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3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당선.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 등이 있음. greentongue@hanmail.net

 

 

 

종이 물고기

 

 

그는 가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공간을 상상한다. 그곳은 실패한 농담들의 쓰레기장, 감기 걸린 영웅들의 사물함, 진심을 위한 뱃지가게, 그리고 이름을 가져본 적 없는 어떤 곳들이다. 그를 둘러싼 집, 상점, 화장실, 학교, 도시는 주로 육면체의 세계이지만 그가 상상하는 공간들이 몇개의 면으로 이뤄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그는 016으로 시작되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으며, 알파벳 b로 시작되는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070으로 시작되는 계좌번호를 가지고 있으며, 02로 시작되는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다. 그는 1980년생이고 지금은 2004년 서울이다. 따라서 그가 사는 곳은 진담의 세계이며, 범인(凡人)들의 세계인데다, 오해의 세계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2004년 서울에 아직도 아버지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잘해야 비길 수밖에 없는 시간 안에서, 방에 누워 사타구니만 만지고 있는 그는 그러니까 웬만한 건 다 모른다.

그는 똥고개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이 하늘까지 이어지는 마을이었다. 계단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올라가도 끝이 없었다. 어떤 새댁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시장으로 내려가다, 더이상 부를 아버지의 이름이 없자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똥고개에서 평지로 내려가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를.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이 기어코 평지로 내려갈 때, 그동안 세상은 너무도 달라져버릴 테고 그들은 아주 다른 인종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치 지금 지구에서 쏘아올린 빛이 몇백년 후 별에 다다를 때와 같이. 그들은 생뚱맞게 도시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반짝임을 창피스러워하면서 말이다.

그는 똥고개가 아직도 거기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런 고개가 세상에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번번이 무너지지만 어느새 다시 세워지곤 한다는 것도. 웬만한 건 다 모르는 그도 알고 있다.

20여년 전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똥고개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어머니에게 한가지씩 질문을 했다. 이건 무엇이고 저건 무엇인지, 하늘은 왜 파랗고 땅은 왜 붉은지, 계단을 오를수록 그의 질문은 정신없이 쏟아졌고, 어머니의 몸에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어머니는 행여 아이를 잡고 있는 손이 땀 때문에 미끄러워, 아이를 까마득한 계단 아래로 영영 놓쳐버리지나 않을지 긴장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까 물어본 걸 또 물어봤고 줄곧 인내심있게 대답해주던 어머니를 점점 짜증나게 했다. 어머니는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업고 걷다, 안고 걷다, 결국 다시 내려놓았고, 손잡고 계단을 같이 올랐다. 얼마 후 창백해진 얼굴의 어머니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계단을 막 오르려 할 때였다. 그때까지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그가 “엄마” 하고 불렀다. 그동안의 질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어머니는 그를 거의 죽일 듯한 표정을 하고 소리질렀다.

“왜?”

“이 고개 이름은 왜 똥고개야?”

