시간 토론을 펼쳤다. 그 결과 불의한 세계에 온몸으로 맞서는 존재의 분노와 슬픔이 끝내 충격적인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임솔아 시집(문학과지성사 2017)과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들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김정아 소설집(클 2017)을 제35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했다.

 

 

 

심사평

 

 

나희덕(羅喜德)_시인

열한권의 심사 대상작 중에서 이설야의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김려령의 『샹들리에』, 김정아의 『가시』 등으로 압축하는 데까지는 비교적 순탄했다. 그러나 이 네권의 문학적 의미와 성취를 놓고는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어서 꽤 긴 시간 토론이 이어졌다.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은 강력한 신인의 출현을 알리는 시집이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아름답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아름다움」)어하고,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예보」) 밀어낸다.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모래」)라는 구절처럼 시인의 내면에는 수많은 ‘나’가 동거하고 있고, 그 관계 역시 조화롭지 않다. 삶의 폐허를 너무 일찍 보아버린 조숙한 영혼이 조금은 무심한 표정으로 세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당돌하고 불편한 진술 뒤에 서늘한 슬픔 같은 게 따라붙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문장들은 간결하고 명징하지만 끊임없이 뒤척이며 새로운 행로와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 파열음에 가까운 문장들은 의도된 난해성이 아니라, 삶의 바닥에 닿아본 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다. 그런 부서진 존재들이, 또는 “저마다 다른 얼룩을 갖고 있”(「기본」)는 존재들이 간신히, 그러나 함께, 세계를 견디고 있다. 이 아프고 치열하고 정직한 시편들은 신동엽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여겨졌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설야의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는 인천 화평동을 중심으로 인상적인 ‘장소성’을 창조해내면서 수많은 서사를 품고 있는 시집이다. 속도와 새로움에 골몰하는 세태 속에서도 그의 시들은 문명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풍경과 기억을 애틋하게 보듬고 복원해낸다. 가난한 골목의 사람살이와 “못 자국 같은 생()의 숨구멍들”(「못, 자국」)에서 우리는 불우한 개인의 서사뿐 아니라 산업화의 어두운 그늘을 읽어낼 수 있다. 신인다운 패기와 신선함이 좀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설야 시인의 이 묵묵하고 먹먹한 작업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소설 부문의 수상작인 김정아의 『가시』는 인권운동을 하면서 얻은 녹록지 않은 체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고 묵직한 감동을 주는 소설집이다. 재능 있고 이름이 꽤 알려진 신진 소설가들의 작품이 여럿 있었지만 인위적으로 고안되고 계산된 서사가 지닌 부자연스러움과 약간의 공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에 비해 김정아의 단편들에서는 소재의 신선함이나 치밀한 서사전략을 넘어서는 삶의 진정성과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던졌던 질문들이 뜨거운 열기를 지닌 채 남아 있다. 특히, 여성 노동운동가의 눈에 비친 ‘윤미희’라는 전과자의 모습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가시」나, 소설 쓰기에 대한 메타적 질문과 내면적 탐색의 과정을 그린 「헤르메스의 선물」 등은 그가 앞으로 써나갈 소설에 기대를 갖게 한다. 신동엽문학상 수상이 작가에게 ‘하데스의 열매’를 발견한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면 좋겠다.

 

박성우(朴城佑)_시인

이설야의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는 도시 주변부 삶과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힘이 탁월하다. 산업의 성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일번지다방으로 나간 수문통 언니들과 까마득 울던 해성보육원 아이들은 처연하다. 공장에서 돌아온 동생과 신흥여인숙 쪽방에 놓인 다섯살 여자아이는 불편하게 아프다. 백마라사 양복을 입은 아버지가 어쩌다 나타나는 화평동 집은 대책 없이 어둡다. 이렇듯 이설야의 시는 거대한 자본 뒤에 놓인 짙은 그늘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조금은 더 매혹적인 어법으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다.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은 낯설게 아름다운 시세계를 품고 있는 시집이다. 단적으로 말해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해서 역설적이게도 쓸쓸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시집. 임솔아의 시편들은 대체로 간결하고 단단하다. 우리가 아직 닿아보지 못했거나 무심히 놓쳤던 일상의 세계를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잡아낼 줄 아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오랜 고심 끝에 임솔아 시의 ‘낯선 아름다움’을 응원하는 일에 기쁘게 동참하고 나니 마음이 가뿐했다.

