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행복해』 『믜리도 괴리도 업시』,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투명인간』 『왕은 안녕하시다』 등이 있음.

songsokze@hanmail.net

 

 

조정의 기술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시간을 연착한 미국 국적 항공사의 비행기에서 내려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의 입국장으로 나갔을 때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어야 할 ‘코디’, 곧 운전기사와 통역, 가이드를 겸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받아온 번호로 서너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용건이 있으면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좋은 하루!’라는 인사말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지금 우리한테 불리한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대표님을 확고한 당선권에 올려놓을 전문가는 그분밖에 없어요. 이선배, 이번에 그분 만나면 사생결단하고 붙들어서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돼요.”

명색이 원내 제3당 대표이자 지지율 3위를 달리고 있는 대선주자의 비서실장인 김윤기가 한 말이었다. 그가 말한 ‘전문가’의 연락처가 있긴 했지만 코디를 통하지 않고 바로 연락을 하기도 어려웠다. 한국은 자정 가까운 시각이라 김윤기와 통화가 된다 해도 그가 해줄 일은 별로 없었고 그거 하나 혼자 해결 못하고 이 시각에 전화를 해대느냐고 핀잔이나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입국장에서 미아처럼 방치된 채 삼십분이 지나자 머릿속에서 쐐애액, 하고 전투기가 공격대형으로 공기를 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워싱턴으로 오기 전 이틀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데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자지 못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에 시달린 사람이 이럴까 싶었다.

구개월 전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정치 신인으로는 파격적으로 원내 제3당의 대표로 공식 추대된 손의선이 장악한 당내 기구는 당정책연구원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조직이 비어 있었다. 김윤기가 내게 부원장 일을 맡아달라고 하면서 “사무총장이 겸임하는 원장은 어차피 병풍 역할만 할 것이고 정책개발, 여론조사, 선거전략 입안 같은 핵심 실무는 선배가 다 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문제는 그 핵심 실무를 같이 할 사람이 몇 없다는 것이었다.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과 의원들은 대선과 관련된 일에는 얼렁뚱땅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었고 여차하면 손의선이 아닌 당 바깥의 다른 말로 갈아타려고 한다는 게 내 눈에도 뻔히 보였다.

강의나 연구 등 대학 안에서의 본업보다는 방송 출연, 칼럼 기고, 대중강연 등 바깥에서의 잦은 활동으로 ‘폴리페서’라는 비난을 받다가 결국 한 정당의 정책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내가 애초에 기대한 역할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연구실까지 찾아와 머리를 숙이며 자신의 당으로 와달라 간청했던 손대표나 손대표의 복심인 김윤기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된 여론과 지지율이 여론동향 조사를 맡고 있는 내 책임이기라도 한 듯 ‘일 좀 제대로 하라’는 압박은 여러차례 받았다.

손의선은 국내 최대 유기농 식품회사의 최고경영자이자 오너였으며 미국 명문대학의 철학박사 학위까지 가진, 김윤기의 말대로라면 ‘한국정치의 마지막 희망이자 빛나는 미래’였다. 그는 젊은 시절 ‘한양 손씨 12대 만석꾼’ 집안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거대한 농지를 기반으로 식품회사를 세웠고, 친환경 농업과 연계된 고부가가치 식품과 영유아용 식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는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품질관리와 윤리경영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었고 높은 연봉과 최고의 복지시책으로 취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꿈의 직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조용하면서도 신망이 높은 사업가로 살아가던 그는 돌연히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초반에 신선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예닐곱명의 대선 후보군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대선을 반년도 채 앞두지 않은 지금에는 지지율이 반토막이 났다. 시급한 정치 현안과 관련된 몇차례의 말실수가 현실을 모르는 ‘글방도련님’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들었고 현실적으로는 지지율을 득표율까지 연결할 전략과 조직이 부실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가만히 있다가는 손의선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긴급조치로 강구된 것이 미국에 있는 ‘선거 전문가’라는 자의 영입이었다.

