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평화체제와 평화운동(21세기의 한반도 구상 2)

 

지구화 기획의 위기와 부시의 새로운 경제학

 

 

월든 벨로 Walden Bello

필리핀대학 사회학 교수, 방콕에 본부를 둔 ‘남반구에 촛점’(Focus on the Global South)운동 공동대표. 저서로 People and Power in the Pacific: The Struggle for the Post-Cold War Order(1992), Deglobalization: New Ideas for Running the World’s Economy(2002) 등이 있음. 이 글의 원제는 “Crisis of the Globalist Project and the New Economics of George W. Bush”이며 ZNet(www.zmag.org)에 2003년 7월 15일에 올려진 것임. W.Bello@focusweb.org

ⓒ Walden Bello 2003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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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이 글은 2002년 6월 베를린에서 열린 맥플래닛 총회(McPlanet Conference, 금융과세 시민연합의 주관하에 ‘지구화의 덫에 빠진 환경’이라는 주제로 열린 각국 환경단체들의 연합총회)의 발제문으로, 영문 원본은 『신노동 포럼』(New Labor Forum)의 가을호에 실릴 예정이다. 환경문제가 주 의제인 회의의 발제문인만큼 이번호 특집 주제인 평화의 문제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전체 논지는 반지구화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이 감안해야 할 오늘날 정치, 경제의 전지구적 맥락을 개괄하는 것인데, 필자 월든 벨로는 그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그 어떤 사회운동도 전지구의 생태적 과제에 대한 환경운동의 관심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과정은 환경문제를 감당치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고 이것은 지구적 자본주의 자체의 작동방식이기 때문에, 환경운동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의 의미를 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현단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변모하는 종합국면에 대한 개괄을 통해 지금 절실하게 요구되는 반지구화 운동이 또한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임을 시사한다.

벨로에 따르면, 1990년대초 이래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지구화 기획은 1995년의 WTO 성립에서 절정에 달하지만 그후 1990년대말과 금세기초 위기에 봉착했다. 그 위기는 지구화가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경제 불안정, 1999년 씨애틀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 바 있는 대대적 저항과 균열, 더 나아가 치명적인 경기침체 국면으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 위기는 국가주의를 통해 대세를 되돌리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의해 한층 심화되고 있다. 결국 이것은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만회하고자 하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는 불안정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합리성과 정당성의 위기, 경제위기를 가속화시킨다. 벨로는 미국이 제국주의적으로 세계 어느 곳에나 개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덫에 걸려 있는 상황임을 과잉팽창의 딜레마로 설명한다.

미 제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어는 싯점에서 지구화된 시민사회에 의한 반전평화운동은 이제 그 자체가 현단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저항이자 여타의 반지구화 사회운동이 내적으로 연대해야 할 운동이 된다. 벨로의 이 글은 그 어떤 사회운동도 평화운동을 겸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수사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현 국면의 반전평화운동이 갖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과 의의를 짚어내는 데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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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중요한 이 모임에 초대해주신 하인리히 뵐 재단(Heinrich Böll Foundation), 금융거래과세 시민연합(ATTAC, Association for the Taxation of financial Transactions for the Aid of Citizens) 독일본부 및 기타 이 총회를 조직한 다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 모두발제에서 전지구적 종합국면의 핵심사안들을 토론하려고 한다. 환경운동이 그 중요한 활동영역으로 삼아야 할 전지구적 정치·경제의 정황을 개략적으로 그려보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가 탄생한 1995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8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태어난 세계무역기구는 기성언론에 의해 지구화시대에 걸맞은 전지구적 경제 통어(統御, governance)의 보배로 환영받았다. 세계무역기구를 밑받침하는 족히 20여개에 달하는 무역협정들은, 무역 강국과 약소국 모두 실질적인 강제시행조치들이 부착된 공동의 협정들에 종속시킴으로써 무역관계에서 힘과 강압을 없앨 일련의 다자간 규약들(multilateral rules)로 제출되었다. 죠지 쏘로스(George Soros)는 세계무역기구가 획기적 사건이라고 선언했는데, 이 기구야말로 세계경제의 우두머리 격인 미합중국도 복종하게 만들 유일한 초국가적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세계무역기구에서는 강대국인 미합중국과 약소국 르완다가 똑같이 한 표밖에 행사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1996년 11월(실제로는 12월–옮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제1차 외교통상분야 각료회의’(First Ministerial of the WTO, 이하 ‘WTO 각료회의’) 동안에는 의기양양한 승전 분위기가 지배했고, 세계무역기구와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그리고 세계은행(World Bank)은 향후 과제가 전지구적 번영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전세계적 무역·금융·개발 정책들을 ‘상호일치’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밝힌 거창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지구화주의 기획의 위기