김정아의 『가시』는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 시대의 귀한 리얼리즘 소설집이다. 강제철거가 이루어지는 재래시장에서 국수를 삶는 선례씨의 모습이 뭉클한 「마지막 손님」, 한때 노조활동에 열심이었던 윤미희의 거칠고도 거침없는 행동이 오히려 안쓰럽기만 한 「가시」는 특히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B시 변두리의 지난한 유년을 그린 「석류나무집」, 보성간첩단 사건 이야기를 다룬 「곡우」, 마트 파업에 실패한 뒤의 삶을 이어가는 「전수택 씨의 감자」, 소주를 끼고 사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여자아이가 딱하기만 한 「몽골 낙타」 등은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다. 외진 현장을 등지지 않는 빼어난 소설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마냥 든든하다.

 

염무웅(廉武雄)_문학평론가

마지막 남은 두 시집 사이에서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둘다 놓치고 싶지 않은 나름들의 성취에 이르렀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게 더 직접적인 호소력으로 다가온 것은 이설야의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였다. 시집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하면 심사위원 자격에 의심이 가는 고백일 텐데, 하지만 그것은 이른바 ‘민중문학’의 낯익은 소재들이 주로 다루어졌기 때문은 아니다. “아직 못 가본 길들과 잘못 걸었던 길들이 구겨진 채/뒤틀린 종아리, 접힌 어깨가 가슴에 묻은 핏자국을 안고 있다/처박아놓은 양말로는 발목이 삐는 길을 마저 갈 것이다”(「장롱 속에는 별을 놓친 골목길이」) —이런 구절이 포함된 이설야의 시에는 고통의 현실에 대한 즉자적 묘사뿐 아니라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내재적 힘도 있고 경험의 처절함과 대결하는 언어적 고민도 있다.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은 내게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난해의 세계였다. 그러나 소통불능의 수많은 난해시들과 구별되는 어떤 강력한 진정성이 시의 바탕에 깔려 있음은 대뜸 감지되었다. 그것은 이 지옥 같은 세상의 불의한 체제에 결코 굴복하지 않으려는 비타협의 정신이라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설야의 문학과도 뿌리에서 통하는 것이고, 시야를 넓히면 오늘의 모든 의미있는 지적 활동이 근본에 있어 공유하는 시대적 지표일 것이다. 다만, 이설야의 작업이 옛날 용어로 아직 자연주의적 잔재를 가지고 있다면 임솔아의 그것은 표현의 잠재적 가능성을 향해 더 열려 있다 할 터인데, 그런 취지에서 결국 나는 임솔아의 수상에 동의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소설을 하도 여러편 한꺼번에 읽어서인지, 나에게는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가가 없었다. 지난 봄호 『창작과비평』에서 「청소」라는 뛰어난 단편에 감탄했던 터라 김려령의 소설집 『샹들리에』에 주목했지만, 청소년소설이라는 (언제부터인가 한국문단의 유행장르의 하나로 정착된) 제약을 타파한 성과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논의 끝에 남은 유일한 선택은 김정아 소설집 『가시』였다. 김정아는 소위 공식 등단절차를 거친 작가가 아니어서 이 소설집을 통해 작가로서의 능력 여부를 물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를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는 이중의 용기가 필요했다.

