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서수 李書修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당신의 4분 33초』 『헬프 미 시스터』 등이 있음.

apeironbook1230@naver.com

 

 

 

춤은 영원하다

 

 

꽁초의 춤

오래전 그날, 나는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느라 늦게 귀가한 날이었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거실 한구석에 세워놓은 장 스탠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가가 불을 켜고 갓을 벗겨냈다. 빛나는 알전구가 드러나며 벽면에 검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벽 앞에 서서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연이어 왼팔도 들어 올렸다. 그림자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그대로 따라 움직였다. 나에게 홀린 관객 같았다. 뒤돌아 오디오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엄마가 자주 듣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정수라의 「환희」.

나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발에 리듬을 실어 바닥을 쿵쿵 찍다가 손뼉을 쳤다. 이내 거추장스러운 교복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던졌다. 골반을 좌우로 흔들다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가랑이를 넓게 벌리며 점프해 거실 이편에서 저편 끝으로 이동했다. 두 팔을 들어 올려 둥그렇게 모은 뒤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다리를 높게 차올리며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객관적으로 그것을 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나는 일종의 현대무용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만일 그날의 나를 비디오 캠코더로 녹화해 볼 수 있었다면 전혀 다른 의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 춤이 아니라 몸부림에 가까웠다. 열일곱살의 나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지쳐 있었다. 지루함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 때문이었다. 입시교육은 내 삶에 대한 통제권 상실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했다.

예감했던 대로 나는 정해진 행로를 따르며 살아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작은 회사에 입사했고, 규모가 더 큰 회사로 이직을 거듭했다. 회사에선 경직된 자세로 일했고, 경추 통증에 시달렸다. 나중엔 두경부 동통으로 번져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회사 사람들 모두 속으로는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괜찮았다. 나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매일 돈 걱정을 했고, 자주 자신감을 잃었다. 소득세를 내고,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직장가입자로서의 의료보험 자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했다. 버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동의어가 되었다. 열일곱살의 어느 밤에 떠오른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몸부림을 치며 살아가야 했다. 그래야 살 수가 있었다.

담배꽁초를 비벼 끄는 누군가의 손을 볼 때마다 흠칫 놀랐다. 그 꽁초가 꼭 나 같아서.

 

이매의 춤

나는 좀처럼 웃지 않았지만 소주를 마실 땐 항상 웃었다. 빈 소주병을 세어보며 실없이 웃는 날들이 이어지더니 어느날 마흔이 되었다. 갑자기 엄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엄마에게 하는 잔소리가 늘어갔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보다 엄마가 더 걱정되었다. 나는 늙는 일만 남았고, 엄마는 죽는 일만 남았다는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늙어도 엄마는 영원히 죽지 않길 바랐다.

도통 운동을 하지 않는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의 불룩한 아랫배를 기습적으로 만졌다. 엄마는 질색하며 도망쳤다. 엄마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춤이라도 배우라고 잔소리를 했다. 엄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쪽파를 다듬다가 물었다. 춤을 왜 배워?

배우면 잘 출 수 있잖아. 운동도 되고.

난 안 배워도 잘 춰.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의아했다.

그럼 한번 춰봐.

엄마는 다듬고 있던 쪽파를 그대로 쥐고 일어나더니 내게 음악을 틀라고 말했다. 나는 유튜브에 접속해 90년대 댄스 음악을 검색했고, 눈에 띄는 곡을 클릭했다.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선매 이모의 애창곡이었다.

한 손에 쪽파를 쥔 채로 엄마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쩍슬쩍 좌우로 몸을 흔들다가 비로소 흥이 오른 듯 온몸을 흔들어댔다. 박자 무시, 자태 무시, 눈앞의 딸 무시. 엄마의 춤은 춤이 아니라 취객의 몸부림 같았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쥐고 있던 한줌의 쪽파를 천장으로 휙 던져 올렸다. 동시에 헛! 하고 기합 소리를 냈다. 쪽파는 형광등과 충돌한 뒤 바닥으로 추락했고, 곧이어 엄마의 발에 밟혔다. 쪽파 머리가 짓이겨지는 줄도 모르고 엄마는 발을 힘차게 들어 올려 허공을 찼다. 그토록 해괴한 춤은 본 적이 없었다. 국적 불명, 시대 불명의 춤.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뚱이. 혼령을 불러내는 춤 혹은 혼령을 내쫓는 춤. 작두를 타는 강신무도 추는 법이 있고 박자를 맞추는데, 이건 뭐 혼령을 오라는 건지, 오지 말라는 건지. 나는 엄마의 춤을 보며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엄마, 음악을 듣고 있는 거야?

박자를 무시하고 음악과 완벽히 분리되어 춤을 추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춤에 몰입하느라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엄마는 캉캉 춤을 추는 것처럼 치마를 걷으며 다리를 힘차게 차올렸는데, 엄마의 다리는 캉캉 댄서처럼 높이 솟아오르는 대신 허리 높이까지만 간신히 올라왔다. 그렇더라도 엄마가 얼마나 혼신을 다해 춤을 추는지 알 수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고개를 흔드는 요상한 막춤을 추며 엄마는 계속 웃었다. 반면에 내 얼굴에선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헛! 헛! 하는 소리를 내며 깃발처럼 휘두르다가 마침내 몸을 둥그렇게 만 채로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음악을 껐다. 온 집 안에 정적이 흘렀다. 뭐 그런 이상한 춤을 추느냐고 면박을 주려는 찰나, 엄마가 갑자기 입을 열더니 방언 같은 말을 쏟아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버지 욕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바람을 피우며 밖으로 나돌다가 암 환자가 되어 돌아왔고, 엄마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끝까지 병상을 지켰다. 엄마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죽은 아버지를 욕했다. 상놈의 새끼, 끝까지…… 끝까지 참았어, 내가. 이윽고 엄마는 탈진한 사람처럼 바닥에 반듯하게 드러누워 멍한 얼굴로 천장을 보았다. 모든 열기와 의지가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보는 척했다. 엄마의 깊은 회한에 내 속이 다 울렁거렸다. 엄마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다시 쪽파를 집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짓이겨진 쪽파 머리를 잘라내고, 잎 끝의 시든 부분도 떼어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쪽파를 다듬는 엄마를 보다가 나는 물었다.

엄마, 춤을 왜 그렇게 춰?

뭐가.

이상해.

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표정이었다. 춤은 원래 이런 거라는 듯이. 엄마는 숟가락으로 생강 껍질을 벅벅 긁어냈다. 양푼에 담긴 물이 뿌옇게 변해갔다. 엄마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엄마의 우주가 활짝 열렸다가 닫힌 것을 목격한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열일곱살의 내가 추었던 이상한 춤의 근원은 엄마에게 있었던 걸까. 나의 엄마, 김이매 역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춤으로 자신을 열어 보이고, 더께 같은 슬픔을 털어내는 사람일까. 그런데 나는 왜 여태까지 그걸 몰랐을까.

엄마의 동생 선매 이모는 어릴 때부터 춤을 잘 추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이모는 가수가 되겠다며 일찍이 서울로 올라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고, 지금은 지방의 작은 행사장에서 댄서로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