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노무현시대의 좌절』, 창비 2008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돌베개 2009

진보이념 개발의 대장정을 나서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itspolitics@naver.com

 

 

노무현시대의좌절_먹표1 후불제민주주의표지(大)노무현 일가의 비리(?)에 대한 검찰의 지극히 편파적이고 야비한 수사와 보수언론의 악랄한 보도태도는 참여정부 시절 검찰과 언론 개혁의 미진함을 통탄하게 한다. 또한 그 시절 추진했던 수많은 개혁의 선후, 완급과 그 기조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정말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경험과 범진보진영의 동반 몰락의 경험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정치적·정책적 교훈의 거대한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거대한 보물창고를 누비면서 보물을 쓸어담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현재 범진보진영의 지적 풍토는 참여정부라는 골치아픈 기억은 대충 덮어버리고,‘촛불’의 아름다웠던 기억은 끊임없이 재생한다. 단적으로 작년과 올해에 걸쳐 벌어진 범진보진영의 토론회를 돌아보면, 수많은 타산지석의 교훈을 제공해주는‘노무현시대’와 관련된 토론은 거의 없고, 약간의 위안과 연대투쟁 의지를 불러일으키는‘촛불’이나 이명박정부의 실정 관련 토론은 넘쳐난다. 외환위기, 신용카드 대란, 대구 지하철 참사, 태안 기름유출 사건, 숭례문 화재 등 대형사고가 생기면 온 나라가 야단법석을 떨다가 몇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버리고, 백서 하나 남기지 않고 덮어버리는 행태가 참여정부와 관련해서도 반복될까 두렵다. 범진보진영에 만연한 이런 퇴행적 풍조에 일격을 가하는 두권의 책이 나왔다. 하나는‘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진보학자 13명의 논문을 엮은 『노무현시대의 좌절』(이하 『좌절』)이고, 다른 하나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쓴 『후불제 민주주의』(이하 『후불제』)다.

『좌절』 집필에 참여한 13인의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무현정부가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판의 각도는 많이 다르다. 자신이 서 있는 정책 패러다임, 즉 정책을 관통하는 철학, 가치, 현실인식, 비전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7장 「노동정책, 사회통합을 위한 노동개혁의 실종」의 필자 박태주처럼‘유럽식 사회적 시장경제(독일모델)’패러다임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의 비판은 사회주의자의 자본주의 비판처럼 논리가 정연하고, 대립각이 선명하다. 제시하는 대안 패러다임의 적실성 혹은 현실정합성만 있다면 최고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대안 패러다임’에 근거한 참여정부 비판은 주로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복지국가소사이어티(북유럽 사민주의 모델), 생태환경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13인의 필자 중에서는 박태주를 제외하고 이런 패러다임을 확고한 대안으로 채택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두번째 부류는 참여정부와 해당 분야의 정책 패러다임을 대체로 공유하는 학자들이다. 『좌절』의 필자 상당수, 특히 주택정책을 비판한 정준호, 과학기술정책을 비판한 김석현, 교육정책을 비판한 장수명, 동북아정책을 비판한 김양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비판 요지는 정책 패러다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책 수립 및 집행의 방법과 기술에 대한 문제제기다. 이는 참여정부에서 정책을 주도적으로 입안·실행했던 대부분의 인사들에 의해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될 것이다. 그런데 『후불제』의 저자 유시민의 참여정부에 대한 반성적 평가의 핵심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각종 제약조건을 극복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회자유주의적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가기에는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란다.(『후불제』 343면) 그런데 이같은 유시민의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좌절』의 필자들 평가 역시 지난 대선과 총선의 참패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정책의 미세조정 실패나 정치의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민심의 이반이 너무나 격렬하고 확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첫번째 부류가 제시하는 참여정부의 배신론, 즉‘좌 깜빡이 켜고 우회전’해서 그렇다는 평가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김대중-노무현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로 몰아붙이며, 확실하게‘좌 깜빡이 켜고 좌회전’을 시도한 민주노동당 역시 같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세번째 부류는 앞서 열거한 좌파 진보그룹의 정책 패러다임에도 반신반의하고, 사회자유주의와‘비전 2030’으로 집약된 참여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에도 반신반의하는 학자들이다. 하지만 아직은 대안 패러다임을 정교하게 만들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비판은 정책 패러다임 차원에서부터 정책 수립 및 집행의‘방법과 기교’에 대해서까지 다양하고 풍부하다. 하지만 여러가지 것들이 뒤섞여서 혼란스럽고, 무엇보다도 논리적 정합성과 현실적 정합성 면에서 의문스러운 비판들이 많다. 예컨대 1장 총론을 쓴 조형제·김양희와 2장 「잘못된 정치전략과 지지기반의 와해」를 쓴 이남주의 글을 보면 한미FTA는 추진 자체가 문제인지, 추진 절차와 방법이 문제인지, 한일FTA나 한중FTA보다 먼저 추진해서 문제인지 모호하다. 이남주는 노무현의 잘못된 정치전략이 지지기반(이른바 집토끼)을 균열·와해시켰다고 평가하며, 동시에‘진보적 정체성’강화만으로는 진보진영이 잔여적 정치세력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이는 산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보수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진보개혁세력의 균열은 필연적일 것이다. 어쨌든 이남주는 “세계화와 분단체제의 동요라는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비전과 노선”(『좌절』 44면)을 갖출 것을 주장하며, 동시에 폭넓은 정치연합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진보의 균열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존 진보이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실현가능한 비전과 노선”을 우선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진보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을 우선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컨대 노무현의 정치전략의 핵심적 오류가 보수적 색채를 가미하여 산토끼를 잡으려 한‘트라이앵귤레이션(triangulation) 전략’내지‘유연한 진보’노선 그 자체에 있는 것인지, 집토끼와 산토끼를 다 잡으려는 전략은 옳은데 단지 정치적 기교 부족이 문제라는 것인지 분명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8장 「비정규직정책, 안일한 인식과 무력한 대응」을 쓴 은수미는 박태주와 달리‘비정규직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불공정거래와 독과점 방지 등을 통한 중소기업 보호·육성을 역설한다. 동시에‘고용의 질에 중점을 둔 패러다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업과 재정 능력으로 국민평균소득(구매력 기준) 대비 세계 최고수준의 처우를 누리는 이른바‘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는 전망이 실현가능한 것인지는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

