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영수

윤영수 尹英秀

1952년 서울 출생. 1990년 『현대소설』로 등단.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없이』 『착한 사람 문성현』 『소설 쓰는 밤』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내 안의 황무지』 등이 있음. yeongsuyoon@hanmail.net

 

 

 

철학잉어

 

 

공짜

 

“확실히 해라. 돈 벌기가 쉬운 게 아니다. 기술자가 세상에 너밖에 없는 줄 아냐?”

사람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확실히 해! 운전기사가 세상에 아저씨밖에 없는 줄 알아? 중학교 때 자기 집 운전기사에게 함부로 해대던 말투를 녀석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은 따돌림을 당했다. 담임선생님의 티나는 보호가 아니었으면 폭력조직뿐 아니라 주위의 평범한 친구들에게서도 봉변을 당했을 밥맛없는 녀석이었다.

건물 밖 보도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계약직 사원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라는 구호가 저렁저렁 건물을 흔들어댔다. 안에서 일하는 직원뿐 아니라 써비스쎈터를 찾은 손님들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녀석 혼자 태평했다. 살은 또 왜 그렇게 쪘는지 알 수 없었다. 중학 때에도 마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몸피보다 두배는 불은 듯했다. 조그만 눈코입이 살에 파묻혀 웃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공짜로 고쳐주는 거지? 그까짓 것 몇푼 한다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녀석이 또 지절거렸다.

“그러게. 그까짓 것 얼마 한다고 공짜 타령이냐? 재벌집 도련님 윤석형이.”

윤석형. 육중한 외제 승용차를 타고 등교하며 온갖 거드름을 피우던 녀석. 그런데 지금 녀석의 휴대폰은 녀석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먹통이 되어 액정화면이 켜지지도 않는 그의 휴대폰은 7년 전 출시되어 이미 단종된 제품이었다. 휴대폰 시장에서 7년이면 아버지 할아버지도 아니고 증조할아버지뻘이다. 써비스기록을 보니 그는 4년 전 이 휴대폰의 깨진 액정화면을 고쳤고 배터리를 교체했다. 사용자가 강력히 요구했지만 메모리를 복원하지 못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었다. 녀석의 집이 망했다는 소문은 다른 친구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공장에 원인 모를 불이 나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쓰러져 삼촌이 회사를 독식했다고 했다. 아무리 그런들 휴대폰 수리비를 아끼려고 까마득한 중학 동창을 찾았겠는가.

“정규직이라 좋겠네. 띠 두르고 목 쉬어가며 시위할 일도 없고. 잘 풀렸다고 재지 마라. 회사 오너도 아니면서. 내일이라도 잘리면 개털이다.”

비용이야 어찌 되든 메인보드를 교체하면 간단하겠는데 재고부품이 전혀 없었다. 아예 최신형 휴대폰으로 바꿔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휴대폰 임대약정으로 전환해주면 서로 간단한 일이었다. 마음이라도 읽듯 녀석이 또 한마디 했다.

“딴 건 필요 없다니까. 봐, 나 지금 쓰는 휴대폰도 있어.”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다른 휴대폰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전의 것을 고쳐서 앞으로 계속 쓸 거라니까. 환갑까지만 쓰면 골동품이다. 이런 게 이를테면 역사전통이요 관록이지.”

“골동품 되면 큰돈 벌겠네. 부자들은 참 가지가지로 돈 버는구나.”

내 이기죽거림에도 녀석은 흔들림이 없었다.

“월급 많이 받지? 나라 경제를 쥐고 흔드는 대기업의 능력사원이니 어련하시겠어.”

“많이 받는다. 헌 휴대폰 미련 없이 폐기하고 새 휴대폰 살 만큼은 충분히 받는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써비스업체를 대기업의 일부라고 알고 있다. 휴대폰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우리 써비스업체는 겉으로나 한 로고를 쓸 뿐 별개 사업체다. 대기업으로서는 하청을 떼어주었으니 제품 하자나 써비스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고, 하청업체인 우리 입장으로서는 대기업의 일부인 척해서 손해날 것 없으니 그런 척 장단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외장을 뜯고 보니 의외로 사소한 하자였다. 배터리 불량과 화면으로 이어지는 선의 납땜이 두군데 떨어져 있었다. 먼지나 습기에도 그리 노출되지 않은 깨끗한 상태였다. 간단한 수리로 화면이 켜졌다. 전화번호만 이어주면 당장이라도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뭔가 심각하게 손봐야 하는 척 상자에 담긴 부품들을 뒤적거렸다. 그랬다. 녀석의 근황이 궁금했던 게 사실이었다.