지난 20년을 “인권운동과 함께 보냈다”고 책의 앞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김정아의 소설들이 다루는 것은 사회의 밑바닥으로 밀려난 여러 소외계층의 각박한 삶이다. 물론 그렇다고 단순히 보고문학에 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손님」 「몽골 낙타」 「가시」처럼 오랜 습작훈련을 반영하는 수작도 있지만, 작가의 자의식이 개입하여 서사의 긴장이 풀어진 경우도 더러 있었다. 특별한 경험의 소유자인 작가에게 이 상의 수상이 격려 이상의 채찍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홍수(鄭弘樹)_문학평론가

논의 대상 작품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이번 신동엽문학상 심사가 조금은 각별한 문학적 토론의 장이 되리라는 예감을 가졌다. 문학적 새로움은 언제든 중요한 요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요구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나 현실의 가능한 지평을 무시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버리지 못하는 대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또 그것대로 견뎌내면서 그 자리가 그 자리 같은 진부성을 조금씩 헤쳐나가는 일이 당장의 선명한 도약만 못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마음 한쪽에서 울려왔다. 새로움에 대한 요구가 강박이 되고 패턴이 되는 일로부터 우리의 경계가 느슨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얼마간 생겨났다. 최종 논의의 자리에 남은 작품들은 시와 소설 모두 세상과 문학의 급한 풍속(風速)에서 조금 비껴나 있는 듯했고, 자신의 자리에서 오래 버텨왔다는 믿음을 주었다.

이설야의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는 두고 온 시간, 망각된 장소를 불러내는 강렬한 시적 호흡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 풍경들을 지금 세상의 최전선으로 만들려고 한다. “사람들은 떠났고/돌아오지 않았다”(「조등(弔燈)」)는 시의 자책은 기실 우리에게 돌려져야 하리라. 더 자주 이설야의 시편들을 만나고 싶다. 임솔아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에서 우리는 시의 언어가 세상의 풍경을 사실의 자리에서 바꾸어놓는 날카로운 경계와 마주한다. 그 거부하고 전복하는 힘은 감각적이라기보다는 온몸으로 성찰적이며, 분노를 잃지 않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 균형이 놀랍고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모래」) 그러게 말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김려령의 작업은 그간 ‘청소년문학’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소설집 『샹들리에』는 그런 인위적 울타리를 무색게 한다. 특히 인물들의 목소리를 끌어올리는 힘이 대단하다. 소설의 결말에도 냉엄한 현실의 리얼리티, 성숙한 근심이 담겨 있다. 「이어폰」이 충격적 사건 이후의 일상을 전하는 방식에는 그간 한국소설이 놓친 리얼리티의 지점이 분명 있다. 다만 좀더 본격적인 작업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김정아의 소설집 『가시』는 이번 심사의 자리에서 처음 접했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새롭지 않아서 새로운 소설들이었다. 그 ‘새로움’은 통상적 의미의 소설적 완성도와는 별개의 독법으로 이 무명의 작가가 세상과 역사의 그늘진 곳에서 오랫동안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읽게 만들었다.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선례씨가 황망 중에 ‘용역들’에게 맹물 국수를 끓여내는 「마지막 손님」의 삽화는 이상하게 쓰리고 감동적이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쉰내를 맡으며 주저앉아 있는 「전수택 씨의 감자」의 중년 택배 여성 ‘화타 언니’를 묘사하는 대목처럼 김정아의 소설에는 인간 진실의 이야기가 툭, 하고 던져지는 지점이 있다. 거기에는 틀 같은 게 없다. 열려 있는 느낌이다. 아직은 조금 소박한 대로, 신동엽문학상의 이름으로 이 작가의 작업을 격려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소감

 

아주 나중에야

 

 

임솔아 林率兒

1987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장편소설 『최선의 삶』이 있다.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청소를 하지 않았고, 잘 씻지 않았다. 책을 안 읽었고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반년 정도를 이렇게 지내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소식인 건지 나쁜 소식인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새로운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악몽이 교묘히 진화되어 있다고. 상을 받게 되어서 기쁘다고 적어야 할 것만 같고 감사드린다고도 적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지면에 차마 그런 말은 적을 수가 없다. 복잡하고 곤란한 내 마음을 굳이 이해받고 싶지는 않다.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이 생태계가, 이 생태계에 활기를 보태는 이들이 도무지 나는 이해되지가 않는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불려나갈 때에 나는 유쾌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자리엔 아예 나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 환경에 적응하고 싶지가 않다. 아무런 힘도 없고 무용하기 때문에 내게 큰 힘이 되어주어온 문학은 지금 내 안에서 간단하게 부서져 있다. 부서지는 것이 곧 문학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가담돼 있는 이 문학판은 고약하기 짝이 없다. 너무 완고하고 너무 보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이 완고함을 지속시키고 있었구나, 하며 매번 놀란다. 적응하고 싶지 않다는 내 의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일 뿐이며, 적응하느니 부서지는 편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여겨진다. 그러나 이 말이 누군가 나를 함부로 부수거나 함부로 삭제시켜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부서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을 거란 것도 잘 안다. 부서진다는 것의 의미를 아주 나중에야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만 같다.

