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청년, 한국사회를 말하다

 

 

공현

청소년인권 활동가. 저서 『유예된 존재들』 『인권, 교문을 넘다』(공저) 『능력주의와 불평등』(공저) 등이 있음.

 

김주온 金朱溫

씨닷(C.) 연구원.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 활동가.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저서 『기본소득 말하기 다시 기본소득 말하기』(공저) 등이 있음.

 

이진혁 李振赫

출판편집자.

 

이길보라

작가, 영화감독.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연출. 저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등이 있음.

 

 

이진혁(사회) 안녕하세요. “우리는 결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언명에서 알 수 있듯이 2020년은 전세계 모두에게 특별한 파문을 남긴 한해였습니다. 방역이 중요한 과제임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사회 내의 다양한 목소리와 문제가 그에 가려 표면화되지 않는 상황은 ‘코로나 이후’를 생각했을 때도 문제적입니다. 이에 오늘 이 자리에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을 모셨는데, 청년이라는 호명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관점으로 소신껏 한국사회를 살펴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형식적으로도 오늘은 창비 대화로서는 처음 화상으로 진행되는데요, 그런 만큼 더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볼 수 있으면 합니다. 각자 독자들께 자기소개를 겸해 최근의 관심사를 말씀해주세요.

 

김주온 저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라는 단체에서 활동 중이고 기후위기에 대한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감각과 인식으로 살고 활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기후위기 시대의 사회안전망이자 삶의 전환을 촉진하는 매개체로서 기본소득이 지니는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을 지역공동체에서부터 실천에 옮기는”(이유진 『전환도시』, 한울아카데미 2013) 전환마을 운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어요. 자주 이사 다니는 우리의 지역공동체는 어디일까? 비슷한 지향을 품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흩어져 사는 우리는 이웃이 될 수 없을까? 그렇다면 온라인으로 마을을 꾸려보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온라인에서 ‘온전한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전환마을을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또 저는 씨닷(C.)의 연구원으로서 지원주택 정책 확대를 위한 당사자 구술사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원주택은 주거유지를 지원하는 서비스가 결합된 공공임대주택인데, 현재는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홈리스·정신장애인·장애인·노인이 그 대상입니다. 누구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좋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기본소득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 지지하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어요.

 

이길보라 글 쓰고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년간 네덜란드에서 경험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묶어 작년에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문학동네)라는 책을 펴냈고 최근에 독자들과 다양한 경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곧 제가 연출한 영화 「기억의 전쟁」(2018)이 재개봉할 예정이어서 그 준비도 하고 있고요. 지금은 일본 후꾸오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한·일 국경이 닫히면서 파트너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혼인신고를 하고 비자를 받아서 여기 체류 중이에요. 일본사회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확진자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고,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도 분출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 와서 재사용이 가능한 우레탄 마스크, 면 마스크 사용률이 높다는 것에 놀랐어요. 최근에는 이 때문에 일본 내 확진자가 많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확산되며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를 쓰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재사용 가능한 마스크를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는 이러한 움직임이 또 어디로 향해 갈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고요.

 

공현 2005년에 청소년인권 활동을 시작한 이후 여태껏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라는 두곳에서 주로 활동합니다. 그리고 교육공동체 ‘벗’에서 출판편집자로도 일하고 있고요. 살아오면서 대학과 병역을 거부했고, 최근에는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중입니다. 2020년은 18세 선거권을 획득한 이후 첫 선거로 총선이 있었던 해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여러가지 활동을 시도해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커요.

 

이진혁 저 같은 임금노동자에게 2020년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와 별개로 기존의 삶과도 거리두기가 가능했기 때문이에요. 업무상의 불편함은 늘었지만 자영업자나 일용직노동자들이 입은 고통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사람 못 만나고 여행 못 가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지더라고요. 반면에 사회생활 측면에서는 의례적으로 갖던 술자리가 사라졌고,(웃음) 재택근무를 통해 상상으로만 그려보던 노동이 가능해졌죠. 또 내가 여태껏 소비하던 것들이 꼭 필요한 것이었나 반문해보는 계기도 되었고요. 확대재생산이 아닌 단순재생산만으로도 문화적·산업적인 생활이 유지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조금 거창할까요. 물론 지금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을 생각하면 선결할 과제가 많겠고, 생계를 넘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코로나19는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코로나 이후에 우리의 삶이 아주 다른 모습을 할 수도 있겠고,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세분은 직접적인 대면과 교류가 중요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소통·활동·연대 측면에서 활동에 변화가 있었을까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진혁 이길보라 공현 김주온.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진혁 이길보라 공현 김주온.

