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86년 『문학사상』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 『홀림』,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순정』 등이 있음. SSJJTREE@chollian.net

 

 

 

천애윤락(天涯淪落)1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내를 지하철역까지 차로 태워다주고 아이를 놀이방에 맡긴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막 아침을 먹으려고 찌개가 든 냄비를 식탁으로 옮기는데 전화가 울었다. 여덟시도 안된 시각에 전화를 한 사람이 친구라면 그건 문학이었다. 대기업들이 조기 출퇴근인지를 실시하면서 새벽 다섯시에 출근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문학의 직장은 대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법률사무소다. 문학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유일하게 새벽 다섯시에 집을 나와서 수영을 하고 일어학원에 들렀다가 일곱시에 직장에 도착, 영어 테이프를 듣는 중이라고 했다. 제가 그러면 그렇지, 주부(主夫)로 재택근무 하는 그까지 시대에 발을 맞추라는 것도 아니고 꼭두새벽이나 다름없는 이 시각에 전화를 한 것은 필시 다른 용건이 있을 것인데.

동환이 있잖아. 동환이가 결혼식을 한대. 너한테 청첩장을 보내도 되겠느냐고 나한테 물어보길래 전화한 거야.

동환이가 아직 결혼식도 안했어? 결혼식도 안하고 지지고 볶고 살다가 애낳고 잃고 간통으로 고소당하고, 감옥까지 갔다오고, 결혼 서너 번 한 사람보다 더 복잡하게 살았네.

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청첩장을 보내면 되지, 뭐 전화를 미리 해서 청첩장을 보내도 되느냐고 묻느냐,라고 하지는 않았다. 동환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그 일로 전화한 거라면 빨리 끊어. 식전부터 동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다 아프다. 나한테 전화하면 죽여버린다고 전해.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결국 동환에게서 전화가 올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스무살을 갓 넘겼을 무렵, 문학과 그는 동환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다. 문학과 그는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문학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가 올려보내는 돈으로 자취를 했고 그는 백수인 아버지가 어디서 가져오는지 모를 돈으로 등록금을 냈다. 그러다보니 다른 학생들처럼 미팅에 나가서 만난 아리따운 여학생의 손을 잡고 디스코테크에서 청춘을 불사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처지를 한하고 부모를 탓하고 손잡고 쌍쌍이 걸어가는 청춘들을 흘겨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학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둘 다 나이트클럽 가서 여자들하고 부루스 한번 땡기는 게 일생의 소원이잖냐. 동환이가 전화를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는 돈을 대주겠다고 하더라. 네 이야기를 했더니 너한테 전화해도 되느냐고 물어보던데. 전화하라고 해?

그때 그는 너야말로 진정한 친구라 외치면서 전화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테니까 제발 빨리 전화하라고 하라고 말했다. 동환은 곧 전화를 해왔고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어느 삼류 호텔에 딸린 나이트클럽의 이름을 말했다. 대학생이라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을 텐데 나오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덧붙이면서. 그는 밤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호랑이처럼 달려나가 나이트클럽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동환이 왜, 어떻게 문학과 그를 나이트클럽에서, 디스코테크도 아닌, 놀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을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환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장 부유한 집의 외아들이었다. 또한 여학생들이 은근히 선망하는 미소년이기도 했다. 동환의 어머니는 동환에게 동화책에서 잠시 소풍 나온 왕자같이 옷을 입혔다. 그 옷에 달린 주머니에 늘 백원짜리 지폐가 서너 장 들어 있었다. 동환은 방과후에 학교 앞의 가게에서 그에게 학교에서 사먹지 말라고 하는 불량식품인 번데기, 냉차, 풋과일 등속을 사주고, 하지 말라는 야바위놀이를 하도록 돈을 대주었다. 어머니가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는데, 동환은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그를 좋은 친구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할 때 동환에게 어울리는 좋은 친구는 문학이었다. 문학은 그들이 야바위를 하는 동안 야바위꾼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자원했다. 그래봐야 속임수를 알아낼 순 없었지만, 속임수를 알아낸다 한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지만, 야바위꾼이 속임수를 쓰지 않을 리도 없었지만.

