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2018년 6월 14일 열린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에서는 심진경 장철문 전성태 최원식을 제36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상금을 각 2천만원으로 증액하였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18년 5월 31일까지)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시·소설·평론 부문에서 2인에게 시상한다.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이 올린 12편이 아래와 같이 심사대상이 되었다.

김현 『입술을 열면』, 최지인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이해존 『당신에게 건넨 말이 소문이 되어 돌아왔다』, 문보영 『책기둥』,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안미옥 『온』(이상 시), 기준영 『이상한 정열』,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 최은미 『아홉번째 파도』, 김혜진 『딸에 대하여』, 박솔뫼 『겨울의 눈빛』, 강화길 『다른 사람』(이상 소설).

심사위원들은 7월 25일 모임에서 김현 시집, 문보영 시집, 신철규 시집, 박민정 소설집, 최은미 장편소설, 김혜진 장편소설로 대상을 압축하고 장시간 토론을 펼쳤다. 그 결과 소수자의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세계를 이루어낸 김현 시집(창비 2018)과 동성애 서사를 삶의 층위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 김혜진 장편소설(민음사 2017)을 제36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심진경(沈眞卿)_문학평론가

이번 신동엽문학상 최종심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총 네편이다.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세월호참사 이후에 무겁고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들, 슬픔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들을 “날개 잃은 천사들”(「다족의 천사」)에 빙의해 쓴다. 그러나 이 묵직한 시 쓰기가 시인 자신의 경험의 프리즘을 통과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상대적으로 심사위원들이 김현의 『입술을 열면』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자기 경험과 자기 언어에 좀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네가 조선의 빛이다”(「조선마음 8」)와 “내가 조선의 호모다”(「가슴에 손을 얹고」) 모두를 ‘조선마음’이라는 내밀하면서도 폭로적인 시공간 속에 병렬시키는 시적 반전, 시의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형식적 노력, 산문성에 저항하면서도 그에 매혹되는 이중의 작법 등에서 젊은 시인의 참신함과 성실함이 엿보였다. 김현 시인의 수상을 축하한다.

신동엽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작은 오랜 논의 끝에 결국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로 결정되었다.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는 ‘척주시’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갈등, 사적 분노와 투쟁, 그리고 가슴 떨리는 사랑이 뒤엉키면서 전개되는 사회적 멜로드라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시장 주민소환, 사이비 종교 등의 문제가 어떻게 세대를 이어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적 불행에 개인이 어떻게 맞서는지를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요령있게 엮지 못해 산만해진데다가 후반부의 사건 해결에 이르기 위한 전제가 다소 장황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는 소설의 스케일이나 주제의식이 중편적 분량에 머무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지만, 짜임새 있는 완결적 구조와 명확한 주제의식의 전달, 게다가 노년의 삶을 고단하게 이어가는 어머니의 실감 나는 일상의 디테일이 소설 분량을 뛰어넘는 묵직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 심사위원들 모두 동의했다. 외부자의 시선 개입을 통해 레즈비언 커플을 바라보는 설정이 동성애 서사에 좀더 현실적인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혜진 소설가의 수상을 축하한다.

 

