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21년 6월 2일에 회의를 열고 박소란 송종원 안미옥(이상 시 부문) 김유담 이경재 이주혜(이상 소설 부문) 및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기타 부문)를 예심위원으로, 나희덕 염무웅 전성태 황정아를 본심위원으로 위촉해 심사진을 구성했다.

예심위원들은 7월 21일까지 각 부문에서 그 성취가 인정되는 대상작을 선정하여 심사를 진행했다. 만해문학상 규정에 따라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한 예심에서 시집 7종, 소설 5종, 기타 2종(총 14종)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이어서 4인의 본심위원들은 8월 12일 1차 본심을 열고 다음 8종을 최종심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김승희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안상학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최정례 시집 『빛그물』(이상 시), 김금희 장편소설 『복자에게』, 김이정 소설집 『네 눈물을 믿지 마』, 정지아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이상 소설), 김정남·한인섭 지음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김용옥 지음 『동경대전』(이상 기타).

9월 24일 열린 2차 본심(최종심)에서는 더 본격적인 논의가 재개되었다. 우선 심사자들은 토론 끝에 김용옥의 『동경대전』을 특별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동학이 촛불혁명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한반도 정신사의 숨겨진 뼈대였음을 밝힌 이 책이 한국 지성사에 획을 그을 만한 성취에 도달했다는 데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이어서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본상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심도있는 논의 끝에 심사진은 김승희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을 본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시대의 고통과 결핍, 삶과 죽음, 계급과 젠더에 대한 주제의식 등을 활달하고 생명력 넘치는 언어로 펼쳐내는 이 시집이 새로움과 연륜을 두루 갖춘 시적 경지를 갖추었다는 데 심사위원 전원이 뜻을 모았다.

 

 

 

심사평

나희덕(羅喜德) 시인

만해문학상 본심 대상작이 예년보다 많고 분량이 방대해서 두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읽고 또 읽었다. 예심을 통과한 시집 7권과 소설 5권 중에서 1차 본심을 통해 압축된 리스트에는 김승희 안상학 최정례의 시집과 김이정 정지아의 소설집, 김금희의 장편소설이 남았다. 특별상 후보인 김정남·한인섭 대담집과 김용옥의 저서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토론을 이어나갔다.

김정남·한인섭 대담집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와 김용옥의 『동경대전』은 어느 쪽이든 특별상 수상작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여겨졌다. 한인섭 교수는 홍성우 변호사, 함세웅 신부에 이어 지난 40년간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인 김정남 선생과 긴 대화를 나눈 끝에 마침내 3부작을 완성했다. 이 책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국면들을 더 상세히 알게 되었고,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주역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증언과 자료의 힘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동경대전』은 1100면이 넘는 분량으로 동학의 역사와 사상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1권에서는 수운 최제우의 행장을 기록한 「대선생주문집」의 원문을 주해하고, 수운의 사상적 궤적을 중심으로 조선사상사를 재정립한다. 그리고 「동경대전」 판본과 「용담유사」에 대한 논의를 거쳐 2권에서는 「동경대전」을 새롭게 역해했다. 이는 판본학에 기반을 둔 오랜 연구와 철저한 고증을 거친 학문적 성과로서 한국 지성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서구적 근대성과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 사상의 원류를 탐구해온 그 여정에 경의를 표한다. 두차례에 걸친 토론 끝에 심사위원회는 김용옥의 『동경대전』을 특별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만해문학상 본상은 지난 2년 연이어 소설 쪽에서 수상자가 나왔기에 올해는 소설 부문에 불리한 면이 없지 않았다. 김이정과 정지아의 소설집은 개성이 다른 만큼 읽는 이의 기대나 취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렸다. 물론 두 작가가 중견다운 안정감과 진지한 현실 인식을 지니고 있고, 두 책 모두 허술한 작품 없이 완성도와 짜임새를 갖춘 소설집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부모 세대로부터 유전되어온 역사적 수난을 받아들이고 넘어서는 방식에 있어서는 사뭇 대조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김이정의 『네 눈물을 믿지 마』는 여행을 통한 자아 찾기라는 구도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순연하게 잘 읽히고 때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소 익숙하고 관습적인 서사라는 인상도 주지만, 작가의 끈질긴 문제의식과 타자의 고통에 깊이 공명하는 태도는 그 인상을 불식하기에 충분했다. 세계 곳곳의 학살과 폭력의 역사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각성은 소재주의를 훌쩍 넘어서고, 그 주제를 한권의 소설집에서 끝까지 밀고 나간 뚝심에 믿음이 갔다.