 

김주온 BIYN에서 작년에 기후위기 관련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보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기후위기비상행동’이라는 연대체를 중심으로 계획된 집회들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축소되었고요. 이전의 방식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걸 대체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충분히 떠올리지 못한 상상력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현장을 중시하는 질적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도 고민이 큰데,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연구를 전부 대체할 수는 없거든요. 앞으로도 고민이 많겠습니다.

 

이길보라

이길보라 ⓒ Martijn de Vos

이길보라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에 「기억의 전쟁」이 개봉한 터라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개봉 당일에 메인 극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디스페이스’에 관객이 딱 두명 있었는데 그게 저희 프로듀서들이었어요. 공연예술 분야는 피해가 막심한데요, 영화의 경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관객 수가 10분의 1로 줄었습니다. 크고 작은 독립·예술 영화를 배급 및 상영 해온 KT&G 상상마당시네마와 영화사업팀이 최근 사실상 사라졌고요. CGV 아트하우스팀도 공식적으로 사업을 중단했어요. 물론 관객 수가 줄어들어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면도 있겠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자본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던 사업들을 가장 먼저 정리해간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모두가 힘든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이런 결정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힘드니까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듭니다.

 

공현 거리시위나 토론회를 할 때도 신경 쓸 것이 더 많으니 부담스러워지긴 했죠. 특히나 인권운동가 입장에서는 전국의 여러 단체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자리들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을 통해 약식으로만 간간이 이어지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인권 관련 전국 연대체도 2020년 중에 전국의 활동가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져야 했는데 원격으로 진행하느라 예년보다 논의가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2021년 인권활동가대회도 취소되었고요.

 

요즘 우리 사회, 무엇이 화두인가

이진혁 사회구성원 전체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다 힘들다’라는 말이 점점 폭력적으로 사용되는 상황은 경계해야겠습니다. 모두 힘드니까 가만있으라,가 아니라 모두 힘들더라도 서로 경청하면서 돌봐야 할 영역의 우선순위를 잘 따져볼 수 있어야겠고요. 한국사회에는 정책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런 자세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세분 활동의 출발점이 된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 특히 코로나19로 가시화된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각자의 화두를 중심으로 짚어주세요.

 

공현

공현

공현 청소년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학교에서의 인권 문제를 들 수 있겠습니다. 2020년에 코로나19 관련해서 등교 여부 등을 결정할 때 정부가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던 것처럼 학생들을 교육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여전합니다. 두발규제나 체벌같이 아주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많고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학교교육이 아니라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고 차별하는 교육제도가 정당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인식 자체가 굉장히 뿌리깊잖아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많은 이들이 특히 정유라 입시 비리에 대해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명백히 불법인 일은 크게 부각되지만, 사실 지금 시스템은 ‘합법적인 정유라’를 양산해내는 체제거든요. 조국 전 장관 가족 문제만 해도 표창장 위조나 스펙 부풀리기가 문제시되지만 그러면 시험점수를 기준으로 한 서열화와 차별은 괜찮은 걸까요?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한 개인의 능력은 있을 수 없고, 시험점수가 개인의 능력을 다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에서 차이가 있다고 해서 차별해도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지요. 그런 점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이길보라 제가 2017년에 유학을 떠나서 작년 3월에 돌아왔는데요, 한국사회에서 방역과 경제만이 최고 가치가 되어 있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가장 먼저 사라진 가치가 ‘다양성’이더라고요. 콘텐츠 영역에서는 자극적이고 가벼운 것들만 소비되고, 그러다보니 가령 “여러분, 코로나19로 인해 힘들지만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도 귀 기울여주세요”라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죠.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창비 2021)이라는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는데, 저는 코로나19로 닫힌 국경이 왜 사랑하는 이들 사이가 아니라 사업 관계자들에게 가장 먼저 열렸는지에 대해 질문했어요. 이런 문제제기를 이제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요, 방역이 최고 가치가 되어버린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으니 국경을 열어달라는 말 자체를 할 수가 없었어요. 독일이나 덴마크에서는 파트너 관계가 입증되면 국경을 오가는 비자를 발급해줬습니다. 그런데 한일 간 국경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들에게 제일 먼저 열렸어요. 물론 경제가치는 중요하지만 사랑이라는 가치가 그보다 못한 것은 아니잖아요. 방역이 최우선일 때 사랑, 우정, 만남은 과연 몇번째인가 하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지금 무너진 것이 경제뿐만이 아닌데 다른 가치는 또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사회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에 대해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주온

