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성용

오성용 吳成龍

1984년 광주 출생. 2007년 제6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foooooo@naver.com

 

 

 

집에 가, 어린 왕자

 

 

1

 

이백칠십팔번 양(羊)을 울타리 안쪽으로 들여보낸 나는 소매를 들어 이마를 쓸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더운지, 땀이 쉬지도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수차례 땀을 닦는 용도로 쓰인 소매는 완전히 젖어 검게 변한 지 오래였다. 더운 날씨 탓인지 별달리 격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몸이 점점 늘어졌다. 내가 관리하는 양들도 나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평상시엔 이리저리 기세 좋게 내달리던 놈들도, 별 수 없이 나란히 줄을 서서 혀를 길게 빼고 할딱이고 있었다. 풀이 죽어 한결 다루기 쉬워진 양들의 모습이 달갑기도 했지만, 안 그래도 더워 보이는 복장을 하고 보여주는 그 몸부림은 안쓰러움도 불러일으켰다. 털이라도 깎아주며 기운 차리라고 격려해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며, 나 또한 기운이 없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나의 일을 하기 위해 울타리의 경계에 몸을 놓고, 땀에 전 소매를 기운 없이 움직여 이백칠십구번 양을 이끌었다.

 

이백칠십구번 이백팔십번 이백팔십일번, 끊임없이 오물거리는 나의 입은 쉬지 않고 숫자를 발음하고 있다. 아주 예전에, 처음으로 이 일을 접했을 때 나는 도중에 숫자를 까먹거나 잃어버리곤 했다. 그런 실수가 벌어지면, 울타리 안쪽에 들어가 있는 양이 몇마리인지 파악이 안됐기 때문에, 기껏 울타리 안으로 넣었던 양들을 다시 바깥으로 내보낸 후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일이 손에 익지 않았던 초기에는 그 과정을 열두번이나 반복하기도 했고, 그런 날이면 다음날의 아침 해를 바라보며 일을 마치곤 했다. 그런 쓰라린 경험들을 토대로 나의 입은 좀더 신중하고 계산적으로 변해왔다. 삼백번 양에 가까워질수록 실수가 잦아지는 것을 알고 있는 나의 입은, 그래서 지금 특히나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양들도 나의 몰입된 모습에 감응했는지, 아무렇게나 내뻗는 손길에도 순순히 박자를 맞춰 울타리 안쪽에 차곡차곡 들어가 쌓이고 있다. 나는 이 유순한 양들을 다루며, 그들의 성품에 찬사를 보내곤 한다. 어쩌면 종이상자로 포장한 다음 보관해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순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양이 아니라 개나 코끼리였다면, 지금처럼 단순하게 손을 놀리지도, 이렇게 수월하게 한마리 한마리 울타리 안쪽에 넣지도 못할 것이다. 조금만 소홀했다가는 손이 씹히거나 으스러져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고, 간신히 울타리에 넣어본들 그것을 뛰어넘어버리거나 아예 부숴버려, 울타리의 의미와 나의 노력은 결코 보상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나 코끼리와는 대조적인 얌전한 양과 함께라는 것은, 내게 다행이며 충분히 고마운 일인 셈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일의 속도를 높여갔다. 양들은 착실히 나의 요구에 응했다. 삼백번, 양이 쏜살같이 울타리 안쪽으로 스며들어갔다.

나는 양을 번호로 부르지만, 그것은 양(量)의 개념의 양(羊)이다. 양들에게는 별도로 번호가 부여된 상태가 아니다. 지금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간 삼백번으로 불린 양도, 전날에는 이백몇번 또 그전에는 칠십몇번이었다. 한번은 이런 양들에게 번호가 아닌, 고유한 이름을 지어주려 한 적이 있었다. 순한 양들을 향한 나름의 애정표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시도는 완벽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유난히 덩치가 크거나, 혹은 마르고 볼품없지 않은 이상 모든 양들의 생김새가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었다. 쌤이라 이름 붙였던 양을 애써 기억해내서 쌤을 불러 세우면 진짜 쌤이 저 멀리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톰이라 기억되는 양을 붙잡아 톰이라고 부르면 진짜 톰이 등 뒤에서 대답하고, 짐이라고 생각되는 양에게 안부를 물으면 나는 쌤인데요라고 화답하고, 톰에게 짐은 어디 있냐 물어보면 아마 톰이랑 있을걸요 아까 말했지만 저는 쌤이라니깐요라는 질책 따위만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질책을 계기로 양들을 고유한 이름이 아니라 그저 양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제 그냥 순서대로 양을 칭하기에 이르렀다.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각자의 이름을 지어줄 수 없었던 것이지만, 양들을 그냥 양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고, 되레 자연스러운 맛이 있었다. 비슷한 생김새의 영향인지 성격 또한 비슷비슷, 온순한 양들도 자신들이 어떻게 불리느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눈에 띄게 특별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수많은 양들을,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렇게, 삼백칠십번까지 양을 세던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더운 날씨에, 좀더 협조적이 된 양들 덕분에 평상시보다 진척이 빨랐고, 무엇보다 내가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삼백칠십이라는 숫자를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에서 계속 굴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멀리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2

 