『좌절』과 『후불제』라는 두 책은 집권 가능한 진보이념과 세력을 창조하기 위한 작지만 의미있는 시도이다. 서로 대립하는 주장도 많지만 보완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몇달 먼저 발간된 『좌절』은 참여정부의 정책적 행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참여정부 인사들의‘실패의 부인(否認)’과 범진보개혁세력의‘성찰의 실종’이 지니는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후불제』는 헌법정신과 한국사회의 정치적·정책적 제약조건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최근에 개발해 실행까지 해본‘사회자유주의’패러다임과‘비전 2030’을 가벼이 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물론 두 책 모두 선명하게 제시하지 않은 중요한 인식들도 있다. 첫째, 모든 부문별 정책 혹은 미시정책들에는 그것을 관통하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이 미시정책들은 특정한 정책 패러다임이라는 플랫폼〓경제·사회모델 위에 자리잡아야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둘째, 박정희와 김대중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참여정부가 수정·보완한 정책 패러다임의 총화인‘비전 2030’으로는 진보가 역사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힘들다는 점이다. 박태주가 채택한 정책 패러다임 역시 마찬가지다. 셋째, 새로운 플랫폼은 선진국 이념을 단순 모방하는 방식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으며, 오직 이론과 실물에 정통한 학자,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 등이 긴밀하게 공조함으로써‘독자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참여정부 시기에 벌어진 범진보세력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은 대안 패러다임들의 미성숙과 방향성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이념적·정책적 발전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한 식구였던 사람들끼리 분열하고 대립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오랫동안 채택해온 정책 패러다임의 적실성 내지 진보적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성찰이 덜 치열하여 대안의 성숙이 지체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책은 범진보진영의 좌절과 혼돈의 양상 및 원인을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 현실정치 및 정책 분야에서 한국 최고수준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한계는 우리 진보적 지식사회의 한계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밟고 서면 그만큼 진보적 지식사회의 키가 커지는 것이다.‘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및 유시민의 후속작업과 많은 현자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숙성된 대안이 이 키를 쑥쑥 키울 것이다.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을 가능케 할 새로운 이념을 개발하고,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대장정은 아직은 초입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