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백석문학상 발표

 

백석문학상의 제6회 수상자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2억원의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되었으며, 상금은 1000만원입니다. 시상식은 만해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11월 24일(수)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6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이시영(李時英) 시집 『바다 호수』

 

심사위원

본심: 고은 신대철 최원식

예심: 박영근 이장욱

 

2004년 10월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

 

 

■ 수상자 약력

 

1949년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 『은빛 호각』 등이 있음. 1996년 제8회 정지용문학상, 1998년 제11회 동서문학상 수상.

 

 

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2004년 9월 21일 모임에서 제6회 백석문학상 심사위원으로 고은·신대철·최원식 3인을 위촉하고,예심위원 선정은 예년과 같이 운영위원 중 문단인사에게 위임하였다.이에 따라 수상대상 시집이 없는 인사로 박영근·이장욱 2인을 예심위원으로 위촉하고, 각자가 6,7권의 후보작을 추천토록 의뢰했다.두 사람은 각기 6권과 5권의 시집을 추천했는데, 한권이 중복되어 아래와 같은 10권의 시집이 본심 대상이 되었다.

김선우 『도화 아래 잠들다』,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문태준 『맨발』, 백무산 『길 밖의 길』, 유홍준 『喪家에 모인 구두들』, 이시영 『바다 호수』 『은빛 호각』, 장철문 『산벚나무의 저녁』, 조용미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차창룡 『나무 물고기』 (가나다순).

본심은 10월 14일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되었다. 한권 한권에 대한 심사위원 각자의 견해를 주고받는 가운데 김선우·문태준·이시영·조용미·차창룡 등의 시집으로 대상이 압축되었고,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이시영 시집 두 권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중에서도 개인의 난숙한 체험이 폭발하듯 응집된 가운데, 정밀한 관찰력에 온기어린 서정성이 결합하여 개인과 역사가 절묘하게 조우하는 장면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바다 호수』의 큰 울림을 높이 보아 기쁘게 수상작으로 합의하였다.

 

 

심사평

 

高銀 시인

아홉 시인의 시집을 대하였소. 어떤 것은 두세 번 읽어서야 그 속내를 좀 가늠할 수 있었소.

제1의 시인이 질주하오. 백무산의 『길 밖의 길』. 길 밖의 길이건 그냥 길이건 무엇으로부터의 초월보다 무엇과 무엇 사이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려주었소. 지난 시절의 ‘민중’과 이즈음의 ‘자재(自在)’가 보여주는 차이에 당황할 겨를이 없다는 사실 말이오. 다만 그 차이가 시의 중심에 자리잡을 때 둘 사이는 너글너글 조화될 것 아니겠소?

제2의 시인이 질주하오. 조용미의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고전적인 내방의 아픔이 처연하기까지 하오. 그것이 사물이나 풍경에 어우러지면 온갖 바깥 경계가 안쪽의 심지에 들어와 있게 되오. 오래 새겨온 혼심이 눈에 선하오.

제3의 시인이 질주하오. 차창룡의 『나무 물고기』. 긴 밤을 매어달린 그대로 아침을 맞이한 절간 마당 종각의 목어를 나무 물고기라고 풀어놓은 것이 여간 해맑은 노릇이 아니오. 시를 위해서라면 절간에도 가 있어야겠지. 절간뿐 아니라 설산 밑에도 인도의 유적지도 마다하지 않고 가서 그곳의 까마득해지는 무슨 워낭소리도 들어야겠지. 그래서 그 지친 넋이 다름아닌 윤회라는 것도 두루 깨치게 되겠지. 애면글면 불교를 너무 많이 먹지 않았나 싶소.

제4의 시인이 질주하오. 나희덕의 『사라진 손바닥』. 시와 삶 어느 곳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절도의 이 시인은 우선 모범적이오. 그런데 이 꼼꼼한 배려의 모범이 때로 굴레가 될지 모르겠소. 아무나 범접하지 못할 기율을 낳는 것 자체는 못내 장하오. 기율도 능히 향내나고 들썩이는 춤이 되니 말이오.

제5의 시인이 질주하오. 유홍준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 자학에 가까운 풍자가 생기를 뿜어대고 있소. 말이 활달하오. 말이 담대하오. 어떤 인간의 밑창도 그의 눈에는 숨바꼭질 없이 바로 들켜버리오. 악마적이기까지 하오. 그의 시 제목들에 유의하기 바라오. 세상이란 유미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고 있소. 현실의 피가 뜨겁고 현실 담지의 눈이 차갑소.

