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명박정부, 이대로 5년을 갈 것인가

 

촛불의 경제학

한반도경제의 미시적 기초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교수, 경제학. 최근 저서로 『한반도경제론』(공저), 『중국농업, 동아시아로의 압축』 등이 있음. ilee@hs.ac.kr

 

 

1. 역동성과 무질서

 

흔히들 한국사회의 특징을‘역동성’이라고 한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정권은 승승장구했지만, 바로 그후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으로 촉발된‘촛불집회’는 대중의 저력과 정권의 무능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점령군 같던 집권세력은 컨테이너박스로 둘러쳐진‘산성’안에서 농성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했고, 길거리 정치의 대중은‘집단지성’으로 칭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동성의 또다른 얼굴은‘무질서’이기도 하다. 동태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롭고 진취적인 경제‘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질서가 계속되거나 확대될 것이라는 불안 아래 있다. 경제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무질서는 불확실성을 증대하며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패배자로 만든다. 질서는 장기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이고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1 우리는 질서를 만들 능력이 있는가? 진보개혁진영도‘이명박과 반대로’만 하면 되는 것인가?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진보개혁세력은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전을 전혀 쟁점화하지 못했다. 그나마 촛불집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악화를 일정하게 저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 이미 승리했다”는 선언에 깊이 공감하지만, 그 승리를 심화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촛불의 일상화·지속화·제도화를 응당 말해야 하지만,2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목표로 삼고 지향하려 하는 질서의 모습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먼저 힘을 쏟아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질서의 기본요소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 문제는 촛불집회를 촉발하고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발전했지만, 촛불집회에서 남북문제·노동문제에 대한 의제가 직접 제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힘은 거버넌스 또는 조직의 형태로 응축되고 이어 남북문제·노동문제 등 제도환경을 새롭게 구축하는 문제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촛불의 힘은 여러 차원의 경로를 거쳐‘한반도경제’에 작용할 텐데, 이 글에서는 촛불을 전후로 한 자원배분과 경제조직의 변화방향을 살펴봄으로써 한반도경제의 미시경제학적 논의를 시도하고자 한다.3

 

 

2. 촛불의 배경: 스태그플레이션

 

이명박정부의 신조는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친화적 조치를 취하면 성장과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와 정책을 전환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이것만으로 반드시 투자증대 등 즉각적인 자원배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성장단계를 볼 때 투입재의 증대를 통한 성장효과는 이제 제한적이고, 기술 및 제도혁신에 의한 생산성 증대가 문제되는 시점이다. 이는 국민경제 차원이건 지역경제 차원이건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행정수도 이전이나 대운하 건설 같은 외연적 투입에 의한 개발프로젝트는 성장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클 가능성이 많다.

대선 국면에서 면밀하게 인식되지 못했지만, 작년부터 좀더 직접적으로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등장했다. 석유와 식량 등 원자재 가격이 꾸준히 상승했고,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적 차원의 유동성 과잉과 금융시장 불안이 문제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세계적 차원에서 물가상승, 소비감소, 경기침체,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무리한 성장정책보다 물가안정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필요한 금리인상, 재정긴축 등 정책수단을 동원하면 어느정도의 성장 정체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정부는 성장지상주의에 편향되어 위험관리를 소홀히함으로써,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키우고 말았다.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가득한 여건 속에서, 이명박정부는‘747’이라는 엉터리 항공기를 띄우려고 했다. 연 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세계 7대강국을 달성한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연구결과에서 아무리 낙관적인 씨나리오라도 잠재성장률이 6% 이하로 계측되었으므로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처음부터 허황된 목표라는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명박정부 선진화전략의 경제적 목표치는 현실에서 곧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분기 대비 성장률을 보면, 2007년 3분기 1.5%, 4분기 1.6%였는데, 2008년 1분기 0.8%, 2분기 0.8%로 내려앉았으며, 하반기에는 더 나빠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다른 경제지표들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2008년 6월 소비자물가는 5.5% 상승하여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간 흑자를 나타내던 경상수지도 2008년에는 적자로 전환할 것이 확실해졌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는 한반도 민중의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실질소득 감소 때문에 생계비 관련 노동파업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지만, 사회적 타협 능력이 제한되어 탄력적인 가격조정이 지연됨으로써 그와 관련된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또 물가상승의 효과는 집단별, 계층별로 비대칭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교섭능력이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기업에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통상적으로 물가상승은 채무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 소유구조하에서 자산가격이 하락하고 부동산 대출금리가 급등할 경우 상당수 중산층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북한에서도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다. 2007년에 발생한 여러차례의 수해로 자체 곡물 생산량이 줄었고, 국제 식량가격이 급상승하여 식량 수입량과 국제사회의 지원물량이 줄어들었다. 장마당(시장)에서의 식량가격이 1년 사이 3배 이상 상승하여 하류층에서는 이미‘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식량과 비료 지원을 중단했다. 남한은 2000년대 들어 매년 40~50만톤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해왔는데, 이를‘퍼주기’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문제와 관련된 대화가 급물살을 탔다. 6자회담이 급진전되고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결정하

  1. 더글러스 노스 지음, 조석곤 옮김 『경제변화과정에 관한 새로운 이해』, 해남 2007, 제8장.
  2. 이남주 「‘거리의 정치’, 비정상과 일탈이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2008.6.18; 김종엽 「촛불이 갈 길」, 『창비주간논평』 2008.7.9.
  3. 필자와 필자의 동료들은 일전에 우리가 새롭게 형성해야 할 질서로‘한반도경제론’을 제기한 바 있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그간의 일국주의적·계급주의적 전망은 현실에 부적합하므로 국민국가와 그 아래의 지역, 민족국가 그리고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지역을 함께 포함하는 복합적 공동체를 상상해보자는 것이었다(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한반도경제론』, 창비 2007, 「책머리에」 참조). 이에 대해 서동만(徐東晩)은 세밀한 검토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통렬했던 것은, 우리의 작업이‘한반도경제론’이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울 만큼 이론적 체계나 인식적 전제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서동만 「대안체제 모색과‘한반도경제’」, 『창작과비평』 2007년 가을호). 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모든 이론은 미성숙한 데서 출발하여 발전하는데, 발전의 각 단계를 넘어서려면 엄격한 공식화와 경험적 검증을 거쳐야만 하며, 중도에 탈락하게 되는 비공식 이론(informal theory)이 수없이 많다.‘한반도경제론’도 의욕적으로 출발선을 달려나간 정도인데, 우선의 과제는 미시적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