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표명희 表明姬

1965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독문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재학중. PYO7788@hanmail.net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야경(夜景)

 

 

엄마는 텔레비전을 켜둔 채 잠이 들었다. 엄마의 등을 받치고 있는 겹겹의 짓눌린 베개를 보면서 Y는 안방 문을 닫는다.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난 셈이다. 오늘도 집안 구석구석의 곰팡이와 엄마의 살갗을 파먹어들어가는 세균과 끈질기게 씨름한 하루였다. Y는 목욕탕으로 가 수영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엄마의 등에 욕창이 번져가기 시작한 건 장마 중반 무렵이었다. 욕창 방지용 매트리스와 에어컨 덕에 그동안 별탈 없이 지내왔건만 폭우가 빚은 몇시간의 정전이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몸속 어디서 그렇게 물이 생겨나는지 반투명의 수포막이 연신 부풀어올랐다. 얇은 막을 터뜨리면 희부옇게 곪은 물이 기다린 듯 흘러나왔다. 곪은 물을 닦아내고 허옇게 가라앉은 부위를 알코올로 닦아내고 수시로 마싸지를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팔꿈치나 발꿈치, 엉덩이 쪽에 생겼는가 하면 곧 어깨, 등 쪽으로 욕창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처음엔 피부가 창백해지는 조짐을 보이는가 싶더니 장밋빛 반점으로 붉어지다 차츰 물집으로 발전해나가는, 색과 모양의 기묘한 변화를 보이며 그것은 끈질기게 나고 자랐다. 놀라운 번식력하며 부패해가는 단백질의 퀴퀴한 냄새까지 곰팡이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장마철 낡은 반지하 집은 구석구석 곰팡이의 세력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씽크대 구석 쪽을 닦고 나면 바닥의 곰팡이가, 그걸 없애고 나면 찬장 주변 곰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벽지의 꽃무늬처럼 바닥, 천장, 벽 가릴 것 없이 면이란 면은 모조리 곰팡이 얼룩이 장악해갔다. 장마철 내내 Y의 생활이란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균들과의 지긋지긋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진저리나던 장마가 오늘로 막을 내린 것이다. 9시 뉴스 기상캐스터는 편안하고 믿음직한 목소리로 장마의 종말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수영가방을 챙겨든 Y는 현관을 나선다. 모서리마다 녹으로 얼룩진 철제 현관문이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내며 닫힌다. 독가스실에서 빠져나오듯 Y는 계단을 서둘러 오른다.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설 때마다 지하층의 무겁고 눅눅한 공기가 허물처럼 벗겨져나가는 느낌이다.

보름달이 선명하게 걸린 밤이다.

창덕궁 돌담길로 접어들자 숲의 짙은 풀내음이 물씬물씬 담장을 타넘어온다. 온몸의 수천만개의 모공 속으로 풀향기가 파고든다. 단조롭고 지루한 노역에서 비로소 풀려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과 활력이 샘솟는 시간. Y에게 밤은 밝아오는 새벽처럼 생기 넘치는 시간이다.

어렴풋이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돌담 옆 가로등 아래로 사람이 나타난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돌담길을 따라 조깅을 하면서 다가온다. 근처 공원을 돌아오는 모양이다. 금실을 과시하는 듯 발자국 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Y 곁을 스쳐간다. 밤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새로운 설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다음부터 도시의 밤은 한동안 운동하는 사람들로 술렁거렸다. 이 돌담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Y가 다니는 수영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원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수영장은 지난 봄부터 심야시간에 개방했다.