그녀는 멈칫했다. ‘똥고개’는 오래전, 4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에 똥오줌을 내다버렸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를 마지막 계단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스무고개하며 넘으면 금방 넘는다고 똥고개지.”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을 돈이 없었다. 그들은 그냥 죽어라는 식으로 아이를 윗목에 놓아뒀다. 그런데 삼일이 지나도록 아이는 죽지 않았고, 셋방이 떠나가라 울기만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다가가 티스푼으로 보리차를 떠 먹였다. 그러자 아이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쳤고, 보리차를 홀짝홀짝 받아마셨다. 그의 어머니는 “부잣집 아이라면 죽었을 것을 가난한 집 아이라 산 모양”이라며 그를 안아 다시 아랫목에 뉘었다. 삼양라면 한개를 옆구리에 끼고, 퇴근하던 그의 아버지가 시골에서 올라온 그의 어머니를 보고 놀라 한참을 서 있다가, 말없이 돌아나가 라면 한개를 더 사가지고 돌아오던 날 이후, 그는 그렇게 생떼를 쓰듯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젖이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그녀에게 “소족을 고아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돈이 없어 돼지족을 사다 고아먹었다. 그러나 아이의 식욕은 왕성했고, 그녀는 항상 갈증에 시달렸다. 그녀는 돼지족을 사먹을 형편도 여의치 않자 나중에는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다 마시며 젖을 물렸다. 그녀는 한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한손으로는 주전자를 든 채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셨다. 때문에 가슴을 풀어헤친 채 아이를 안고 잠든 그녀의 옷 앞섶엔 언제나 허옇게 말라붙은 막걸리 자국이 남아 있었다. 훗날 그는 자기가 낮꿈을 잘 꾸는 이유가 그때 막걸리로 채운 젖을 물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방이 신문지로 도배된 방에서 자랐다. 그 방은 오른변의 높이와 왼변의 높이가, 방바닥의 너비와 천장의 너비가 같지 않았다. 그가 여섯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속눈썹을 만드는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방 안에 갇혀 시간을 보냈다. 방 안에는 밥상보가 덮인 개다리소반과 요강, 이불, 비키니 옷장이 전부였다. TV도 없고 책도 없었다. 그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거나 상상하는 일뿐이었다. 그는 두 팔을 머리맡에 둔 ‘만세’ 자세로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자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렸기 때문에 그 ‘만세’는 벌받는 자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손 올리고 자는 애들은 근심이 많다던데……” 하며 그의 팔을 종종 내려주었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잠을 잤다. 낮에는 할 일이 없어 잤고, 밤에는 부모님의 피로와 전기료 때문에 잤다. 꿈은 주로 낮에 꾸었는데, 그에게는 밤보다 낮이 훨씬 불안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그는 웬 물고기가 커다란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자기에게 덤벼드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또 조용했다. 그는 낯선 별에 도착한 사람처럼 방 안을 둘러보았다. 누렇게 바랜 신문지의 글자들이 외계 식물의 씨앗처럼 까맣게 모여 있었다. 벽면 위의 글자들은 저희들끼리 마구 수런대다가 그의 시선이 닿자 일제히 입을 다무는 듯했다. 그는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벽면에 가까이 다가갔다. 매일 대수롭지 않게 봐오던 벽면들이었다. 그런데 장난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그 방에서, 여섯개의 벽면은 그에게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방 안에서 잠자거나 상상하는 일 외에도 자신이 놀 수 있는 방법이 또 한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먹이를 알아보는 짐승처럼 글자를 알아봤다. 죽은 척하는 짐승을 발로 툭툭 차듯 그는 글자를 더듬었다. 신문은 날짜가 제각각이었고 모두 세로줄로 씌어 있었다.

 

○○사건 5개항 ○○○ 발표, 지나친 ○○는 삼가되 바로 ○○ 지켜야, 내년 ○○ 831억 확정, 고춧값 내림새, 78○보다 27% ○○, 돈 당일 대출, ○○이웃돕기, ○○하는 ○○여러분, 9대 ○○○ 취임식 27일에, 경복학원 개강, 냉동, 용접, 육군지정 안국학원, 자동차정비, 내 고장의 맛 1, 우리의 식생활에 맞는 소화제 베스타제, ○○관련 5명 ○○, 수돗물 42%가 ○○, 축 당첨 설악부동산, 당첨을 축하합니다 광진개발……

 

그는 알 수 없는 말들의 신기한 발음을 즐기며 글자들을 탐식하듯 훑어나갔다. TV 편성표와 영화광고, 날씨정보 등 신문에 씌어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그는 한자나 영어를 읽을 줄 몰랐고, 그가 읽는 신문은 대부분 구멍투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면에선 다행이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속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밤 그는 부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자신이 읽지 못하는 빈칸을 가리켰다. 그의 부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한자나 영어를 모르긴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부모는 글을 순식간에 깨우친 그를 보고 놀라워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한글을 배우다 만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걸 다 어디서 배운 거냐”고 물었다. 그는 기가 죽어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는 한쪽 벽면을 다 읽은 뒤 다른 벽면을 읽었다. 그 벽면을 전부 읽으면 또다른 벽면으로 넘어갔다. 한면에서 다른 면으로 이동할 때마다 그는 점점 대범해졌고,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는 네 벽면을 읽고 또 읽고 몇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리하여 더이상 읽을 수 있는 면이 없게 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