“시간 좀 걸리겠네. 저쪽 가서 커피 마셔라. 공짜야.”

나는 창가 쪽의 커피대를 가리켰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곰이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중학 동창 황주의 전화가 과장이 아니었다.

-길에서 석형이를 봤거든. 손을 잡고 흔들어대는데, 와아, 나는 무슨 곰한테 잡힌 줄 알았다. 네 연락처를 묻더라고. 모른다고 잡아뗄 수가 있어야지.

저장된 전화번호 11개. 총 11개? 갯수를 잘못 보았나 다시 한번 확인했다. 통화기록이 2007년 10월로 끝난 것을 보면 1년 반쯤 전에 고장이 났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그 이전의 기록이…… 별로 없었다. 10월 14일, 그 이전은 10월 11일, 10월 3일에 두 통화. 9월에도 비슷했다. 자동저장된 100개의 전화내역 중 가장 오래된 것이 2005년 8월이었다. 2년여 동안 주고받은 전화가 100통뿐이라는 말이었다. 희한했다. 전화를 주고받는 일에 서툰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의 휴대폰을 보는 느낌이었다.

“요새 기술자들 참 후지네. 본점 팀장이 이 모양이니 아랫것들은 오죽하겠냐.”

어느새 커피를 들고 온 석형이 또 이기죽거렸다. 10년은 되어 보이는 후줄근한 옷에 비해 입담은 생생하여 손을 벨 지경이었다.

“황주랑 만났다며? 그동안 연락하고 지냈어?”

휴대폰 내부를 들여다보며 내가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석형이 키득거렸다.

“연락은 무슨. 황주 그놈,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내 손을 놔줘야 말이지. 이놈의 시들지 않는 인기라니. 그런데 너흰 아직도 만나냐? 두놈 더 있잖아. 다람쥐하고 잽이. 다람쥐 걔는 아직도 앞이빨만 크냐?”

놀라웠다. 이십여년 전 나랑 어울리던 친구들을 녀석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엿한 약사가 된 기헌과 대학강사를 하는 안경잡이 윤수의 별명이 그러했다. 기헌과 윤수, 황주와 나는 한동네 출신이었다. 버스로 두세 정거장 떨어진 중학교에 배정된 우리는 늘 등하교를 같이 했다. 툭하면 마주치는 폭력학생들에게 혼자 당하지 않으려는 자구책이었다. 그애들이 몇번 내가 속한 반에 들락거렸으니 짝이었던 석형이 그들을 보기야 했겠지만, 자기와 가깝지도 않던 내 친구들을 지금껏 기억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휴대폰을 넘겨주며 하릴없이 한마디했다.

“다음에 또 이것 가져오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너나 들어가라.”

녀석이 웃었다. 불거진 볼 밑으로 힘겹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정말 만화 속 백곰 같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엠피쓰리를 귀에 꽂았다. 중국어 회화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띠 두를 필요도 목 쉴 일도 없는 정규직’에 ‘써비스 팀장’이라는 직함이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였다. 평직원 스무명에 팀장 열한명. 팀장이란 호칭은 창구에 앉아 고객을 직접 대하는 5년 이상 경력사원에게 치레로 붙여준 이름에 불과했다. 회사가 작으니 승진도 거의 없었다. 팀장 위에 부지점장, 하늘의 별따기로 지점장이 되면 그뿐, 마흔이면 이 직장도 끝이라고 봐야 했다. 실력 좋은 엔지니어가 쌓인 판국에 나이들고 느려터진, 게다가 퇴직금이나 쌓여가는 고참들은 회사로서야 얼른 정리할수록 이익이었다. 월급쟁이 생활을 계속하려면 중국이나 동남아의 공장 기술자로 자원하는 방법이 있었다. 휴대폰 생산업체인 대기업 소유의 공장이지만 한국에서 자원하는 사람이 적어 그나마 우리에게까지 순번이 오는 셈이었다. 그들 말에 의하면 적어도 10년, 실적에 따라 60세까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낯선 이국땅의 생활이 어떠할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쌍둥이 상원이와 상민이의 교육도 걱정이었다.

