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강 韓 江

1970년 광주 출생.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등이 있음. yourpalm@hitel.net

 

 

 

채식주의자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자신을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아랫배, 노력해도 근육이 붙지 않는 가느다란 다리와 팔뚝, 남모를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작은 성기까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나보다 두세살 어린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자라서는 넉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며, 내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에서 내세울 것 없는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내 기대에 걸맞게 그녀는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무리없이 해냈다. 아침마다 여섯시에 일어나 밥과 국, 생선 한 토막을 준비해 차려주었고, 처녀시절부터 해온 아르바이트로 적으나마 가계에 보탬도 주었다. 1년간 다닌 적이 있다는 컴퓨터 그래픽 학원의 보조강사로 일했고, 출판만화의 말풍선에 대사를 쳐넣는 하청일을 받아 집에서 작업했다.

아내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일은 드물었고, 내 귀가시간이 아무리 늦어도 관여하지 않았다. 어쩌다 함께 있는 휴일에 어딘가 외출하기를 청하지도 않았다. 내가 오후 내내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뒹구는 동안, 아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마도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모양으로―아내의 취미라 할 만한 것은 기껏 책 읽는 것 정도였는데, 그 책들이란 대부분 표지를 열어보기도 싫을 만큼 따분해 보이는 것들이었다―끼니때에만 문을 열고 나와 말없이 음식을 만들었다. 사실, 그런 아내와 산다는 게 그다지 재미있는 일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번씩 직장동료나 친구들의 휴대폰을 울려대는 아내들, 주기적으로 바가지를 긁어 요란한 부부싸움을 벌이곤 한다는 아내들이 피곤하게 느껴졌던 터였으므로 나는 감사히 여겼다.

오직 한가지, 아내에게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짧고 민숭민숭했던 연애시절, 우연히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가 스웨터 아래로 브래지어 끈이 만져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흥분했었다. 혹 그녀가 나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잠시 새로운 눈으로 그녀의 태도를 관찰했다. 관찰의 결과는, 그녀가 신호 따위를 전혀 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신호가 아니라면, 게으름이나 무신경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볼품없는 그녀의 가슴에 노브라란 사실은 어울리지도 않았다. 차라리 두툼한 패드를 넣은 브래지어를 하고 다녔다면 친구들에게 보일 때 내 체면이 섰을 것이다.

결혼한 뒤 아내는 집에서 아예 브래지어를 벗고 지냈다. 여름철에 잠깐 외출할 때면 동그랗게 돌출된 젖꼭지의 윤곽이 드러날까봐 할 수 없이 브래지어를 했지만, 1분 안에 후크를 풀어버렸다. 옅은 색의 얇은 상의나 약간 끼는 옷을 입었을 경우에는 풀린 후크가 역력히 드러나는데도 그녀는 괘념하지 않았다. 내가 나무라자, 그녀는 찌는 듯한 더위에 조끼를 겹쳐입는 것으로 브래지어를 대신했다. 답답해서, 브래지어가 가슴을 조여서 견딜 수 없다고 아내는 나에게 변명했다. 나야 브래지어를 해본 적이 없으니 그것의 착용감이 얼마나 숨막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이 그녀만큼 브래지어를 싫어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으므로, 그녀의 과민함은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외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올해로 결혼 5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지난해 가을에 이 집을 분양받기까지 임신을 미뤄왔으니, 슬슬 아빠 소리를 들을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지난 2월 어느 새벽 아내가 잠옷바람으로 부엌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나는 우리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

“뭐하고 서 있는 거야?”

나는 욕실의 불을 켜려다 말고 물었다. 새벽 네시쯤 되었나. 회식에서 마신 소주 병 반 덕분에 요의와 갈증을 함께 느끼고 깨어난 참이었다.

“응? 뭐하고 있느냐구?”

나는 오싹한 추위를 느끼며 아내가 있는 쪽을 보았다. 잠과 취기가 가셨다. 아내는 꼼짝 않고 서서 냉장고를 마주보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옆얼굴의 표정을 식별할 수 없었으나, 무엇인가가 섬뜩했다. 그녀의 숱 많은, 염색하지 않은 검은 머리는 부스스하게 부풀어 있었다. 발목까지 오는 흰 잠옷치마는 언제나처럼 끝부분이 약간 위로 말려 있었다.