장철문(張喆文)_시인

신철규와 김현의 시집이 토론을 지속시켰다. 영어의 대문자 ‘I’를 연상시키는 자기진술로 채워진 시집들 속에서, ‘남’과 ‘우리’에 대한 관심을 밀고 간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신동엽의 시정신에 다가서 있었다. 시인 자신들에게는 그럴 뜻이 전혀 없겠지만, 시는 역시 어려워!라고 손사래 치게 하는 시속(時俗)의 난해함으로부터도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시적 주체가 가진 지향이 현실과의 긴장에서 어떤 익숙한 관념의 색채를 갖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으며, 시집 뒤쪽의 사투리가 그것을 수긍하게 했다. 물론 사투리와 가족사가 문학적 자산으로서 값지지 않다거나 그것이 가볍게 다루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익숙한 화법, 이미 선배 시인들에 의해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된 가족사가 시적 주체만의 그것이면서 동시에 인생 내지는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낯선 보편성을 낳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입술을 열면』은 그 맞은편에 서 있었다. 시속의 난해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세계를 올곧게 밀고 가면서 산문적 이해와는 다른 쪽에서 언뜻언뜻 육박해오는 느낌의 체계가 없지 않았다. 자신의 시가 지향하는 바로부터 한눈팔지 않고, 어느 정도는 자각적으로 그 세계를 밀고 가는 산만하지 않은 젊음 또한 부러웠다. 시 쓰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세계를 생산해내려는 힘겨운 몸짓이 손쉬운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력한 지적 기획, 주석이 차지하는 비중과 생경함은 부담스러웠다. 두분 시인의 고투에 응원을 보낸다.

박민정과 최은미, 김혜진의 소설이 각축했다. 『아내들의 학교』에 대해 격려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 문화적 담론과 문학적 담론이 교호하면서 겯고 트는 것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것이지만, 문학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 자체가 갖는 서사와 감각의 체계에 주의를 기울인 측면도 없지 않다. 『아홉번째 파도』는 장편소설로서의 스케일과 선연한 윤곽으로 다가오는 시공간, 디테일을 견인하는 문장의 튼실함이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연재소설에서 간혹 경험하게 되는 산만함, 툭툭 끊기는 흐름이 아쉬웠다. 연재와 저작은 별도의 고되고 지루한 노동이 소요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딸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밀고 가는 갈등과 지난한 화해의 서사적 흐름이 돌올했다. 또한 시대적 담론 쪽에 선 주체들의 입지 못지않게 그 맞은편에 선 주체들의 그것 또한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는 점에서 발화자인 어머니의 자리와 마지막까지 버거운 갈등을 견지하고 가는 그 인물됨이 값지고 생생했다. 물론 발화자가 젠을 요양원에서 빼내오고 그것으로 별 문제나 갈등 없이 마무리되는 것이 다소 풀어진다는 인상을 남기기는 했다. 게으른 독자로서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는 경험을 선사해준 세분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전성태(全成太)_소설가

문보영의 시집 『책기둥』은 일상의 정체감(停滯感)을 환기시킨다. 앙뚜안, 스트라인스, 지말 3인으로 충분한 세계, 세개의 질문과 세개의 답으로 해명이 가능해 보이는 세계, 혹은 그 이상의 것들이 있더라도 별로 의미 없는 세계. ‘유희로써 견딤’이라고 할 만한, 무해한 풍자가 난만한 시들이다. 신철규의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첫 시집에 담을 수 있는 다채로운 무늬가 새겨져 있다. 특히 4부는 낯익은데도 아프게 읽히는데 이 시인에게는 상류(上流)이기도 할 이 세계는 이이의 언어와 감성이 이후 도시로 나와 겪었을 수고로움을 생각나게 한다. 장차 ‘교섭’이라고 할까, 어떤 노정을 격렬하게 거치고 나면 그 하류의 풍경이 황홀할 것이다. 김현의 두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은 형식에서 ‘각주 병치’가 진화했다. 김현에게 본문의 시는 성소의 언어이고, 주석은 거리의 언어처럼 보인다. 낙차가 큰 텍스트들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간섭한다. 영원과 순간이라는 시간성에서도 낙차는 두드러진다. 영혼의 각성에서만 감각되는 영원성. 시인이 현실의 토대에 이를 정박시키려고 부단히 고투하는 시적 대결은 성스럽다.