얼마 전 캄캄한 골목길을 친구와 함께 걸었다. 친구는 눈을 감아보고 싶다며 내 손을 잡았다. 눈을 감고 있는 친구와 함께 천천히 걸어갔다. 나무 그림자 속을 지날 때. 친구는 그림자들이 덮치는 것 같아서 무섭다고 말했다.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에도 친구는 갑자기 환해져서 무섭다고 말했다. 어딘가에서 물소리가 들린다고도 했다. 이 길에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다는 거 알았어? 친구가 말했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못 느끼는 변화들을 겪을 때마다 친구는 내 손을 더 꼭 잡았다. 무섭다는 말은 더이상 없었지만 마주 잡은 손으로부터 친구의 긴장이 전해져왔다. 나는 잠자코 함께 걷기만 했다. 친구는 나에게 길안내를 해주어서 고마웠다고 말해주었다. 정작 길안내를 해준 것은 친구였다.

악몽이 진화되기 시작했으니 당분간은 시의 손을 더 꼭 잡게 될까. 아닐 것 같다. 그러고 싶진 않다. 나는 다만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해온 그런 사람. 지극히 정상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나의 작은 힘을 나는 꼭 지키고 싶다. 그럴 때 우리들 곁에 시가 함께 걷고 있기를.

 

 

 

수상소감

 

불확실한 미래를 통과하는 통행증

 

 

김정아 金正雅

1966년생. 현재 서울 성북구에서 살고 있다.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등 오랫동안 인권운동을 해왔고 단편 「가시」를 시작으로 소설을 썼다. 소설집 『가시』가 있다.

 

 

한 유명 소설가가 전화를 해 대전 어디쯤에서 만나자고 했다. 꿈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수상자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꿈은 선명한데 그녀가 말한 지명은 여전히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대전 어디쯤이다. 그곳은 필경 금강일 것이다. 금강에서 날아온 기쁜 소식을 듣고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작은 항아리 속에 저 혼자만 알고 있는 보물을 들여다보는 행복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사람들은 이럴 때 고맙고 감사하다고 표현한다. 나 역시 부지불식중에 되뇐다, 고맙고 감사하다고. 몇겹으로 말하더라도 다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냇가의 무수한 자갈 중 하나가 불현듯 햇빛 속으로 번쩍 튀어오른 듯 신기하기만 하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을까. 그 작고 초라하고 외로운 나날들을 견뎌온 나는 옳았던 걸까.

 

문학과는 거리가 먼 이력으로 살아왔지만 소설은 나의 근본이자 뿌리였다.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는 소설들이 있었다. 책을 덮은 후에도 쉬이 사라지지 않고 마음을 점령한 사람들. 글 속에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나는 자주 서성대었다. 정류장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이라도 멈춰 세워 그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내가 아직 소녀였을 때의 이야기다. 마치 가족처럼 그들은 나의 일상과 함께했고 그들의 신산한 삶을 끌어안고 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생의 난처함에 발목 잡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이고 지고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이들을 써낸 작가들이 이 상의 수상자 윗줄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제 『가시』가 엮어준 인연으로 그 엄청난 이름들과 같은 ‘족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신동엽문학상은 나의 의심과 망설임을 씻어주었다. 이제 곧장 이 길로 가면 된다고 일러주고 있다. 야생은 예측 불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정글에 비유된다. 불확실한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키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내 손에 믿을 만한 통행증 한장이 쥐여졌다는 점이다.

큰 상으로 격려해주신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회, 소설됨을 알아보고 선뜻 책을 내어준 출판사 클의 편집장 김경태씨와 언제나 나의 편에서 살가운 응원을 해준 남편 그리고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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