안방과 달리 부엌은 꽤 쌀쌀했다. 평소라면, 추위를 타는 아내는 서둘러 카디건을 걸쳐입고 털슬리퍼를 찾아 신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맨발로, 봄가을까지 입는 얇은 잠옷차림으로, 아무 말도 듣지 못한 듯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냉장고가 있는 자리에 내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이―혹은 귀신이라도―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말로만 듣던 몽유병인가.

나는 석상처럼 굳어 있는 아내의 옆모습을 향해 다가갔다.

“왜 그래? 뭐야 지금……”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까지 모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만 무시했을 뿐이다. 가끔 그녀가 심야드라마에 열중해 있을 때, 내가 귀가하는 기척을 듣고 있으면서 무시했던 것과 같이. 그러나 그 새벽 네시의 캄캄한 부엌, 400리터 냉장고의 희끄무레한 문 앞에서 몰입할 만한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여보!”

나는 어둠속에 드러난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처음 보는, 냉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꿈을 꿨어.”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이 몇시야, 대체.”

그녀는 나에게서 몸을 돌려, 문이 열려 있는 안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문턱을 넘자 팔을 뒤로 뻗어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는 혼자 어두운 부엌에 남아, 그녀의 흰 뒷모습을 삼킨 방문을 바라보았다.

나는 욕실의 불을 켜고 들어갔다. 며칠째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가 계속되던 즈음이었다. 몇시간 전에 내가 샤워를 했으므로, 그때 물이 튄 슬리퍼가 아직 차갑게 젖어 있었다. 욕조 위로 시커멓게 뚫린 환풍구에서, 바닥과 벽의 흰 타일들에서 냉혹한 계절의 적막감이 느껴졌다.

안방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가 웅크리고 누워 있는 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나 혼자 있는 방 같았다. 물론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매우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 같지는 않았다. 손을 뻗으면 그녀의 따스한 살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

자리에 누운 채 나는 잠시 현실감을 잃고, 흰색 커튼을 투과하여 방안 가득 쏟아져들어온 겨울아침의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반쯤 머리를 들어 벽시계를 본 순간 튀어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부엌의 냉장고 앞에 아내가 있었다.

“미쳤어? 왜 안 깨웠어? 지금이 몇신데……”

발에 물컹한 것이 밟혀 나는 말을 멈췄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내는 어젯밤과 똑같은 잠옷차림으로,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를 늘어뜨린 채 쪼그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희고 검은 비닐봉지들과 플라스틱 밀폐용기들이 발디딜 데 없이 부엌바닥에 널려 있었다. 샤브샤브용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커다란 우족 두 짝, 위생팩에 담긴 오징어들, 시골의 장모가 얼마 전에 보낸 잘 손질된 장어, 노란 노끈에 엮인 굴비들, 포장을 뜯지 않은 냉동만두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꾸러미들.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내는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그것들을 하나씩 주워담는 중이었다.

“뭐하는 거야, 지금!”

나는 마침내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질렀다. 어젯밤과 똑같이 나의 존재를 무시하며 그녀는 계속해서 고기 꾸러미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토막난 닭, 적게 잡아도 이십만원어치는 될 바다장어를.

“당신 제정신이야? 이걸 왜 다 버리는 거야?”

나는 비닐봉지를 헤치고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뜻밖에 아내의 손목 힘은 완강해, 내 얼굴이 더워지도록 힘을 주고서야 비닐봉지를 놓게 할 수 있었다. 발개진 오른 손목을 왼손으로 주무르며, 아내는 평상시와 똑같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꿈을 꿨어.”

다시 그 얘기였다.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아내는 나를 마주 보았다.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제기랄!”

나는 간밤 거실의 소파에 내던져둔 외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뒤진 안주머니에서 자지러지는 휴대폰이 손아귀에 잡혔다.

“죄송합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서둘러 도착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곧 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아닙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는 휴대폰 폴더를 닫고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급하게 면도하느라 두 군데 상처가 났다.

“와이셔츠 다려놓은 거 없어?”

