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이상섭 李相燮
1961년 경남 거제 출생. 동아대 국문과 졸업. lsangsup@hanmail.net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
1
속이 들끓기만 했다. 그런 속을 추슬러보려고 고추 몇개 날것으로 먹었지만 비오듯 쏟아지는 건 땀뿐이었다. 선풍기 바람을 쐬어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되레 갤갤거리며 가래 끓는 소리가 짜증만 돋구는 격이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바깥바람 쐬는 게 낫지 싶어 그는 젓가락을 놓자마자 부리나케 마당으로 나섰다. 그러나 바깥은 더 심했다. 불가마 속이 따로 없었다. 평상 위에 그늘을 드리워주던 감나무조차 오늘따라 딴청이었다. 그림자를 언제 제 발밑으로 당겨놓았는지 평상에는 그늘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담배를 문 채 짜부라진 그늘 속으로 애써 몸을 디밀었다. 말복까지 지났다고 하지만 아직 복날이 또 하나 남아 있지 않은가. 수호의 말마따나 말복 뒤에 오는 ‘광복’이란 복날이 있어, 그날이 지나야 더위가 한풀 꺾인다고 했으니 애당초 날씨타령은 때이른 불평이었는지 모른다.
매립지 공사장에서 울려퍼지는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 겨울까지 매립을 마무리한다니 아마 공기를 맞추느라 부산을 떠는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 소리가 오늘따라 더 속을 헐떡증나게 만들었다. 매립공사 탓에 눈앞에서 들썩대던 바다가 아득히 밀려났다. 이제 해안으로 밀려오던 파도의 흰 손끝은 이곳에 서서도 볼 수 없었다. 바다를 볼 수 없다면 이곳은 불모의 땅이나 진배없다. 사람들은 억울하면 할수록 하늘을 쳐다본다고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럴수록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억울함을 바다를 보며 삭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누그러뜨렸지만 그런 일도 바다가 멀어지면서 점점 없어졌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4차선 길이 새로 뚫리면서 마을은 윗마을 아랫마을로 나뉘고 말았다. 자연 수호와 그의 집도 갈라졌다. 도로 아래로 지하도를 뚫어놓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널따란 도로는 마을의 경계선으로 자리를 굳혀갔다.
그는 길가에 바투 서 있는 은희네 집을 내려다보았다.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저 집을 안 보고 살 순 없다. 뿐인가, 은희네 집을 스치지 않으면 바다로 나가지도 못한다. 그러니 밉든 곱든 은희네와 부대껴야 한다. 그렇다면 뻔하다. 은희네를 스칠 때마다 자신의 삶을 보호하던 비늘은 하나하나 떨어져나가게 마련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그는 헐떡이는 생선처럼 연신 담배만 뻐끔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은희네 집은 종만이 형의 집이었다. 정든 땅 떠나기 싫다며 혼잣몸 건사하며 형의 어머니만 홀로 살았는데, 노친네가 시난고난 앓아대자 급기야 종만이 형이 도시로 모셔가면서 헐값에 내놓은 것이었다. 그 낡은 집은 내놓기 무섭게 임자를 만나더니 이내 공사에 들어갔다.
어느날, 아무래도 경쟁자가 생긴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알아보니 은희가 돌아와 가게를 차린다는 게 아닌가. 집 임자가 은희란 말을 듣곤 적이 놀랐다. 은희가 돌아온다는 말에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스물하고도 두해 만에 돌아와서 그의 의사도 묻지 않고 한다는 게 고작 가게라니, 이건 영 아니올시다였다. 길 아래 가게가 생긴다면 자연 두 개의 구판장이 서로 갈라먹기 마련이다. 그런 소식을 들은 후부터 은희네 가게를 볼 때마다 자꾸 속이 짜기만 했다. 따지고 보면, 일이 이렇게 척척 잘 맞아 돌아간 것은 다 수호 짓일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시에 있는 은희가 어찌 종만네 이사를 알았으며, 가게 낼 생각을 했을까 말이다.
“코딱지만한 동네에 뭔 이문 남는다꼬 그러는지 모리겄네, 참말로!”
아내가 수돗가에서 야채를 씻으며 쭝얼거렸다. 그 말은 마치 가시처럼 냉큼 그의 가슴에 박혔다.
“마을 두 쪼가리 낼 일이 있능교? 가게 임자가 누군지 알았으면 못하게 막든지 안하고.”
