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지방 문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

▶ 삼십년 가까이 서울에서만 살다가 비수도권 도시에 내려온 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 생활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이라 도내에서 이동한 횟수는 손에 꼽고 서울에서 접근하기 좋은 순환형 교통망이 연장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종래에는 이곳에 정주하지 않고 다시 서울에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에 지방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읽으면서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고, 지역 내의 자치 정책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에서 원하는 발전방향과는 별개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정책 사업은 중앙에 의해 결정된다. 대화 중 언급된 ‘싱글 팟’과 유사하게 중앙정부 부처에서는 ‘예산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각 부처가 정해진 지출한도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예산안을 편성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지자체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한편 지리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현행 인구 비례 선거구 획정이 각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논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지역의 목소리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수가 늘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타당한 논리로 접하며 깨닫게 되어서 충격이었다. 정수 확대 논의를 단순한 자리싸움으로 여기며 정치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고, “지역은 여행에서의 풍경으로만 기억하”며 남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한명이라는 데 더욱 뜨끔해졌다. 남북 교류에 대해서는 지자체 단위에서도 북한과 기술 및 자원을 교환하려는 시도가 있고, 지자체에서 직접 발안한 만큼 다양한 방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다만 안보와 급여 등에 있어서 (특히 개성공단과 새터민 노동자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고려했을 때) 표준화된 최소보장을 어느 단계에서 합의하는 것이 옳을지 고민이 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생각이 궁금하다. 다가오는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전국가적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역분권 관련 정책이 나올지, 또 이후 실제 어떻게 실행되는지 귀추를 주목해야겠다.

조희연 heeyexn@gmail.com

 

‘나’에서 ‘우리’로, 또 하나의 전환

▶ 지난 여름호 특집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현실, 즉 재난과 고립을 뛰어넘는 전환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한다. 먼저 백지연의 글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이 비대면 활동으로 전환된 이 시점에서 보편적 인간활동이어야 할 ‘돌봄’이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황정은의 『연년세세』와 이주혜의 『자두』를 통해 이들의 문학이 사회개혁과 관련된 적극적 태도를 보이는 면을 살피고,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새로운 돌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태선은 듣기와 대화를 통해 ‘우리’라는 공동체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문학의 주어가 ‘우리’에서 ‘나’로 되돌아간 만큼 ‘사랑’을 통해 시민의 화합을 이룰 필요가 있으며, 이는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정주아의 글은 최근의 에세이 열풍을 돌아보며 일인칭 글쓰기를 통해 ‘나’를 구축해나가는 것에 주목한다. 일인칭이라는 시점의 선택이 곧 세계를 향한 입장의 선택으로 보편화되며, 이는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해석되고 시야가 제한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하며 그 가능성과 한계를 살핀다. 돌봄 문제, 공동체의 붕괴와 같은 현상이 최근 들어 처음 나타난 것일까? 오히려 코로나19를 통해 수면 위로 더욱 또렷이 드러난 것일 터다. 이제 각자가 온전한 ‘나’를 만들고 그러한 ‘나’들이 모여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 그 ‘우리’가 정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일단 나부터 실천하려고 한다. 내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사회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때까지.

홍예진 aghddpwls0825@naver.com

 

우리 마음에 위로를, 미얀마에 응원을

▶ 지난호 소설 중에서 김유나 「랫풀다운」이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을 한줄로 표현하자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우연히 받는 위로’쯤이 되지 않을까. ‘낯선’보다는 ‘우연히’에 방점을 찍고 싶다. 주인공 ‘석용’에게는 말 그대로 우연이었으니까. 누구나 물렁한 부분이 있다. 물렁하기에 더욱 다치기 쉽다. 어떤 곳은 약도 주사도 없어서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상치 못한 위로, 우연한 위로가 필요하다. 석용은 제주에서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속에서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위로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게 만든다. 다시 한번 잘 살아보자고 자신에게 말을 걸게 만든다. 무른 몸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도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는 몸의 후면 근육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잡아주는 운동이 중요해요.” 마음의 ‘후면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한 한가지 방법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낯선 이가 건네는 우연한 위로를 통해 나도 모르는 새 근육이 생길 것이다. 나 역시 우연한 기회에 타인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현장란 장준영의 글을 통해서는 뉴스보도로 접하던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세밀하게 알 수 있었다. 2021년의 미얀마는 지난했던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군사정권이 경제개발과 3S정책 등으로 국민의 탈정치화를 추구했다면,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부를 축적하는 동안 국민들이 스마트폰의 대중화, 소셜미디어의 일상화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면서 세계 흐름에 맞춘 성장을 원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가 되면 혼란이 야기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지만, 권력을 갖게 되면 자제하는 능력은 반비례하여 사라지는 것일까.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인간성마저 쉽게 허물어버리는 것일까. 청년들의 죽음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미얀마에 봄이 꼭 오기를 바라본다.

김수겸 i427sun@naver.com

 

새 희망을 만드는 힘

▶ 지난호 작가조명은 김중미의 신작 소설 『곁에 있다는 것』을 다뤘다. 김중미는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이미 유명한, 나도 여러 작품을 읽어본 작가다. 내가 느끼는 작가의 한결같음이라면, 우리 주변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 그들과의 연대와 공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삶에 그대로 녹아 나타나는 실천이지 않을까. 작가의 한결같은 모습은 이번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인물들은 생을 살아내고 있었다. 할머니 세대에서 부모님 세대로, 다시 아이들 세대로 연대와 실천이 이어지고, 그 이어짐 끝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소설은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필자 이정숙이 이 작품이 십대들의 언어로 쓰인 십대들의 이야기임에 주목한 점도 흥미로웠다. 가난의 상황에서 가난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가난을 숨기고 감추려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번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가 아닐까. “‘존재’에 대한 거리낌 없는 태도”로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이야기하게 하고 희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가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었다.

제주4·3을 다룬 허영선의 현장글을 읽으면서는 친한 동료들과 책모임에서 관련 이야기를 나눈 것이 떠올랐다. 언제 한번 제주를 방문해서 오롯이 4·3을 기억하는 여행을 하자며 모임을 마무리했었는데,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이전에 『순이 삼촌』을 정독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이산하 시집 『악의 평범성』을 읽으며 또 한번 생각이 머무른 바가 있어 제주 4·3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끝내 낯익어지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을 읽으며 법원의 재심 판결이 이제야 나왔다는 것에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전혀 그른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니구나 하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았다.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일 터다.

홍은주 nan707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