김주온

김주온 코로나19는 기후위기로 인한 인수공통 감염병의 일종이고 이것이 한번으로 끝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이 상황에서 단기적인 시야에 갇힌 대안만 쏟아져 나오는 것도 문제예요. 기후위기가 초래할 위협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더욱 다양한 형태로, 더욱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임에도 감염병에 빠른 속도로 대응한다는 위기의식이 기후위기라는 큰 틀에서는 왜 발휘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 그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목표를 의심 없이 추구하는 것이나, 탄소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수립되는 정책들을 보면 애가 탑니다. 이길보라 감독이 강조하신 사랑이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동시에 정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기상황에서 ‘제일 먼저’ 힘들어질 소수자의 삶도 ‘제일 먼저’ 챙길 수 있어야 할 텐데, 준비가 없다면 지금처럼 또다시 눈앞에 드러나는 상황만 처리하다가 희생되는 경우가 많아질 듯합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한국사회에서 ‘시설’이 동떨어진 닫힌 공간으로서 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탈가정 청소년, 노숙인, 치매노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난민 등 실로 다양한 주체들이 한국사회 안에서 ‘시설화’됩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아플 수 있고 다양한 이유로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데 이를 시설 수용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 구조적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시설사회』(장애여성공감 엮음, 와온 2020)라는 책에 그러한 시설화가 주체로 하여금 “‘나는 누구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욕망하는가?’를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전략”(42면)이라고 나옵니다. 시설은 누군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동시에, 격리된 주체 스스로 더이상 사회의 구성원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각인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인사가 되어버린 ‘주식하세요?’

이진혁

이진혁

이진혁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데 대체로 인식을 함께하시는 듯합니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다양성은 ‘먹고사니즘’에 의해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금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진 주제가 주식과 부동산이 아닐까 합니다. ‘영끌’ ‘빚투’에 이어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까지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는 양상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증시가 폭락한 데 이어 최근의 급반등까지 그 변동폭 또한 크기 때문에 현 상황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습니다.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과열양상이라는 진단이지요. 혹시, 주식하고 계시나요?

 

공현 식당이나 까페 옆자리 대화에서 부쩍 주식 이야기가 들린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 같아요. 청소년 운동을 하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중에서도 ‘주식 투자 시작했다’는 이들이 늘었는데,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러는 모습은 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게 계급적으로나 활동가로서나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주식은 사본 적이 없고 펀드형 적금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확실히 그런 데 가입하니까 경기가 잘 풀려서 내 자산에 플러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사람들을 자본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길보라 지난해 「기억의 전쟁」 개봉 당시에 모 방송사에서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문화예술계’를 취재한다고 해서 인터뷰를 했어요. 인터뷰 중에 기자가 “돈이 안 되는데 왜 영화를 만드세요?”라는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때는 “돈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예술을 하는 이유가 있겠죠? 기자님은 자본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기자 일을 하시나요?” 하고 반문했는데요. 코로나19로 경제 문제가 부각되고 자본이라는 가치가 가장 중요해지면서 다들 조금씩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기도 하고요. 특히 제가 돈 안 되는 일을 하니까, 혹은 그렇게 보이니까 “괜찮아?”라는 말도 많이 듣게 되고, “돈 되는 일을 좀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말도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걸 느끼던 중에 「주식하세요?」(한겨레 2020.11.25)라는 칼럼도 쓰게 됐는데, 어느 순간 “주식하세요?”가 인사처럼 건네는 말이 되었더라고요. 저는 주식 투자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는데 ‘주식을 하지 않는 내가 바보인가?’ 하는 위기감과 주식 투자 안 하는 사람을 그렇게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주식을 안 할 수 있고, 돈이 안 돼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수 있고, 팔리지 않는 책을 출간할 수도 있어야지요. 그러한 가치들이 쉽게 무시당하는 건 위험해요.

 

김주온 삶이 불안정한 건 대체로 마찬가지인데 주식이 그 안전망이 돼줄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안전망은 무엇인지, 금전적인 고민을 덜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관계가 뒷받침되어야 할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금융상품과 각종 파생상품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본 게 2008년 금융위기 때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모두가 주식을 사고 있다는 게, 심지어 ‘동학개미운동’이라 불리며 동학과 연결된다는 게 저는 의아했어요. 요즘 시사교양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주식 투자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주식을 사는 게 자기가 신뢰하는 회사의 주인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소개되기도 하더라고요. 실제로 주식을 산 사람들에게 정말 그 회사의 주인이 되었다고 느끼는지 묻고 싶어요. 그렇게 선의로만 포장하다보면 다른 문제도 생깁니다. 가령 가장 많은 사람들이 샀다는 삼성전자 주식 가격을 올리기 위해 사람들이 이재용 부회장 사면이나 증여세 면제를 옹호하게 되는 것처럼요. 주식 투자에서 완전히 소외된 계층도 있는데, 그런 계층 간 격차를 주목하는 시선도 너무 부족합니다.

