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 출생.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그 여자의 자서전』, 장편 『먼길』 『우연』 등이 있음. sunis63@yahoo.co.kr
조동옥, 파비안느
수령옹주 묘지(墓誌)는 중앙박물관 도록 134면에 나와 있다. 고려 1335년 충숙왕 복위 4년의 것으로 기록된 이 묘지의 화보는 희고 매끈한 재질의 고급 종이로 묶인 도록 속에서 유독 거무튀튀하다. ‘고려시대의 묘지는 판석에 글을 쓸 면을 잘 다듬고 그 위에 지문을 음각한 것이 전형적이었다’고 도록은 설명한다. 그러니까 세로 86.5쎈티 가로 61쎈티의 검은색 지석(誌石)은 판석이란 소리다. 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판석이란 정보가 유의미할 것은 없다. 그녀가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은 그 검은 판석 위에 새겨진 흠집들이다. 보존상태가 나쁘지 않아, 들여다보면 생생히 살아나올 듯한 지문 위로 바람이 스쳐지나간 것 같은 흔적들이 대각선으로 넓고 좁게 그어져 있다. 날카로운 것에 긁힌 것 같은, 그래서 쇳소리를 낼 것 같은 흠집들은 아마도 인위적인 것일 터이다. 그러나 바람에 쓸린 듯한 대각선의 무늬들은 바람처럼 빠르고, 지속적이고, 거세게 보인다. 땅속에도 바람이 불까? 혹은 바람이 땅속에서 생성되는 것일까? 묘지는 ‘묘지석, 묘지명이라고도 하는데 죽은 사람의 성명과 경력 등을 새겨서 무덤 옆에 파묻는 돌이나 도판, 또는 거기에 새긴 글을 일컫는다’라는 도록의 설명처럼 수령옹주의 묘지는 600년 이상을 땅속에 묻혀 있었다.
한뼘도 안되는 길이로 축소된 화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대원고려국고수령옹주묘지명’이라는 글자가 해독된다. 아래로 쏠린 바람의 결을 쫓아 그다음 줄이나 다시 그다음 줄까지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金氏爲貴族蓋起新羅之初…… 김씨는 귀족으로서 그 기원은 신라 초부터이다. 俗傳金樻降之自天取以爲姓又言自以小昊金天之後…… 시속에 전하기로는 금궤가 하늘에서 내려온 까닭으로 그것을 성으로 삼았다고도 하며…… 그녀는 묘지의 문장들을 해독할 수 있다. 한 역사정보 싸이트에서 지문의 국문 해제를 발견한 것은 그녀가 묘지의 글자를 한자 한자 찾아가며 스스로 완전히 해독한 이후의 일이었다. 비록 여러 군데에서 오역을 한 것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 오역이 전체의 뜻을 훼손시킨 것은 아니었다. 한문 실력이 일천한 그녀에게 몇백년 전의 글자들을 해독하는 일이 쉬울 리는 없었다. 띄어쓰기도 없는 지문은 마치 무슨 암호 같았으므로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추리력뿐만이 아니라 상상력까지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한한 끈기로 한자 한자를 더듬어나갔고, 마침내 그녀가 필요로 하는 한 문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迺所鍾愛當其遠送憂懣成疾自後時已時作至元統三年病殆藥不效越九月乙酉卒年五十五. 사랑하는 딸이 멀리 가니 근심과 번민으로 병이 생겼는데 그후 때로 더했다 때로 덜했다 하다가 원통 3년에 이르러서는 병이 더하고 약도 효험이 없어 9월 을유일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 55세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환갑을 한 해 앞두고 세상을 떴다. 당신은 귀하게 태어나지도 못했고, 많은 자식을 두지도 못했으나 수령옹주보다는 몇해 더 세상을 살았다. 그녀가 어머니와 헤어진 지 16년이 되는 해였다. 그 열여섯 해 동안 그녀는 어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딸을 두고 멀리 가니 근심과 번민으로 병이 생겨 그후 때로 더했다 덜했다 하다가 세상을 떴을까. “어머니는 행복하게 살다 가셨습니다. 눈을 감으실 때 그분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분이 이제 이 세상과는 달리 편한 곳으로 가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식을 당신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알리는 편지에는 어머니의 죽음이 평화로웠다고 씌어 있었으나, 그녀로서는 대체 평화로운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제 이 세상과는 달리 편한 곳으로’ 가셨다면 그분의 이 세상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고통과 번뇌와 고독과, 혹은 질병이었던 게 아닐까. 그녀는 편지지를 펼쳐놓은 책상 앞에 앉아 몇시간 동안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묘지의 글자들을 해독할 때면,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호흡을 완전히 정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하나의 글자가 풀리고 또 하나의 글자가 풀리고 마침내 모든 글자들이 풀렸으나, 여전히 열리지 않는 문앞…… 편지의 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호흡을 완전히 멈추고, 숨이 넘어갈 듯한 통증 속에서 생각했다. 어머니는 언제 어느 순간에 행복하였을까.