결국 공항 앞에 서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잠을 자야 할 것 같아서였다. 몇주 전에 의사가 처방해준 수면제가 있었지만 약학대학원에 다니는 딸이 향정신성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 여러차례 경고를 하는 통에 한번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시차나 수면 부족으로 판단을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중차대한 ‘사명’이었다. 국내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다는 ‘선거 불패의 킹메이커’를 직접 만나 우리에게는 없는 그의 전문성과 첨단기술을 심층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손의선의 대선캠프에 신속하게 합류하도록 하는 게 내 임무였다.

공항에서 출발한 택시가 삼십여분 만에 다다른 워싱턴의 도심 거리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이 한산했다. 차는 얼마 안 있어 오벨리스크 형태의 워싱턴 기념탑을 지나쳤고 그로부터 십분이 되지 않아 호텔에 도착했다. 방으로 올라와서 보니 여전히 워싱턴 기념탑이 바라다보였다. 워싱턴에서는 그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법률이 제정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워싱턴 기념탑만 높은 게 아니었다. 옷을 벗고 침대에 몸을 눕히려다보니 침대가 암벽 등반하는 자세를 취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꽤 높았다. 화장실의 변기 또한 ‘아메리칸 스탠더드’라면서 높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십여차례 왔지만 한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작고 길쭉한 수면제 한알을 먹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선입관 때문이지 싶으면서도 약발 하나는 마약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참에 휴대전화의 몸통이 거세게 떨렸다.

“저는 아까 덜레스 에어포트로 마중을 나갔던 코오디네이터입니다. 오늘 디씨 시내에서 독립기념일 관련하여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차가 매우 막혀서, 유감스럽게도 약속시간에 늦었습니다. 제가 막 도착하니까 택시를 타고 떠나고 계시더군요.”

코디가 약속을 어긴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는데, 그마저도 그리 능숙하지 않은 듯했다.

“아, 내가 지금 호텔에 막 체크인한 참이에요.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그러니까 앞으로 네시간 뒤에 호텔 로비에서 봅시다.”

“네, 좋습니다, 원장님. 그런데 저는, 지금 곧바로 원장님과 추후 스케줄에 관해 논의를 끝마치고서 다음 어포인먼트에 다녀와야 하거든요.”

자신이 미국 시민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t] 발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했다.

“그건 너무 일방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제시간에 만나러 오지 않은 건 그쪽인데 이제 와서 자기 편한 대로 하겠다고요? 그걸 내가 왜 들어줘야 합니까? 이런 식이면 다른 코디하고 일하는 걸 고려해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뭘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저는 원장이 아니고 부원장이에요.”

“저는 이 일 때문에 맡고 있던 여러 스케줄을 접었습니다. 이 일은 저보다는 부원장님한테 중요한 일이죠? 저 대신 다른 코오디네이터를 구하시려면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실 텐데요.”

운전과 길 안내나 할 가이드가 스스로를 ‘조정자’(coordinator)로 거듭 칭하는 데 짜증이 치솟았다.

“알았어요, 맘대로 하세요. 시간에 늦으면서 전화를 안 받은 까닭은 또 뭐요? 계약조건을 먼저 위배한 것도 그쪽이에요. 내가 불편을 겪은 거나 예정에 없던 비용이 든 거에 대해서 사후에 청구를 하든 책임을 묻든 할 거요.”

“저는 평소에 셀폰 두대를 가지고 다니지만 운전 중에는 어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의도적으로 계약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적이 없고 불가피한 트래픽으로 늦은 것이며 이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습니다. 매우 다급하고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고 멀리서 왔지만 필요없다고 하시면 다른 사람과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다른 코오디네이터를 만나게 되실 경우에 제가 면밀하게 준비해둔 것은 포기하셔야 할 것이고 추가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쪽에서 나를 위해 뭘 미리 준비했는데요?”

“본국에 알아보시면 됩니다.”

한국에서 치르는 대선에 외국의 선거 전문 기술자를 들여다 공작을 하는 것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자세히 따져보지는 않았다. 김윤기가 알아서 했을 것이라 여겨서였다. 어쨌든 대놓고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상대 역시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신에게는 일말의 양심이나 책임감이라는 게 없소?”