‘꼭 가야 된다면 가지 뭐. 일부러 외국유학도 보내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내 역시 중국어회화 책을 보고는 기가 죽는 모양이었다.

요행히 버스의 좌석을 차지했는데 앉고 보니 바로 앞에 앉은 이의 등덜미에 눈이 꽂혔다. 미색의 평범한 티셔츠에 글자가 씌어 있었다. ‘오늘은 곰 내일은 인간’. 곰 같은 몸피의 석형이 떠올랐다. 오늘은 뚱뚱하지만 내일부터는 살을 빼겠다고?

석형의 소식을 들은 것은 4, 5년 전 약사인 기헌을 통해서였다. 기헌의 장모가 꽤 큰 미장원을 경영하는데 그곳에 드나들던 석형의 이모로부터 흘러나온 얘기였다.

중3 때 미국유학을 떠났던 석형은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공부는커녕 흑인들과 어울려 마약까지 복용하게 되자 아버지가 석형을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빼어든 카드는 군입대였다. 군대에 보내 ‘사람을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석형은 과체중으로 복무를 면제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번에는 중국으로 석형을 쫓아냈다. 미국보다는 마약 접촉기회가 적은데다 마침 중국에 지사가 있어 어느정도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한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은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였다. 우울증으로 병원신세를 지던 그의 어머니는 잠깐 집으로 퇴원한 동안 마당의 나무에 목을 맸다. 결혼 초부터 불거진 남편의 바람기에 상처를 입은 그의 어머니는 신경안정제를 달고 살았다. 친지들이 집이나 병원에 찾아가도 말 한마디 없고 자신이 낳은 외아들 석형에 대해서도 애착이 없었다고 했다.

석형 어머니가 죽고 한달 만에 회사의 모기업이던 화학공장에 불이 났다. 화재소식을 접한 그의 아버지가 혈압으로 쓰러져 그날부터 눈뜬 시체가 되어버렸다. 주위에서는 조강지처를 홀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고 수군거렸다. 회사의 명의는 석형의 삼촌에게 넘어갔고, 회장 비서 출신으로 일찌감치 안주인 노릇을 해온 석형의 새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남매 앞으로 재산을 모두 돌려놓았다고 했다.

‘오늘은 곰 내일은 인간’ 티셔츠가 갑자기 솟구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뒷문으로 향한 티셔츠의 주인은 곰과는 전혀 관계없는, 체구가 자그마한 젊은 학생이었다. 셔츠 앞자락에는 곰이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모습이 무척 순하고 한가로운 곰이었다.

집에 돌아온 시각은 아홉시,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잠들어 있었다. 천방지축 뛰어대는 아이들 때문에 아래층 아줌마에게 된 시집살이를 하는 아내는 저녁밥만 먹이면 아이들을 재우느라 바빴다. 옷을 벗으며 나는 아내에게 버스에서 본 ‘오늘은 곰 내일은 인간’에 대해 얘기했다.

“마늘 선전인가? 곰이 마늘을 먹어야 인간이 된다잖아. 요새 광고들이 워낙 세련되어서 말이지.”

“자기는 어쩜 그렇게 시사에 약해?”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는 거 아냐. 지금은 북극곰이 죽지만 머지않아 우리 인간도 무사하지 못하다, 요새 환경단체 구호 아냐.”

그러면…… 티셔츠 앞자락에 비스듬히 누웠던 곰은 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중이었던가. 인간들 스스로가 자초한 무한경쟁, 부익부 빈익빈의 덫 외에, 지구의 문명과 모든 생물의 목숨을 위협하는 환경재앙이 이렇게 성큼 다가와 있었던가. 출연자들이 몰려다니며 생고생을 사서 하는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을 켜놓고 나는 괜히 힘이 빠졌다. 아마도 나는 천지 분간 못하는 곰 신세가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동료를 딛고 올라설 일도, 자식 키울 걱정도 할 필요 없는 곰. 자연을 따라 살다가 평화로이 스러져가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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