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창비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 마흔. 사람으로 치면 불혹으로, 일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나이이자 또다시 한 고개에 올라선 나이다.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을 축하드린다. 40주년을 맞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기념호를 받고 적잖이 놀랐다. 표지와 목차를 보고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산뜻하게 다가오는 컬러 본문은 썩 마음에 들었지만 단순한 글자체의 제호를 비롯해 표지는 다소 가볍고 지루하다는 느낌이다. 『창비』의 변화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좀 간사스럽다.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곧 익숙해질 것이다, 예전의 『창비』가 천천히 가슴속에서 익어버렸듯.

디자인을 바꾸고 꼭지 배치를 다르게 해 형식에 변화를 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과 정신일 것이다. 일독해보니 혁신호, 40주년 기념호라기에는 내용상으로 ‘논쟁적 글쓰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따라갈 만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하루아침에 이뤄지리라 기대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 싶다. 『창비』의 역사처럼 신념을 가지고 강하게 변화시켜가길 바란다.

해외체류중인 나에게는 특별부록 낭송시집CD는 말 그대로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컴퓨터상에서 플래시 화면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디오파일이 들어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MP3플레이어에 담아, 황사로 희뿌연 뻬이징거리를 걸으며 몇번을 들었다. 좋았다. 예전에 잡티 없는 목소리로 성우들이 녹음한 시낭송 음반을 들은 적이 있다. 한때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모든 시에 똑같은 수위의 감정을 담아 낭송하는 그것들은 여러 번 듣게 되진 않았다. 그에 비해, 시인의 육성으로 낭송하는 시들은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어눌한 목소리가 좋기도 했고, 분명치 않은 발음이 즐겁기도 했고, 쑥스러워하는 감정처리가 재미있기도 했다. 듣다보니 더욱 듣기에 좋아져서, 결국 어느 성우도 시인 자신만큼 시에 담긴 감정을 잘 들려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십몇년도 더 된 그때,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불려와 밤새 안주가 되어주었던 신경림 김남주 이시영 정희성의 시들에서부터 신인의 시까지, 참으로 여러 색깔의 시들이 다른 빛깔로 낭송되어 한참 동안 나의 귀를 환하게 해주었다. 시간을 건너뛰어 배달되어온 시들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왜곡되지 않은 채로 되살려주었다.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뻬이징에서 신기웅 galmetree@gmail.com

 

 

‘쁘띠내셔널리즘’ 세대의 대화를 위하여

● 계간 『창비』 인터넷 일본어판(www.changbi.com/jp)에서 백영서 주간의 권두언 「운동성 회복으로 혁신하는 창비」를 일독했다.“운동성의 회복을 강조하고자 한다”는 말이 특히 인상깊었다. 굳이 ‘회복’이라는 표현을 쓴 데서 『창비』가 이번 40주년을 단순한 ‘기념비’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신선한 결의를 느꼈다.

‘자기쇄신’이라 정의한 결의의 구체적인 예로서, 인터넷 일본어판 발간을 들고 있다.“비판적 담론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 특히 한국이 발신한 담론이 교류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 동아시아에서 이 사업은 뜻깊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말은 한국과 관련된 필자의 과거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정확히 10년 전, 필자는 한일학생회의의 일본측 대표로 토론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한 한국학생이 “원폭투하로 한국은 해방되었다”며 히로시마(廣島)·나가사끼(長崎) 원폭투하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고, 이에 대해서 필자는“그렇다면 그때까지 한민족이 벌인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은 무의미하다는 말인가, 두 차례의 원폭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얻기라도 했단 말인가”라며 항의했다. 우연하게도 현재 나가사끼에서 근무하는 탓에 그것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한국의 일제강점기 저항운동은 일제와 일본인이라는 ‘권력화’된 존재에 대한 민중투쟁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당시의 나는, 핵무기라는 또다른 ‘권력’에 의해 해방을 획득했다는 식의 역사관을 듣고 다소 낙담했다. 한국인들은 과연 민족의 저항운동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 대화의 경험은 필자가 한국에서의 국가(권력)와 사회의 관계를 교육에 의한 ‘사회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것은 대화를 통해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힐 수 있었던 전형적인 경험이다.