저간 사정을 안 후 마누라는 짬만 나면 대놓고 구시렁댔다. 더군다나 가게 주인이 소꿉동무란 걸 알자 아예 호통질이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워버렸다. 새벽같이 물일을 나섰다가 어판장까지 들렀던 터라 피곤하기도 했다. 망할 놈의 경매사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제법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이삿짐 오늘 온다쿤께 가보지 그라요?”
아내의 빈정거림이 구정물처럼 몸을 뒤덮었다. 안 그래도 속이 칼날처럼 선 판에 마누라까지 작정하고 들볶고 지랄을 떠니 화가 솟구쳤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다.
“보자보자 하이, 이 여편네가! 제 아가리라고 함부로 놀리사몬 주둥아릴 째뿔기다 고마!”
눈을 치뜬 채 고함을 지르자 아내는 입을 빼쭉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표정으로 보아 여차하면 또 한마디 뱉을 모양이었다. 그가 눈을 부라리니 아내는 야채 바구니를 들고는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맨몸으로 갖은 고생시키다가 겨우 살 만하다 싶더니 일이 터졌다. 아내는 살아보려 식당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돈만 모이면 작은 식당 하나라도 꾸밀 작정으로 부지런히 식당일을 배웠다. 그 바람에 손끝이 맵기로도 동네방네 소문날 정도였다. 매립지 공사장 인부들 점심까지 대주게 된 건 그런 아내의 음식솜씨 덕분이었다.
여태 말하지 못한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을 겸 수호네 집에 갈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금세 접어야 했다. 은희네 가게 앞을 바삐 왔다갔다하는 수호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가게 앞에는 언제 도착했는지 트럭이 서 있었다. 실린 품으로 보아 이삿짐이 분명했다. 1.5톤 트럭에 죄다 실릴 정도니 도시에 살던 살림살이치곤 형편없었다. 트럭 주위로 은희 애처럼 보이는 조막만한 아이들이 자기 깜냥대로 이삿짐을 나르는 중이었다. 수호도 부지런히 움직여댔다. 소꿉친구가 이사를 왔으니 그도 수호처럼 들여다보고 짐도 날라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잘못 날아든 도둑갈매기 쫓듯 마음속으로 돌팔매만 날리고 있었다.
물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온 바다가 종양이라도 앓는 듯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전라도 쪽에서 시작된 적조띠가 조류를 타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이쯤 되면 수온이 내려가면 모를까 적조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지금보다 심해진다면 올 여름 바다농사는 헛일이었다. 그는 바다까지 속을 태운다는 듯 ‘테액!’ 하고 가래침을 물위에 보탰다. 그래도 벌겋게 달아오른 속은 식을 줄 몰랐다. 사실 그는 선창에서 적당히 어구 손질을 한 후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집에 있으면서 은희네 이사온 것을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순 없었다. 해서 핑계삼아 배를 몰고 바다로 나왔는데 그만 일이 꼬이고 말았다. 더이상 가봤자 뻔했다. 그는 뱃머리를 돌렸다. 은희·수호랑 같이 다닌 초등학교 건물이 눈을 파고들었다.
은희와 그는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였다. 이곳의 짠 냄새가 싫어 대처로 나갔을 때, 유일한 말벗으로 처녀 총각이 될 때까지 서로 만난 사이이지 않았던가.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다. 번번이 일자리를 잃고 마취제처럼 술병을 내리꽂을 때 차라리 은희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만약 은희가 취중에 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그 길로 결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직후 은희네 식구들이 몽땅 도시로 이사해 은희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은희가 나타난 것이다. 지금 그의 감정은 뒤죽박죽이었다. 수호처럼 반갑게 맞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초라하게 변해버린 것을 감추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깟 아내의 투덜거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지 모른다.
그는 가게문 앞에 우두커니 서고 말았다. 발밑에 달라붙는 불편한 심기 탓에 발 놀리기가 힘들었다. 맨손으로 찾아오기 뭣해 물칸의 숭어 몇마리를 가져온 게 후회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그의 집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서서 보고 있었다.
“아저씬, 누구세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않았어도 발길을 돌렸을 터였다. 얼떨결에 돌아보니 티없이 깨끗한 눈빛의 계집애가 그를 올려다보고 서 있지 않은가.
“어, 엄마, 안에 기시냐?”