 

이길보라 맞아요. 저는 주식 열풍에 관한 영상을 볼 때마다 엄마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두분은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시거든요. TV에서 아무리 주식 관련 정보가 나와도 두분이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두분보다 더 정보에 접근하기 힘든 이들도 있을 테고요. 이러한 격차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려가 없다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경향신문이 기획한 ‘2030 자낳세 보고서’는 이러한 주식 투자 열풍이 청년층의 사회적·경제적 계층 분화를 더욱 심화할 거라고 분석하는데(「동학개미운동이 남긴 과제…‘세대’ 아닌 ‘계층’으로 나뉜 청년들」, 2020.10.27), 사회안전망이라는 게 필요하다면 결국 이 열풍 이후에 닥쳐올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지에 집중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이 게임 자체가 그렇게 공정하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요.

 

이진혁 정치적·사회적으로 행사 가능한 권리가 지나치게 협소하기 때문에 ‘주주권’이라는 말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식시장이 완전히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기보다는 그만한 위험 정도는 감수하려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요.

 

공현 주식에 관해서라면 저는 ‘공정한가’보다 ‘정당한가’라는 질문이 우선 들어요. 아무런 공익적 기여 없이 시세차익을 얻는 게 과연 괜찮은가, 다른 이들이 가져야 할 몫을 부당하게 가지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주식 투자로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본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강조해요. 얼마나 공부했고, 유심히 봤고, 조사를 해봤고…… 그런데 그 행위에 사회나 다른 이들에게 도움 되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는 자각이 전혀 없더라고요. 그저 ‘내가 고생을 이만큼 했으니 돈을 벌어도 괜찮다’로 귀결되는 것 같고요. 좀 비약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입시공부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공부했으니까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인 거지요.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

이진혁 주식은 안 사면 그만이라 쳐도 집에 안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부동산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1인가구 수가 900만을 넘어서며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로 대표되는 열악한 환경이 특히 문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부동산 정책은 아파트 공급에 집중되는 면이 있죠. 주택 문제라는 난제를 아파트라는 공간구조에서 잠시 벗어나 생활과 커뮤니티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떨까요.

 

김주온 저는 네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생활공동체로 삽니다. 처음에는 방만 있는 집이 아니라 거실을 갖고 싶어서 모였는데 함께 살다보니 월세 부담도 낮아지고 물건을 공유하며 생활비도 절감되더라고요. 경제적 이유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치적 지향과 삶의 고민을 한 지붕 아래 사는 이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참 좋아서 어느덧 6년이 지났습니다. 이러한 삶의 형태를 어떻게 장기적으로 지속할지를 고민하게 되고 ‘사회적 가족’ 논의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BIYN 내에 생활동반자법을 논의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보스턴피플’이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어요. 작년에는 유기견을 입양하면서 비인간 동물과의 공동체라는 새롭고 설레는 과제 또한 얻게 되었습니다. 인간중심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고, 무엇과 어떻게 연결되어 살아야 하는지 고민의 영역이 넓어지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한 지역에 오래 뿌리 내려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임대주택 등 기존 제도로는 지금의 생활공동체를 포괄할 수 없는 게, 저희는 혼인관계도 혈연관계도 아니잖아요. 운 좋게 모두 임대주택에 들어간다 해도 따로따로 각자의 집에 살 수 있을 뿐이고요. 만약 다양한 방식의 가족구성과 공동생활을 포괄하는 주거정책이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가능성이 생겨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주택을 어떻게 공급할지에 머무르지 말고 ‘누구와 어떻게 함께 살지’로 이야기를 확장해보자는 거죠. 이는 기후위기와도 연결되는데, 그에 대한 대응으로 머지않아 지역 차원의 자급자족 역량이 중요해지는 시기가 오기 때문입니다. 텃밭을 가꾸거나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도 정주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죠.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나 재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지역에서의 탄탄한 관계망이 바탕이 되어야 고립되지 않고 서로를 돌봐줄 수 있고요. 저한테는 현재 살고 있는 은평구의 여성주의 의료생협 운동과 전환마을 운동, 에너지협동조합 등이 좋은 참고가 되고 있어요.

