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최진영이 되는 꿈

 

 

김유담 金裕潭

1983년 부산 출생.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탬버린』, 장편소설 『이완의 자세』 등이 있음.

neverend11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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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진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기억하게 된 것은 2010년에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한겨레출판 2010)을 읽으면서였다. 거리를 떠돌며 여러 이름으로 불린 소설 속 소녀가 지방 도시의 기차역이나 오일장 근처에서 정말 나를 스쳐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이 비정한 거리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소녀를 찾아서 맛있는 음식을 한그릇 사주고, 한번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저 소설 주인공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소녀를 꼭 만나야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에 시달렸다. 소녀를 만날 수 없다면 이 소설을 쓴 작가라도 만나고 싶었다. 작가와 소녀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작가를 만나 그의 손등을 한번 쓸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소설을 쓰기까지 얼마나 외로웠냐고, 당신이 세상에 나와 너무 기쁘다고, 앞으로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당시의 나는 어떤 소설에 빠져버리면 무턱대고 작가까지 사랑해버리는 과격한 독자였다.

 

최근 개정판을 펴내면서 십년 전 썼던 원고를 다시 살폈는데, 그때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당시에는 소설이 그다지 세다고 못 느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굉장히 세더라고요. 이렇게까지 썼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지금 쓰라면 도저히 그렇게 못 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정서와 문체가 당시의 나에게는 필연적인 요소였다고 생각해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소녀 이야기는 이십대의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었구나, 그래서 책으로 남기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이제는 불가능한 시도를 십년 전의 나는 했던 거잖아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 그때의 내 상태가 글로 남아 있다는 의미를 생각해서 개정판을 내면서 거의 고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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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로 내가 최진영을 실제로 만나게 된 것은 지난해 첫 소설집 『탬버린』(창비 2020)을 출간하고,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문장의 소리」에 출연하게 되면서였다. 흠모하던 선배 작가와 조근조근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벅차고 감격스러우면서도 (내 멋대로) 상상해왔던 최진영의 모습과는 달라서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했다. 그의 진행은 매끄러웠고, 사려 깊었으며, 여유있었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달리 밝고 다정한 모습에 놀랐다고, 내가 그에게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를 하고 말았을 때도 최진영은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날 녹음이 끝난 뒤 같이 출연한 다른 작가, 제작진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최진영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고,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그가 밥을 먹는 모습을 계속 훔쳐봤다. 당신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지 십년이 지나 드디어 만나게 됐다고, 내가 그동안 그의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며 따라 읽어왔는지 열렬하게 떠들어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식사 자리에 어울리는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에 실없는 소리만 해댔던 것 같다. 최진영은 적게 먹었고,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 ‘혼술’을 즐긴다는 말에 술을 혼자 먹으면 심심하지 않냐고,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려 마셔야 재미있지 않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매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잠깐 당황했다. 혹시 내 질문에 기분이 나빴던 걸까, 아니면 내가 친하게 지내려 할까봐 ‘철벽’을 치는 건가 고민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특별히 그에게서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는 해사한 얼굴로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밥과 반찬을 조금씩 집어 먹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정하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제야 그가 별다른 의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솔직하게 말해 보였다는 걸 알았다. 최진영이 그의 소설과 그리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외로움이 옷처럼 익숙한 사람,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외로운 상태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와 일부러 친해지는 걸 꺼리는 사람,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 그것은 최진영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면이다.

 

최진영은 나와 두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등단연도는 십년 차이가 난다. 같은 세대로서 그의 글에 많은 공감을 느끼면서도 데뷔 이후 십오년간 쉬지 않고 작가로 살아온 그의 소설이 이른 경지에 감탄하고 부러운 마음을 품기도 했다. 초기작도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소설을 내놓고 있다고, 소설이라는 게 매번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인데 어떻게 롱런이 가능했는지 비결을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쉬지 않고 꾸준히 썼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진 거라며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한다.

 

딱히 다른 거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어요. 계속 쓰다보니 글쓰기 실력이 나아지게 된 게 아닐까요.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전작을 뛰어넘기 위해서 혹은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걸 보여주기 위해서 억지로 애쓰지는 않아요. 소설을 쓰기 전에는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부터 생각해요. 저는 누군가의 요구에 따라 쓰는 게 아니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등단 이듬해 동료 작가들과 술자리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눈 적이 있다. 소설로는 수입이 거의 없던 나는 당시 다른 일을 병행하며 소설을 쓰고 있었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책이 얼마나 팔려야 소설만 쓰고 살 수 있을지 가늠해보다가 소수의 베스트셀러 작가 외에는 전업작가로 살아가기 어려운 문학시장의 상황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가운데, 한 동료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최진영 선배처럼 살면 전업작가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으로 먹고, 최소한의 소비만 하면서 소설만 쓰는 삶.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 겨울에는 난방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며 최진영은 오로지 소설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진짜 그게 가능해? 한두해도 아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료에게 되물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가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작가의 삶을 어느정도 부풀려서 말한다고 생각했다.