김이정의 소설이 타자에 대한 발견과 공감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현재화한다면, 정지아의 『자본주의의 적』은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 과거보다는 현재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과도기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자신의 삶과 소설 쓰기에 줄곧 따라다니던 조건들을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을 치열하게 모색한다는 점에서 좋게 읽었다.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인간의 속물성 및 키치적 세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자기풍자의 칼날이 예리하게 만져졌다.

김금희의 『복자에게』는 재능있는 작가의 의욕과 성취를 잘 보여주는 수작이었다. 흡인력 있는 문장과 톡톡 튀는 감수성이 매력적이었고, 서사적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제주의 공간성과 역사성을 잘 녹여낸 장편소설이다. 다만 유년기의 개인적 기억과 제주 4·3에 대한 집단기억이 교차하고, 가족의 부재와 성장통, 사랑과 우정, 산업재해와 그에 대한 투쟁 등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 하다보니 집중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상학의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정갈한 슬픔과 예스러운 품격이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안동의 전통음식이나 풍속을 다룬 「헛제삿밥」 「안동식혜」 등이나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빌뱅이 언덕 권정생」 「좌수左手 박창섭朴昌燮」 등은 안상학만이 쓸 수 있는 독보적인 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삶의 풍경들을 현재의 자리로 불러들여 다독이는 「생명선에 서서」 「북녘 거처」 등도 감동적이었다. 다만 후반부로 가면서 긴장이 다소 떨어지는 듯하고 시인의 시선이 과거를 향해 있을 때가 많다는 점이 아쉬웠다.

최정례의 『빛그물』은 시인이 남긴 마지막 허물 같은 시집이라 아프게 다시 읽었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그의 시선은 오히려 담담하고 의연하지 않은가. 표제시를 비롯해서 「1mg의 진통제」 「참깨순」 등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은 자의 허허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편으로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산문시의 가능성은 이번 시집에서 한결 무르익고 풍부해졌다. “이야기의 한 귀퉁이를 누르면 저쪽 세계에서 반짝이며 대답해줄 것 같은 이야기 시, 공간과 시간의 혼돈 속에서 시적인 물음들을 물으며 자기 갈 길을 가는 시들을”(시인의 말) 남기고 시인은 너무 일찍 떠났다.

김승희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은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읽히는 시집이었다. 소재나 주제가 다채롭고 시인 특유의 직설적 화법과 유머가 인상적이었다.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추상적이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실감을 지니고 있으며, 표제시의 구절처럼 “과녁에서 벗어난 마음들을 탁 꺾어버릴 때 나오는 진심,/허심” 같은 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모란의 시간」 「꿈틀거리다」 「이슬의 전쟁」 등은 간결한 리듬으로 깊은 여운과 울림을 주는 시였다. 이미 다른 문학상을 받은 사실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논했는데, 좋은 작품에 대한 상찬은 기계적 공평성을 넘어 중복되어도 좋다는 생각에 모두가 동의했다. 식민지시절 만해의 현실 인식과 미의식이 산문적 정신과 문체로 발현되었던 것처럼, 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시대감각이 김승희의 시집을 통해 활짝 피어났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염무웅(廉武雄) 문학평론가

문학상 심사에는 무엇보다 상당한 수준의 비평적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그러자면 그때그때 발표되는 주요 작품을 습관처럼 늘 읽어야 하고, 그러한 독서경험을 바탕으로 당면의 문학 현실에 대한 일정한 지형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 하지 싶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모자란 데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작품 읽을 좋은 기회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심사를 맡았다.