 

공현 정책적으로는 무상주거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집을 나눠주자는 게 아니라, 살 곳이 없는 사람은 없게끔 하자는 뜻이에요. 최근 대두된 기본주택에 대한 정책적 제안은 기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과 달리 소득계층에 따른 제한 없이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공공임대를 신청할 수 있게 한다는 거예요. 다만 그런 방식으로 임대주택을 충분히 나눠주려면 국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집을 갖고 관리하려는 계획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역불균형 문제와 결합되니까 한층 더 어려워지죠. 수도권에 살려는 수요는 너무 많고, 비수도권 지역으로는 인구 분산이 잘 안 되니까 그에 맞춰서 집을 분배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개개인의 의식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수도권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계, 일자리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큰 그림과 정책이 필요하지만, 부동산 문제가 ‘주거권’의 문제가 아닌 ‘재산권’의 문제로 다뤄지기 때문에 더 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주택 문제의 전부가 되면서 가격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 되었으니까요.

 

이길보라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부모님이 주거비를 부담해주셨고, 대학교에 다닐 때는 주택공사의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이라는 제도를 통해 거의 월세를 내지 않고 살았어요. 지금은 ‘예술인주택’에서 큰 월세 부담 없이 살고 있는데요, 기준에 부합하면 이곳에서 최장 20년을 살 수 있어요. 으리으리하게 넓은 집은 아니지만 경제적 부담이 없다는 데 무척 만족합니다. 넓은 테라스도 있는 이런 공간이 왜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은지 궁금해요. 심지어 이런 주거복지제도를 폄하하는 인식도 많습니다. ‘호텔거지’라는 말도 그렇고, 최근에 만화가 기안84가 웹툰에서 행복주택·임대주택을 두고 “선의로 포장만 돼 있을 뿐”이라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죠. 저는 임대주택을 이렇게 나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좀 놀랐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관성적으로 양산해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네덜란드에서는 소셜믹스(social mix, 주택단지 내에 분양과 임대 가구를 함께 두는 것)가 잘 시행되고 있는데 사회주택 비중이 전체 주택의 34.1퍼센트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주택에 산다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분위기가 거의 없어요. 그에 비해 한국의 아파트는 같은 단지에서도 임대와 분양 세대를 분리하죠. 사회주택이 왜 나쁜가요? 모두가 평생 살 공간을 국가로부터 제공받는 것이 이상한가요? 모두가 집 걱정 안 하고 살면 좋은 것 아닌가요? 인간은 평등하다는데 어느 집에서 태어나고 사느냐에 따라 내가 살아갈 삶이 달라지는 게 정말 평등할까요?

 

공현 이번에 국민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 제발 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공공이 주도하는 임대주택은 에너지·기후 문제와도 연결이 되어야 할 텐데, 앞으로 생길 공공주택이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져 에너지 전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입니다.

 

이길보라 제가 사는 예술인 임대주택도 원래는 예술인들끼리 만나서 교류하고 창작활동도 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지만 그렇게 지어지지 못했어요. 빌라 두동을 ‘마을’이라고 부르는 수준인데요.(웃음)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어야 할 1층 커뮤니티실도 좁고 햇빛이 잘 들지 않게 설계되었어요. 그런데 임대주택에 살고 있으니까 환경 개선을 요구하기 애매한 분위기가 형성되더라고요. ‘살 권리’에 어디까지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김주온 앞서 소개한 지원주택 정책도 ‘모두를 위한 주거’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합니다. 기존에는 주거취약자 가운데에서도 월세를 낼 능력이나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는지 등의 자격을 검증한 다음에 주택을 제공하는 식이었다면, 지원주택은 일단 주택 먼저 제공하자는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예요. 이는 기본소득의 철학과도 닿아 있는데, 누군가의 자격을 심사하고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를 당연한 기본 권리로서 주장하기 때문이에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이 조건 없이 보장되고, 주거가 모두에게 권리가 된다면 누구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리라고 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시설화보다 자립이 중요한 것도 그런 맥락일 테고요. 사회적 돌봄망과 유니버설 디자인을 갖춘 에너지자립주택 등도 물론 더 논의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상상력

이진혁 주거 문제가 기본소득 논의와 연결된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주택이 주요한 부의 대물림 수단이라는 점과, 그것이 이른바 ‘정상가족’과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특징을 우선 고려해야겠습니다. 그에 반해 기본소득은 각 개인에게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가족 중심 복지정책과 주거정책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소득에 관해 좀더 이야기 나눠볼까요.

