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중국문학으로 가는 길

모 옌과 한국 속 중국문학

 

 

이욱연 李旭淵

서강대 교수, 중국 현대문학. 주요 논문으로 「노신의 소설창작과 기억의 서사」 「중국 지식인사회의 새로운 동향」 등이 있다. gomexico@sogang.ac.kr

 

 

1. 국경의 장벽에 갇힌 중국문학

 

한국소설계가 한국경제보다도 더 심각한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서울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쎌러 1위를 하면 몇십만부가 쉽게 나갔는데, 지금은 몇만부 넘기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팔리는 것이라고는 논술용 소설뿐이란다. 한국소설이 독자들로부터 멀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외국소설은 꾸준히 환영을 받고 있다. 외국문학의 전성시대다.

외국문학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고는 하지만, 외국문학도 하나가 아니어서 주로 서구와 일본의 소설들에 해당되는 말일 뿐, 중국문학은 독자들의 관심 밖에 있다. 서점의 중국소설 서가는 썰렁하기만 하다. 한중관계가 갈수록 확대되고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국 관련 책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중국 문학작품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우선 번역 소개되는 양이 절대적으로 적다. 최근 3년간 중국 개방개혁 이후의 작품 가운데 번역 소개된 것이 10종도 채 되지 않는다.1년에 평균 3~5종 정도가 출간되고 있는 빈약한 번역상황으로 인해 독자들이 중국문학을 접할 기회 자체가 매우 적은 현실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그런 적은 양의 번역작품마저 중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드물고 번역 수준 또한 낮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는 좋은 문학작품을 골라내고 번역 소개하는 것을 등한시하고 있는 중국문학 학계의 책임이 크다.

수준 높은 번역인력의 부재는 좀처럼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몇몇 전문번역가들이 나오고 있고, 일부 작품의 경우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가 합작하여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의 번역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중국어에 능통한 인력은 크게 늘어났지만 문학작품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 만큼 중국어와 한국어에 대한 문학적 구사능력을 가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과 접촉이 단절되었던 반세기 동안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 문학작품 번역이 부진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독자들의 기대지평과 중국 문학작품 사이의 격차로 인한 문제이다.현재 독자들이 주로 읽는 외국작품의 경우 포스트모던한 내용을 다루거나 신화적·환상적 모티프를 지닌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독서습관과 중국 문학작품의 중심적 경향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존재한다. 알다시피 중국 문학작품은 강한 현실성과 정치성을 지니고 있고, 리얼리즘 전통이 여전히 강하다. 최근 들어 중국이 빠르게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작품 스타일 역시 우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만, 중국문학의 전반적 특징과 우리 독자들의 독서습관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심하다. 그로 인해 중국 문학작품을 접한 한국 독자들은 “그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소설을 쓰고 있구나”라든가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 스타일, 과거 우리 문학에 유행한 작품 스타일이구나”“저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물론 중국문학의 강한 현실성과 정치성은 일부 독자들이 중국 문학작품을 찾는 주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문학을 통해 중국을 알기 위해서,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통해 근현대 중국의 영광과 고난을 보기 위해서 중국문학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문학을 문학으로 대하기보다는 중국과 중국인을 들여다보고 재단하고 평가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다분히 정치적인 차원에서 중국문학을 호명하는 방식이다. 중국 문학작품에서 중국을 읽는 것이 주요 목적인 이상,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지와 관련된 정치적 기준에 따라, 중국에 대한 이미지와 선입견에 따라 어떤 작품이 의미있고 좋은 작품인지에 대한 판단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중국이 상위텍스트이고 중국 문학작품은 하위텍스트인 가운데, 상위텍스트를 호명하는 방식에 중국문학이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냉전구도에서 중국의 반대진영에 속했던 나라들, 예전에 중국과 교류가 없었고 중국에 대해 적대감과 더불어 우월감을 지닌 나라들이 중국문학을 호명하는 전형적인 방법이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호명 방식에서 가장 선호하는 문학작품은 일차적으로 중국이라는 상위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와 선입견을 충족시켜주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되 우리 독자들의 감수성과 독서습관에 맞게 덜 중국문학적인 스타일로, 한국문학이나 서구문학의 흐름과 맞는 세련된 문학적 스타일로 풀어주는 작품이다. 문화대혁명(1966~76)을 비롯한 마오 쩌뚱(毛澤東) 시대의 억압과 비극을 다룬 작품을 유별나게 선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고, 우리 출판계가 중국 문학작품을 직접 골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문학시장의 중개를 거쳐서 서구독자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을 소개하는 데 유난히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번역된 작품 가운데 따이 허우잉(戴厚英)의 『사람아 아, 사람아!(人啊, 人)』1라든가 위 화(余華)의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2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크게 보면 사회주의 중국의 비극적 역사경험을 포스트모던한 문학형식으로 풀어내는 까오 싱졘(高行建)이 서구에서 최고의 중국 작가로 평가받으면서 노벨문학상을 탄 것과 같은 차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독자들이 중국문학에 기대하는 정치적 요구와 문학적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작품이 많을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 여건으로 보면, 중국 문학작품이 한국독자들과 만나는 데 장벽이 겹겹이다.

 

 

2. 모 옌 문학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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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영복 옮김 『사람아 아, 사람아!』, 다섯수레 1991.
  2. 최용만 옮김 『허삼관 매혈기』, 푸른숲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