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都鍾煥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84년 『분단시대』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사월 바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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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태풍이 밤새 서해의 섬들을 훑고 지나갔다

어떤 집은 외벽이 떨어져 나가고

어떤 집은 지붕이 날아가 처참한 내면이 다 드러났다

가지 꺾인 나무가

뿌리 뽑힌 나무를 내려다보고 있다

결박된 밧줄 잘 풀어지지 않지만

다시 출항 준비를 해야 한다

비안개에 섞여 밀려오는 게 두려움인 걸 알지만

또 길을 떠나야 한다

키를 넘는 파도가 밀려왔다 가면

다시 밀려오고

사나운 빗줄기 몰아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태풍이 몰려오는 일이 반복되는 항해가 될 것이다

낯선 섬들을 만나고 오래된 도시들을 지나갈 것이다

이방인들처럼 보이는 이들과 만나며

익숙지 않은 관습과

경계하는 시선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의심하는 이도 있고 미워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적국의 병사와 악수를 할 때도 있고

이교도들의 기도를 들어야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여정의 충돌 속에서 지혜로워지고

생경한 경험들이 생을 더 풍요롭게 해주길 기원한다

무엇보다 낮엔 뜨겁고 밤엔 시린 바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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