 

삼십대 중반까지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안 먹고 안 쓰고 소설만 썼던 시간이었죠.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대단히 불행하거나 견딜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제가 단념을 잘해요. 그리고 보편의 삶, 다수의 삶에 대한 애착이나 욕망이 별로 없어요. 지금 내가 뭘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뭘 더 가져야 한다는 욕심도 없는 편이에요. 원래 그리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게 아니어서 그런지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요. 그렇지만 작가로 살고 싶은 다른 분들에게 저의 삶을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기질상 그것이 가능했고, 다른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런 생활을 오래 이어올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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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타고난 영역을 의미한다면 성격이나 기질 또한 재능에 포함되는 게 아닐까. 그는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뒤 이년이 지나고부터 지금까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전업작가로 살아왔다.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이거나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으며, 물질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은 기질이 지금까지 전업작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잠시 문학 때문에 포기한 것들, 문학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다른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의 토로가 거짓이라고도, 과장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을 발표한 지 육년 차에 접어들어 겨우 책 두권을 낸 내게도 소설을 쓰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들의 목록이 어느정도는 쌓여 있고, 그것에 대해 성토하고 싶은 순간도 많다. 이 일이란 게 그렇다. 고생에 비례해 보상이나 인정을 받기 어렵기에 생색이라도 내야 조금 견딜 만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최진영은 소설을 위해 뭔가를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소설 쓰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전업작가의 생활고가 얼마나 고단한지 대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지금보다 더 큰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없다는 그에게 나는 다시 질문했다. 예쁜 옷이나, 가방, 신발에 정말 관심이 없느냐고, 소설 쓰기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당신의 세속적인 욕망을 희생한 게 아니냐고. 나는 작가나 선배로서가 아닌 또래 여성으로서 최진영의 욕망 또한 궁금했다. 그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순간 내가 그의 소설 「겨울방학」(『겨울방학』, 민음사 2019)에 등장하는 ‘이나’처럼 그를 추궁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민망한 마음이 들어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최진영은 「겨울방학」의 고모가 실제로 자신과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고백했다. 신발은 운동화 두켤레가 전부이며, 핸드백 하나 갖추지 않은 소박한 삶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하는 최진영에게서는 어떤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모는 비로소 깨달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고모는 고모 집이 좋은데.

거짓말, 고모도 싫으면서.

거짓말 아니야. 난 정말 여기가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대꾸하면서 고모는 조금 웃었다.(「겨울방학」 73면)

 

스스로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현재가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는 최진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기질상 욕망에 취약한 사람이니까. 지금보다 조금 더 가지고 싶고,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자주 쫓겼고, 소설과는 멀어진 채 돈벌이에 골몰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 때문에 데뷔도 늦어졌다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자 그는 자신이 특이할 정도로 그런 욕망이 적고, 다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 성격상 맞지 않는 것일 뿐,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 삶을 응원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는데, 그것은 그가 작품 속에서 인물을 대하는 태도와도 유사하다. 최진영의 소설 속 인물은 어떤 집단의 대표성이나 보편성에 포섭되기보다는,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고유한 개인으로 존재하며 그 고통의 양상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예컨대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가난은 뭉뚱그려지거나 추상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구체적인 가난과 개별적 고통을 짊어진 채로 살아간다.

 