제6의 시인이 질주하오. 장철문의 『산벚나무의 저녁』.‘시인의 말’조차도 시의 형태를 못 떠나는 천상 시인인 듯하오. 처음부터 늙어버린 듯하오. 그 늙음으로부터 시의 세월이 젊어진다면 그 역이야말로 시인의 운명 아니겠소? 그러나 젊어 깨달은 바가 고향과 혈연의 애틋함에 그냥 머물면 시라는 것이 추억의 도구밖에 안될 걱정도 따르게 될지 모르오. 파격 또는 파괴의 힘이 더하면 좋겠소.

제7의 시인이 질주하오. 김선우의 『도화 아래 잠들다』. 생체의 주술적 액체들이 여기저기 샘솟고 있소. 문득 음양을 따져보건대 남성의 건조함에 맞선 여성 혹은 모성의 원시적 습윤이 눈부신 바 있소. 전통으로서의 소재와 근대로서의 오만이 잘 어우러지는 재능이오. 너무 사물에 도취되지 않기 바라오.

제8의 시인이 질주하오. 문태준의 『맨발』. 이 미치광이 개발과 화학과 대량생산 그리고 도시화단지의 환경에서 오롯이 지난 시절 자연부락의 친족과 선친들이 지켜지고 있다니. 그 곰삭은 향수가 구원의 한 갈래일 줄이야. 차라리 시보다 시의 행간이 극명하기 바라오.

제9의 시인이 질주하오. 아니 이 시인은 질주를 통 모르고 있소.이시영의 『은빛 호각』과 『바다 호수』. 결코 화려한 차림은 아니나 늘 정장에 가깝소. 단정하오. 하도 단정해서 큰 세상의 허방쯤 넘보지 않고 말았소. 사뭇 우주나 하늘을 말해도 그것은 일상의 익명성으로 내려앉고 마오. 좀더 팽창하는 허영이 있기를 바라오. 또한 인물의 소묘나 일사의 묘미에 지나쳐 과연 시의 본령이 이런 것인가를 물을 만하오. 그뿐 아니라 정제된 작품 대부분이 문단 안팎 골짝에 머물고 있는데 거기에 안주하는 일이 얼마나 애옥살이인가를 알 때가 되었소. 시인이란 시인 주위로부터 일탈하는 원심의 충동이 있어야 할 것이오. 하지만 이 시인이 그동안 경건하게 집행해온 시의 역정과 좌고우면(左顧右眄) 없는 경륜 그리고 시적 기품에 높은 평가를 모을 수 있었소. 이상.

 

申大澈 시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열 권의 시집들은 대부분 처음 읽는 시집들이었다. 각 시집에 대한 소감을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차창룡의 『나무 물고기』는 사물을 투시하는 직관력이 날카롭게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그런데 그 직관력이 역설적인 표현에 기대어 있기 때문에 내용이 받쳐지지 않았을 때에는 힘이 줄어들었다. 백무산의 『길 밖의 길』은 그 뜨거운 마음이 다 어디로 갔는지 시에 생기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와 마음과 몸이 맞지 않아 시인의 숨결이 들쑥날쑥했다.

장철문의 『산벚나무의 저녁』, 유홍준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 문태준의 『맨발』 등은 유년시절의 기억이나 가족사의 밝고 어두운 면을 조명한 시집들이었다. 문태준의 섬세한 묘사, 유홍준의 예리한 감각, 장철문의 진지한 태도 등은 눈여겨볼 만했다. 시 한편 한편은 정제되고 세련되어 있었지만 삶을 통합하고 거기에 시의 촛점을 준 시편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주었다.

나희덕의 『사라진 손바닥』, 김선우의 『도화 아래 잠들다』, 조용미의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등은 시를 빚는 힘이 돋보인 시집들이었다. 조용미 시집의 경우 병상에서 사투 중에 혹은 끝에 씌어진 것같이 격렬하게 다가왔지만 구체적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김선우 시집의 경우 시인의 타고난 상상력이 여성성에만 집중적으로 발휘되어 있었다. 나희덕 시집의 경우에는 비교적 균형잡힌 건강한 정서에 어머니 손길 같은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이따금 서사적 골격이 약했다.

이시영의 『은빛 호각』과 『바다 호수』는 파고드는 힘이 부족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역사적인 삶의 지반과 층위를 상기시켜 생명적인 힘이 느껴졌다.