발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테크노 음악으로 쿵쾅거리는 빨간 스포츠카가 밤공기를 뒤흔들어놓으며 지나간다. 소리의 파장이 Y의 몸을 훑고 간다. 그 생생한 소리의 결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에 또다른 굉음이 밀려든다. 다다다다다다─ 헬멧도 쓰지 않은 노랑머리의 폭주족이 오토바이 모터소리를 거침없이 토해놓으며 어둠속을 질주해간다. Y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도심의 밤이 이따금 연출하는 돌발적이고도 강한 에너지의 분출을 접할 때마다 Y는 한번씩 숨통이 틔는 느낌이다. 밤은 약간은 과장되고 거친 듯하면서도 울울한 영혼을 일시적이나마 해방시켜주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대문 밖을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사람들로 밤은 언제나 새롭게 태어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들은 세상의 절반이 어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 같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수영장 입구가 보인다. 그 빛을 휘적이며 누군가 걸어나오고 있다. 언제나 이 시간쯤 수영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여자다.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짙고 윤기 흐르는 머리칼과 매끄러운 피부로 건강미를 물씬 풍기는 여자. 이따금 자신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떠올려보게 하는 여자다. 그럴 때마다 기억은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린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유월의 이파리 같은 스무살.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없지는 않았다, 그저 그 시기에 걸맞은 생생한 기억이 없을 뿐…… 샴푸광고 모델을 연상시키는 여자는 수영가방을 둘러메고는 젖은 머리를 찰랑이며 언제나처럼 경쾌한 걸음을 옮겨놓는다. 젊음의 기운이 뚝뚝 듣는 걸음걸이다. 담장 옆에 기대놓은 자전거를 일으켜세우고 여자는 그 위에 사뿐히 오른다. 몇번 휘청이다 앞뒤 바퀴의 균형을 잡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멀어져간다. 안정된 바큇살의 움직임을 따라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여운처럼 흩날린다. 여자의 자전거는 이내 모퉁이 포장마차를 지나 시야에서 사라진다. 저 모퉁이만 돌면 여자의 자전거는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환상에 Y는 사로잡힌다.

Y는 수영장 입구 회전문을 밀고 들어선다.

회전문에 실려온 바깥 공기와 문소리가 로비의 고요를 일시에 흩뜨린다. 꼬박꼬박 졸고 있던 카운터 데스크 속의 여자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몸을 움찔한다. 여자의 등 뒤쪽에 걸린 벽시계가 정확히 자정을 가리키고 있다. 여자는 들고 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전화기 옆에 내려놓고 엉거주춤 일어선다. 한달이 넘도록 여자가 붙들고 있는 그 책은 누렇게 바랜 종이에 깨알같은 활판인쇄 글자에다 더욱이 세로읽기다. Y는 회원증을 내민다. 여자는 수백개의 작은 붙박이 칸막이 중 하나에 Y의 회원증을 밀어넣고 열쇠를 꺼낸다.

“36번이에요.”

부스스한 얼굴에 토끼처럼 충혈된 눈일지라도 직업의식만큼은 잊지 않고 있다는 듯 여자는 목소리에 날을 세우며 열쇠를 건네준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수면제 역할을 할 게 분명한 그 책을 집어든다. 사막을 굴러다니는 검불더미 같은 여자의 파마기 풀린 머리가 다시 카운터 데스크 아래로 박힌다. 여자는 빽빽한 수백개의 붙박이 열쇠함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짜맞춰진 듯 앉아 있다. Y가 수영장을 드나들기 시작한 게 5년 전이었으니, 여자가 그 자리에 들어박힌 지도 최소한 5년은 넘었을 터였다. 어쩌면 10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권태로 똘똘 뭉쳐진 게 바로 삶이 아니냐는 진실을 코앞에 들이밀듯 여자는 늘 그 자리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다.

“아 참, 그 남자 말이에요. 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여자는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듯 다급하게 고개를 쳐들며 Y를 돌려세운다.

“아직도 병원에 있대요.”

얼마 전 다이빙하다 사고당한 남자 얘기다. 남자는 거의 수직 상태로 물속에 뛰어들었는지 바닥에 거꾸로 박히면서 척추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평생 못 일어날지도 모른대요.”

Y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런 삶이란 죽음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조금 전까지 풀려 있던 여자의 눈이 어느새 반짝인다.

“젊은 사람이 참 안됐어요. 더구나 신혼이라던데.”

여자는 연거푸 혀를 차지만 안쓰러움 따위는 전혀 배어 있지 않은 목소리다. 여자는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펼쳐들면서 흥얼거리듯 한마디 더 덧붙인다.

“그 새댁은 인제 어떡하나, 한창 깨가 쏟아질 땐데……”

여자의 말에서 묘한 쾌감이 묻어난다. 그럴 때만큼은 여자의 표정과 목소리에도 생기가 돈다. 회원 누구와 누구가 놀아났다는 이야기, 어떤 강사가 뭘 잘못해서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 청소 아줌마가 곗돈을 떼였다는 이야기…… 그런 활기 넘치는 얘기들이 여자를 이곳에 붙들어놓는 힘인 것 같기도 하다. 여자가 Y를 맞을 때마다 짓는, 이 시간에 혼자 수영하러 오는 치들의 속사정쯤이야 훤히 꿰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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