과거에는 우울에 빠져서 내가 제일 가난하고 슬프고 외로운 존재인 것처럼 굴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고 세상을 조금 더 알아가면서 이제는 각자의 삶에 막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막연히 글자로만 이해하던 ‘삶의 어려움’이란 게 뭔지 알게 된 거죠. 모든 인간은 각자의 삶이 가장 어렵고, 자기 짐을 가장 무겁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글자 이상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성격이나 삶의 방식을 이해받지 못하는 데서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너와 내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이해가 생겼기 때문에, 타인이 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저 모두가 각자의 삶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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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십오년이 넘고, 사십대가 된 지금까지도 최진영의 소설은 여전히 젊다는 인상을 준다. 기성의 시각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데다 소설에서 주로 다루는 인물의 연령대가 십대 혹은 이십대 초반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그리는 청소년들이 단지 밝고 아름다운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진영의 소설에서 십대 주인공들은 어둡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상처받는 연약한 존재인 동시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되갚는 잔인한 존재이면서, 상처를 곰삭히느라 서서히 병들어가는 한편 스스로 회복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유난히 십대 이야기를 많이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십대 때부터 십대 얘기를 많이 썼어요. 그때는 내가 십대에 가까운 나이였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든 후에도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지 않았어요. 거리를 지나다가도 십대들의 목소리가 내게는 유난히 더 크게 들려요. 그 시기가 용광로 같은 때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하고 심드렁하게 다가오는 것들도 가장 예민하게, 날카롭게 받아들이는 나이잖아요.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아는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저한테는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처음 길을 잃어본 사람의 느낌, 그 캄캄하고 막막한 기분이 더 크게 와닿는 거죠. 십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저를 깨우고 긴장하게 해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십대 이야기 계속 쓰는 게 지겹다고 할 수도 있을 거고,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이야기가 아니라며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저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청소년을 화자로 쓸 때의 고민은 내가 요즘 십대를 잘 알고 있나 하는 생각 때문이지 작품세계가 협소해 보이지 않을까, 이전의 작품과 비슷해 보이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요. 그저 내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것을 하는 게 더 중요하지 다른 걸 보여주고 싶다거나 억지로 변화를 꾀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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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을 십대들이 읽어도 좋지만, 그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소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니까. 그의 최근작 『일주일』(자음과모음 2021) 또한 서로 다른 계급과 상황에 처한 십대 청소년들의 이야기 세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일요일」에서는 특성화고에 다니며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나’가, 「수요일」은 외국어고에 다니며 친구들의 죽음과 실종에 맞닥뜨린 ‘나’가, 그리고 「금요일」에서는 일반고 자퇴를 고민하는 ‘나’가 저마다의 아픔을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돌베개 2019)의 영향을 받아 썼다는 「일요일」은 유독 아프게 다가온다. 실습생으로 일하는 고등학생 ‘나’는 친구들처럼 대학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처지를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일을 해서 저축을 하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차를 사서 친구들을 태우고 여행을 가는 평범한 삶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부당한 지시가 무엇인지 배우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방법과 예의를 지키는 법만 배”(37면)운 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48면)는 말에 떠밀리듯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된다. 십대 소년의 소박한 바람조차 지켜줄 수 없는 비정한 사회를 최진영은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고, 없는 자는 점점 더 손에 쥘 게 없어지는 자본의 구조 속에서 아주 작은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 보호받지 못한 채 세계의 폭력에 노출되는 모습을 끈덕지게 탐구한다. 그의 소설에서 성장의 기회는커녕 기본적인 생존조차 여의치 않은 아이들의 삶을 묘사한 장면은 때로는 처연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최진영은 ‘작가의 말’에서 한편으로 자신이 “더 지독해지길 원한다”고 썼다. ‘어른들은 무책임하고 아이들은 죽는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쓸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서 어떤 어른들은 진짜 무책임하고 어떤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고장 난 기계를 맡긴다면…… 맡아야겠지. 일요일에도 일하라고 하면 해야겠지. 지겹도록 들었다. 그게 바로 세상이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럼 다들 그렇게 죽나? 그렇게 죽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면서 미성년자 실습생이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살기 좋은 세상.(「일요일」 38면)

 