나는 내가, 그리고 그녀가‘그리하여 그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라는 약속된 엔딩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라 부를 수 있는 긴 시간 동안 행복함의 정서를 향유하며, 모든 것에 우선해서 우리 둘은 함께일 것이라 믿었다. 나와 그녀가 동화에 등장하는 왕자나 공주, 혹은 거지였던 왕자나 하녀였던 공주가 아닌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근접한 뭔가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과 믿음과 예상들이 모두 보기좋게 엇나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나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떤 모양새로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이 안됐다. 이런 상황이 온 것 자체가 의문이었기 때문에, 그저 동그랗게 치켜뜬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한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이대로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가 생각했던 약속된 엔딩은 더이상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져버리고 만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고 믿는 나는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고 내 생각과 믿음과 예상을 다시 온전한 방향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궁리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부터 파악해야 뭐라도 어떻게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되짚어보는 일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일에 동원될 줄은 몰랐던, 준비되지 못한 나의 머리는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천천히 뱉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근래의 일부터 훑어내려가며 기억을 더듬어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살폈다. 그때 나의 입에서 나온 세속적인 언어가 혹시나 그녀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그때 예절에 어긋난 나의 몸짓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때 나의 어처구니없는 등장이 바람직하지 못해 그녀가 감당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때마다 양치질은 했었는데 하는 조심스런 접근들이, 각기 다른 그때들 위로 덧씌워졌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감아봐도, 이렇다 할 수확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변할 만한 계기를 내가 제공한 것이라면 뭔가 하나쯤은 걸리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게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머리는 목적을 잊고 순간순간의 그녀를 지나쳐가며 감탄과 기쁨에 휩싸일 뿐이었다. 그녀를 좋아한다는 방향으로 치우칠 대로 치우친 머리가, 그때마다 모자란 나의 모습을 감내하고 웃어주는 그녀를 향해 무조건적인 투항상태에 돌입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최악이고 상황대처도 최악이었지만, 자꾸 나의 입가엔 웃음이 머금어졌다. 이상하게도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급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기억에 남아 있는 그녀의 모습들 때문이었다. 기억 속에서 나에 비할 바 없이 특별한 그녀, 나와 비교하면 더욱 특별한 그녀, 내게 정말 특별한 그녀와 함께이던 내가 비춰졌고, 그 안쪽에서 보잘것없는 내가 그녀가 뿜어내는 특별함에 힘입어 특별한 인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남자친구라는 작위를 수여받기 위해 그녀가 겨누는 칼끝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나, 그 과정에 이르기 위해 동년배의 스승을 여럿 모셨던 나, 처음 그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바동거렸던 나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나들이 특별한 것처럼 그녀 앞에 미소지었다. 나는 그 미소에 마주쳐, 내 모든 것들이 특별해진 것은 모두 특별한 그녀 덕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실감은 나를 한바퀴 휘감고 돌더니,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으로 금세 이름을 바꿨다. 아직까지 왜 그녀가 이렇게 변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준다면 그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결의가 생겨났다. 최악의 상황에서, 뭐가 어떻게 되든 내겐 그녀가 필요하다는 간단한 사실 하나만 건진 나는, 비장해진 채 머릿속에서 가장 최근의 그녀를 다시 불러냈다.

 

 

3

 

이게 뭔지 알아?라고 물으며, 그녀는 자신의 노트를 펼쳐 내게 건넸다. 종이. 나는 그녀의 노트를 받아들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간결함은 그녀의 기대에서 벗어난 것이었는지, 그녀는 그게 아니잖아 이 바보야!라고 외치며 펼쳐진 노트의 어느 지점을 자신의 검지로 가리켰다. 종이를 보고 종이라고 말해서 바보 소리를 들은 나는, 그녀의 검지 끝이 짚고 있는 어떤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엔 연필로 지저분하게 그린 모자가 있었다. 이건 모자네. 그림을 본 나는 답을 정정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차례 까르르 웃더니, 나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우월감에 휩싸인 태도였고,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시선이었으며, 대단히 재미있다는 투의 웃음소리였다. 상대적으로 나는 열등해진 것 같았고, 그녀가 왜 이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며, 대단히 재미없는 일에 휘말려버렸다는 불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검지로 자신이 그려놓은 모자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이건 모자가 아니라 보아뱀이야, 그것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눈앞에서 까르르 웃는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지, 나는 잠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정보이긴 했지만, 그녀가 그린 모자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모자가 보아뱀이라고?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그녀는 연필을 꺼내 모자의 중앙에 무언가를 그려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보아뱀이고, 이런 식으로 뱃속에 코끼리를 삼키고 있는 거지. 다시 건네주는 그녀의 노트를 받아보니, 모자 안쪽에 개 한마리가 들어가 있었다. 이건 코끼리가 아니라 개잖아. 나는 솔직한 감상을 그녀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언성을 높여, 그것은 개가 아니라 코끼리라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개같이 생겼는데 그림을 그린 사람은 개가 아니라 코끼리라고 주장하며, 멀쩡한 개를 코끼리 취급했다. 보아뱀의 뱃속에 들어간 코끼리는 개 같은 몰골이 되는 거야라고 설명이라도 해준다면 그러려니 할 텐데, 그녀는 결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개는 코끼리였고, 모자는 보아뱀이었다. 그녀의 이유 없는 불친절에 불편해진 나는, 그림 더럽게 못 그리네,라는 핀잔을 그녀에게 건네고 말았다.

애초에 그녀가 그림을 똑바로 그렸다면 이게 모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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