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촛불혁명, 제21대 총선 그리고 87년체제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분단체제와 87년체제』, 편서 『87년체제론』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80년대』 등이 있음.

jykim@hs.ac.kr

 

 

1

 

제21대 총선이 끝났다. 수치로 표현된 선거 결과는 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3석을 얻었고,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84석을 얻었다.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의석수를 각기 민주당과 통합당에 합산할 경우, 전자는 180석이고 후자는 103석이다. 제20대 총선과 비교해서 민주당은 57석을 더 얻었고 통합당은 19석이 감소했으니, 민주당의 큰 승리라 할 수 있다. 선거 결과가 함축하는 권력 상황도 명료하다. 민주당은 국회의장 선출과 상임위원회 위원장 배분 등에서 확연한 우위에 서게 되었고, 입법 주도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몇개의 상임위에서 야당에 의해 제동이 걸린다 해도 야당들과의 힘겨운 협상 없이 쟁점 법안을 ‘신속처리 법안’으로 지정할 수 있다(이른바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상징성을 띤다 하겠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그 ‘의미’ 면에서는, 즉 총선에 드러난 ‘민의’나 이러한 결과를 야기한 인과적 메커니즘, 그리고 총선 결과에 근거해서 펼쳐질 정치 과정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마치 사회적 상형문자와 같다. 지속적인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형성된 여론에 의해 매개된 것이라 해도, 개인적 판단과 결정의 합계로 이루어진 결과로부터 ‘인민의 의지’ 또는 ‘일반 의지’(volonté générale)를 읽어내려 하는 것은 땅바닥에 흩어진 뼛조각들에서 신의(神意)를 읽어내는 주술사의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술사의 작업이 그릇된 것은 아니고, 우리의 작업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서 자조할 일도 아니다. 의미에 대한 욕구는 인간학적 상수(常數)이기도 하거니와, 선거로부터 그저 다수의 의지(volonté de la majorite)를 읽어내면 될 뿐이라는 ‘게으른’ 인식 태도야말로 그 다수조차 개인들로 낱낱이 분해되는 결과에 직면할 뿐이다. 왜 그런지,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필자는 민주당과 정의당 모두에 대해 ‘양가감정’을 품고 있으며, 통합당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때 양가감정이나 반감은 말이 ‘감정’이지, 각 정당의 정책적 지향과 행태에 대해 여러해 동안 관찰해온 것을 총괄한 ‘입장’이다. 필자가 취한 입장이 우리 사회에서 그리 드문 것은 아닐 텐데, 그런 이들에게 기다란 투표용지에 적힌 정당 또는 후보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은 ‘강요된 선택’일 뿐이다. 그러니 열렬한 선택뿐 아니라 여러 유형의 수많은 강요된 선택이 합산된 결과가 다수의 의지라 불릴 수 있겠는가? 열렬한 선택은 또 각기 얼마나 다른 (때로는 상반된) 열망들을 담고 있겠는가?

하지만 투표는 사회적 결정의 기법이다. 그것은 주어진 선택지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온갖 제도적 프리미엄 혹은 박탈 가능성에 ‘복종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또한 결정은 단순한 합계를 따라 이뤄지지만, 그 합계가 임계점 전후로 전혀 다른 수준의 효력을 낳는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의지들의 결합‘으로서’ 작동한다. 투표 참여란 그런 결합 효과의 발생 가능성을 모두가 예상하는 동시에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다. 즉 투표 행위는 개별적 의지를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바는 주술사와 달리 세속적 비전을 가지고 가설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며, 가능하면 해석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다른 관점을 적용해보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이 글이 염두에 두고자 하는 것이 ‘촛불혁명’ 그리고 ‘87년체제’이다. 총선의 의미를 좀더 중장기적인 전망 아래 놓아보자는 것이다.

 

 

2

 

제21대 총선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선거법과 관련된다. 이번 선거만큼 선거법 자체, 그리고 개정 선거법에 따른 비례대표 선거가 관심의 초점이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직관적으로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선거법은 개정 과정도 복잡하고 갈등적이었을뿐더러 시행 결과도 개정 의도와 전혀 다르게, 거의 정반대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러므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거법은 구성적 규칙, 즉 어떤 사회적 사실의 발생 자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규칙이다. 가령 교통법규에 관련 규정이 없어도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도로를 주행하는 것은 가능하다. 민법의 규제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사실상 혼인생활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바둑 규칙 없이 바둑은 실존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선거법 없이는 선거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 축구경기의 사소한 규칙 하나가 바뀌면, 그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고 경기 참가자 모두가 그것에 적응해야 하는 것처럼, 선거법의 작은 개정도 참여자들의 전략과 행동을 전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선거법이 수용되고 작동한다면, 그 선거법에 대한 적응 행위가 누적되고, 그것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조직된다. 선거법은 시간이 갈수록 수혜 집단을 만들어내고, 그들은 몸에 잘 맞는 옷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1987년 만들어진 선거법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민주화 이행기에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그리고 그들이 주도했던 정당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지역대표제 중심의 소선거구제 선거법이 채택되었는데, 일단 그것이 작동하게 되자 정당 자체가 선거법에 적응된 형태로 진화했을 뿐 아니라 지역주의와 결합된 지역 맹주로 활동할 수 있는 모든 정당이 그 제도로부터 이탈할 유인요인을 잃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개정을 향한 압력은 87년체제를 통해서 다음 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첫째, 규범적 압력이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가 너무 많은 사표를 야기하며, 지역구 1위 득표자에게 매우 큰 제도적 프리미엄을 제공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253개 지역구 정당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8.4% 차이지만, 의석수는 민주당 64.4%, 통합당 33.2%로, 31.2% 차이다. 당연히 가능한 한 사표를 줄여서 대표성을 개선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87년 헌법의 가장 역동적인 요소로 작동해왔는데, 선거법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좀처럼 선거법을 개정하기 어려운 정당과 국회가 어쩔 수 없이 개정에 나서게 했다. 그런 결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정당의 지역구 득표율을 기준으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선거법 조항에 대해 2001년에 내린 위헌 판결이다.1 이 결정으로 정당의 비례대표에 대한 투표와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가 분리되었는데, 그것이 세번째 요소가 출현할 기반을 마련했다. 위헌 판결 때문에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치러진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단숨에 10석(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얻어 원내에 진출했는데, 그것은 비례대표제의 개선과 확장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진 정당이 국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렇게 세 측면에서 제기된 선거법 개정 압력은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특정했다. 규범적 압력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 등 다양한 방안이 고려될 수 있었지만, 둘째와 셋째 요인으로 인해 비례대표제의 개선과 확대로 방향이 잡힌 것이다. 경과가 경로의존적이라 해도 그것이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국민국가는 기본적으로 지역 연합에 토대를 둔 기구이므로 지역대표제의 합리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지역 간 인구이동이 빈번해지고 시장과 산업의 통합도가 높아지며 직업 분화가 심화되는 만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대표성의 원리에 더 부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수를 늘리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구 의원들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거나 되도록 적게 건드려야 한다. 가장 쉽게 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현행 지역구 의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고(또는 가능한 한 적게 줄이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국회의원 총수가 늘어나는 것을 어리석게도 우리 사회 성원 다수가 반대한다.2 그래서 이전 시기에도 그랬지만, 이번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도 국회의원 정수 확대 논의는 계속해서 좌절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이번에 개정된 선거법에 따른 선거가 도착적(倒錯的) 효과를 낳게 된 핵심이다(다시 말해 뒤에서 언급할 여러 요인들은 이것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의석 확대의 길이 막힌 상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