 

2003년이 시작될 즈음 승리론은 자취를 감췄다. 제5차 WTO 각료회의는 다가오는데 세계무역기구는 교착상태에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신들의 정부보조금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통에 농업에 관한 새로운 협정은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브뤼쎌은, 세계무역기구의 규약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 수출업자들에게 세금감면의 혜택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워싱턴에 제재를 가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워싱턴은 유전자변형 식품업체들에 실질적인 활동중지 선고를 내린 유럽연합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왔다. 한때는 세계무역기구가 정말로 지구상의 무역을 좀더 공정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했던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이 세계무역기구 회원이 되어 얻은 것은 수익이 아니라 비용이었다는 데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강압과 협박을 한다면 몰라도 더이상의 시장개방은 없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올 9월 멕시코 깐꾼(Cancun)에서 예정된 5차 WTO 각료회의는 전지구적 무역자유화의 새로운 전기를 조성하기는커녕 교착상태를 선언할 듯싶다.

세계무역기구의 이러한 교착상태를 설명해주는 정황은 전지구화 기획–이 기획의 가장 큰 성과가 바로 세계무역기구의 설립이었다–의 위기와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특징으로 떠오른 일방주의(unilateralism)의 출현이다.

이에 앞서 먼저 전지구화와 지구화주의 기획에 대한 몇가지 정리가 필요하다.

전지구화(globalization)는 자본과 생산과 시장의 전지구적 통합이 가속화되는 과정으로, 이는 기업의 이윤논리에 의해 추동된다.

지금까지 전지구화는 두 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19세기 초엽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기이고, 두번째는 1980년대 초반에서 최근까지의 시기다. 이 두 시기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국가개입과 무역 및 자본의 흐름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국제경제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 국민경제들의 지배가 두드러졌다. 시장에 대한 이러한 국내외적 규제들은 대내적으로는 계급투쟁의 역학관계와 대외적으로는 자본간의 경쟁이 만들어낸 것인데, 신자유주의자들은 이 규제들로부터 생겨난 왜곡된 추세들이 합쳐지면서 1970년대말과 1980년대초의 자본주의 경제권 및 전지구적 경제의 침체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첫번째 전지구화 시기와 마찬가지로 두번째 시기도, 급격한 민영화를 통한 ‘시장개방’과 규제철폐 그리고 무역자유화에 역점을 두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획득한 점이 두드러졌다. 넓게 보아 두 가지 형태의 신자유주의, 곧 새처-레이건(Thatcher-Reagan)의 ‘강경노선’과, 안전망(safety-net)이 있는 전지구화를 추구하는 블레어-쏘로스(Blair-Soros) 식의 ‘온건노선’이 존재했다. 하지만 두 접근법 모두의 근저에는 시장세력들의 족쇄를 풀고 노동·국가·사회가 다국적기업들에 부과하는 제약을 철폐하거나 잠식하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전지구화 위기의 세 계기

 

지구화 기획의 위기가 심화되어온 과정에는 세 가지 계기가 존재했다. 첫번째는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였다. 동아시아의 콧대 높은 ‘호랑이들’(남한을 비롯해 싱가포르·타이완·홍콩 등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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