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도상

정도상 鄭道相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1987년 단편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친구는 멀리 갔어도』 『모란시장 여자』, 장편소설 『푸른 방』 『누망』 『실상사』 등이 있음. oksknk@hanmail.net

 

 

찔레꽃

 

 

남행열차는 빠르게 달렸다.

손님들과 도우미들은 탬버린을 허벅지에 치며 목소리를 높여 합창하고 몸을 거칠게 흔들어댔다. 술과 노래와 춤에 취한 손님들과 그 앞에서 교태를 섞어 몸을 흔들던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에 꽉 찬 담배연기에 목이 따가웠다.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방에서 나왔다. 벌써 세번째 손님맞이였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해서 참을 수 없었다. 모레쯤 그 남자가 올 텐데…… 복도로 나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각 방에서 흘러나온 노래들은 복도에서 서로 섞여 소음이 되었다. 아우 지겨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밖으로 나가는 문을 밀었다. 그런데 문은 오히려 내 쪽으로 밀려왔다. 얼른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 패거리의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 몸에 비 냄새가 큼큼하게 묻어 있었다.

“어, 은미씨 어디 가세요?”

이틀에 한번 꼴로 노래방에 오는 최가 반갑게 웃으며 물었다. 나는 최의 웃음에 고개를 돌렸다. 최는 남동공단 볼트공장에서 쇠를 깎는 노총각이었다. 최는 키가 작고 통통했는데 험한 일을 하는 사람치고는 손이 고왔다. 서른다섯살이었는데 노래방에만 오면 언제나 나를 불렀다. 내가 다른 방에 들어가 있으면 도우미 없이 혼자 노래를 부르며 기다린 적도 있었다. 최의 눈길을 등으로 느끼며 밖으로 나갔다. 이래도 되는 걸까? 잠시 지금의 행동을 주저했지만 발걸음은 이미 지하에서 지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슬비가 포구의 밤을 적시고 있었다. 후우, 길게 숨을 몰아쉬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빗방울이 고였고 이내 마음 가득 습기가 배어들었다. 서너번 숨을 몰아쉬는데 진한 갯비린내가 풍겨왔다. 소래포구는 낮 동안의 소란을 어둠 속에 품고 고요히 비에 젖고 있었다. 갯비린내는 내 안에 있던 함흥을 불러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들, 눈길 가는 곳마다 붙어 있던 붉은 구호들, 돼지밥 달구지를 끌던 엄마와 어두운 방구석에서 말라가던 아버지, 단짝이었던 은실이, 재춘 오빠와 함께 갔던 빈 창고와 좁은 골목들, 그리고 지독했던 배고픔이 망막 위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바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니, 바다가 끌어당긴 것이었다. 빗속으로 한걸음 내딛는데 누군가가 우산을 씌웠다. 옆을 보니 최였다. 최가 말없이 웃으며 쓰고 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는 적어도 나에 대해서만큼은 불행한 남자였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고양이처럼 걸었다. 함흥을 떠난 이래, 한번도 마음놓고 땅에 발을 붙여보지 못했다. 중국을 떠돌 때는 비법(非法)월경자였기에 발을 내려놓지 못했고, 한국에 와서는 물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떠돌았다. 북조선에 있을 때는 충심이었고, 중국에서는 메이나(美娜)였다가 별명으로 소소를 얻었으며, 한국에 와서는 은미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민등록증에도 김충심이 아니라 이은미로 올라가 있다. 한국의 통일부나 국정원에선 어차피 진짜 이름을 조회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은실이의 은과 미향이의 미를 따서 은미라고 이름을 내세웠다. 혹시라도 있을 피해로부터 북의 가족을 보호하고 싶었다. 바다는 조용히 비를 맞고 있었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에 쪼그리고 앉아 바다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찔레꽃 붉게 피이인 북쪽나라 내 고오오햐앙, 언덕 위의 초가삼가아안 그리이입습니이다아, 자주 고름 입에 물고오……

콧잔등이 시큰해지더니 눈앞이 흐릿해졌다. 눈물을 참아내며 느릿하고 나직하게 노래를 마쳤다. 함흥음악학교에서 배운 노래였는데, 지금은 노래방 도우미의 십팔번이 되고 말았다. 뼈가 저리도록 슬플 때는 슬픈 노래를 불러야 슬픔이 삭았다. 뼈가 저리지 않을 정도의 슬픔은 억지로 웃거나 동무들과 어울려 놀거나 함흥냉면을 서너그릇씩 먹으면 풀어지곤 했다. 찔레 화분에 물을 주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찔레에 물을 줘야지. 지난 오월 하얀 꽃이 하도 예뻐서 사왔는데, 오래지 않아 꽃은 지고 잎과 가시만 무성해졌다.

