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중국의 굴기와 당대 ‘사상의 무의식’

 

 

허 자오톈 賀照田

중국사회과학원 문화연구소 부연구원. 『인간사상(人間思想)』 중국판 편집장.

 

* 이 글은 2018년 번역 출간 예정인 『중국 당대 사상의 무의식(當代中國的思想無意識)』의 한국 독자를 위한 저자의 후기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이다. 본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주류 사상에 존재하고 있는 무의식과 그 문제들을 다방면에서 고찰한 책으로, 「‘판샤오(潘曉) 토론’으로 본 당대 중국의 허무주의 역사와 그 관념구조」 「계몽과 혁명의 이중 변주」 「포스트사회주의 역사와 중국 당대 문학비평관의 변천」 「현대 중국 사상논쟁의 역사품격과 지식품격」 「중국이 세계로 들어설 때」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중국 당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내가 보기에 한국은 중국대륙 지식계의 대표적인 사상유파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파악하는 데 힘쓰는 듯하다. 최근 한국은 전세계에서 당대 중국대륙 사상가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발 빠르게 소개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확실히 중국대륙의 역사와 현실을 파악하는 핵심적 자원으로 대표적 사상유파를 선택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이해를 상당히 빨리 심화시킬 수 있고 또 명확하고 체계적인 해석을 도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은 상당한 인식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 외에도 한중 지식계가 비교적 단시간 내에 심도있는 교류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한국은 중국과 상대적으로 늦게 수교했고 중국 현당대 연구도 늦게 시작됐지만 한중 간 교류만큼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한중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중일 간 그리고 중미 간 교류와도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더 활발하기까지 하다. 이는 한국의 지식계가 앞서 말한 방법으로 중국대륙을 이해하고 파악해온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터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한국의 지식계가 중국의 대표적 사상유파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 방법이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이유는 중국대륙의 역사가 매우 심한 기복을 거쳤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상지식은 여전히 더 무르익어야 할 부분이 많은데도, 이것들이 중국대륙의 사상지식적 상황에 깊은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그 흔적들 가운데 일부는 현재 사상지식의 인식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데 사상지식은 정작 자신이 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일쑤고 이는 다시 이들 사상지식의 자기평가나 중국대륙의 역사-현실에 대한 그들의 파악 및 분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만약 한국 지식인들이 이들 사상유파의 긍정적 작용을 충분히 소화하는 데만 머무른 채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들 사상유파로부터 출발한 한국 지식인들의 중국인식도 자연히 그들과 같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대 중국대륙의 사조가 안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당대 중국의 사조들을 건너뛰어 직접 중국의 역사-현실 자체에 접근하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은 당대 중국대륙의 제 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면서도 미처 의식되지 못한 지점들이 어딘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조의 자기분석으로부터 해당 사조를 파악하고 이 사조가 당대 중국대륙의 역사-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해당 사조가 깊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미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지점들로부터 그 사조를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중국대륙의 역사-현실에 대한 해당 사조의 분석과 해당 사조 자체의 관계를 평가하는 것이다. 후자의 방법대로 하면 한국의 학자들이 중국대륙의 대표적 사조로부터 충분히 양분을 섭취하면서도 이들 사조의 한계에 함몰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중국대륙의 역사-현실 중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직 중국대륙의 지식사상에 의해 자각되지 않은 미지의 역사-현실 영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려면 우선 당대 중국대륙의 ‘사상의 무의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사상의 무의식’이란, 당대 중국대륙의 영향력 있는 사상관념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도 정작 당대 중국대륙의 사상관념에 의해 자각되지 않은 ‘사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상의 무의식’이란 당대 중국대륙의 중요한 사상관념의 인지품격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다른 한편 당대 중국대륙의 역사-현실이나 지식사상 속에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 무엇을 말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누려야 할 마땅한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당대 중국대륙의 이들 ‘사상의 무의식’은 무엇보다 모두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신시기가 확립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의 역사와 긴밀하게 관련된다.

 

 

2. 신시기 ‘발란반정’ 의식과 그 실제 사이의 괴리

 

중국대륙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1978년 말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가 소집된 이후를 ‘신시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터이다. ‘신시기’와 관련하여 국가 차원의 역사서술은 신시기의 ‘새로움’을 강조하는 데 치중한다. 그 ‘새로움’이란 신시기가 성립됐을 때 마오 쩌둥(毛澤東) 시대(1949~76)의 경험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교훈을 새기며 마오 쩌둥 시대 노선방침에 대한 충분한 ‘발란반정(撥亂反正,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하다)’을 거치고 그 기반 위에 개혁개방을 진행했다는 데 있다. 재밌는 것은 중국대륙의 국가권력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국가의 이같은 서술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비판은 그저 현재 당과 국가가 정치제도적 개혁 면에서 불충분하다는 것, 그 결과 여전히 독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진정한 민주화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데 초점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시기’와 관련하여 이들 유행하는 고착된 이해와 서술이 사실은 역사적 실제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대륙 ‘신시기’의 확립은 확실히 문화대혁명 종결 후 마오 쩌둥 시대의 경험과 교훈에 대한 다양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신시기’의 성립이 마오 쩌둥 시대에 대한 충분한 ‘발란반정’ 위에 이루어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마오 쩌둥 시대의 경험과 교훈에 대해 먼저 전면적으로 심도있게 파악하고 그 기반 위에 문화대혁명 후의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역사는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았다. 즉 ‘신시기’의 성립이 마오 시대의 경험과 교훈에 대한 다방면의 검토와 총결에 힘입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마오 시대에 대한 검토가 매우 충분히 전면적이고 깊이있게 이루어졌으며 이들 충분한 인식을 기초로 하는 ‘발란반정’ 위에 ‘신시기’가 성립되었다는 생각은 결코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생각이었을 따름이다. ‘신시기’의 많은 문제들은 그 뿌리를 찾아보면 오히려 신시기 성립 당시의 중요한 몇몇 문제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파악 부족과 마오 시대의 매우 유의미한 일부 경험과 시각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편의 역사적 당사자들이 매우 타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