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올해 예심위원으로 박소란 송종원 안미옥(이상 시 부문) 김유담 이경재 이주혜(이상 소설 부문)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이상 기타 부문)를 위촉했다. 예심위원들은 만해문학상 운영규정에 따라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1년 5월 31일까지) 출간된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예심을 진행하였다. 부문별로 진행한 예심회의에서 논의 끝에 아래와 같이 시집 7종, 소설 5종, 기타 2종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김경인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김승희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김신용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안상학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이기성 『동물의 자서전』, 이산하 『악의 평범성』, 최정례 『빛그물』(이상 시), 김금희 『복자에게』,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김이정 『네 눈물을 믿지 마』, 정지아 『자본주의의 적』, 조해진 『환한 숨』(이상 소설), 김정남·한인섭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김용옥 『동경대전』(이상 기타).

마찬가지로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위촉한 4인의 본심위원들은 8월 12일 1차 본심을 열고 총 14종의 본심 진출작을 대상으로 한 심사에서 앞의 발표문에 나온 대로 시집 3종, 소설 3종, 기타 2종을 ‘최종심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만해문학상은 최종심인 2차 본심에서 수상작(상금 3천만원)을 선정한다. 아울러 본상과 다른 장르의 작품에 특별상(1천만원)을 수여할 수 있다. 9월의 2차 본심(최종심)을 거쳐 수상작이 결정되며 본심위원 명단 및 자세한 심사평은 『창작과비평』 2021년 겨울호에 발표된다.

최종심 대상작 8편에 대한 예심평은 다음과 같다.

 

 

 

최종심 대상작 예심평

 

 

시 부문

김승희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은 동시대의 현실과 사람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을 엿볼 수 있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해방과 폐허를 같은 층위에 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실로 놀랍다.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생명력 있는 언어로 그려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이 천착하여 도달한 시적 인식은 희망과 사랑으로 확장된다. 시인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에너지가 읽는 이에게도 전달되어 삶에 새로운 의지를 갖게 한다. 또한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계급이나 젠더에 대한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시, 동시대의 고통, 삶의 시간과 죽음, 여성에 대한 사유가 거듭 갱신된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의 저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안상학의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죽다 남은 사람들”과 “살다 남은 사람들”(「언어절言語絶」)의 오래고도 새로운 고통을 나지막이 읊조린다. 4·3과 세월호와 그밖에 ‘사건’으로 호명되지도 않은 삶들을 살피는 시인의 목소리는 본연으로 순정한 듯 보이지만 맺혀오는 서슬을 걸러내고 걸러내어야 도달되는 것임에 분명하다. 밀도를 줄여 더 깊어진 시적 응시에는 엉키고 뒤집힌 역사와 풍경도 순순히 본모습을 내어주는 듯하다. 너무 많은 슬픔이 소비되고 너무 많은 개탄이 식어가는 우리 시대에, 먼 곳을 헤아리는 마음과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는 이 시들은 연대의 다른 방식을 일깨운다. 아픔 속에서 기어이 인간다움을 정련하는 안상학의 시를 통해 ‘인간학적 장치’로서의 시의 위력이 다시금 실감된다.

최정례의 『빛그물』은 시 한편 한편마다 날이 선 시간들이 들어서 있다. 시인은 약해진 몸의 상태에서도 정신을 곧추세워 삶의 고통에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이끌려는 기세를 보여준다. 이 기세가 시적인 이유는 삶과의 드잡이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우연을 넘어선 필연처럼 타격을 가하는 삶의 순간순간을 시인은 투명한 정신으로 거리를 두고 간명하게 직조해내며 그 과정 속에서 쉽사리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시에 새겨넣었다. 시의 목소리는 자주 무심한 듯하지만, 최정례 시만큼 열과 성을 다해 시적인 장면을 포착하고 그 안에서 존엄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정직한 심사를 대면한 작품도 드물지 싶다.