그녀가 땅에 묻힌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시기적으로만 말한다면, 분명 어머니와 헤어진 이후부터의 일이다. 어머니와 헤어진 후, 여고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은 도심 외곽에 건설된 단독주택 단지에 있었는데, 단지 내에는 부지만 조성되고 집은 지어지지 않은 공터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 공터를 가로질러오다가 그녀는 땅에 반쯤 묻혀 있는 참빗을 발견했다. 빗살 하나 빠지지 않은 멀쩡한 것이었다. 그녀가 그 참빗으로 땅을 긁자 마치 머리카락에 촘촘히 박혀 있던 이와 서캐가 쏟아지듯 봄날의 잔 풀뿌리들이 흙 바깥으로 돋아났다. 참빗의 무엇이 그녀를 끌어당겼는지는 모른다. 그녀는 그 참빗을 가지고 돌아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해에 그녀의 아버지는 집 앞마당에 감나무를 심었다. 젖은 땅에 삽날을 깊숙이 넣어 한 삽을 퍼내자 흙의 속살이 드러났다. 마치 삶은 감자 속살같이 김이 오르며 포실하게 부서질 듯한 흙속에는 자잘한 돌멩이들뿐 아니라 담배꽁초와 볼펜심 하나와 뜻밖에 손잡이가 사라진 망치머리 하나가 묻혀 있었다. 아버지가 멀리 던져버린 망치머리를 그녀는 얼른 달려가 주워 다시 책상 위 참빗 옆에 갖다두었다. 그녀가 다닌 여고는 바로 산 아래에 있었는데, 남들이 미적분을 공부하는 수학시간에 그녀는 홀로 뒷산에 올라가 땅을 팠다. 흙속에서는 찢겨진 종잇장이나 풍선조각 같은 것들이 나왔고, 여자팬티와 생리대도 나왔다. 그 시절 그녀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았다면 그녀는 서슴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큰 삽, 말하자면 포클레인 같은 걸 하나 갖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는 팔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파고, 파고, 또 파서 그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병증을 나름대로 이해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혼한 지 1년이 안돼 그녀를 아버지에게 떠맡기고 친정식구들이 살고 있는 브라질로 떠나버렸다. 그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단호하고 매몰차게 진행되었는지, 이미 이혼을 한 뒤였지만 아버지에게도 그 일은 상처가 되었다. 당신으로 말하자면 이혼할 당시 자식이고 뭐고 뒤도 안 돌아본 나쁜 아버지였으나, 난데없이 딸을 떠맡게 된 순간의 당혹감과 노여움이 어찌나 컸는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딸의 책상이 온갖 버려진 것들로 가득 찬 후에야 딸의 정상적이지 못한 집착을 발견했다. 사실, 그를 나쁜 아버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재혼한 아내 대신에 딸의 흙물 든 신발과 양말과 바짓단을 손으로 비벼 빨았다. 밤마다 목욕탕 하수구로 검붉은 흙물이 콸콸 흘러내려갔으나, 빨랫줄에 널린 그녀의 양말에는 여전히 흙물이 남아 있었다.
어느날 저녁,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공터에서 붉은색 비닐봉지가 비죽이 끄트머리만 드러낸 채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한이었고 땅은 꽝꽝 얼어 있었으나 그녀가 비닐봉지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기자마자 그것은 쑥, 소리를 낼 듯 빠져나왔다. 봉지 속에는 바짝 언 찹쌀떡이 들어 있었다. 그날은 수능 전날이었다. 그것은 무뚝뚝한 아버지가 기를 써서 생각해낸 농담이고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잠시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버지는 늘 노력하는 타입의 사람이었고, 그건 새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반항하는 것보다는 협조하는 쪽을 택한 그녀도 다를 것은 없었다. 집안의 그런 분위기가 새어머니의 뱃속에까지 전해졌을까. 그녀의 이복동생은 태어나는 순간 너무나 조용하게 울어 산모와 의사와 간호사를 동시에 놀라게 했다. 어찌나 조용조용 우는지, 우는 게 아니라 마치 말을 하는 것 같았어. 새어머니의 말마따나, 아이는 순하고 영리하고 눈치가 밝았다. 그녀가 자기보다 열일곱살이나 어린 이복동생을 내려다볼 때면, 아기는 말을 건네듯 조용조용 울었다. 미안해, 내겐 지금 준비된 말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렇게 말을 건네듯, 조용조용……
고작 한 삽을 푸면 쏟아져나오는 마른 흙 묻은 잡동사니 대신에, 좀더 깊은 땅속의 젖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였을 것이다. 당시 그녀가 만나던 남자는 그녀보다 늦은 졸업을 하면서 논문을 준비중이었는데, 그가 필요로 하는 논문의 자료 중에 묘지명이 있었다. 복사된 탁본을 보여주면서 남자가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이건, 땅속에 있던 거야. 무덤 속에 묻혀 있었지. 복사 상태가 나빴던 것인지, 아니면 지석 상태가 나빴던 것인지 복사된 탁본은 그냥 시커먼 흔적으로만 보였다. 남자는 그것이 백제시대 사람인 흑치상지의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자신도 그 탁본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무엇이 그녀를 매혹시켰던 것일까. 땅속이라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무덤 속이라는 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너무나 먼 과거의 이름, 백제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남자가 노트북의 자판을 탁탁 쳐가며 논문을 쓰는 동안 책상 아래에 쪼그려앉아 그 탁본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축축하고, 오래된 흙냄새를 풍겼다. 삽 따위로는 퍼낼 수 없는, 더 깊은 곳의 축축함…… 남자가 노트북을 탁 덮는 순간, 그녀는 관뚜껑이 덮이는 소리를 들었고, 축축하고 어두운 곳의 적요가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를 알았다.
오래 사귀지는 않았으나, 그 남자는 그녀가 알았던 남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었다. 침대가 없는 방, 나란히 방바닥에 누워 남자는 속삭이곤 했다. 조선의 어떤 남자는 과거시험 답안지를 대필하는 일을 하고 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