전후 60년이 흐른 지금 일본은 크게 변화했다. 월드컵 이후 일본의 젊은 세대는 ‘쁘띠내셔널리즘’의 성향을 띠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들은 일본대표를 응원할 때 일장기를 흔들며 키미가요(君が代)를 부르는 세대이며, 필자 또한 그에 대해 별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중 하나이다. 하지만 쁘띠내셔널리즘은 권력이 구상하고 있는 낡은 국민국가의 부활과 ‘기묘한 하모니’를 연출할 위험성도 있다. 가령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통해‘애국심’조항을 명기하는 것과 쁘띠내셔널리즘 세대의 ‘자연스러운 애국심’이 겹쳐서 ‘애국심’이라면 문제될 것 없다는 식의 무비판적 수용이 이뤄질 여지가 있다. 『창비』 일본어판은 이런 세대가 출현하는 일본과 아시아 간의 대화의 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아시아의 관점에서 일본인이 스스로를 상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장이 될 것이다. 『창비』 40년의 좋은 전통과 함께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상을 끌어안는 논쟁적 대화를 통해 우리 일본인도 ‘일본’적인 것만을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아온 태도에서 크게 진일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데 히로또(井手弘人) 나가사끼대학 교수

 

 

「한·중·일 잡지편집진의 축하와 제언」을 읽고

● 『창비』 창간 40주년을 축하한다. 새로이 단장한 계간지의 모습이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 지난호는 읽을 만한 글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창간 40주년에 부치는 동아시아 3국 잡지편집진의 축하와 제언이 흥미로웠다. 영토나 역사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3국간의 갈등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지식잡지들끼리 상호간의 민주적 발전을 격려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에 대해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미더워 보였다. 그런데 이런 국제적 연대의 모습에 비한다면 『창비』는 국내적으로는 기대와 존경 못지않게 여러가지 아쉬움의 대상인 측면도 있는 듯하다. 물론 애정이 없다면 비판도 없을 것이고 외면당하는 데 그쳤을 테지만 말이다. 모쪼록 『창비』가 이런 점들을 잘 헤아리면서 국내 잡지계의 맏형으로서 동아시아 연대의 새 주춧돌을 놓는 데 큰 힘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윤무연 knight_r@hanmail.net

 

 

양극화 문제를 다루어주길 기대하며

● 최근의 논의를 보면 양극화 해소의 주체로 정부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양극화는 최소한 노·사·정을 정점으로 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전에도 양극화문제에 대한 대담이나 논쟁이 표면적인 현상 위주로 있어왔으나 우선은 심층적으로 근본원인을 분석하여 각 분야의 다양한 토론자가 참여하는 대담의 장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희성 guantumeco@hanmail.net

 

 

창비를 읽는 즐거움

● 『창작과비평』 40주년 기념호는 디자인부터 전호와 다르게 감각적으로 바뀌었고, 백낙청 교수가 한국문학의 보람으로 박민규를 평한 자체로 화제가 되었다. 시와 소설에서도 반가운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띈다. 황동규와 김용택의 시가 그렇고, 박완서와 김인숙—얼마 전 그녀의 『그 여자의 자서전』을 재밌게 읽은 후라 더욱—의 소설이 그렇다. 그리고 미국작가로서는 드물게 신작이 나올 때마다 챙겨 읽게 되는 폴 오스터에 대한 평론도 반가웠다.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 새만금사업에 대한 자세한 논문은 『창비』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시간을 내서 도서관 간행물실에 갈 때마다 계간지를 모조리 챙겨보는데, 그중 『창비』를 정기구독하게 된 이유가 있다. 꼭 유구한 역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창작과비평’이라는 출판사명이 언제나 나를 달뜨게 했고, ‘창비’로 개명되면서 신선한 경쾌함까지 더해져 젊은 문학도인 나에게 편애를 받게 된 것이다. 창비의 소설과 소설집 들은 세련된 표지와 가벼운 제본(굉장히 중요하다,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에게는!)으로 소장하고 싶게끔 만든다. 앞으로 취업공부 위주로 바뀐 대학의 독서실태나 미학책에 대한 촌평 등도 실리길 바란다.

조안나 ddin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