대답이 없었다.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욕실 앞의 빨래통을 뒤져 어제 던져놓은 셔츠를 찾았다. 다행히 구김이 많지 않았다. 넥타이를 머플러처럼 걸치고, 양말을 신고, 수첩과 지갑을 챙기는 동안에도 아내는 부엌에서 나와보지 않았다. 결혼 5년 만에, 나는 처음으로 아내의 뒷바라지와 배웅 없이 출근해야 하는 것이었다.

“미쳤군. 완전히 맛이 갔어.”

나는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해 볼이 비좁은 구두에 두 발을 구겨넣었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머물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3층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막 떠나려는 지하철에 올랐을 때에야 나는 어두운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머리를 매만지고, 넥타이를 매고, 셔츠의 구겨진 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내의 소름끼치게 담담한 얼굴, 굳은 목소리가 떠오른 것은 그 다음이었다.

꿈을 꿨어,라고 아내는 두 번 말했다. 달리는 차창 너머, 터널의 어둠 위로 그녀의 얼굴이 스쳐갔다. 처음 보는 사람의 것처럼 그 얼굴은 낯설었다. 그러나 거래처 사람에게 둘러댈 변명과 오늘 소개할 시안을 30분 안에 정리해내야 했으므로, 더이상 아내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어떻게든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어, 부서 바뀌고 몇달 동안 하루도 12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잖아,라고 잠깐 속으로 뇌까렸을 뿐이었다.

 

*

어두운 숲이었어. 아무도 없었어. 뾰족한 잎이 돋은 나무들을 헤치느라고 얼굴에, 팔에 상처가 났어. 분명 일행과 함께였던 것 같은데, 혼자 길을 잃었나봐. 무서웠어. 추웠어. 얼어붙은 계곡을 하나 건너서, 헛간 같은 밝은 건물을 발견했어. 거적때기를 걷고 들어간 순간 봤어. 수백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내리고 있었어. 끝없이 고깃덩어리를 헤치고 나아갔지만 반대쪽 출구는 나타나지 않았어. 입고 있던 흰 옷이 온통 피에 젖었어.

어떻게 거길 빠져나왔는지 몰라. 계곡을 거슬러 달리고 또 달렸어. 갑자기 숲이 환해지고, 봄날의 나무들이 초록빛으로 우거졌어. 어린아이들이 우글거리고 맛있는 냄새가 났어. 수많은 가족들이 소풍중이었어. 그 광경은, 말할 수 없이 찬란했어. 시냇물이 소리내서 흐르고, 그 곁으로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 김밥을 먹는 사람들. 한편에선 고기를 굽고…… 노랫소리, 즐거운 웃음소리가 쟁쟁했어.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

아내가 차린 저녁식탁은 상춧잎과 된장, 쇠고기도 조갯살도 넣지 않은 말간 미역국, 김치가 전부였다.

“뭐야. 그래서, 그 꿈나부랭이 때문에 고기를 다 버렸다는 거야? 도대체 얼마어치를?”

나는 식탁의자에서 일어나 냉동실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미숫가루와 고춧가루, 얼린 풋고추, 다진 마늘 한 봉지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계란프라이라도 해줘. 나 오늘 정말 피곤해.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어.”

“계란도 버렸어.”

“뭐?”

“우유도 끊었어.”

“기가 막히는군. 나까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거야?”

“냉장고에 그것들을 놔둘 수 없어. 참을 수가 없어.”

도대체 저렇게 자기중심적일 수가. 나는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차분해 보였다. 뜻밖이었다. 그녀가 저토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니. 저렇게 비이성적인 여자였다니.

“그래서, 앞으로 이 집에선 고기를 못 먹는다는 거야?”

“어차피 당신은 주로 아침만 먹잖아. 점심, 저녁에 고기를 자주 먹을 텐데…… 아침 한끼 고기를 안 먹는다고 죽진 않아.”

아내는 마치 자신의 선택이 이성적이고 타당한 것이라는 듯 차근차근 답했다.

“좋다, 나는 그렇다 치고 당신은? 당신은 이제부터 고기를 안 먹겠다는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까지?”

“……언제까지나.”

말문이 막혔다. 요즘 채식열풍이 분다는 것쯤은 나도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알고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 생각으로, 알레르기니 아토피니 하는 체질을 바꾸려고, 혹은 환경을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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