정지아의 『자본주의의 적』은 표제부터가 도발적이고 도전적이다. 그러나 작가가 ‘이론적’ 제목 아래 수행하는 소설 작업 자체는 이론적인 것들에 대한 상당히 해학적이면서 매우 씨니컬한 입담이라고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작가의 부모는 6·25 전후 빨치산으로 활동했고 작가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문단에 나왔다. 부모는 감옥에서 나온 뒤 “자본주의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초보 농사꾼으로 가난하게 살았고, 그들이 추구했던 이념은 딸인 작가에게는 어느덧 “지긋지긋한 추상”으로 허구화되어 있을 뿐이다. 이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작가의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화자는 “평생을 진짜 인생이라는 것의 밖에서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은 인생이다”(「애틀랜타 힙스터」)라고 체념하듯 중얼거린다. 물론 작가는 이렇게 냉소와 요설로만 시종하지 않고 드물게는 “우리가 뭣 땀시 그 고상을 했으까라?”(「검은 방」) 같은 질문을 통해 고난의 심층으로 파고들어가 오늘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러나 「검은 방」의 통렬함은 다른 작품들의 체념과 냉소주의를 적절하게 제어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장편소설 『유령의 시간』으로 큰 상을 받았음에도 김이정은 어딘가 변방의 작가 같은 인상을 풍긴다. 본심에 올라온 소설집 『네 눈물을 믿지 마』의 수록작 8편 가운데 『창작과비평』이나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같은 메이저 지면에 발표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 점을 말해준다. 주류 잡지가 널리 알려진 또는 검증된 작가만을 상대하기 때문인가. 어떻든 나는 김이정의 이 소설집을 매우 주목해서 읽었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단정한 문체로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핵심을 향해 접근해간다. 많은 경우 화자가 불현듯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기에, 마치 중세 설화의 성배 찾기나 민중 설화의 약수 구하기 서사를 연상케 하는데, 여행지는 다채롭다. 인도의 바라나시, 뽀르뚜갈의 리스본, 스페인의 게르니카, 영국, 베트남 등등. 그런데 그 모든 여정의 종착지에서 화자를 기다리는 것은 그를 떠나게 했던 바로 그 원인으로서의 재앙이고 고난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너는 울 곳이 필요했구나”(「노 파사란」)라는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떠나왔다고 생각한 운명과의 새삼스러운 만남이다.

소설과 비교해서 시를 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가운데 먼저 내 눈길을 끈 것은 안상학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애틋하게 회상하는 순정의 시선으로 시인은 제주 4·3항쟁의 비극을 살피기도 하고 각박했던 서울살이의 편모를 그리기도 한다. 어느 작품에서나 여리고 곧은 시인의 심성이 나름의 감동을 주지만, 거기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불만도 얼마간 느끼게 된다.

김승희는 반세기 가까운 활동을 통해 역량이 입증된 시인이다.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은 그런 경력을 과시하듯 활달한 언어와 분방한 상상력으로 비근한 일상부터 문명의 위기징후까지를 다채롭게 노래하고 있다. 어느 자리에서 이시영 시인은 「모란의 시간」을 ‘귀신의 숨결’이 스며든 걸작으로 읽었지만, 나는 「백합꽃과 포스트잇」 「분만에 대하여」 같은 작품에 그려진 ‘인간의 고통’도 걸작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과 같은 검토를 거치면서 나는 위의 어느 작품이 만해문학상 수상작이 되더라도 괜찮다고 여기는 동시에 어느 작품에서도 ‘이것이다!’라는 압도적인 느낌을 갖지 못했다. 고심의 논의 끝에 가장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준 김승희 시인으로 합의했다.