“잘 놀고 있네. 졸라 열받아! 툭하면 찾으러 다녀야 되냐, 씨발.”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봐서 노래방에서 일하는 총각이었다. 인간이 저렇게 싸가지가 없어도 되나 싶은 녀석이었다. 나는 말없이 일어서서 녀석을 슬쩍 피해 노래방을 향해 걸었다.

“암튼 탈북자 년들은 대가리가 졸라 이상해. 손님이 있어도 멋대로 빠져나오고 지랄들이야, 지랄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마음 같아선 돌아서서 따귀를 한대 올려붙이고 싶지만, 녀석의 말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불고깃집에 취직했던 무산의 성희는 일이 힘들다며 사흘 만에 말없이 나와버렸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취직했던 회령의 정림이는 하루 종일 서 있는 게 싫다며 일주일 출근하고는 드러누워버렸다.

남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희와 함께 무산에서 나온 홍단이는 툭 하면 동거를 했고, 석달을 넘기지 못했다. 벌써 네번째 남자를 내보내고 다섯번째 동거를 시작하려고 남동공단 입구에 있는 카쎈터 총각을 밤마다 불러들이고 있었다. 대전에 있는 영희는 호프집에서 만난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고 전화에다 수다를 떨었다. 그것도 자랑이라고 하느냐며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미 중국에서 몸을 버릴 만큼 버린 터라 모두들 그까짓 것 하며 살았다. 나만 해도 노래방 도우미로 있으면서 벌써 서너군데나 노래방을 옮겨다녔다. 중국으로 다시 나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직은 무서웠다.

노래방에 돌아갔더니 2차를 미리 계산한 맹꽁이처럼 배가 나온 중년의 대머리 손님이 쑥스럽게 웃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은 벌써 가버린 모양이었다. 노래방 사장이 나 때문에 흥이 깨져 다른 손님들은 먼저 가버렸다며 버럭 화를 냈다. 미안한 노릇이긴 했다. 게다가 다른 방에서도 찾고 있다며 눈을 흘겼다.

“빨리 와, 바빠.”

비가 내리는 날에는 손님들이 유난히 많았다. 대머리 손님이 먼저 노래방에서 나갔다. 대기실로 가서 손가방을 들고 나오다 최와 딱 마주쳤다. 얼른 손가방을 뒤로 숨겼다. 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최한테 미안했다. 최는 아직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콘돔이 너무 싫었다. 너무 뻑뻑해서 언제나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낯선 남자의 성기에 콘돔을 끼우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인천공항에 내릴 때만 하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약간의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부풀었다. 이 땅에 도착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지나온 모든 고통이여 안녕,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탈북자 교육시설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깨달은 것은 탈북자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민족이었지만 외국인 노동자보다도 차별이 더 심했다. 조금이라도 번듯해 보이는 회사에 가서 면접을 보면, 탈북자라는 사실에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식당에서도 탈북자라면 고개를 외로 꼬았다. 공장에 가서 재봉틀을 돌리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었지만 먼저 지나간 탈북자들의 행세가 나쁘다는 소문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어, 털이 없네. 빽이네.”

손으로 아래를 만지면서 손님이 기어이 아픈 곳을 푹 찔렀다. 키도 가슴도 작았지만 털이 없는 아래 때문에 옷을 벗을 때마다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반드시 불을 끄고 2차 손님을 받았다. 어떤 손님들은 재수가 없다며 담배를 피워 물었고, 몇몇은 더 흥분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 재수가 없으면 그냥 가야지 담배를 피운 뒤에는 돈이 아깝다며 기어이 밀고 들어오는 놈이 제일 싫었다. 대머리 아저씨는 다리를 벌리더니 그곳에 입술을 대려고 했다. 화들짝 놀라 얼른 밀어내고는 다리를 오므렸다. 젖가슴이나 입술은 물론이고 아래에 키스하는 것은 절대엄금이었다. 그게 나의 몸파는 원칙이었다.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면서 그 원칙을 깬 적은 없었다. 그것 때문에 어떤 손님은 노골적으로 욕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의 손님들은 조급했으며 나는 뻑뻑한 콘돔의 느낌을 이겨내려고 이를 악물었다. 행위가 끝나면 미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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