 

소설 부문

김금희의 『복자에게』에는 아빠의 실패에 대한 미운 마음을 품은 채 낯선 섬에 부려진 열세살 이영초롱에게 “미안함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감정”임을 가르쳐준 고모가 있고, 그 미안한 마음의 대상이 되는 친구 복자가 있다. 십년 후 판사가 되어 제주로 발령받은 영초롱은 어느 의료원 산재 사건의 피해자이자 소송 원고가 되어 싸우는 복자를 다시 만난다. 제목이 암시하듯 소설은 십년 전 정희 고모가 밤마다 타자기를 두드려 써내려갔던 편지와, 어린 영초롱이 고모의 타자기를 빌려 쓰기 시작했으나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의 총체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미워하고 미안해하며, 싸우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 싸우는 사람들이 몰래 써내려간 편지들은 방향을 잃은 듯 독자에게 전달되지만, 이 수신의 방향이 그리 엉뚱하고 틀린 일은 아니라고 소설은 말한다. 인물들의 편지를 대신 쓰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일이고 그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일일 테니까.

김이정의 『네 눈물을 믿지 마』는 우리 주변의 부서지고 망가진 존재에 확대경을 갖다 댄다. 중년의 파산과 이혼, 투병 등 흔하고 범속한 불행 앞에서 허우적대는 소설 속 인물들은 개인의 고통이 얼마나 고유한지, 얼마나 사회적인지를 동시에 호소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소설의 무대를 낯선 땅으로 옮겨갔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제는 한국인에게 관광지로 더 친숙한 호이안과 다낭이 실은 참혹한 학살에 연루된 공간이었음을 상기시키고, 그 안에서 희생된 약한 존재의 목소리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문학이 담당해야 할 역사적 역할에 대해 다시금 질문한다. 폭격이 휩쓸고 간 게르니까를, 재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리스본을, 바라나시의 화장장을, 폐허의 자리를 기어코 찾아가 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버리는 이야기를 통해 연대의 눈물을 보여준다.

정지아의 『자본주의의 적』은 ‘자본주의의 적’이 누구인지 낱낱이 밝히고 타파하려는 게 아니라, 현대사회의 자본주의를 다양한 시선에서 조망하고 작가 자신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에 깊숙이 속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소설이다. 이른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세속적 깨달음으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날카로운 작가적 시선과 당대에 대한 역사인식이 범박한 세태소설을 넘어서는 탁월함을 보여준다. 자본이 취향을 결정 짓고 그 취향이 존재의 증명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작가는 냉철하게 인식하되 주류사회에서 주목하지 않는 삶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구순의 빨치산 노모의 삶을, 아파트 경비원의 발바닥을, 더이상 욕망하지 않는 가난한 자폐가족을 감상에 젖지 않되 애틋하게 그려내는 솜씨와 웅숭깊은 시선은 정지아의 저력을 확인하게 하는 동시에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기타 부문

도올 김용옥의 『동경대전』(전2권)은 동학이 촛불혁명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한반도 정신사의 숨겨진 뼈대였음을 밝힌 대작이다. 서구 물질문명 또는 서학과 철저하게 대결하려 했던 최수운의 삶과 사유가 현재의 문명적 위기를 돌파할 사상적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이 책은 무엇보다 정밀한 판본연구와 실증에 기초함으로써 오늘날의 많은 독자들이 동학을 재인식하는 신선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로소 동학은 최수운이라는 사상적 영웅의 개인적 깨달음이나 종교적 신비주의의 통념을 벗고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본래 면목을 여실히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전적 문제제기와 과감한 해석, 치밀한 논증이 함께하는 이 책은 단순한 번역·주해서가 아니다. 동서고금의 사상에 두루 밝은 저자의 독보적인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영화 「1987」의 한 배역에 모티프를 제공한 실존인물로 더 친숙할지 모르지만 1960년대 이래 우리 민주화운동사의 거의 모든 고비마다 김정남이라는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는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대담 형식으로 만들어진 김정남의 회고록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생애 기록이 있는 그대로 충실한 현대사 서술이 되는 진귀한 체험을 제공하거니와 여기에는 인터뷰어 한인섭의 균형 잡힌 지성과 안목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은 정의와 진실이 핍박받는 현실 가운데 헌신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의 이름들이다. 그러므로 김정남이라는 이름은 불의한 권력에 맞서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때로는 자신의 안녕을 저버려야 했던 많은 이들의 대명사다. 그러한 겸허가 이 책이 말하는 진실을 진실답게 만들고 또한 그 영원한 승리를 신뢰하게 만든다.

김유담 박소란 송종원 안미옥 이경재 이주혜 및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