이번 특별상의 대상 저작들이야말로 서로 비교 불가한, 말 그대로 특별한 업적들이다. 김정남·한인섭의 대담집은 책의 표제가 말해주듯 고난의 민주화운동 배후에서 늘 결정적 역할을 했던 ‘한 숨은 운동가’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 일찍이 홍성우 변호사, 함세웅 신부의 증언을 이끌어냈던 한인섭 교수의 노고가 특히 돋보인다. 김정남 선생의 특별한 업적은 ‘저작’으로서가 아니라 ‘공로’로서 다른 기림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리라 본다.

김용옥의 『동경대전』은 그의 오랜 학문적 여정이 도달한 비범한 문제작으로서, 오늘 우리 사상계와 지식사회에 지각변동을 유발할 만한 거대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특별상의 형식으로라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촉구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만,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김용옥 선생의 문제의식이 지닌 획기적 중요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지,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수상이 우리 학문과 사상의 방향을 둘러싼 진지한 토론의 출발점이 되기 바라는 바이다.

 

전성태(全成太) 소설가

김금희 김이정 정지아는 소설세계를 꾸준히 심화하고 갱신해온 대표적인 소설가들이다. 김금희의 『복자에게』는 작가의 폭이 얼마나 확장될까, 감탄을 자아낸다. 제주의 풍물, 역사, 제주인들의 물정을 큰 공력을 들여 소설에 옮겨놓았다. 제주 방언에서는 자모 하나에까지 혀로 닿아보려 애쓰고 아낀 노고가 역력하다. 민간의료법인의 산재사고를 파고드는 산문정신은 물론 공감과 연대로 밝혀가는 여성서사에 대한 의지도 굳다. 그러기에 한편으론 성인이 된 이영초롱과 고복자 간의 결이 한층 더 두터웠으면 싶었다.

김이정은 ‘속불’ 같은 작가다. 은근하고 여일하게 작가와 작품을 일치시켜온 작가 초상을 갖고 있다. 『네 눈물을 믿지 마』는 장편 『유령의 시간』과 함께 작가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학살 현장을 여행하는 이야기들이 한데 묶이면서 그가 다져놓은 자기구현의 서사는 묵중한 감동을 안긴다. 낯익은 소재와 형식을 지워버리는 진정성이 값지다.

정지아가 오랜만에 내놓은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에는 작가가 초기부터 담아온 두 부류의 소설이 모여 있다. 통칭 ‘빨치산의 딸’로 불리는 자전적 계열의 소설들과 현대의 이야기를 세련되고 완미한 형식에 담아내려는 소설들을 오가며 작가는 늘 치열했다. 그 내적 고투가 작가적 정체성으로 작용하고 또 형식으로 표출되면서 수작들을 여러편 남기고 있다. 작가 자신을 놀려먹듯이 발화하는 서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목소리는 작가 자신도 그렇지만 독자도 홀가분하게 해준다.

시에서는 대상 시집들을 거듭해 읽었다. 김승희 시집은 화법이 참으로 자유롭다. 이런 발성을 갖게 된 시인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텔레비전 시청, 쇼핑, 병원, 요리, 산책, 여행이라는 구구한 일상이 신음 한번에 생의 미망, 자유, 죽음의 노래로 화하곤 한다. 그 높거나 낮은 데 놓인 시구들이 시인만 사용하는 소수어처럼 새롭고 아득하다. 좋은 시인은 시적 사건을 몰고 다닌다. 그의 몸이 위태롭기 때문이고, 세계의 고통과 공명하는 몸인 탓일 게다. 내 몸 역시 올해는 이 시집에 가장 크게 반응한 것 같다.

안상학의 시집은 비판적 통찰과 서정적 풍경이 어우러진 서정시의 품격을 갖고 있다. 그의 언어는 거듭하여 밀착된 삶을 확인하며, 그리하여 ‘살아낸 사내’로서의 초상을 그려낸다. 「생명선에 서서」와 「북녘 거처」와 같은 시들이 그렇다. 2부의 몽골 시편들에도 감응을 많이 했는데 몽골에 대한 나의 개인적 소회 탓인가 했으나 다른 분들의 평도 그렇다고 하여 안도했다.

