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중도의 지혜로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자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부시의 재선으로 끝났다. 부시는 복음주의 기독교 보수세력의 지지를 조직적으로 결집시키고 특권층에 혜택을 몰아주는 등 인종별, 소득계층별, 종교별로 분열된 미국사회를 양극화시키는 ‘편가르기 전략’을 구사하여 승리하였다. 미국식 통합을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진 부시의 재집권은 따라서 미국민의 분열과 대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집권 2기를 맞은 부시의 일방주의는 수정될 것인가? 선거 직후 부시는 특권층에 혜택을 주는 감세정책을 확대할 뜻을 밝히는 동시에 그간 미뤄왔던 팔루자 공세를 단행함으로써, 현재로서는 네오콘 대신에 온건보수로 회귀할지 모른다는 관측을 무색케 하고 있다.

부시의 재선이라는 심각하다면 심각한 상황에도 한국의 시국은 분열과 대립이 여전하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정쟁이 그친 적이 없지만 최근 몇달 사이 신행정수도건설과 4대 개혁법안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과 갈등은 국정마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제2기 부시행정부 출범에 대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책을 마련해야 할 때에 국무총리의 발언을 둘러싼 기세싸움으로 국회가 10여일째 공전되는 한심한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야당과 일부 보수신문이 국가정체성과 안보, 그리고 경제불황을 들먹이며 사사건건 여당의 발목을 잡은 탓도 크지만 이런 교착국면이 도래한 데는 정부와 여당이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사려깊지 못했을뿐더러, 진보와 개혁의 목소리만 요란할 뿐 개혁의 청사진 자체가 조야한 탓도 있다. 가령 신행정수도건설 문제가 그렇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균형 발전의 대의를 누구든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신행정수도건설법안을 여야합의로 통과시켰다는 근거로 신행정수도건설을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채 과반수 국민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강행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쟁점은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꺼내들어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희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위헌의 소지가 있는 다분히 정치적인 판결을 결정한 헌법재판소를 어떻게 개혁하느냐는 문제가 이를 계기로 대두되었지만, 여당으로서는 이 일격을 수구세력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아 전반적인 자기점검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종요롭다.

그런데 이런 분열과 대립, 교착과 갈등의 전면화를 두고 우리의 정치가 미국에 비해 낙후되었다고 마냥 냉소와 비난을 퍼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겪는 분열과 갈등은 종당에는 역사적 진보와 개혁을 위해 치르는 생산적 진통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분열과 양극화현상이 더 우려스럽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 보수세력의 공세에 좀더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대응하고 사안별로 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줄이는 일이다. 특히 분단국가의 일국적 시각에서 모든 사안을 편협한 진보와 보수의 기준으로 갈라세우는 것은 올바른 관점도 아니거니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미숙일 뿐이라는 점을 함께 새기고 싶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념공세적 언사에 집착하거나 휘둘릴 일도 아니다. 재산세과표 현실화나 부동산종합과세 등은 부의 재분배를 통한 자본주의 경제씨스템의 보완책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신문들이 이를 ‘좌파적 정책’으로 매도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하지만 정부 쪽에서 국민의 합의와 설득을 구하는 노력을 경주하면서 국민복지에 힘썼다면 이런 이념공세는 먹혀들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경계할 것은 이런 ‘우파적’ 대중주의에 휘둘려 각종 규제를 풀거나 난개발을 허용함으로써 되레 서민경제와 생태환경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일이다. 이 점에서 최근에 발표한 ‘한국형 뉴딜’로 일컬어지는 대형 경기부양책 역시 시행 전에 그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지속되는 세계시장의 환경에서 농업시장 개방과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대한 탄력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런 국가적인 중대사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생태환경 보호의 관점에서 검토하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한 중장기적 구도와 관련지을 필요가 있다. 이런 까다로운 쟁점들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가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중도의 지혜를 찾고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 실현과정이요, 최고의 정치학습일 것이다.

 

이번호 특집은 ‘학문의 주체성과 오늘의 대학’을 점검하는 자리로 마련하였다. 그 문제의식은 ‘주체적이고 세계적인 학문은 가능한가’라는 좌담의 제목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안팎으로 분열과 대립이 격화되는 마당에 좀 한가한 주제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한반도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는 문제를 학문의 외도가 아니라 고유과제로 생각할 때 그 중요성은 여실하다. 사실 분단한국의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일은 ‘주체적이고 세계적인 학문’ 생산의 뒷받침 없이는 난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임형택·서경희·신정완·백영서가 참여한 좌담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거센 압력에 밀려 급속하게 변모하는 대학의 현장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을 진단한다. 현재 대학개혁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대학평가와 학문평가의 문제점들이 국학·영문학·경제학·사학 각각의 전공별로 다양하게 드러나면서 대안적인 방책들이 제시되는데, 특히 국내대학의 서열구조, 학술진흥재단의 평가방식, 국내박사 할당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들이 주목할 만하다.

