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하철을 멈춰 세우겠습니다

 

 

김수경 金秀暻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

chinagirl93@hanmail.net

 

 

언제까지 장애인은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죽어야 하나이까

 

2017년, 내가 장애운동 현장에 막 발을 들이기 시작했던 시점에 신길역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신길역 1호선과 5호선 사이의 환승구간에 가보았는가. 그 깊고도 가파른 계단에서 한 휠체어 이용자가 리프트를 타기 위해 벨을 누르다가 떨어져 죽었다.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이동이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를 위해 누군가는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다가 다치거나 사망한 사건은 2017년 신길역의 일만이 아니었다. 1999년 혜화역, 2001년 오이도역, 2002년 발산역, 2006년 신연수역, 2008년 화서역 등 곳곳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중에도 수많은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크고 작게 다쳐왔을 것이다.

2017년 신길역 추락사가 발생한 다음해 봄, 우리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상복을 입고 관을 메고, 휠체어를 탄 수십명의 장애인 활동가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신길역 환승구간의 길고 깊은 계단만큼 커다란 현수막을 제작해서 계단에 걸기도 했다. 현수막에 적힌 ‘언제까지 장애인은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죽어야 하나이까?’라는 구호는 선언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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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의 20주년이 되던 해였다. 2022년까지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은 처참히 파기되어 현재 29개의 역에는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94%는 설치되지 않았냐고. 하지만 그 6%의 미설치 구간에서 누군가 또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언제까지 장애인은 ‘고작’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하루라도 더 늦어졌다가 또다른 장애인의 목숨을 잃게 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다시 지하철 타기 투쟁을 시작했다. 2021년 12월 6일부터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은 다섯달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핫’해질 줄이야.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드는가 하면 시위 규탄자들이 몰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거느린 한 유튜브 채널에서 ‘장애인 폭력시위, 옳은가’라는 주제로 다뤄지더니, 급기야 거대 보수정당의 대표가 자신의 SNS를 지하철 투쟁에 대한 비난으로 도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시위 방식의 ‘문명화’ 여부를 따질 뿐, 정작 ‘장애인도 함께 살자’는 메시지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는 듯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누군가 지하철을 타다가 떨어져 죽어야 하는 이토록 잔인한 세상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정말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그간 삭제되어왔던 삶들을 다시 돌아보자. 빠른 속도로 지나가버리는 지하철 안에서는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이들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으면 한다.

 

 

언니의 방구석

 

“야, 나는 스무살이 될 때까지 방구석에서만 살았어.”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M언니는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M언니는 중증 뇌병변장애인이자, 장애운동의 대선배이다. 언니는 투쟁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가장 먼저 휠체어에서 내려 거리에 앉으며, 가장 끝까지 싸우는 멋진 투사다. 지금은 휠체어 바퀴가 닳도록 전국을 누비며 현장을 이끄는 사람이지만, 어렸을 적에는 장애가 있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외출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낮에 할 일이 없어 매일 무협소설을 읽으며 언젠가는 탐험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언니의 삶은 지금까지도 방구석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M언니는 ‘운이 좋아서’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게 되었고, 야학을 통해 장애인권 투쟁 현장에 함께하게 되었다. 언니는 악착같이 투쟁하며 활동가가 되었지만, 수많은 장애인들의 삶은 여전히 ‘방구석’에 멈춰 있다. 그들이 방에 머무는 이유는 단지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너무나도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장애인은 갈 수 있는 곳도, 방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단 학교만 해도 대부분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거니와 학습 환경, 속도, 형태가 모두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애의 정도나 개별 특성에 따라 ‘훈련’을 통해 ‘재활’될 수 있는 장애인이라면 그나마 어디엔가 취업이 될 수도 있지만, 법적으로 최저임금 적용 제외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어 제대로 된 소득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도저히 지역사회에서 살 수가 없는 현실, 그러니 이런 중증장애인은 어디로 가겠는가. 가족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이것도 어디까지나 가족이 여건이 된다는 가정하이지만—방에 머물거나, 더이상 가족의 짐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이 좋기도 했지만,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살 수밖에 없었던 M언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어릴 적 언니의 ‘방구석’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누구도 이 방에 있는 언니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방 안에서 언니의 삶이 안녕한지 묻는 사람도 없었다. 언니는 그저 시간이 되면 주는 밥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냈지만 언니가 지냈던 ‘방구석’에는 ‘관계’라는 것이 없었다. 그곳에서 언니는 어쩌면 자신이 평생 닿지 못할 수도 있을 세상을 상상 속에서 펼쳐냈다. 하지만 언니의 세계는 어디서도, 누구에게도 풀어내지 못한 채 방 안에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언니의 삶은 투쟁을 하며 변화했다. 투쟁은 언니를 방구석으로부터 나올 수 있게 했다.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를 막는 일은 단순히 억지를 부리는 행위가 아니었다. ‘없는 사람’ 취급을 받던 장애인이 존재하는 인간으로, 펼쳐내지 못했던 상상 속 세상을 목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현실로 바꾸는 일, 언니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은 혁명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어떤 얼굴들