최정례 시집은 이야기 시들이 강렬했다. 표제시 「빛그물」뿐 아니라 「이불 장수」라든가 「어디가 세상의 끝인지」 「자리」와 같은 시편들을 읽으며 시의 행로와 산문의 행로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핏 어떤 세계에 닿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시인의 리듬에 닿지는 못한 듯싶다. 그 리듬은 내게 아직 어렵다. 이제 시집만 모시고 궁리해야 하는 처지가 된 인연이 슬프다.

김정남·한인섭 대담집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는 구술사로서 의미가 깊었다. 1980년대 말에 대학생활을 한 입장에서 선배 세대의 민주화운동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문단 쪽 일들은 나름 익혀왔는데 재야까지 아울러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화추진협의회 이후 김영삼, 김대중으로 분화된 재야그룹의 김영삼 쪽 증언은 흔하지 않아 이채로웠다.

『동경대전』은 도올 김용옥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대안적 사상의 탐색과 확장 사업의 성취로 여겨진다. 동학의 발원과 혁명성을 서구에 대한 대립항으로 추구하지 않고 내재적·외재적 조건 아래서 정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그의 인문학적 태도는 동서를 아우르는 해박한 종교사와 사상사뿐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까지 더해져 동학을 인류보편적이고 미래적인 뜻으로 세워낸다. 특히 수운 선생과 해월 선생의 각성과 자취를 복원해내는 대목에서는 지극하고 위대한 지성의 쟁투가 역력하여 벅찬 감흥에 젖게 한다. 종교를 개창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수운이 자신의 신화화, 해석의 왜곡을 경계하며 육필을 남기는 방법을 택했노라 논거하는 부분도 그렇다. 도올 선생이 생을 관통하며 수행한 사상적 성찰의 행보가 경전과의 대화에 녹아 있는 점도 이 저작을 후끈하게 한다. 만해문학상을 통해 기념할 수 있어 기쁘다.

수상자 두분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황정아(黃靜雅) 문학평론가

만해문학상 특별상의 두 후보작이 갖는 의의를 두고 경중을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는 제목처럼 민주화운동의 크고 작은 갈피마다 자리를 지킨 김정남 선생의 40여년에 걸친 놀라운 역정을,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의 탁월한 기록자인 한인섭 선생이 정성 어린 대담을 통해 담아냈다. 공식 기록의 빈 곳을 촘촘히 보강해줄 역사적 자료로서나 김정남 선생 본인을 비롯해 민주화 도정에 기여한 여러 인물에 대한 입체적 조명으로서나 중요한 참조문헌이며 흥미진진한 서사다.

그럼에도 『동경대전』을 수상작으로 정한 것은 무엇보다 지금이 한국 사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정립이 특히 필요할 시점이라는 생각, 그 작업이 이를테면 시대정신의 요구라는 느낌 때문이다. 한국 근대사상사 서술의 첫머리에 동학을 배치하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상으로서 동학의 독자성과 현재성을 오늘날의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언어와 논리로 풀어낸 예는 드물었다. 동학이 전통적인 요소들을 그저 새롭게 조합한 것이 아니라 서구 문명과의 의식적인 대결 속에서 발원한 특유의 민주주의 사상임을 밝히는 『동경대전』은 원(原) 텍스트에 대한 문헌비평과 해설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사상적 비전을 담은 작업이다. 이 저작이 던져놓은 논쟁적 주장들을 통해 동학사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해석 공동체가 두터워지리라 믿는다.

본상 심사를 위해 여섯편의 작품을 새로 읽으며 여러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은 긴장되면서도 보람찬 경험이었다. 1차 심사부터 내심으로 올해 수상작은 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소설 쪽은 어딘지 유보되는 부분이 남거나, 나로서는 유보하고 싶지 않지만 다른 독자에게도 그럴 것인지 확신이 안 생기는 면이 있었다.