여러번 숙독한 끝에 나는 개인적인 삶이 역사적인 삶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태어난 시편들이 섬광같이 빛나는 이시영의 『은빛 호각』과 『바다 호수』를 지목하였다. 그의 시집들에는 일관된 시선이 들어 있어 시 하나하나가 통합되면 큰 울림을 가진다. 이 점은 다른 시인들이 갖지 않은 독특한 부분이다. 고도의 숙련된 기법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감싸안으면서 여백 처리한 그의 두 시집은 내용이 과거지향적이지만 역사적 현실을 받치고 그것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힘이 무엇인가를 확인시켜준다는 의미에서 현재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기도 하다. 특히 『바다 호수』는 그 점이 좀더 견고하고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시영 시인의 백석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崔元植 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집은 총 열 권, 그중 이시영의 시집이 두 권이니 모두 아홉 분의 시인이 대상인 셈이다. 이 시집들을 집중적으로 읽어나가면서 나는 최근 한국시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드문 행운을 누렸다. 저마다 독특한 촉수로 독자적인 영토를 탐색하는 시인들의 행보가 다기(多岐)롭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단색조다. 시대와 호흡하는 생동성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한국시는 시대의 저점(底點)을 통과하는 중인가? 1980년대 민중시에 대한 반동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무덤파기가 여전히 아주 뚜렷한 경향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반시적(反詩的) 상황의 포위 속에서 시가 겪는 상징적 죽음을 반추하는 것도 새로운 시의 탄생에 이바지할 테지만 그렇게만 수긍하기가 쉽지 않아 폐롭다.

나는 네 시인, 문태준·이시영·조용미·차창룡에 주목하였다. 문태준의 『맨발』을 읽으며 나는 그가 가히 일가를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시적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예리한 안목, 정확한 언어의 선택, 구상을 짜나가는 시적 논리의 견고함, 그리고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 등 능숙함이 단연 돋보인다. 그런데 소도시의 기억에 지핀 그의 시세계는 젊은 시인답지 않게 노성(老成)하다.

이시영의 『은빛 호각』과 『바다 호수』는 그의 최근 시적 지향을 잘 보여준다. 단시의 경제를 버리고 이야기를 품은 산문시로 전위(轉位)한 그는 유년의 먼 추억에서부터 장년의 가까운 경험에 이르기까지 그 기억의 창고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따듯하고도 정성스럽게 낚아올린다. 우리가 속도 속에 잃어버린 것을 아프게 일깨우는 이 앨범은 시대의 진혼곡이다. 그 바람에 부정의 정신이 약화된 것이 흠이다.

조용미의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또한 완성도가 높다. 그런데 시인은 왜 그토록 소멸 또는 죽음에 지핀 것일까? 반속적(反俗的) 포즈가 나르시시즘과 제휴하고 있어 더욱 상서롭지 못하다.

차창룡의 『나무 물고기』는 1980년대 시와는 다른 방법으로 현실과 대결하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준다.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면서 실상에 접근해가는 불교적 사유에 의거하여 현실을 뒤집어 보일 줄 아는 그는 대단히 흥미로운 젊은 시인이다. 그런데 불교적 사유가 무섬없이 구사될 때 떨어지게 마련인 말장난으로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점이 걸린다.

그래서 나는 이시영을 지지한다. 또한 두 시집 중에서 『바다 호수』를 옹호한다. 앞시기 시와 최근 시의 경향이 병치된 『은빛 호각』보다 『바다 호수』가 시집 전체의 통일성을 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영의 뒤늦은 수상을 축하한다. 이를 계기로 그의 시가 날카로운 풍자를 핵으로 삼는 산문시의 본때에 한층 다가가기를 기원한다.

 

 

 

수상소감

 

상을 받으며

 

이시영

 

수상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이문구 형과 조태일 형의 선량한 얼굴이었다. 이문구 형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그의 가족을 부탁한다고 했고(이렇게 무능한 나더러!), 조태일 형은 죽음을 며칠 앞둔 병상에서 내 앞으로 몇달치의 작가회의 회비를 부쳐오면서 더이상 밀린 회비가 없느냐고 물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나는 그들처럼 착하고 바르고 공명(公明)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바다 호수』는 말하자면 외로운 깊은 밤, 그들이 나를 불러깨워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오르며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쓴 시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매 나는 오늘, 죽은 그들과 나란히 서서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마음으로 이 상을 받는다.‘바다 호수’에 모인 모든 벗들아 정다운 얼굴들아, 그대들에게도 오늘 하루 영광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