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금, 어떤 불평등인가

 

지역 간 격차,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할까

 

 

정준호 鄭埈豪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역임. 공저 『뉴노멀』 『다중격차: 한국 사회 불평등 구조』 『다중격차 2: 역사와 구조』 등이 있음.

jhj33@kangwon.ac.kr

 

 

1. 지역의 의미와 지역 간 불평등 문제

 

지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리학은 일반적으로 공통 속성들을 가지는 영역적(territorial) 실체로 지역을 규정한다. 그 속성들은 자연, 인간, 그리고 이들 간의 상호작용 등을 통해 주어지고 형성되며, 한 지역에 ‘통일성’(unity)을 부여함으로써 타 지역과 구별된다. 문화, 사회, 경제, 지형, 자연, 정치 등 다양한 층위에서 상이한 지역들이 식별 또는 생성될 수 있지만, 사회과학의 주요 연구대상인 개인, 계급 또는 계층과 같은 개념적 단초가 없기 때문에 학술적 용어로 지역 개념은 혼돈적(chaotic)이다.1 사회과학에서 지역단위의 분석이 중요시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역은 다양한 규모(scale), 즉 동네, 근린, 시군구, 광역시도, 대도시권, 국가, 대륙 등으로 현상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 국가 내에서 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경제적 규모효과는 배가되며 정치적으로도 중앙정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뤄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영국 보수당의 새처(M. Thatcher) 수상이 집권한 후 노동당의 아성인 광역 런던시를 작은 규모의 행정단위들로 쪼갠 사례도 있다. 1997년 노동당이 재집권한 후 광역 런던시가 복원되었다.

최근 도시재생의 맥락에서 동네 또는 근린 같은 소규모 지역단위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인 동시에 직접적인 시민참여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각종 현안을 해결할 단초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으면 자본 주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관철되기도 용이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근린을 도시계획의 단위로 설정하려는 경향 역시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역 간 이동성이 심화·확대되면서 중심지와 배후지를 하나로 아우르는 도시권(city-region)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제2기 수도권 신도시에서 교통, 쓰레기처리, 상수도 같은 환경 및 인프라 문제가 광역적으로 불거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동네나 근린 단위로는 해결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효과적 개입, 그리고 수도권 광역지역들 간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 판이한 지리적·제도적 배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규모에 따라 일련의 지역들은 위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다양한 규모는 서로 다른 사회적 관계들을 함의한다.2 가령 동, 시군구, 광역시도 각각에서 벌어지는 경제적·사회적 현상들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지역은 정주와 재생산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웃과 근린에서 형성되는 정서적 공동체는 강력하다. 지역은 물리적인 실체이지만 거주민들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을 통해 ‘인격화된’ 실체(정서, 기억, 지각, 역할 등)가 부가된다. 특히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발생하는 반복적이고 사회적인 행위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사회자본의 축적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지역은 거주민에게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토대이고 정치적 동원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진보의 ‘화신’일 수도 보수의 ‘깃발’일 수도 있는 것이 지역이다. 그 와중에 사회적·경제적 문제가 단순히 지역적 문제로 치환되는 ‘공간 물신론’(spatial fetishism)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지역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특정 계층의 이해관계 담론이 지역적 정체성을 활용하여 지역사회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공간 물신론이라고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그 담론의 확산효과가 지역에 누적된 정체성과 사회자본에 일정 정도 기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역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불평등이 시대적 화두다. 삐께띠(T. Piketty)는 『21세기 자본』(한국어판 글항아리 2014)에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던지는 정치적·경제적 메시지, 즉 민주적 질서의 위협과 세습사회의 등장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개인(또는 가구) 간 불평등은 정치적·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많은 이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도 이러한 관심도를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정부 시기 강력하게 제기되던 지역균형발전 또는 지역 간 불평등 의제는 개인 간 불평등에 비해 세간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지역 간 불평등보다 지역 내 불평등 정도가 심하며, 지역 간 격차가 전반적으로 낮더라도 지역 내 격차가 심할 수 있다.3 가령 서울 내의 소득불평등과 시도 간 소득불평등 정도를 비교할 경우 전자가 더 크다. 하지만 지역 간 불평등과 개인 간 불평등이 동행한다는 점에서, 두 측면의 불평등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

최근 미국과 서유럽에서 지역 간 불평등 이슈는 강력한 정치적 폭발력을 드러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2016년 미국 대선, 2016년 오스트리아 대선, 2017년 프랑스 대선, 2017년 독일 총선 등에서 지역 간 불평등 양상이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투표행태로 이어진 것이다.4 낙후지역과 쇠퇴지역이 선거에서 기존 민주적 질서에 도전하는 정치세력을 옹호했는데,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의 트럼프 지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위 ‘중요치 않은 지역의 보복’(revenge of the places that don’t matter)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소규모 지역일수록, 구산업 지역일수록, 이민자 비중이 높아지는 지역일수록, 그리고 노동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취약하여 회복이 느린, 따라서 실업률이 높고 복지급여가 줄어든 지역일수록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성향이 높았다.5 이러한 현상은 거주민들이 경제적 쇠퇴와 이를 방치한 것에 대한 ‘불만’을 강력하게 지리적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6 이러한 이유로 이전에는 지역정책을 백안시하던 하바드대학의 경제학자들도 ‘장소기반’(place-based) 정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7

우리나라도 입지적 열위와 규제로 인해 성장에서 배제된 낙후지역이 존재한다. 가령 접경지역, 자연보전지역, 도서지역, 그리고 기타 농산어촌지역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가까운 시기에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다른 한편 제조업 중심지로 성장을 구가하던 일부 공업도시들은 ‘산업위기지역’으로 상황이 나빠졌다. 근래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을 겪은 거제, 군산, 통영, 영암, 울산 등이 그러하다. 우리나라로서는 사실상 처음 겪는 현상인데 한국판 러스트벨트가 나타난 셈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보복,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급격한 기술변화 등으로 제조업 중심지인 동남과 서남권은 앞으로 심대한 구조조정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폐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방치’ 또는 ‘폐기’ 위기에 처한 낙후지역과 쇠퇴지역이 결합하면 최근 서구의 사례처럼 기존 거버넌스체제에 심대한 정치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지역 간 불평등은 개인 간 불평등과 마찬가지로 크고 심각한 사안으로 봐야 한다. 사회경제의 현안으로 제기되는 이중의 지역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은 우리나라 지역 간 불평등의 현황과 요인을 규명하고, 그것이 가지는 정치적·경제적 함의와 이를 넘어서기 위한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2. 지역 간 불평등의 현황과 요인

 

지역 간 불평등은 주로 소득 측면에서 다루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로 1960년대와 1970년대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둘째는 경부축을 경계로 나타난 영남과 호남 간의 격차이다. 이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상황과 맞물리면서 지역문제의 원형을 이룬다. 셋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부상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이다. 넷째는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 격차이다. 이러한 지역 간 격차들은 각각 시기별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상호 중첩되면서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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