김금희의 『복자에게』에 담긴 공력과 정성에는 이견이 없었고, 세태의 관찰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아픔에 직핍하려는 작가의 결의는 여기서도 뚜렷하다. 김금희가 김금희를 이기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는데, 치밀한 구도와 날카로운 서술 가운데서도 언제나 예상치 못한, 거의 엉뚱한 공간을 살려내는 작가의 유연함이 이 작품에서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인상이다.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성실함이 자칫 ‘기획’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하지만 의문의 여지없는 역량으로 보아 가까운 시일 안에 다른 작품으로 다시 이 자리에서 논의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정지아의 『자본주의의 적』은 세 소설 후보작 중에서 내게 가장 큰 공명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제목과 달리 이렇다 할 적도 가해도 저항도 없는 이 작품에서, 윤리적 정답으로 정치를 대체하는 ‘정치적 정답주의’의 우세와 무관한 ‘문학의 정치’의 면면함을 느낀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는 더 규명해볼 주제지만, 역설적이게도 전형적이지 않은 듯한 환경과 인물, 서사화되지 않은 듯한 묘사와 사변이 실마리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그 독특한 불안정함이 자아내는 긴장과 아이러니 속에 흔들리지 않는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을 감지하고 납득했다. 다만 작품 전반에서 확고한 성취로 지속한다고 단언하지는 못했다.

김이정의 『네 눈물을 믿지 마』는 그와는 정확히 대조적인 방식으로 수행된 유사한 작업으로 느껴졌다. 정연하고 차분한 서사들이 단단히 배치된 이 소설집의 진가는 전체를 다 읽을 때 비로소 확연해진다. 개인의 서사와 역사적 서사가 위기와 고통을 변주하고, 한편 한편의 서사가 소설집 전체의 서사로 반복된다. 그 반복과 변주가 거듭된 설득처럼 마음을 움직여 결국 소급적으로 모든 서사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형의 틀에 일정하게 매여 있다는 인상은 다 지워지지 않는다.

최정례의 『빛그물』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주 아득한 마음이 되곤 했다. 어쩌면 시인은 원치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특별한 전언을 대하듯 시를 읽게 되는 것은 시인의 빈자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시집의 목소리는 실제로 시간과 거리의 형식이 지워진 어느 지점에서 발화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여기 그늘과 빛으로 짜이는 ‘빛그물’이 실은 흘러가는 물에 드리워진 것처럼 말이다. 취약함과 강인함이 얼마나 가까운 것인지 일러주는 이 시의 언어에서 어떤 순간에도 삶의 진상에 다가가려는 시인의 지향을 확인하게 된다. 여러 시편의 마지막에서 다소 가라앉은 듯한 사유가 툭 떨어지며 남기는 파문이 삶의 단서처럼 오래 남는다.

“지금 여기 없는 꿈이/지금 여기 있는 아픔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몽골 소년의 눈물」)라는 구절이 안상학의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을 관통하는 물음처럼 들렸다. 바닥을 치고도 또 추락하는 ‘바닥행’이 감아 오르는 나팔꽃을 역방향으로 스칠 때, 되짚어간 ‘생명선’ 저쪽에서 다시 바라보아도 여전히 좌절과 희망은 따로 서 있을 때, 꽃이 지듯이 사랑이 사라지는 증거로 역사의 슬픔이 나타날 때, 그 물음은 형태를 바꾸며 존속한다. 이 시집은 그 모든 안타까운 사태를 가만히 비추기보다 담고 또 담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이 채움은 비우고 걸러내는 일과 다르지 않아 언뜻 깊이를 감춘다. 하지만 차분하고도 혹독한 그 마음의 단련에서 아픔과 맞설 사유가 발생하고 있음은 이내 드러난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논의를 거친 후 본상 수상작은 김승희 시집으로 결정되었다.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을 일단 펼쳤다면 그 육박하는 에너지에 휩쓸리지 않기가 어렵다. 시 안에 등장하는 장면들과 사물들은 맥락 속의 의미와 별도로 그 무수함을 통해 또 하나의 차원을 구축한다. 언어의 ‘경제’에서는 과녁을 빗나가는 언어가 낭비일지 모르지만 빗나가는 듯 보이는 과잉조차 이 시집이 생성한 에너지의 장에 정확히 복무한다. 그렇다 해도 이 모두는 수사적인 효과인가. 여기서 언어가 구현해낸 풍성함은 그만큼 숱한 현실의 결핍들을 최대한 감당하려는 시적 원리이자 무너지지 않고 그것들을 돌파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활력 속에 감출 수 없는 필사적인 느낌이 있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잡아끄는지 모른다. 김승희 시인께 기쁘게 축하 인사를 드린다.