 

김주온 BIYN은 기본소득이 단순히 복지정책이나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정책화·제도화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기본소득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작과비평』에 실린 대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과 기본소득」(2020년 가을호)에서도 주요한 쟁점은 ‘재정의 문제’와 ‘복지국가의 대안으로서의 실효성’이었는데,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소득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균열을 낸다는 점에 가장 큰 힘이 있습니다. 일이란 무엇이고 노동의 댓가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사회구성원에게 소득을 조건 없이 준다는 것이 동료 시민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또 거기서 어떤 신뢰가 생겨나는지를 살펴보는 게 재정의 문제만큼이나 매우 중요하죠. 커먼즈(commons)를 모두에게 고르게 배당해야 한다는 의미 또한 지니고 있는 만큼 기본소득을 논할 때는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도 포함되어야겠고요. 성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따지지 않고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을 통해 삶에서의 자기결정권, 성평등, 소수자의 삶이 더욱 존엄하게 여겨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진혁 한국에서는 작년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때문에 기본소득이 급격히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총선과 맞물리며 정책적 힘을 얻었고요. 이러한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김주온 지난 가을호 좌담 중 “어떤 개념과 정책도 그것을 고안한 사람의 뜻대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는(김현우 발언) 내용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재난지원금은 국가의 현금 형태 지원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말하자면 0이 1이 되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2차, 3차 ‘재난지원금’으로 논의가 한정되는 것은 불만이지만 그럼에도 기본소득에 대한 적극적인 생각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은 좋습니다. 특히 1차 재난지원금은 가구 기준으로 제공되어서 실제로 못 받은 사람도 많으니까, 그걸 개인이 받는다면 어떻게 달라질지 같은 작은 상상력에서 출발할 여지도 있고요.

 

공현 사실 우선순위로 따지면 기본소득보다는 앞서 말한 무상주거나 무상의료 같은 보편적 복지정책이 실현되어서 돈 쓸 일을 줄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그래도 기본소득이 담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는 유의미하다고 봐요. 특히 청소년같이 경제적으로 종속된 이들은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더 큰 가능성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여러 좌파 단체나 정당에서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그때도 항상 ‘만18세 이상’을 단서로 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청소년인권 활동가들이 논쟁해야 할 일이 많았고요. 재난지원금의 경우에는 부모들이 받으니까 청소년들은 직접 돈을 만져보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지원’에 대한 실감을 덜 느끼는 듯하고요. 부모들과 어떤 협상을 했는지 이야기가 다양한데, 소수자에게 주어지는 복지는 끊임없는 협상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걸 끊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겠습니다.

 

이길보라 해외 체류 중이던 저는 제 몫을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했는데요, 달라고 하기 굉장히 애매했지만 제 몫이니까 받았습니다. 재난지원금이든, 재난지원금 명목의 부모로부터의 용돈이든 그걸 받아본 경험 자체는 지금 청소년 세대에게 더 특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걸 경험해본 세대와 그러지 못한 세대 간의 차이도 분명히 있을 것 같고요.

 

최근의 정치적 변화에 대하여

이진혁 소외된 이들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기 위해서 어떤 담론이 필요한지 앞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많은 담론이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은 뿌리 깊은 색깔론과 진영논리 탓이 크죠. 분단체제, 그리고 계급 차이로 인한 이념 대립이 ‘덮어놓고 내 편, 네 편’을 만드는 양상이 여전하고요. 그럼에도 최근의 정치 참여 양상은 다원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도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이길보라 페미니즘 의제를 내걸고 활동하는 여성 정치인이 늘었고, 그들이 국회의원도 되고 또 유의미한 성과도 내는 걸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치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주변의 누구나, 혹은 미래의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얼마 전에 하라 카즈오(原一男) 감독이 만든 「레이와 시대의 반란」(2019)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2019년 일본에서 창당한 진보정당인 레이와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 일본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는 날 정당을 등록했으며 에도시대의 무사 조직인 신센구미新撰組에서 한 글자를 바꿔 ‘새 시대에 뽑히는 정당’이라는 뜻을 담았다)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예요. 배우 출신인 야마모또 타로오(山本太郎)가 당 대표이고 장애인, 홈리스, 싱글맘 등 기존 일본 정치권에서 볼 수 없던 인물들이 선거에 나서는데 이들의 발언이 주옥같아서 러닝타임 네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도 ‘설마 아무도 당선이 안 됐겠지’ 하는 냉소적인 마음이 있었는데 두명이나 당선되었더라고요. 정치와는 가장 먼 곳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정치하는 사람은 타고나는 게 아니구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하는구나 다시금 깨달았어요. 그건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당선된 두명의 비례대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라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동시에 ‘소비세 폐지’ ‘탈원전’ ‘동물복지’ 등 진보적 의제를 내세운 레이와신센구미에 페미니즘 의제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에 불고 있는 새로운 물결의 차이점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김주온 저는 녹색당원입니다. 올해로 발발 10년째인 후꾸시마 원전사고가 계기가 되어 경제성장주의에 저항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등장한 정치세력이 녹색당이었어요. 여성 청년으로서 즐겁게 정치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녹색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십대 후반에 저로서는 큰 용기를 내어 당의 대표 역할도 맡았는데요. 그러다보니 정치에 관한 질문을 듣고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되네요. 신념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함께 오롯이 활동에 마음 쓸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하는 한편으로, 그것이 저 자신과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는 여전히 질문하는 중입니다. 저는 정당 활동을 일종의 시민교육 실험이라 생각했고, 한국사회에서 본 적 없던 정치적 장면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아주 긴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배움을 새삼 얻었습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로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우리 안에서부터, 운동의 과정에서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또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어렵기도 하니까요. 예컨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과 제도, 문화의 변화를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내부에서부터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공현 저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해본 적은 없는데, 활동가로서 특정 조직이나 개인에게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다소 부적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이 운동과 정치를 만들어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다른 힘이 더 센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의지해선 안 되고 동등한 정치의 주체로 대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10여년 전에는 저도 정당에 가입하고 당원이 되어 제도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정치 냉소주의에 대한 반감도 있었는데, 요즘은 반대로 기성 정치와는 적당히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당에 가입하거나 제도정치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정치 냉소주의에 반대했다면 지금은 정치를 제도권 내 정당 혹은 정치인의 지지자나 팬이 되는 것 정도로 인식하는 데에 반대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정치를 냉소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것도 정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로 이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누군가를 지지하고 투표를 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지니는 정치행위인 것 같습니다.