아이는 엄마라는 말을 듣자마자 대뜸 안쪽을 향해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답이 없자 쪼르르 방으로 달려갔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돌아서버릴까 싶었다. 그러나 가게를 빠져나가기 전에 들킨다면 안 온 것만 못하다는 생각에 그냥 서 있었다. 실내는 제법 그럴싸하게 꾸며진 상태였다. 이 정도의 공간이면 식탁까지 두어 개 놓아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층층으로 물건을 쟁여둘 선반까지 야무지게 마련해놓아 시내의 가게 못지않았다.
“어머, 덕수로구나. 왔으면 들어오지 않구!”
은희였다. 아이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셋이다. 모두 딸이었고, 어리디어렸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니네 애들은 꽤 크지?”
그는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애와 초등학교 5학년이 있다며 떠듬떠듬 말을 이은 후로 더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물칸에서 건져온 큼직한 숭어 두 마리를 내밀었다.
“이삿짐도 못 거들어줘 부러 들맀다.”
그는 냅다 양동이에서 파닥이고 있는 숭어를 낚아채 목을 꺾었다. 아이들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숭어 목 꺾는 걸 처음 본 모양이었다. 그는 나머지 한마리도 그렇게 숨을 죽인 뒤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섰다.
“숭어회 먹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나중에 짐 정리하는 대로 부를게.”
은희의 말을 뒤로 하고 그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왔다. 한참 후에야 겨우 발걸음을 늦춰 잡았지만 은희의 얼굴을 제대로 봤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흘낏 본 은희에게는 분명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어쩌면 또래 여자들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늙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변해도 그냥 잔주름만 늘어 있을 정도려니 했다. 하긴 과거의 얼굴은 그대로 멈춰 있기에 아름답다고 했던가. 집으로 오르는 길바닥에 은희의 얼굴만 밟혔다. 정작 따질 건 따지고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속 시원히 말이라도 하고 말겠다며 간 걸음이 묘하게 꼬이고 말았다.
“아예, 그 집에 자고 오제 그라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냅다 언성을 높였다. 저녁을 먹던 아이들이 지 에미의 소리에 놀라 숟갈을 문 채 바깥을 내다보았다.
“여편네가 말짓거리하고는……”
그는 말끝을 흐리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은희네 가게와 달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선반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휘었고, 그나마 앵글로 된 선반도 녹이 듬성듬성 슬고 칠이 벗겨져 형편없었다.
그는 부엌바닥에 양동이를 팽개치듯 부려놓고 수돗가로 향했다. 아내가 고기를 들고 뒤따라 나왔다. 그가 씻을 동안 아내는 굵은 팔뚝 힘 자랑이라도 하듯 숭어 목을 꺾었다. 그가 은희네에서 꺾을 때와 달랐다. 얼마나 힘이 좋은지 여지없이 단번에 ‘뚝’ 하는 소리가 났다. 오늘따라 아내의 몸피가 더 팅팅 부어 보이기만 했다. 예전 같으면 몸매야 어찌됐건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싶었다. 게다가 여태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나무젓가락 같던 몸에 살이 오르니 이게 다 살 만해 그렇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은희의 가냘픈 몸매를 보고 오니 이건 영 여자도 아니지 싶다. 게다가 목소리는 또 어떤가. 은희 목소리가 사각거리는 풀잎이라면 아내의 목소리는 ‘금성호’ 뱃고동 소리 아닌가 말이다.
그는 거친 손길로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잡아떼어 물기를 훔쳤다. 아내는, 그가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숭어회 접시가 놓인 밥상을 디밀었다. 손이 잰 건 알아줄 만했다.
“아예 낼부터 점방문 열란가보지요?”
그는 무슨 말인가 싶어 회를 집다 말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수호씨는 도대체 뭔데 나서서 거래처 전화번호까지 적어가고 난리요 그래!”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밥만 먹었다. 곁눈으로 흘낏거려보아도 아내의 볼은 물먹은 멍게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2
요 며칠 동안 은희네 가게 앞엔 사람 그림자가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이삿짐 정리하랴, 가게 물건 들이랴 쉴새없이 복작거렸다. 선창으로 가면서 기웃거릴 때마다 가게는 점점 구색을 갖춰가고 있었다. 진열한 물건도 그의 낡은 구판장과는 달랐다. 과자 봉지들이 집어들고 싶을 만큼 이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안채의 초라한 살림방을 가리려 드리워놓은 연분홍 커튼까지 매혹적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왠지 한산했다. 문앞에 어지러이 찍힌 발자국만 바람이 건드리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따금 은희네 아이들이 집 앞에서 이리저리 몰려다닐 뿐이었다. 그는 멀뚱한 눈으로 은희네만 내려다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은희가 혼자 되었다는 소문을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응당 남편의 모습이 비쳐야 옳았다. 그런데 며칠 동안 남편이란 작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 앞에 트럭 한대가 달려와 섰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 힘이 실렸다. 트럭의 짐칸에 실린 것은 간판인 듯했다. 트럭 기사가 바깥동정을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클랙슨을 울렸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은희가 얼굴을 내밀었다. 차에서 내린 기사는 은희와 한동안 마주서서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눴다. 은희는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뭔가를 지시했다. 간판 세울 위치를 일러주는 모양이었다.
