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천자국의 수도 개경을 그리며

한국역사연구회 『고려의 황도 개경』, 창작과비평사 2002

 

 

김기섭 金琪燮

부산대 사학과 교수 kiskim@pusan.ac.kr

 

 

근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는 기존 사고틀의 경직성과 폐쇄성에 경종을 울리며 각 부문에 걸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구조적 변화에 촛점을 맞추기보다는 미시적 움직임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려는 노력은 전통적 담론구조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전 장르에 걸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가운데 한국사 연구에서도 전통적 연구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생활사·도시사·교통사·의학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연구의 성과를 더욱 알기 쉽게 구성하여 일반 대중에게 되돌려주려는 노력으로 이어져 역사연구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사 연구는 정치사·제도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 등을 주요 테마로 삼아 제도적 변화와 구조적 변화의 거시적 흐름을 거대서사구조에 담아내는 데에 힘을 기울여왔다. 이는 한국역사가 급박하게 진행되어온만큼, 그 변화의 물결을 놓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다양한 소재와 참신한 아이디어로 ‘역사’라는 상품을 손님의 입맛에 맞게 포장하여 제공하는 ‘맞춤써비스’ 단계로 체질개선을 해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역사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거대담론의 효용성과 역할이 종언을 고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는 연구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함께 헤쳐나온 민중과 ‘함께 하는 역사’ ‘공유하는 역사’의 단계로 진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역사연구회의 『고려의 황도 개경』은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으로 이어진 드라마의 열기, 남북한 경제협력 무드에 따른 개성공단 개발, 또 이로 인한 문화재 파괴에 대한 우려, 도시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역사연구자의 인식 변화 등 다양한 요소가 착종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의 황도 개경』은 기존에 나온 대중 역사서와는 또다른 의미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단순한 흥미 위주의 이야기나 경제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한 역사서가 아닌, 역사문헌과 연구성과에 바탕을 두면서 역사연구의 대중화를 도모한 책이라는 점에서 출판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풍수설에 따라 장풍국(藏風局)의 명당으로 알려진 황도 개경의 도시구조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평양성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중국 도성제도의 개념에 따라 구획된 황도의 위상을 태묘(太廟)와 사직(社稷)제도 및 경기(京畿)제도를 통해 살피고 있다. 2부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의 장으로 기능했던 도시의 여러 면모를 재미있고도 생생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1부의 서술이 개경의 구조를 다룬 것이라면 2부는 개경의 구체적 실태를 다양하게 묘사한 것이다. 특히 「모든 길은 개경으로」(정요근)는 마치 내가 개경의 남대가(南大街)와 십자가(十字街)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생생한 서술이다. 이 글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광화문(廣化門)에서 남대가를 따라가다가 관청거리에 들러 관리들이 어떻게 근무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시전의 행랑을 기웃거리며 고려의 물품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선의문(宣義門)을 지나 벽란도(碧瀾渡)에 가보니 각국의 무역선들이 줄줄이 이어진 한폭의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움은 생생한 서술을 받쳐줄 종합적 개경 지도가 없다는 점이다.

「개경의 시장」(서성호)을 볼라치면 다양한 점포와 자유분방한 시장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다점(茶店)에서 낮잠을 자다가」에서 베갯머리에 바람 불어와 낮잠을 깨는 임춘(林春), 그리고 「쌍화점(雙花店)」에서 여인을 희롱하는 회회(回回)아비의 모습에 이르면 여유와 해학이 넘쳐나는 고려시장의 모습이 문득 한폭의 풍속화가 되어 나타난다. 개경의 여인들이 멋을 부리는 데 사용했던 ‘다리’(가발의 일종)는 고려의 여인네들이 머리치장을 위해 돈깨나 뿌렸음을 짐작케 한다. 한편으로 가난한 백성의 아내로서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 수밖에 없었던 고려 여인의 한은 또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개경의 시장은 고려인의 삶의 현장이며, 환희와 애환이 교차하던 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116-406개경도 인간이 사는 곳이라 가난이 없을 수 없으며,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를 만나면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구휼을 위해 교통의 중심지에 있는 절 등에 설치한 진제장(賑濟場)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던 것으로서 불교의 보리심을 느끼게 한다(박종진 「허울뿐인 구휼제도의 실상」). 개경에 있던 고려의 국립대학 국자감(國子監)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 학문연구와 인재양성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여기에 속한 생도들은 한 경전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다음 경전으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고 한다(도현철 「인재양성과 관료충원의 중심지」). 오늘날 대학생들도 한번쯤 살펴보고 본받아야 할 일이다.

「개경의 축제, 팔관회와 연등회」(강호선)는 개경의 페스티벌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한다. 특히 팔관회는 천자국(天子國)으로서 고려의 국가적 위상을 보여주는 의례로 주목된다. 『고려사』 권71 「악지(樂志)」의 「풍입송(風入松)」의 노랫말을 보고 있노라면 해동천자인 고려황제의 위상이 새삼 우러러보인다. 팔관회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황제는 연회를 베풀어 신하들은 물론 외국의 사신들로부터 조하(朝賀)를 받았다. 그날의 예식은 고려가 천자국이라는 의식을 만천하에 보여주면서 ‘팔관회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고려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역사연구회 개경사 연구반의 공동집필로 이루어진, 개경에 관한 종합적 대중역사서이다. 다양한 연구분야를 가진 연구자의 공동참여로 이루어진만큼 다양한 시각과 연구에서의 깊이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역사서를 지향하고 있다면 대중에 대한 눈높이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놓고 필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술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부분들이 다소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체제구성에서 도판의 배열 등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위한 책으로서 갖추어야 할 형식을 충실하게 구성하고 있으며, 내용면에서도 고려의 황도(皇都) 개경을 이해하는 데 지침이 되는 책으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