특집의 각론으로 네 편의 글을 실었다. 홍덕률은 오늘의 대학에 몰아닥친 각종 대학평가·학문평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양 채우기를 조장하는 평가씨스템이 교수사회와 학문이 처한 ‘질의 위기’에는 속수무책임을 지적한다. 곽차섭은 작금의 ‘사범대 문제’에 대한 ‘내부담론’적 해결책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기초학문의 발전과 국가주의 교육에서의 탈피라는 좀더 열린 안목에서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백영서는 ‘동양사학’의 탄생과 쇠퇴의 궤적을 ‘제도 안의 학문’과 ‘제도 밖의 학문’의 변증법을 통해 추적하면서 지구화시대에 동양사학을 주체적으로 연구하는 길을 사유한다.쳔 꽝싱·쳰 융샹은 타이완에서의 학술생산과 평가방식이 획일적으로 미국의 모델을 추종하는 데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타이완의 입장에서 중국어의 잇점을 살려 주체적인 학문을 생산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지구화가 영어화나 미국화로 환원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발언은 우리 역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겠다.

 

이번호 문학란이 ‘문학중심지’로서의 창비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생산적인 논의의 평단과 풍성한 시·소설의 작단을 꾸린 것에 편집진은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백낙청은 자신의 배수아론에 대한 지난호 김명인·김영찬의 반론에 성실하게 응답하면서, 그들의 비판적 논의의 허실을 꼼꼼히 짚는다. 특히 ‘창비적 독법’에 대한 두 비평가의 고정관념이 그들의 논의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지적하는 대목이 예리하다. 이선옥은 하성란의 최근 소설들이 일상의 권태로부터 재난의 상상력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재난의 상상력이 또다른 도식으로 떨어질 위험을 지적한다. 김형중은 지난호의 김영찬에 이어 백낙청·최원식의 논의를 중심으로 창비 여름호 소설비평 특집에 대해 활달하고 화끈한 화법으로 반론을 제기하는데, 비판의 주된 타깃은 역시 ‘창비적 독법’ 혹은 리얼리즘이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김형중과 백낙청의 평론은 동일한 작품에 대해 판이한 관점을 보여줘 함께 읽는 독자에게는 유익한 문학공부가 될 듯하다. 박완서 최근작의 여전한 매력을 짚어내는 임홍배와, 박판식 시의 묘미를 일러주는 장석남의 촌평도 흥미롭다.

이번호 시단은 최하림, 정양, 마종하 등 원로·선배급에서 신인 송진권에 이르기까지 열두 분의 시인들이 저마다의 언어와 시심을 선보여 풍성하고 다채롭다. 창비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송진권씨에게 심심한 축하를 보낸다. 소설란은 다양한 기법과 서사양식을 시도하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정신을 엿보게 한다. 일상의 낯섦을 모호하게 제시하는 박정요, 사실주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전성태, 개별자의 고독한 언어가 가진 매력을 보여주는 배수아, 상이한 시대를 병치시키는 표명희 등 저마다 새로운 언어문법을 찾아 미지의 여행을 떠난다.

그외 한일자유무역협정의 숨겨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논단의 송주명과, 폭넓은 사회문화적 구도에서 ‘고교등급제’의 함축된 의미를 일깨워주는 강태중의 시평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읽을거리이다. 사진, 영화, 미술 분야의 주목할 만한 행사나 작품을 소개하면서 그 성과를 품평한 김승곤·강영숙·정영목의 문화평, 그리고 부문별로 알차게 꾸려진 촌평란도 이번호를 풍성하게 해준다. 분량에 비해 많은 공이 드는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은 문화평·촌평란의 필자들께 감사드린다.‘독자의 목소리’가 잡지에 더해주는 활력은 어떤 난 못지않다.투고하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계간 창비 편집진 개편의 방향과 취지에 대해서는 지난호에 이미 알려드렸으나, 새롭게 합류한 분들을 소개하지는 못했다. 새로 신설된 편집고문으로 송기숙(소설가), 비상임편집위원으로 백지연(문학평론가), 이남주(중국정치학),이일영(경제학), 조순경(여성학) 등 다섯 분이 새 편집진의 일원이 되었다. 새 편집진의 출범을 맞아 정진 또 정진하여 창비가 우리시대의 중요한 논의와 담론을 담아내는 정론지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하는 바이다.

韓基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