 

 

 

수상소감

 

시는 변화의 말

 

김승희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저는 낙엽처럼 노트북에 매달려 늘 무언가를 쓰고 있습니다. 희망 없이 절망에서 무언가를 쓰기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쓸 것이 없고 아무 힘도 없으며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견딜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처한 듯한 어두운 결핍의 느낌에서 시는 출발합니다. 감염병과 자본과 권력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우리의 존재를 무효화시키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으며 세상은 고칠 수 없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인간은 자기가 몸담고 사는 세계와 자신의 존재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가장 고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전을 하는 동시에 공전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고칠 수 없는 나쁜 방향으로 세계가 질주하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도 없고 그 고통만이 우리의 몫이라는 비참과 무기력 속에서 시는 출발하지만 시는 거기에서 종결되지는 않습니다. 시를 쓰는 동안 (읽는 동안) 우리에게는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비유,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시적 정황, 새로운 화자, 새로운 어조, 새로운 리듬, 새로운 음악성의 간섭, 새로운 정체성 등을 찾을 때, 그 변화는 찢어지는 파토스를 넘어 존재를 일으켜 세우는 엄청난 역동성을 지니며 우리의 무기력, 상실감, 결핍을 압도하는 새로운 빛의 체험을 줍니다. 그 지점에서 잠깐 시적 치유와 해방감이 옵니다. 그렇게 저는 어둠의 바닥을 더듬으며 새로운 시적 언어를 찾아 근근히 생존해온 것 같습니다.

시대는 늘 궁핍하기에 시는 언제나 시대에 저항하는 대항담론을 만들어왔고 그 대항담론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왔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농무』에서 시작하여 그동안 만해문학상을 받아온 많은 작품들이 각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담론의 언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만해의 위대한 시 「님의 침묵」 속에 있는,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에서부터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까지의 패러독스의 구조와 언어를 통해 생존과 사랑의 비밀이 열리고 우리의 존재 안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 쓰기(읽기)의 즐거움, 아름다움은 바로 그런 변화를 쓰고 만나는 기적 속에 존재합니다. 시적 언어는 우리의 허약한 존재에 생생하게 작동하는 변혁의 힘을 가지고 있고 찢어진 파토스로 파열된 존재들의 피 흘림을 위로하고 봉합해줍니다. 언어는 신의 것이니까요.

저에게 늘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친구, 최정례 시인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시집 『빛그물』에 「참깨순」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녀와 같은 병실의 옆 침대에 있던 아주머니의 불가해한 생명력을 그린 대목입니다. “밤새도록 앓다가/아침에 남편에게 전화해서/참깨순 나왔어? 묻는다//(…)//4인실에서의 목소리가 무균실로 떠오르는 듯하다/거봐, 내가 물을 좀 주라고 했잖아/수박 오천통 떼어 보내고/갈아엎은 밭에서 쟁쟁하게 솟아나는/참깨순, 참깨순, 참깨순” 시인은 자주 난해시를 썼는데 김수영의 마지막 시 「풀」처럼 지극한 단순함에 도달한 이 위대한 시는 그녀의 유언이자 마지막 절창이 아닌가 합니다. 무균실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은 자신의 황폐한 자아를 작은 참깨순에게 의탁하고, 작지만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참깨순같이 파릇파릇한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납니다. 시는 그렇게 변화의 말이 되어 변화를 수행합니다. 팬데믹 시절에 우리는 또 이 참깨순처럼 절절히 살아가야 합니다.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을 읽어주시고 제가 늘 동경했던 만해문학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누군가 나의 작업을 바라보아준다,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위로와 보람을 줍니다. 고맙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수상자 약력

金勝熙 1952년 전남 광주 출생. 서강대 영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 청마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 수상.

