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위기의 시대, 문학의 지혜

 

질문을 바꾸면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 서사 속 노동 이야기 읽기

 

 

김미정 金美晶

문학평론가. 평론집 『움직이는 별자리들』 등이 있음.

metanous@naver.com

 

 

1. 2010년대 소설 속 노동 이야기가 부상시킨 것: 자본주의라는 문제계

 

반드시 노동의 문제의식이나 개념을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은 아닐지라도,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소설에서 ‘노동’의 주제를 환기시키는 작품은 빈번하게 등장했고 서사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 젊은 여성들이 출퇴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다양한 비정규 활동이 알바, 프리랜서의 이름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돌보는 일이 노동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의 고군분투 서사는 소설 밖 노동의 장소 및 주체의 변화를 단적으로 환기시켰다. 예컨대 1980년대 노동문학에서 노동은 대공장 산업노동 중심성을 띠고 있었다.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서사를 표방한 2000년대 칙릿(chick-lit)소설에서도 소비 주체로서의 측면이 두드러졌던 것에 비할 때, 2010년대 소설이 부각시킨 산업구조 및 노동 주체의 변화가 무엇인지는 뚜렷하다.

이때 경쟁을 지나온 이들의 안도감과 성취감이 서사의 중심축이 되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한 소설의 주인공은 “20대 중반까지는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학습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았고, 내 머리와 손끝을 써서 뭔가를 생산해 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은 정규직 채용 전 건강검진을 받은 후 비로소 “존중받”은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1 소설마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런 감각들은 취업 빙하기, 청년실업 시대의 불안과 공포를 통과한 이들의 생존서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오늘날 노동이 개인의 능력(주의)과 직결되는 회로도 여기에서 환기된다. 개체 간 차이가 능력의 차이로 환원되고 그것이 자연화하는 것은 노동이 왜곡되는 흔한 회로의 하나다. 실제 소설 속 인물들 사이에서도 이 회로에 기반하는 경쟁구도는 자주 의식되고, 때로 각자의 자존감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놓이곤 한다.2

한편 그동안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아온 다양한 활동을 노동 개념을 통해 틀 지으며 그 의미를 확인시킨 것도 최근 소설의 성취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소설에 이르러 돌봄활동 속 젠더 역학이 뚜렷이 폭로되었다. 동시에 돌봄이 여성이나 주변인의 일로 간주된 채 급격히 시장화하고 공공 시스템이 부재하는 오늘날의 상황도 조밀하게 드러났다.3 인물, 계층, 세대 간 갈등이나 시장 안의 수요자와 제공자 사이의 갈등이 전경화하는 가운데, 돌봄을 둘러싼 ‘가부장×자본’의 문제가 일상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음도 환기시켰다. 그런데 이런 폭로는 돌봄이 시장의 교환체계 속에 고착해 있다는 착시를 만들거나 고된 노동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돌봄활동의 특수성과 정동을 망각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돌봄 혹은 소외된 노동은 시민권을 얻는 동시에 여전히 폄훼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갇히곤 한다.4

이것은 일종의 서사적 곤경일 테지만, 결국은 보이지 않거나 소외된 노동이 가까스로 발견된 자리에서 다시 극적으로 부상한 자본주의로 인한 모두의 곤경일 것이다. 소설서사에서 노동은 작가가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늘 자본·자본주의와의 관계를 함축한다. 앞서 나열한 최근 소설서사의 몇몇 특징 역시 개별 작품의 결여나 결함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자본-노동의 관계 변화와 얽힘 양상을 통해 읽어야 한다. 오늘날 소설 안팎의 노동의 장면이 어떤 곤경과 이행을 보이고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2018년 이후 발표된 몇편의 소설을 더 읽어본다.

