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지역감수성을 기르는 법

지난호에서 「지역이라는 타자와 지역감수성」을 인상깊게 읽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요즘 내가 여성으로서 페미니즘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쉽게 해왔으면서 또다른 소수자성이라고 할 만한 지역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의식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수도권,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에 살면서 그 틀에 갇혀 있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해주었다. 특히 다들 알 만한 영화들을 예시로 든 점이 좋았다. 「친구」나 「해운대」처럼 많은 대중이 보았을 대중문화에서 ‘지역감수성 없음’을 찾아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떤 영화나 작품이 지역감수성을 잘 드러냈는지도 안내해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땐뽀걸즈」(2017)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에 걸맞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구조조정이 시작된 거제지역 조선소를 배경으로, 거제여상 학생들이 ‘땐스 스뽀츠’를 배워 대회에 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거제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더불어 여고생들의 일상이 전혀 대상화되지 않고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 지역감수성을 높이고픈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요즘 뒤늦게 꽂힌 방탄소년단의 노래 중에 「Ma City」의 가사를 보면, 신도시에서 10대를 보낸 멤버는 일산의 라페스타나 호수공원 같은 구체성 있는 장소를 호명하며 “이게 나의 city”라고 한다. 또 광주가 고향인 멤버는 지역번호와 5·18이라는 키워드를 이어붙여 ‘062-518’이라는 재치있는 표현으로 스스로와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렇게 지역성에 담긴 긍정적인 감각을 자유로이 펼치는 문화 콘텐츠를 맛보는 데서 쾌감이 느껴졌다. 지역에 담긴 ‘희생’ ‘낙오’ ‘멸시’ 같은 오해는 이런 새로운 대중문화들이 많이 나올 때 균형 잡히지 않을까 싶다.

술빵이 gomsulppang@gmail.com

 

죽음을 생각해볼 가치, 겨울

겨울은 시를 읽으라고 존재하는 계절처럼 느껴진다. 집 앞의 논들은 어느새 공터로 변하고, 나무들은 자신의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서 있다. 이러한 주위 풍경에 힘입어 괜스레 나를 비우며 시를 읽게 된다. 지난 겨울호의 시를 읽으며 죽음이 겨울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임경섭의 「기념일」을 보면 화자는 기억할 게 없어 기념일을 기다린다. 우리의 죽음이 “우리에겐 기념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기억되기보다는/기억하고 싶었다” 이야기한다. 조성웅의 「위험에 익숙해져갔다」는 허공 10미터 위에서 H빔 위에 누운 행위가 죽음을 넘어 “목숨을 살리는 방법” 같고, “이판사판 한번 붙어보자는 고공농성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손택수의 「지축을 지나다」에서는 “세면을 할 때마다” 자신이 뼈 같고, 해골 같으며 “폐허를 잃어버린 폐허의 얼굴”을 발견하는 화자가 나온다. 이밖에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도 묘한 겨울의 안개 냄새들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가슴속에 생명의 에너지를 품고 때를 기다리는 겨울과 죽음은 궁합 좋은 술과 음식 같았다. 앞으로만 나아가느라 지금을 놓치지만, 그렇다고 먼 미래를 잘 살아낼 자신도 없는 지금, 다 비워진 계절에 나를 반추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이렇게 죽음을 한참 생각해보다 신경림의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읽었다. 노(老)시인의 온기 어린 시는 겨울을 견뎌낼 작은 불씨를 내게 툭 던져주었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다운 것이 삶이고, 아름다움을 찬미하기에도 부족한 것이 우리의 생명임을.

박선규 gyu_0923@naver.com

 

서운해하지 않기를 노력하며

다정한 듯 보이지만 결코 다정하지 않다. 최은영의 소설은 언제나 내 안의 가장 약하고 숨기고 싶은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서일까, 나는 최은영을 읽을 때마다 조금 울고 싶어진다. 「일년」 역시 그랬다. 두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대체로 중심 화자는 더 이기적이고 약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래 보인다. 다희는 지수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고, 지수는 다희를 향해 작은 서운함조차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관계를 규정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름을 붙이는 일이란 관계에서 특별하기에.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감정으로 편리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 같다. 최은영의 소설 속 ‘관계’들은 단단하다기보다는 질기고 견고하다. 이러한 관계는 『쇼코의 미소』나 『내게 무해한 사람』 등 작가의 전작에서도 성별을 막론하고 등장한다. 나는 이들의 관계가 꼭 실뜨기 같다고 생각했다. 나란히 서서 촘촘히 떠내는, 헤질지언정 손을 놓아도 깨지지 않는 그런 것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인 채로 살아 있었다.” 「일년」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이 문장이 최은영의 관계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중요하지만 두 인물은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다. 이보다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 각자를 알고, 기억하고, 배려하고, 침범하지 않는다. 다희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엄마 친구의 마음이 뭘까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쓰는 최은영의 마음이 궁금했다. 서운함에서 폭력성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쪼개왔을까. 나의 마음이 그와 닮아지기를 바라본다.

방지민 myheather77@naver.com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을 읽고 경험한 우주의 확장

지난호에서 가장 처음 읽은 작품이 박상영의 중편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다. 첫인상이 강렬해서 다른 작품을 읽기 전에 여러번 더 읽었다. 처음 회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신선함과 쫄깃함, 그리고 여러번 씹었을 때 올라오는 생선의 짙은 향까지 모두 느끼고 싶었다.

아픈 엄마에 대한 애증의 감정,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연애…… 지긋지긋한 일상의 연속인 소설 속의 순간들이 나와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소설 속 화자가 그랬듯이 나도 좋아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록을 버려버리고 싶은 한편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고 싶기도 한 모순적인 감정에 휩싸인 적이 있다. 다이어리를 당장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가방 속에 도로 넣는 모습에 과거의 내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글을 읽고 내 모습을 투영해 공감하면서 생각의 확장이 일어날 때 개별적인 의미를 가진 독서가 완성되는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나에게는 섬뜩할 만큼 깊게 흡수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차가운 겨울 메마르고 위축되어 있던 나에게 더 넓은 세계가 생겼다. 소설 속 화자의 마음에서 나의 머릿속까지 작품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라는 우주와 너라는 우주가 모여 우주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문정아 jeonga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