더 무슨 욕을 하려고 해도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폭포수처럼 잠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오래도록 입에 올리지 않던 욕설을 중얼대면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네시간쯤 지난 후 나는 잠에서 깼다. 아주 깊이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현대의 의약기술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드시 무슨 부작용이 있지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니 그새 예닐곱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김윤기의 것만 세통이었다. 김윤기는 보안성이 뛰어난 메신저로 문자도 보냈는데 ‘이선배, 제발 전화 좀 받으십쇼’에서 ‘그 일 완벽하게 성사시키기 전에는 당에 나타나지도 마세요. 전화 제때 잘 받으시고’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이선배, 정말 이러기요? 아 정말, 그분 전화 좀 받으라니까!’로 끝났다.

김윤기는 내가 군대를 다녀와 복학했을 때 만난 동아리 신입 후배였다. 나를 보자마자 제가 태어나 그때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나를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면서 굳이 저 혼자서만 나를 ‘형’이 아닌 ‘선배’로 부르겠다고 고집하다가—형과 선배는 존경의 정도가 다르다는 독특한 해석에 따라—다른 후배들에게 얻어터지기도 했다. 공자의 ‘정치〔政〕는 바르게〔正〕 하는 것’이라는 금언대로 정도를 걸어 나라의 미래와 역사를 바꾸겠다는 갸륵한 꿈을 가지고 정치권에 뛰어들었지만 그놈의 순진한 고집 때문에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수삼년 전에야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고결하고 희유한 정치적 자원’인 손의선을 발견하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작심했다. 그 뒤 일년 넘게 그의 집 앞에 가서 문안인사를 올리고 종일 쫓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결국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며 마침내 실세 비서실장이 되었다.

나는 김윤기에게 ‘알았네’라고 간단히 회신한 뒤 휴대전화의 최신 수신목록 가운데 ‘그분’으로 짐작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미 내가 투숙한 호텔 로비에 와 있다고 했고 내가 준비되는 대로 만나자고 했다. 첫 통화 때와 달리 그의 어조는 차분하고 예의가 발랐다.

“첫인사가 좀 거칠었지요? 대니얼 조라고 합니다.”

호텔 로비의 스타벅스에서 만난 남자는 값비싼 맞춤 양복에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딱 맞는 옷에 감싸인 몸은 프로 운동선수처럼 탄탄해 보였고, 특히 가슴 쪽 몸통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굵어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초대면에 무슨 인적성 검사라도 하시려던 건가요? 이영우라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습니다. 보안문제 때문에 코오디네이터를 제가 소개해드리기로 했는데 찾다보니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직접 나왔습니다. 제가 부원장님 얼굴도 익힐 겸 부원장님에 대해 사전조사를 좀 했습니다. 통계학을 전공하시고 대학교수로 오래 계셔서 시간관념이 철저하실 줄 알았죠.”

나는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약속시간부터 똑바로 지켰어야죠” 하는 말을 삼키고 대신 “지금 말씀하신 성함은 본명인가요?” 하고 물었다.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대니얼이라고 하셔도 되고 어메리칸 스타일로 댄, 대니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는 탁자 위에 두꺼운 가죽수첩을 펼쳤다. 한국에서는 골동품처럼 보기 힘들어진, 생후 10개월 된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고가의 다이어리로 「섹스 앤드 더 시티」라는 미국 드라마에도 등장한 것이었다. 그 안의 일정표에는 한글, 영어, 한자, 숫자가 암호처럼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여러가지 빛깔의 크고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그는 가운뎃손가락처럼 굵직한 워터맨 만년필의 뚜껑을 돌려 뺀 뒤 사격 준비를 마친 사수처럼 내게 질문을 던졌다.

“권력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씀해보세요. 고견을 경청하겠습니다.”

내 비꼬는 어투에도 그의 흑갈색 눈동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한마디로 하면 권력은 사람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힘이죠. 일반 사람은 권력자를 만나려면 무조건 기다려야 합니다. 권력자에게는 중요한 일이 많은데 권력자를 만나려는 사람은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고 그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죠. 권력자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고 적재적소에서 활용합니다. 권력자의 시계는 일반인의 시계보다 훨씬 천천히 가죠. 같은 시간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만일 부원장님의 어린 시절에 아버님이 다른 사람을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면 그 사실이 평생 부원장님의 인성을 권력적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뜻입니다.”

그래, 떠들어라. 지금부터는 네 시간이니. 아주 마음껏. 나는 몸을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