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소용돌이 속의 동아시아

 

중국의 체제개혁과 미래

 

 

정재호 鄭在浩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저서로 『중국의 중앙-지방관계론』 『중국정치연구론』(편저) 『중국 개혁-개방 20년』(편저) 등이 있음. cjhir@snu.ac.kr

 

 

1978년 11월의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三中全會)를 기점으로 체제변환을 위한 중국의 대장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 마오 쩌뚱(毛澤東)이 근 30년간 추구했던 ‘평균주의 낙원’의 건설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과는 달리 떵 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노선이 지난 20여년 동안 만들어낸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1978년에 3624억 위안(元)에 불과한 국내총생산(GDP)이 2000년에는 8조 9404억 위안으로 무려 25배나 증가하였다. 1978〜2000년의 기간에 중국이 기록한 9.4%라는 GDP 연평균성장률은 매우 놀라운 수준이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이 세계 연평균성장률(3.3%)의 세 배에 가까운 고성장을 지속해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계를 과다 계상된 것으로 간주하여 실제 성장률을 7〜7.5% 정도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세계 평균성장률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성과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대외교역의 규모 또한 1978년에는 206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4743억 달러로 늘어나 2001년 기준으로 중국은 세계 6대 교역국으로 부상하였다. 또 중국은 에어컨·텔레비전·카메라 등의 생산에서 이미 최대생산국이 되었으며, 2001년 말 현재 2천억 달러를 가진 세계 2위의 외환보유국으로 성장하였다. 중국은 1979〜2000년 기간 동안 총 3466억 달러에 이르는 해외직접투자(FDI)를 유치하였고 중국의 국민총생산(GNP)에서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1978년의 9.8%에서 2000년에는 44.5%로 무려 4배 이상이나 급증하여 중국경제가 급속히 국제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경제총량은 구매력(PPP) 환산 기준으로 이미 미국에 이어 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절대액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2001년에 이미 이딸리아를 앞질러 세계 6위로 도약하였으며 2002년에는 프랑스를, 그리고 2006년경에는 영국까지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급속도로 커져가는 국내시장을 기반으로 향후 50년간 최소 5%의 연평균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중국경제가 늦어도 2050년경에는 미국과 대체로 상응한 규모로 성장하거나 오히려 미국을 앞지를 수도 있다고 추정된다.

1989년 씨엔엔(CNN)을 통해 생중계된 천안문 광장에서의 시위는 불안정한 중국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으며 중국도 구 소련과 같은 해체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붕괴는커녕 중국은 오히려 ‘중국위협론’의 당사자가 되었는데, 이는 ‘중국붕괴론’과는 정반대로 매우 강력한 중국을 전제로 하는 씨나리오이다. 중국은 국제연합(UN)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 보유국이며 1997년 이후 동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 속에서도 자국 화폐인 위안화의 가치를 절하하지 않음으로써 지역 내의 안정과 공익을 도모하는 지도자적 역할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중국은 또한 개혁·개방기에 들어 다양한 국제기구와 레짐(regime)에도 매우 전향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아세안(ASEAN)의 10+3의 성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또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4자회담의 당사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중국의 주도적 역할로 만들어진 ‘뽀아오 아시아포럼(博鰲亞洲論壇)’과 ‘샹하이 6국(上海合作組織)’ 등에서도 보이듯이 15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은 ‘대국외교(大國外交)’를 시행할 수 있는 능력과 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자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을 13억의 인구를 지니고 중국이 20여년에 걸쳐 지속적인 고성장을 이루어내었고, 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사회적 상황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개혁기 중국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비슷한 규모의 러시아와 인도와 대비할 경우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이 글에서는 우선 지난 20여년간 시행된 체제개혁의 핵심내용과 그 부작용들에 대한 평가를 내린 후, 중·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이 다다르게 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몇가지 논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상해방과 실험주의

 

러시아나 동유럽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중국이 지닌 구조와 조건 들이 매우 상이함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공산정권의 붕괴로 인한 국가능력의 급격한 쇠퇴를 중국은 경험하지 않았으며 경제·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파생시키는 가격자유화나 사유화의 과정 또한 강력한 정부에 의해 통제된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또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들이 공히 겪었던, 방위산업에 기반한 국유기업에 대한 경제수요가 급속히 줄어드는 경험도 중국은 겪지 않았음을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제전이의 용이도(容易度)가 일반적으로 과거 공산체제 수용의 심도 및 그 기간의 길이에 반비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들보다 비교적 낮은 수준의 공산체제를 유지했으며 그 기간 또한 상대적으로 짧았던 중국의 경우, 시장체제로의 전환이 더욱 용이하며 그 변환의 고통도 적을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해진다.2

구 소련이나 동유럽에서처럼 급속한 체제변환을 수반하지 않고도 중국이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하나(실험주의학파)는 중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점진적 개혁의 과정에서 나타난 실험성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며, 중국의 경험이 중국과 비슷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탈(脫)공산주의체제나 개혁적 사회주의국가들에 적용가능한 모델임을

  1. 물론 삼중전회를 분수령으로 삼는 데에는 그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할 것이며, 실질적 정책변화의 기점과 폭은 영역별로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
  2. Richard Layard, “Why So Much Pain? An Overview,” in Peter Boone, Stanislaw Gomulka, and Richard Layard (eds.), Emerging from Communism: Lessons from Russia, China, and Eastern Europe (Cambridge: MIT Press 1998) 1~7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