 

이진혁 촛불을 통한 열렬한 참여로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반쪽짜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차별금지법,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북관계 등 열망에 비해 변화가 더딘 듯합니다. 어떤 점이 문제고, 또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세요?

 

김주온 지금 집권세력이 이미지만을 활용할 뿐 적극적인 변화에 나서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한국형 그린뉴딜’도 녹색 이미지만을 차용할 뿐 실상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포함한 토건사업을 추진하려 합니다. 박근혜정부 당시 그렇게 힘들게 막았던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도 현 정부에서 재추진되는 중이고요. 또,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지만 실망스러운 모습이 너무 많았죠. 이러한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사람들의 실망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사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하나가 우선해야 한다기보다는 모든 의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인식하고 함께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공현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걸로 따지면 제 활동 영역에서도 엄청 많았죠. 수능 절대평가, 아동인권법 제정, 청소년 정당 가입 허용…… 18세 선거권은 실현이 됐는데,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한 건 무엇 하나 없고 그냥 선거 때 말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하나 꼽자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중요해 보여요. 지금 차별금지법 논의에선 성소수자 이슈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안에 학력이나 노동형태 등 다양한 차별에 대한 금지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권리 보장이나 양극화 해결을 위해서도 이 한걸음이 중요하겠습니다.

 

이길보라 누군가가 자기 목소리를 대변해주기를, 사회가 올바르게 바뀌기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자고 나서고 있죠. 그런 맥락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되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올해 4월 7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탈시설장애인당’을 창당했죠. 장애인 당사자가 쟁취하고자 하는 의제를 직접 알리기 위한 ‘위성정당’으로 선관위에 등록을 하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정당들이 장애인 당사자가 원하고 요구하는 의제를 내걸지 않으니 직접 나선 건데요, 창당 소식을 듣고 앞서 언급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이 생각나면서 온몸에 전율이 돌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바로 가입했습니다. 정식 정당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애인당’ 왜 안 될까요? 환경, 동물,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 각자의 의제를 건 정당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그들이 국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현재의 시스템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청년담론과 청년이라는 실체

이진혁 ‘청년’이라는 호명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사회적으로나 세대적으로나 넓게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또 명확하게 정의하기도 어렵죠. 그럼에도 실체가 없다거나 무의미하다고 해버릴 수만은 없는 게 청년이라는 말에서 많은 정책과 담론이 파생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청년포털, 청년센터 같은 체계를 구축하는 데 예산을 쓰고 있고 정당들도 ‘청년위원’ 같은 직함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고요.