 

중증장애인들이 줄 지어 지하철을 탄다. 어떤 이는 손가락 하나를 천천히 겨우 까딱하며 전동휠체어를 운전한다. 어떤 이는 휠체어 바퀴가 단차에 껴서 쿵, 하고 들어선다. 그렇게 느릿느릿 지하철에 타면서도 줄의 맨 마지막에 선 동지까지 빠짐없이 탈 수 있도록 지하철 문을 꼭 붙잡고 서 있다. 또 어느날에는 그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한다. 수십명의 장애인이 한번에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시민들은 온갖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병신들 육갑하고 있네!”

“국회 가서 얘기해, 왜 여기서 이러는 거야!”

“니들이 이러니깐 지지를 못 받는 거야.”

“왜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고 못 가게 만들고 그래!”

“몸만 장애인인 줄 알았는데 정신도 병신이구만.”

참 희한한 일이다. 누구도 대놓고 ‘장애인은 오지 마세요’라고 하지는 않는 세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꽃동네를 방문해 장애인에게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자원봉사를 한다. 이토록 장애인을 위하는 것 같은데, 정작 장애인이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기 시작하자 ‘병신 육갑’이라며 바로 욕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그 이상한 세상을 매일 지하철에서 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4%에 도달했습니다.”

“선량한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런 비문명적인 시위 방식은 적절치 않습니다.”

조금 ‘교양있다’ 싶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교양있게 혐오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결국 ‘해줄’ 때까지 장애인들은 밖으로 나오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 잘 듣고 착한 장애인일 때는 선의를 베풀 수 있지만 비장애인의 일상에 침범하여 장애인 당사자로서 주체적 목소리를 내는 순간 그 장애인은 ‘비문명적 행위자’가 된다.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연 앞서 소개한 M언니를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들의 삶을 방구석에 방치해두는 이 사회는 문명적인가. 한편으로는 지하철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그 시민들이 정말로 그간 ‘선량’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우리는 모두 장애인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은 속도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는가. 지금은 잠깐 멈춰서 장애인의 삶과 속도를 마주해야 할 때다.

그러므로 지하철 타기 투쟁은 단지 이동권 보장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을 ‘볼모’로 잡고 ‘예산 안 잡아주면 시민들 발목을 붙잡겠다’는 협박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탐으로써 이제껏 세상에 보이지 않았던 중증장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삶, 교육받을 수 없었던 삶, 노동할 수 없는 몸, 시설로 들어가 세상과 분리된 채 살다가 이름 없이 죽어야 하는 운명, 이 모든 삶의 조건들을 거부하는 저항행위다. ‘선한 시민 대 착한 장애인’의 위계적 구도를 완전히 뒤엎고, 욕먹는 나쁜 장애인일지언정 누구나와 같이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진 한 사람임을 알리며 동등한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관계는 연대로서 형성된다. 어느덧 출근길 지하철 타기는 장애운동 활동가들만 모이는 자리가 아니게 되었다. 학생, 정치인, 가난한 사람들, 성소수자, 여성, 시민들이 다양하게 연대하며 지하철을 함께 타기 시작했다. ‘쪽수’가 많아지니 투쟁도 더 튼튼해졌다. 적어도 그 자리를 함께 지켜주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지하철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세상에서 모두가 각개전투로 살아남아야 한다면 결국엔 장애인이 아닌 누구라도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존재의 존엄을 되찾는 투쟁,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공존을 위한 투쟁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이다. 사실 이 투쟁의 한복판에 있는 나 자신조차 한참이나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민들의 불편함은 둘째 치고, 매일같이 전쟁터 같은 현장에 어떤 무기도 없이 나서서 온몸으로 욕설과 혐오를 받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막아서는 투쟁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며 강건하게 이 투쟁에 결의했지만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은 늘 어렵다. 어떤 활동가들은 개인 연락처로 협박 문자를 받기도 했고, 실제로 전장연 사무실에 협박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잠을 못 이루거나 홀로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섬뜩함을 느낀다는 활동가들도 많아졌다. 나는 정신과에 다니며 약을 처방받고 있다.