그날 밤 그와 문학은 동환이 대주는 돈으로 춤을 추고 술을 실컷 마셨다. 그렇지만 소원하던 블루스를 추지는 못했다. 나이트클럽에는 여자들끼리 블루스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팀이 여럿 있었다. 그는 몇번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춤을 출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가 모두 거절당했다. 문학은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을 청소하는 웨이터에게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천원짜리를 빼앗겼다고 내내 징징거렸다. 동환은 춤을 추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술만 마시다가 그가 땀을 흘리며 자리에 돌아오면 재미있느냐고 웃어줄 뿐이었다. 스물을 넘어섰지만 동환에게는 아직 미소년 같은 인상이 남아 있었다. 동환의 아담한 몸에 딱 맞는 양복과 흰 얼굴에 잘 손질된 머리, 깨끗한 구두는 그가 입고 간 너저분한 청바지, 멋대로 자란 수염과 훌륭한 대조를 이루었다. 새벽 네시에 나이트클럽이 끝나고 난 뒤─올 기회가 많지 않으므로 끝까지 버텨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그들은 밖으로 나와 노점에서 순두부를 사먹었다. 동환이 돈을 내면서 수줍게 말했다.

다음번에는 내가 여자애들을 데리고 와도 되겠냐.

그는 뜨거운 순두부에 혀를 데고 동환에 대한 감동으로 가슴을 데었다. 그 다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거기다 블루스를 함께 추어줄 여자까지 조달해온다니. 동환은 약속을 지켰다.

그 다음에 동환은 나이트클럽에서 가장 눈에 띌 만한 여자 둘을 데려왔다. 여자들은 천사처럼 흰옷을 입고 왔는데 나이트클럽의 환상적인 조명 아래서 천사로 안 볼 도리가 없었다. 그와 문학에게 각각 파트너가 배당되었고 드디어 그들은 숙원을 풀었다. 동환은 여전히 술만 마셨다. 좋은 친구인 문학이 동환에게 왜 춤을 안 추느냐고 물었다. 동환은 춤을 출 줄 모른다고 했다. 좋은 친구가 되고야 말려는 듯 문학이 끈덕지게 춤을 배워보라고, 자신의 파트너를 잠시 빌려줄 수도 있다고 하자, 동환은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들에게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사주고 춤을 추게 해주는 것으로 행복하다, 행복이라고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여튼 그런 요지의 말을 했다. 그는 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트클럽이 끝이 나자 동환은 들릴락말락하게 ‘다음’을 약속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잖아. 동환이가 뭘 하길래 돈을 그렇게 잘 벌지? 여자들은 또 어디서 났을까. 어째 찝찝하다.

동환이 준 차비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중에 문학이 말했다. 그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지 못하는 너 같은 인간을 친구로 알아온 나 자신이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한다고 대꾸했다. 원래 동환의 집은 부자였고 지금도 부자일 것이고 어머니가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양쪽 주머니에 만원짜리 지폐 두 뭉치를 매일 넣어주고 있다, 그외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고, 다음에 동환을 만나서 그따위 질문을 해서 분위기를 깨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오늘은 일단 이거나 먹으라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끼워 문학의 입에 들이대기까지 했다.

그 다음에 문학은 오지 않았다. 시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시험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환이 데리고 온 여자 두 명과 번갈아가며 춤을 추었다. 블루스를 잘 추는 여자와는 블루스만, 디스코를 잘 추는 여자와는 마주보며 디스코를 원없이 추었다. 동환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이따금 담배를 피웠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니 다음에 또 만나자는 취지의, 나이트클럽에서 영업의 끝을 알리는 곡이 흘러나올 때 화장실에 따라온 동환이 그에게 말했다.

너하고 블루스 추던 여자 있지. 미스 민. 그 여자하고 자고 싶으면 내가 호텔방을 잡아줄게. 말만 해.

