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혜진 金惠珍

1983년 대구 출생.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등이 있음.

suspens77@naver.com

 

 

 

축복을 비는 마음

 

 

경옥의 이름은 경옥이 아니었다.

그걸 알고 나서도 인선은 무심결에 그를 경옥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면 경옥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거나 왜 계속 그렇게 부르느냐고 핀잔을 주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솔직히 그 이름 은근히 마음에 드시는 거죠, 그죠?

경옥이라는 이름은 경옥이 직접 알려준 것이었고, 인선은 나이에 비해 약간 촌스럽다고 생각했을 뿐 가명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몇달을 그렇게 부르다보니 버릇이 된 모양이었다.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았다.

지난겨울, 인선은 경옥을 처음 만났다.

모처럼 만의 휴일이었고, 인선은 거실 소파에서 커피가 식기를 기다리다가 졸음에 빠진 것을 알았다. 탁자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린 탓이었다.

인선씨, 집에 있지? 이따가 오후에 한 집 할 수 있어?

양사장이었다.

오늘요? 어딘데요?

인선은 습관적으로 그렇게 물었고 양사장은 열평이 안 되는 원룸이라고, 신입 하나만 데려가도 충분하다고, 자신은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는다며 사정했다. 사람들의 말소리, 라디오 소리, 청소기 소음 같은 것들로 양사장의 목소리는 들리다 말다 했다. 인선은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오전 아홉시. 다들 한창 일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오늘 그 집 책임지고 마무리 좀 해줘. 인선씨도 이제 그만하면 베테랑이잖아. 신입 하나 보내줄게.

신입을 보내면 어쩌라고요?

에이, 완전 신입은 아니야. 한국 사람이고. 말귀 알아먹으니까 뭐든 시키면 되잖아. 다른 건 문자로 찍어줄게.

얼마짜리인데요?

똑같지 뭐. 수수료 제하고 바로 입금해줄 테니까 그런 건 걱정하지 말어.

집 상태는요? 험한 집은 아니죠?

험한 집이면 부탁도 안 하지. 아니야, 아니래. 젊은 여자 혼자 살다가 나간 집이라 치울 것도 없대. 확실히 물어봤어.

오후에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하루쯤 쉬고 싶은 마음도 컸다. 멋모르는 신입과 일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인선은 그러겠다고 했다. 충동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꾸준하게 일이 있는 편이 아니었고 대목이라고 할 만한 2월도 끝나가는 중이었다. 3월에 접어들면 이사하는 집들이 줄고 벌이도 자연스레 줄어들 게 뻔했다.

지난밤, 어깨와 팔목에 붙여둔 파스 귀퉁이가 너덜너덜했다. 인선은 주방 쓰레기통에서 파스 포장지를 찾아 상표와 제조업체를 메모해두었다. 똑같은 제품을 다시 사는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후엔 청소 도구가 담긴 가방을 꼼꼼하게 살핀 뒤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신입은 10분 늦게 왔다.

인선이 101호 원룸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무슨 예고처럼 쿰쿰한 냄새가 흘러나왔는데 내부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저, 청소하러 왔는데요. 여기 맞죠?

현관 앞에 체구가 작은 여자가 서 있었다. 신입이라고 해도 젊은 사람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여자는 지금껏 인선이 본 사람 중 가장 어렸다.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사이. 어쨌든 인선보다 열살은 어린 것 같았다.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는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한마디 더 했다.

아, 근데 이 아저씨 거짓말했네.

인선과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후드를 벗으며 투덜거렸다.

양사장님이요. 한두시간이면 금방 끝날 집이라더니 딱 봐도 아닌데요? 자기가 가려니 멀고 돈은 별로 안 되고. 그래서 넘긴 거 아니에요?

그런 후엔 어제부터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쳐들거나 숙인 채 하는 일은 할 수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양사장에게 네시 전에 일이 끝난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네시에는 가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나서야 점퍼를 벗고 소매를 걷었다.

제멋대로인 사람이네.

인선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각을 확인했고,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 궁금한 건 아니었다. 이름과 나이 같은 신상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었다. 다만 말을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불편한 티를 내고 싶었다. 적어도 인선이 아는 양사장은 일부러 직원(엄밀히 말하면 직원이 아니고 인부였다)을 속이거나 골탕 먹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닌, 어쨌든 인선에게 일할 기회를 준 고마운 사람이긴 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가능한 한 부드럽게 꺼내려면 이름을 알 필요가 있었다.

경옥이요. 임경옥.

여자는 현관 앞에 쌓여 있는 신문과 광고지, 각종 고지서와 영수증 같은 것들을 우두커니 내려다보다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

그래요, 경옥씨.

인선은 다음 말을 쏟아낼 작정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옥의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귀밑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는 정전기 탓에 사방으로 뻗쳐 있었는데 군데군데 희끗희끗한 얼룩이 보였다. 그게 주로 욕실에서 쓰는 세정제 때문이라는 것을 인선이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손등에는 스팀 청소기에 덴 것이 분명한 붉은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 맥이 풀리면서 움켜쥐고 있던 말들이 흩어져버렸다.

그래요, 그럼. 오늘 뭘 할 수 있겠어요?

이 일을 하기 전까지, 아니 이 일을 시작하고 한달이 지날 무렵까지도 인선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람. 곤경에 처한 이를 돕는 사람.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사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잃지 않는 사람.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선은 몸으로 배웠다.

밤에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손발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고, 가려움증이 넘실거리며 피부 전체를 덮쳐올 때도 있었다. 눈가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고, 후각이 마비된 듯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증상은 그나마 경미한 경우였는데 계속 좋은 사람이려면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했다.

이것 봐요. 나도 좀 삽시다. 두번 세번 다시 하게 만들지 말고 오늘은 제발 제시간에 끝내자고요. 내 말 알아들어요?

이 일을 시작할 무렵 만났던 한 여자는 인선이 잠깐 숨을 돌릴 때마다 보란 듯 핀잔을 주곤 했다. 겨우 한두마디였지만 여자의 눈빛과 말투 같은 것들은 오래 남았다. 그것들은 인선과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인선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웠다.

한동안 인선은 그런 감정과 싸웠다. 싸움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돌아서면 다시 싸움이 시작됐고 또 새로운 싸움이, 그보다 더한 싸움이 인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선은 싸우기를 포기해버렸다. 모욕과 수치가 오가지 않는 평화로운 현장이 몸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난 뒤였다.

모두가 좋은 사람이어서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제시간에 퇴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곳에서 좋은 사람은 자신이 알던 좋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거였다.

적어도 인선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몸을 축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경옥은 전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고무장갑과 실내화 같은 개인 소모품을 준비해오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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