박민정이 인문학적 상상력을 시대의 복판에 세워 생성해내는 질문들은 매우 힘차다.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는 여성 주체들이 자기 운명, 역사의 이면에 대해서 깨닫고 살펴 알아가는 ‘앎’에 대한 이야기들로 만개해 있다. 설정이 부자연스러운 대목들이 있지만 정보들을 분별해가며 메시지를 부감하는 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은미의 장편 『아홉번째 파도』는 주제와 소재가 당대적이고 기획이 큰 소설이다. 사이비 종교와 토착기업의 검은 커넥션을 밝혀가는 서사는 세부 디테일이 치밀할 뿐 아니라 이야기의 흡인력도 좋다. 전반적으로 사건이 인물들을 삼킨 듯하여 아쉽지만 큰 이야기를 잘 쓸 작가라는 신뢰와 기대가 크다. 김혜진의 장편 『딸에 대하여』는 예측 가능한 플롯임에도 감정의 실감이라는 측면에서 세심하고 정교하게 설득해가는 작가의 관찰력과 여문 사유에 강점이 있다. 초점화자를 어머니로 세워 동성애 문제를 삶의 층위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으며, 현재형으로 밀어붙이는 이 작가 고유의 문체 역시 견결하다.

김현 시인이 가까스로 찾아낸 평화의 순간들, 이미지들을 두 손바닥에 받은 듯 나는 여전히 어쩌지 못한다. 김혜진이 소설 밖으로 밀어낸, 숨차서 한발 한발 가까스로 내딛는 어머니의 초상이, 그녀가 안은 혼란과 한계가, 어쩔 수 없이 등에 진 그 쓸쓸함이 인생이었다.

 

최원식(崔元植)_문학평론가

최종심에 오른 6권을 두고 1차 토의한 결과 시에서 문보영, 소설에서 박민정을 우선 제외하기로 하였다. 전자는 세계가 협소해 신동엽문학상에 썩 어울리지 않고, 후자는 진지한 지향에도 불구하고 작품 설계가 좀 작위적인 점이 눈에 띄었거니와, 양자 모두 다른 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고려되었다.

먼저 김현의 시집 『입술을 열면』과 신철규의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집중토의했다. 어리석은 탈민주화 바람 속에서 소수자의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앨써 구도하는 두 시인 모두 신동엽의 새로운 계승자로서 손색이 없다. 한편 한편 간신히 간신히 구축된 김현의 시적 고행이 놀랍지만 길고 짧은 각주를 단 시형이 시집 전체를 일관해서 때로는 너무 기계적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슬그머니 일었다.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혼자 빠져나와/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가만히 되뇌곤”(‘시인의 말’) 하는 신철규는 타고난 시인이다. 그런데 “지상에 파견된 천사”(신형철)와 같은 포즈, 일종의 자대(自大)가 걸린다. 신철규는 요컨대 낯익다. 나는 김현의 불편한 낯섦을 지지했다.

최은미의 장편 『아홉번째 파도』와 김혜진의 장편 『딸에 대하여』를 잘 읽었다. 지방소도시 척주(삼척의 옛 이름)를 2012년 주민소환 사건을 축으로 파악해간 전자는 오랜만에 보는 정통 리얼리즘 소설이다.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시장과 그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갈등이 충분히 복잡하고 시 보건소의 내막에 어쩌면 그리 소상한지 괄목상대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활극으로 떨어져 『도가니』 류의 문제소설로 귀결된 것이 안타깝다. 후자는 제목에서 짐작되듯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다. 남편을 여의고 요양원의 보호사로 일하는 ‘나’는 끝내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거니와, 그녀의 외딸 그린은 동성애자다. 죽음을 앞둔 노인과 ‘다른’ 세상에 사는 딸 사이에 낀 오늘날 어머니들의 운명을 비타협적으로 접근해간 작가의 노력이 미쁘다. 비록 장편적 규모에 좀 미흡해도 어느 틈에 우리 소설의 최전선이 된 동성가족을 어미의 눈으로 새롭게 제출한 후자를 당선작으로 삼는 데 기쁘게 동의했다.