 

공현 저는 청년담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모든 형태의 정체성 담론이 그렇겠지만 특정한 나이나 세대로 정체성을 부여하는 게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성별, 장애 여부, 소득 등 누군가를 그보다 훨씬 강하게 규정하는 요소가 많으니까요. 또 말씀하신 지자체나 정당의 청년담론을 따라가다보면 그 세대 내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청년은 대체로 대학생이나 대졸자, 그리고 남성 위주로 흘러가기 십상이죠. 청소년인권 활동가 입장에서는 나이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청년이 새롭고 발랄하고 젊은 이미지로 고정되면서 다른 방식의 나이주의가 작동하는 것 같아요. 나이주의로 인해서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자원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대교체 운운하며 청년들을 뭔가 특별 대우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또다른 나이주의에 갇히게 됩니다. 단지 ‘청년’ 정치인이 늘어난다고 좋은 게 아니라 국회나 정부 내부의 나이에 따른 위계와 차별을 비판하고, 나이뿐 아니라 학력·직업·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넘어서 정치의 다양성과 민주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운동이 필요합니다. 한국사회는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고 있으니까 그런 점을 더 드러내고 비판하는 일환으로 나이의 문제가 배치되어야 할 것 같아요.

 

김주온 제가 활동하는 BIYN에는 단체명에서부터 청년(youth)이 들어갑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중요한 고민의 한축이었기에 석사논문에서 이 주제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 처음 단체 이름을 정할 때는 연구자와 학자 중심의 기본소득 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는데, 2010년대 중반이 지나며 오히려 기존의 청년 프레임과 싸울 일이 더 많아졌어요. 청년으로 호명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을 모른 척할 수는 없고, 그럼에도 세대론에 갇히지 않는 방식으로 운동해나가고 싶지만 이를 동시에 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청년 ‘당사자운동’을 펼치는 이들과의 관점 차이도 있었는데, 저희는 청년의 어려움을 드러내어 정책 대상의 근거가 되는 데 반대했거든요.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을 배분받으려면 약자성을 강조하는 길이 가장 효과적이잖아요. 그와 달리 청년이 온전한 개인이자 동등한 시민으로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게 저희의 목표인데, 그러한 미묘한 지점을 매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청년은 개념적으로 너덜너덜하고 소진되어버렸는데 이들을 약자로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구조적인 어려움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길보라 ‘청년감독’으로 호명될 때마다 당혹감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청년감독이라 하면 새로운 시선과 참신한 문제제기가 요구되니까요. 다양한 연령이 모인 자리에서 “청년들이 먼저 아이디어 좀 내봐”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도 많고요. 그러면 또 왜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성에서 나올 수 없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왜 이럴 때만 청년으로 호명되는가 하는 불만도 동시에 생기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청년보다는 여성이나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다)로 정체화합니다.

 

이진혁 경향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아 1면에 내건 기사와 그 편집디자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기사 텍스트 위에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올려놓고 “알바 일당은 4만 9천원 (…)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라는 손글씨를 적어놨죠. 그때 헤드라인이 “공생의 길 못 찾으면 공멸”이었는데, 나름 진보적이라는 신문마저 청년의 이미지를 그렇게 소비하는 게 불만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컵라면으로 연명하는 ‘불쌍한’ 청년들과 ‘공생하자’는 메시지가 너무 권위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청년이 편의적으로 해석될수록 그 안의 진짜 문제는 희석되고 사회적인 이미지만 남겠다는 우려가 생깁니다. 이제 끝인사를 겸해서 2021년의 계획을 들어볼까요.

 

공현 제가 속한 단체에서는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나이 어린 사람을 하대하는 문화가 당연시되니까 그런 것에 대한 비판을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또 진보교육감들이 나오면서 교육운동은 오히려 약화됐다고 느끼는데, 그럼에도 작년에 ‘대학 무상화·평준화 추진본부’가 출범했습니다.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 문제와 서열화의 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보겠습니다.

 

김주온 녹색당 활동을 했음에도 기후위기를 감각하게 된 것은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인간의 조건’이자 삶의 터전인 지구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자각이 활동의 존재기반과 시간감각 자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이러한 감각을 나누는 데서부터 활동을 이어가보려 합니다. 시장중심적이거나 남성중심적이지 않은 경제체제나 문명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 싶습니다. 코로나와 기후위기를 몸으로 경험한 이후에 다르게 쓰여야 할 이야기들을 구석구석 찾고, 만들고, 기록하겠습니다.

 

이길보라 「기억의 전쟁」이 재개봉하면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책 『기억의 전쟁: 기억이 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북하우스)가 곧 출간됩니다. 그 책 마무리 작업 중에 영화 제작진 한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가 베트남에서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자국에서는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축소하면서 해외로는 오염원이 될 에너지 사업을 수출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착취이자 생태학살이라고,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지금 ‘생태학살’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말이죠. 2021년의 우리가 베트남전쟁과 학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얼굴과 형태를 바꿔 새롭게 등장하는 착취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의 문제들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이죠.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드러내고 전달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자 합니다.

 

이진혁 세분의 2021년을 특별히 더 응원하겠습니다. 긴 시간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2021.1.22. ZOOM 어플리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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