그는 나오던 오줌이 멈춰질 정도로 감동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더이상 동환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자에게서 들은바, 여자들은 이른바 콜걸이었다. 동환은 여관 투숙객에게 여자들을 조달해주는 일을, 그게 ‘콜’이라고 불리는 일인지는 알아보지 않았지만, 하고 있었다. 손님과 여자 양쪽에서 일정한 비율의 돈을 받았는데 나이트클럽에 따라온 여자들에게는 열흘 정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여자는 어차피 동환이 요구하면 공짜로 자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동환에게 해주는 셈치고 그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돈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여자는, 처음으로 여자와 잠을 자게 된 그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다. 그는 여자들의 옷이 얼마나 벗기기 어려운지 처음 알게 되었고 여자의 몸은 남자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겨우 여자의 몸에서 옷을 다 벗겨낸 뒤에 그는 여자의 몸속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배 위에 사정을 해버렸다. 여자가 피식 웃고 나서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간 사이 그는 잽싸게 옷을 입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삼류 호텔의 삼류 나이트클럽 간판이 세워진 삼류 골목을 달려나오며 그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분노, 착잡함, 쓸쓸함, 고약함, 불쾌감, 열패감…… 그것은 그가 아는 감정 어느 것에도 전면적으로 해당되지 않으면서 그 모든 것의 속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다.

며칠 뒤에 문학이 전화를 걸어왔다. 동환이 전화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날 왜 그렇게 빨리 갔는지, 화가 난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고. 그는 그날 새벽의 느낌을 되새기면서 동환에게 더이상 전화를 하지 말라고, 다시는 나이트클럽에 가지 않겠다고 전하라고 했다.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동환에게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문학이 동환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전한 것은 그로부터 사년 만이었다. 동환은 그동안 직업을 여러번 바꾸었고 험하게 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군대를 갔다와서 이젠 어른이 된 기분으로 까짓거, 동환에게 전화해도 좋다고 전하라고 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기라도 한 것처럼 동환은 곧바로 전화를 했다. 동환은 여전히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그동안 바빴다고 했다. 그는 괜찮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동환은 자신이 고향에 자그마한 술집을 개업했는데 한번 와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나 술 한번 공짜로 얻어먹으려고 서너 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하는 고향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동환은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이 어디에 있는지 세세하게 일러주었다. 그가 오겠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나가겠노라고도 했다. 그러고는 수줍게 덧붙이는 말이, 술집에 데려다놓은 여자들이 있는데 수준은 믿어도 좋다, 자신이 대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골라온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 여자들은 이미 그에 대해서 수십번도 더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며 단 한번이라도 그에게 술을 따라주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그는 할 수 없이 감동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동환이 그 술집을 차리게 되었는지 찬란한 역사를 듣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울에서 어느 중소도시로 간 동환은 한동안 다방에서 주방일을 배웠다. 다방에 무슨 주방일이 있어서 배우느냐고 할 사람도 있는데, 그게 문학이라는 인간인데, 동환의 말에 의하면 하기에 따라서 다방의 주방은 어느 일류 호텔의 주방 못지않은 요리기술이 필요한 곳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하이볼이라는 것이 있다. 하이볼은 본래 위스키에 소다수를 탄 음료를 말한다. 하지만 동환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주방장이 내린 정의는 다르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여자와 자고 싶을 때, 그 여자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을 때, 하긴 처음 만나자마자 자고 싶다고 하는 남자를 따라가는 정신없는 여자가 있을 리도 없지만, 반면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남자는 남자 중 반은 넘을 것이지만, 술이라도 먹여서 정신을 잃게 하는 방법을 쓰려고 해도 여자가 눈치를 채고 술집에 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술집에 갈 만한 시간이 없을 때, 바로 하이볼을 여자에게 마시게 하면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하이볼이다. 다만 하이볼에 위스키와 소다수 외에 무언가를 첨가하는데 그 무언가가 뭔지는 다방 주방에

  1. 중국의 시인 백낙천(白樂天, 772〜846)의 「비파행(琵琶行)」에 나오는 구절 “同是天涯淪落人”에서 인용. 다음 구절은 “相逢何必曾相識”인데 대략 번역하면, “모두 다 아득히 먼 곳을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