축하한다. 네분의 정진을 빈다.

 

 

 

수상소감

 

 

 

김현 金炫 1980년 강원 철원에서 태어났다. 2009년 『작가세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산문집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가 있다.

 

 

때려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새벽에 일어나 시를 쓰고 출근했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앞좌석에 앉은 사람은 언제 일어나나, 속앓이하다가 왜 이러고 사는 걸까, 글 같은 거 때려치우면 행복하겠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밑반찬을 만들고, 낮잠을 자고, 영화를 보고, 서울 근교로 여행을 다녀온 지도 꽤 오래됐다. 마감에 시달린 적은 없지만, 마감 때문에 심신이 허덕인다. 그런데도 한사코 일을 때려치울 생각은 않고 자꾸 쓰지 않는 생활을 상상한다. 그날,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애인과 고등어구이 된장 정식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쓰는 일이 아니라 먹고사는 일에 관하여 궁리했다. 두부를 밥 위에 얹어두고 그랬다. 상이란 게 이렇게 대단하다.

나는 창작을 통한 정신의 고양이 굶주린 배를 채운다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시, 문학은 무엇보다 정신을 향해 있다. 쓰는 일을 직업의 밖에 둘지언정 노동의 바깥에 홀로 세워둬본 적이 없다. 정신이 겁먹고 도망칠까봐 그랬다. 일하며 글을 쓰는 삶이 녹록지는 않지만, 다행히 일만 하고 글만 쓰는 삶도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살며, 철들며, 문학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서 배운 게 있다면 읽거나 쓰는 행복이 있는 것처럼 읽지도 쓰지도 않는 가운데의 행복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훨씬 더 빨리 쓰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쓰는 자의 미래는 쓰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므로. 종종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쓰기를 중단하는 감격스러운 모습을 떠올려본다. 계속할 때 생기는 의미가 있듯이 그만둘 때 생기는 의미도 있다. 그런 의미가 있다고 여기면 글이 더 쓰고 싶어졌다. 그만둘 때 후회가 남지 않는 사람에 가깝기를 원해서다. 상이란 과거의 것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만 언제나 앞날을 내다보게 한다.

상은 받는 데에는 의미가 없다. 상은 주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날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되어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았다.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간단한 것일 테다. 쓸 수 있을 때 쓰자. 때가 되면 쓰지 않고도 평화로울 수 있겠지. 쓰는 사람으로서 믿어보고 싶다. 언젠가는 읽는 것만으로도, 보는 것만으로도, 먹는 것만으로도, 시원히 싸고 싶을 때 싸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생을 때려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고결함을 뒤로하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더 악착같이 되도 않는 솜씨로 글을 쓰고 싶다고 괴로워하며 슬퍼하고 싶다. 추해지고 싶다. 그것이 아무래도 자연스럽다. 쓰지 못할 때 깔끔히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인위적인 욕망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든 시를, 문학을, 삶을 생각하고, 생각할 것이다. 욕망의 껍데기가 두꺼워질 때 정신의 알맹이는 더 단단해진다는 걸 믿음 삼는 자가 바로 쓰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든 때려치울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앞으로도 쓸 수 있는 힘이다. 쓰던 대로 쓰겠다.

 

 

 

수상소감

 

한편의 소설이 끝났을 때

 

 

김혜진 金惠珍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어비』,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가 있다.

 

 

소설을 쓸 때

저는 저를 돌파하고 싶고, 제가 서 있는 자리 그 너머에 가닿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편의 소설이 끝났을 때엔 여지없이 그 글이 바로 저이고, 제가 서 있는 자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실패가 예정된 일이었고, 한계가 분명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돌파할 수 있다고,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럴 수 없는,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큽니다.

 

더운 여름 오후에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쓰는 시간, 쓰지 않는 시간 동안 곁에서 고민을 나누고,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큰 격려와 응원을 받은 기분입니다. 더 용기를 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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