작가 자신의 십대 시절도 궁금했다. 유독 유년 시절의 아픔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개인적인 상처의 기억이 소설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잠시 반추해보던 그는 “특별히 힘든 십대를 보냈던 건 아니지만 너무 일찍 많은 것을 단념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긴 하다”고 말했다. 전학을 자주 다니는 바람에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빴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로 자라야 했다. 그럼에도 청소년기를 불행한 시절로 기억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는 않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는 것을 아는 채로.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십대 시절의 상처가 많았다고, 그래서 그 경험 때문에 소설의 인물들을 십대에 붙잡아두는 거라고 얘기해줬더라면 이 글을 이어나가기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진영은 스스로의 인생을 그렇게 납작하게 만들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소녀는 불행하기만 한 게 아니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보호받는 존재이기도 했으며, 『해가 지는 곳으로』(민음사 2017)의 도리와 지나는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인생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는 걸 아는 사람, 불행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소설에서 희망의 농도가 조금씩 높아져가고 있다. 그의 작품을 꾸준히 따라 읽어온 독자라면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름 아닌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 그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의 소설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대 초반까지도 그는 어른들에 대한 대책 없는 반감이 강했고, 그 원망을 십대의 목소리를 빌려 소설에 담았지만 이제 원망만 하기에는 이미 어른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한다고 말했다. 어른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던 소녀는 이제 좋든 싫든 어른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의 최근 소설이 초기작에 비해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품게 된 것은, 원망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냉철한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어른들에 대한 원망이 컸어요. 왜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일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어른으로서 책임감이 더 필요한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어른들을 욕하기엔 내가 너무 어른이다, 이제 누군가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위험한 환경을 보고 문제시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의 세계에 대해 저도 책임이 있다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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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년간 쉬지 않고 소설을 써온 작가 최진영의 생활에 대해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고, 그는 최대한 진솔하고 성심성의껏 답을 내놓았기에 우리의 대화는 긴 시간 이어졌다. 서로의 십대와 이십대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지금 생각해보면” 혹은 “그때는 몰랐는데”였다. 그렇게 시작하는 말을 하면서도 최진영은 결코 과거의 자신을 탓하거나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자주 싫어했던 과거의 자신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과거의 자신을 잘라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과거의 나를 거쳐 지금의 내가 된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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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냥 나를 견딜 수 없는 기분,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날이 무척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너무 힘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통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는 일이 예전보다는 수월해졌어요. 좀더 큰 틀에서 전체적인 삶을 바라보게 됐다고나 할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제야 언니에게』를 쓸 용기도 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야가 나쁜 일을 겪고 고통에 빠진 것이 제야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었고, 또한 그 일이 이미 일어났다면 그것을 제야의 인생에서 없애버려야 할 일, 찢어버려야 할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그 일을 없애버리지 않고서도 제야가 제야로서 살 수 있다고, 제야를 그런 힘이 있는 존재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제야 언니에게』(창비 2019)로 자연스럽게 화제가 넘어갔다. 끔찍한 폭력을 당한 제야에게 그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은 잊으라고, 떠들어봤자 너만 손해라고 제야를 위하는 척 말하는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제야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그 일을 잊어버리고 덮어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야가 삶을 되찾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은 소설 전체에 걸쳐 길고도 지난하게 그려진다. 독자들은 제야가 겪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겪어내는 동시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동안 수많은 제야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으라고 함부로 말한 건 아니었는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위력에 우리 또한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본다. 최진영은 증언하고, 기록하고, 회복하는 제야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제야의 ‘회복’이 ‘망각’과 같은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피해자의 언어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찢을 수 없다. 찢으면 안 된다. 찢어버리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은 중요하다. 아름다운 과거보다 중요하다. 더 나은 미래보다 중요하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 그러니 다음이 있다. 내게도 다음이 있을 것이다.(『이제야 언니에게』 84면)

 

최진영의 다음이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아마도 그는 지금과 같이 단조롭게 살면서 작업을 이어나갈 것 같다. 낮에는 글을 쓰고, 작업이 끝난 후 길게 산책을 하고, 야구를 보며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잠드는 삶. 최진영은 자기 기질대로 삶을 꾸려나가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 쓰기를 계속해나갈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 자신의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 두가지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는 최진영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현대문학 2021)을 떠올렸다. ‘내가 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삼십대 여성 태희가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태희는 엉망진창이 된 자신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어른이면서, 어린 시절 가정불화로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픔이 있다. 일년 후의 자신에게 쓴 태희의 편지가 놀랍게도 과거의 중학생 태희에게 배달되는데, 편지를 받은 어린 태희는 (미래의 자신인 줄 모르고) 태희에게 답장을 쓴다. 흥미로운 건 어른인 지금의 태희보다 과거의 태희가 오히려 더 강인하고, 씩씩하게 그려진다는 점이었다. 어른의 시각에서 십대 태희의 삶은 그저 안쓰럽지만, 태희는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태희는 아프고 구부러지는 중에도 ‘내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유년의 태희과 대면하고 나서야 잃어버렸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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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나는 나만 될 수 있다. 나는 남이 될 수 없다.(『내가 되는 꿈』 221면)

 

자기 자신이 되는 꿈을 이루고,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건 인간이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가장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최진영은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에도 각오가 필요하다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좋은 것만 쥐고 싫은 것은 버리고 그럴 수는 없다고, 소설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말한다.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들려준 최진영 작가에게 고마웠다. 작가조명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그와 별로 친하지 않은 내가 그에 대해 긴 글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내가 가진 열렬한 애정을 전하기로 한 것은 그동안 그의 소설을 따라 읽으며 쌓아왔던 친밀감 때문이었다. 독자에게 강렬히 말을 걸어오는 그의 소설 속 일인칭 화자들이 작가와 겹쳐져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시간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말투와 목소리가 작품 속 화자들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이 인터뷰가 그동안 그의 소설을 읽으며 혼자 몰래 주고받았던 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진영은 실제로 화자와 일치되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으면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내게는 소설 속 인물과 자신을 밀착시킨 후에야, 독자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소설의 인물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최진영은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열심히 걸어온 작가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그가 소설의 인물들과 걸어온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그와 친하지 않지만, 굳이 친하지 않아도 우리가 쓰는 존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이 든다. 나 또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면서 그가 걸어온 길을 계속 뒤따라 걸어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