 

 

 

수상소감

 

나의 생애 기쁜 날

 

김용옥

 

수상의 소식을 들은 것은 우리나라 대형백자 달항아리의 명인 지당 박부원 선생님의 전화로부터였다.

“뭔 상이라니요?”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났어요.”

요즈음 삶의 중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 많아 정신없던 차에 수상이라니, 하여튼 쑥스럽기만 하다. 나는 문자메시지로 백낙청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상을 받고 격려를 받아야 할 젊은 정예들이 많을 텐데 내가 받다니! 그러나 사실 내면에서는 문학상에 대한 로맨스가 없지 않았다.

 

나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들끓어오르는 십대 소년기로부터 철학적 사색에 심취했지만 나를 철학으로 이끈 것은 문학이었다. 백수사에서 나온 『한국단편문학전집』 다섯권, 그리고 정음사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수백권을 이미 십대에 모조리 독파했다. 이러한 나의 문학적 열정은, 197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의 한 장르로서 한국소설 영역부문이 있었는데, 이상의 『날개』를 영역해서 제출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내가 얼마나 이상의 문학세계에 미쳤으면, 그리고 얼마나 영어라는 언어에 ‘올인’했으면 『날개』를 영역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황당무계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 당시 『날개』의 영역본이 없었고, 지금도 그 영역작품에 나는 프라이드를 느낀다. 변영태 선생이 『논어』를 자신의 영어실력으로 재해석한 그런 호기가 나에게도 살아 있었다. 『날개』의 영역을 위해 나는 이상이라는 인간의 전모를 세밀하게 탐색했던 것이다.

 

나를 자꾸 ‘특별상’이라는 카테고리에 감금시켜 상을 주려 한다면 나는 수상을 거부할 것이다. 나는 ‘만해문학상’을 준다기에 받는 것이다. 철학자 베르그송, 럿셀, 싸르트르(수상 거절)도 모두 철학자이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철학적 사유를 나타내는 문장이라도 그것은 결국 문학이다. ‘리터라쳐’(literature)라는 말이 결국 ‘쓰다’라는 말에서 온 것이니까 철학적 작문도 크게 보면 문학에 포섭된다.

 

더구나 수운의 세계도, 엄밀한 한학의 기반 위에서 철학적 사색을 「동경대전」이라는 구조물로 표상했지만, 그 기반은 시와 가사이다. 나는 철인으로서의 수운보다 시인으로서의 수운이 더 선명하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의 「용담유사」도 한글시의 한 원형이다.

수운의 시는 곡신(谷神)을 비상한다. 수운의 위대함은 일체의 목적론적 언어구성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동학은 인간을 종교적으로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수운의 시는 현상의 ‘스스로 그러함’을 나타내지만 그 배면에 무한한 신비가 서려 있다. 그러나 그의 시경은 그 신비를 무화(無化)시킨다. 인간이 곧 하느님이라는 그의 주장의 핵심에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시경이 녹아 있는 것이다. 동학은 우리 조선사람 시심(詩心)의 극치이며, 주술(主述)의 논리를 초월하는 것이다.

 

젊은 날, 어느 산사에서 같이 시를 논한 바 있는 김승희 선생과 한 자리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수상자 약력

金容沃 철학자, 한의사. 고려대 정교수 역임. 최근 저서로 『동경대전』(전2권), 『노자가 옳았다』 『나는 예수입니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중용 인간의 맛』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