우리들 휴게소. 간판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재차 확인해도 분명히 ‘너그들’이 아닌 ‘우리들’이었다. 그걸 확인하자 저절로 눈썹 끝이 일어섰다. 세상에, 우리들이라니! 은희가 우리를 생각했다면 상호를 그딴 식으로 지어 붙일 순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휴게소’란 글자까지 또박또박 새겨 넣다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간판이 어디 이런 촌구석에 어울리는가.
은희네가 깔끔을 떠니 우리도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어선 안된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담배를 사정없이 발로 눌러 밟고는 트럭으로 향했다. 그나마 트럭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사실 대처에 나가 여러가지 일을 해봤지만 그가 제일 잘했던 게 운전이었다. 이곳에 올 때도 트럭이 살림의 전부다시피 했다. 한동안 트럭에 과일이며 야채를 싣고 장사를 해보기도 했고, 활어 운송도 해봤다. 그러다가 가게를 얻은 다음부터 트럭은 동네사람들 부조 기계가 되었다. 급한 환자가 생기면 밤중에라도 트럭을 몰고 병원으로 내달았다. 쫌새영감도 그의 트럭이 아니었으면 이미 저승객이 되었을 터였다. 뿐인가, 잔칫집 음식 날라주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짐칸에 사람을 싣고 다니기도 다반사였다. 그런 작은 일들로 인심을 얻었다.
그는 곧장 목재상으로 향했다. 선반을 다시 만들려면 제법 많은 널빤지며 각목이 필요했다. 가게 내부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정작 손을 봐야 할 곳은 내부가 아닐지 몰랐다. 문제는 허름한 외관이었다. 은희네처럼 그럴싸한 가게를 만들려면 집을 아예 뜯어고쳐야 할 판이다. 그건 그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 집주인인 수호에게 의논해야 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소갈머리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몽니를 부렸다. 목재를 고르던 손에 힘이 탁 풀렸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었다.
아내와 한동안 승강이를 했다. 그냥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는 거 아니냐며 가게를 고치지 않을 것 같으면 무슨 대책이라도 내보라고 닦달이었다. 하다 못해 간판이라도 내걸든가 해야 한다고 그놈의 주둥아릴 놀려댔다. 그러고도 모자라 무슨 화풀이라도 하듯 연방 전화질이었다. 거래처마다 전화를 걸어 무엇무엇을 한 박스씩 주문하기도 하고, 안 갖다준다고 난리치기도 했다. 그는 아내의 악다구니를 피해 평상으로 나와버렸다. 평상에 앉아 있자니 자꾸 은희네 간판으로 눈길이 쏠렸다. 훤칠하게 쭉 뻗어 올라간 모습에 눈이 아릴 정도였다. 저 간판에 불을 밝힌다면 온 동네가 환할 것이고 자연 지나가는 차량이며 동네사람들이 부나비처럼 모여들 것이다.
“전화 좀 받아보소!”
아내가 대뜸 그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누구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 그에게 아내는 대답 대신 수화기를 바닥에 내던지곤 부엌으로 내빼버렸다.
“와 이리 얼굴 보기 힘드노? 어디 이사라도 간 줄 알겄다!”
수호였다. 예전 같으면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게 정이라며 전화보다는 그의 가게로 찾아왔을 터였다. 그는 대뜸 말을 쏘아붙였다.
“무슨 일로 전화질이고?”
“은희가 개업식 겸 집들이를 한다꼬 연락했더라. 혹시 물칸에 고기 있나? 빈손으로 갈 순 없는 거 아이가.”
수호는,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부조라곤 고기밖에 더 있냐며 나발거렸다. 그물농사 죄다 털어 남 보신시키자는 말처럼 들려 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