 

 

2. 부드러운 통치술, 공모되는 사람들

 

2018년 화제가 되었던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일의 기쁨과 슬픔』)은 앞서 언급한 문학사적 변화를 함축하고 있었고, 판교 테크노밸리라는 장소의 상징성을 통해 한국의 노동조건 변화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은, 소설 속 한 인물(‘거북이 알’)이 월급 대신 포인트를 지급받고 그에 대처하는 과정이다. 월급 대신 지급된 포인트란 직장 내 괴롭힘 혹은 부당대우로 따져 물어야 할 노동권 침해다. 이 일의 당사자 역시 “굴욕감에 침잠된 채”(51면) 밤을 지새운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상황의 변화를 추수하는데, 월급을 포인트로 받는 상황에 맞추어 간명하게 자기를 조율하는 장면이 상징적이다. 이런 가뿐해 ‘보이는’ 전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따지고 보면 주인공의 처세·응전 방법은 그렇게 발현되게끔 회로화된 메커니즘과 연동되어 있다. 소설 속 세계는 이미 포인트를 현금화·현물화할 수 있는 조밀한 시스템과 방법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통상적 회로에 능통한 이들에게 그것은 익숙한 리얼리티다. 또한 포인트와 화폐의 호환이라는 설정은 오늘날 ‘가상’화폐의 상징성에 근접해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굴욕감은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게, 타협하며 휘발시킬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 속 문제들이 처리되는 방식에서 개인화한 양상을 읽어내는 것5도 합당하고, “윤리적인 지점을 초과하는 미묘한 활기”에 대한 지적[6. 강경석·서영인·강지희·이철주 좌담 「새로운 작가들의 젠더·노동·세대감각」(『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 중 강지희의

  1. 앞의 인용은 김세희 「가만한 나날」(『가만한 나날』, 민음사 2019)의 구절로, 주인공에게 일이란 “성취감” “프로” “능력” 같은 가치들과 관련된다고 기술된다. 뒤의 인용은 장류진의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 2019)의 구절이다. 두 작품은 각각 2017년, 2018년 발표되었다.
  2. 이와 관련하여, 2021년경의 몇몇 소설이 노동에 대한 관습적 가치평가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보인 난점(공정-능력주의의 착종이나 노동에 대한 일면적 인식을 보여주는 측면)을 지적한 한영인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창작과비평』 2021년 봄호)도 좋은 참고가 된다.
  3. 여기에서 염두에 둔 작품은 김유담 「돌보는 마음」(『돌보는 마음』, 민음사 2022), 장류진 「도움의 손길」(『일의 기쁨과 슬픔』), 이미상 「여자가 지하철 할 때」(『문장 웹진』 2020년 9월호) 등이다. 또한 돌봄의 서사화를 다루면서 “페미니즘에 의한 자본주의 비판”을 역설하는 이지은 「재생산노동력의 상품화와 여성 연대의 곤경: 장류진 「도움의 손길」에 부치는 주석」(『문학동네』 2019년 겨울호) 및 환대나 돌봄이 “가난에 대한 일종의 형벌이나 희생에 가까운 수동적 행위로 간주”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박서양 「비평 연재 실험」(『웹진 비유』 2021년 11월호)도 이 주제와 관련된 참고목록이다.
  4. 돌봄을 노동의 자리에 놓을 수 있게 된 계기라 할 1970년대 서구의 가사노동 임금투쟁이 궁극적으로 ‘가부장제×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을 목표로 했음을 생각하면 지금 돌봄 및 돌봄서사의 딜레마가 무엇인지 선명하다. 이와 관련해 팬데믹을 겪으며 드러난 돌봄의 위기와 가능성 모두를 포착하고 사회를 바꾸는 개방적 삶의 실천과 전환의 원리를 발견하려는 백지연 「삶의 전환을 꿈꾸는 돌봄의 상상력」(『창작과비평』 2021년 여름호), 나아가 돌봄을 취약성과 연결하는 통상적 해석으로부터 이탈시켜 보편적이고 중심적인 가치로서 급진화하는 황정아 「가치로서의 돌봄」(『개념과 소통』 28호, 2021)도 중요하게 참고할 수 있다.
  5. 반드시 이 소설에 대한 것만은 아니지만, “일의 소외, 노동의 소외 양상은 더 심해졌”지만 “저항의 양상”이나 “소통과 연대의 정서는 거의 찾기 힘들”고 “고립된 단자론의 세계”만을 보여준다는 비판도 기억해두어야 한다. 오길영 「노동소설에서 사회소설로: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과 김혜진 『9번의 일』」(『황해문화』 2020년 여름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