“언니, 정말 다 알겠는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으면서 이 투쟁을 하는 것이 맞을까요?”

20년 넘게 장애운동을 해온 선배에게 물어봤다.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너조차도 이렇게 불편함을 느낀다면 나는 이 투쟁이 더욱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어서 이야기해줬다.

“1950년대 미국에서 흑인들이 인권운동을 할 때, 의도적으로 백인 전용 버스를 타면서 저항을 했대. 사실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 자리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총을 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면서 싸웠다는 거야.”

목숨을 건 투쟁, 그 공포를 견디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우리가 지하철을 붙들고 싸우는 활동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정책요구안, 수도 없이 써온 면담 요청 공문과 그만큼 셀 수 없이 진행된 공무원과의 면담, 토론회, 인권교육……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다양하고 ‘문명적인’ 방식의 활동도 이미 충분히 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듯 변하지 않는 세상에 우리는 충분히 굳은살이 박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시는 2022년까지 서울시 내 지하철 전(全)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우리는 매년 예산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삭감되어왔다. 그 결과가 바로 2017년 신길역 리프트 추락사인 것이다.

탈시설은 어떠한가. 2019년 서울시는 ‘제2차 탈시설 추진계획’을 수립하면서 2022년까지 장애인 800명의 탈시설을 추진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2400여명에 다다르는 서울시 관할 시설거주인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지만, 그 약속만이라도 지킬 것을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2021년 8월 기준 서울시가 탈시설을 지원한 인원은 324명. 목표치의 약 40%에 불과하다. 약속을 믿고 기다린 결과다.

현재 전장연은 지하철을 타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뿐 아니라, 장애인 권리보장법,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 및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 등 ‘민생 4법’을 통과시키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윤석열정부가 이에 맞는 충분한 예산을 수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어려운 요구안인 것 같지만 쉽게 말하면 결국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고, 지역에서 함께 살자’는 구호를 법적·제도적 장치로 구축하자는 제안이다. 수십년의 세월을 방구석과 시설에서 보낸 이들에게는 더없이 절실한,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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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꼭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을 연착시킬 뿐 아니라 삭발을 하고, 목에 사다리와 쇠사슬을 걸며, 휠체어에서 내려 앉아 오체투지를 해서라도 끝끝내 지켜내고 싶은 존엄한 삶이 있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주는 밥을 먹으며 근근이 살아내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 맺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춤추고 노래하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엄한 인간의 삶을 장애인도 함께 누리겠다는 견고한 생명력의 발로이자 삶에 대한 의지인 것이다.

 

 

장애해방 그날이 오면

 

아니, 그래서 나라고 이렇게 싸우는 게 좋아서 맨날 지하철을 막아서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설마”라고 대답하겠다. 지하철에서 시민들로부터 매섭게 날아오는 욕설에 두 눈 부릅뜨고 맞대응하는 나도 싸움을 좋아서 하지는 않는다. 해야 할 말이 있고, 곁을 지켜야 하는 동료들이 있고, 바꿔야 할 사회구조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견뎌내고 싸울 뿐이다.

나는 종종 M언니에게 이야기한다. 장애해방 그날이 오면 나는 언니 활동지원사로 일하면서 살고 싶다고. 내가 언니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함께 있으면 즐거울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장애해방’의 날이 오는 것이다. 비장애인인 나에게 장애해방이 중요한 조건이 되는 이유는, 장애해방은 곧 나에게 인간해방, 나의 해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혐오와 폭력으로 점철된 투쟁 현장만큼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나 또한 쫓아가기 너무 버거운 이 사회의 속도다. 숨이 벅차도록 나를 달리게 만드는 경쟁, 낙오된 자는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고 빠르게 도망가는, 마치 지하철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비장애인인 나 또한 탈락되는 것은 한순간일 테다.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이 세상을 잡아 멈춰 세우고, 여기 나도 있다고, 그러니 함께 살자고 외치는 투쟁은 장애인만의 투쟁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얘기를 할 때마다 M언니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야, 아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장애해방은 안 올걸? 아이고.” 늙어 죽을 때까지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투쟁을 해야 하나 싶지만, 그런 삶이 필요하다면 그것대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더 많은 중증장애인, 더 멀리 밀려난 사람들까지 손을 꼭 부여잡고 지하철을 타리라. 남겨둔 이 없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두가 함께 이동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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