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통일과정과 개혁과제

 

침묵과 기억의 역사화 : 여성·문화·이데올로기

 

 

조은 曺恩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절반의 경험 절반의 목소리』 등이 있음. chouhn@benfranklin.hnet.uci.edu

 

 

이야기를 시작하며

 

원고청탁을 여성·문화·이데올로기라는 주제로 받고 고민했다. 남북정상회담 1주년 특집이라는 점에서 탈냉전 또는 탈분단(포스트분단) 시대의 여성과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연결시켜 문제화하는 것인지 여성의 입장에서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문제화하는 것인지 불분명했지만, 그 내용과 형식은 모두 필자 자유라고 했다. 망설이다가 그 자유라는 말에 청탁을 받아들였다. 우선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통상적인 사회과학적인 논증적 글쓰기나 정책 제안을 내놓는 대신 탈분단(포스트분단)시대의 여성·문화·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일상 속의 분단/탈분단을 읽어보는 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 지점을 ‘남북이산가족 상봉 드라마’로 잡았다. 정치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탈분단의 서막이라면 사회문화적으로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그 지점이 될 것이다.1 남북이산가족 상봉 드라마의 메타포를 읽고 일상을 통해 분단/탈분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텍스트를 읽어보기로 했다. 이는 여성·문화·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잡한 지점과 접점을 읽는 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1. 남북이산가족 상봉 드라마 뒤집어 읽기: 피와 눈물의 메타포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많은 언론들이 ‘눈물의 드라마’로 표현했다.2 그러나 남북이산가족 상봉 드라마는 ‘눈물의 드라마’가 아니라 이중 삼중의 이율배반적 메타포로 구성된 ‘피’와 ‘눈물’의 드라마다. 민족상잔의 피를 흘린 지 반세기 만에 이루어진 이 ‘드라마’는 ‘피 흘리고 눈물 흘린’ 드라마치고는 너무나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 피와 눈물로 문제를 호도한.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사회의 리얼리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드라마 자체는 정직하기는 하다.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하여 가장 흔하게 등장한 단어들은 한민족, 핏줄, 혈육간의 정, 눈물, 수절, 어머니였을 것이다.3 이는 다시 아버지(아들)의 피와 어머니(여성)의 눈물로 구체화된다. 화제가 된 기사들을 요약해보면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가 봅니다. 50년간 한번도 뵙지 못했는데도 바로 ‘아버지구나’ 했어요”4라는 아들 옆에서 50년간 수절한 어머니는 울고 있다. 또는 남쪽에서는 딸뿐이어서 큰딸이 제사를 지내왔는데 월북한 남동생이 나타났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외아들인 동생이 제사를 모시게 되어 기쁘다”는 기사와 북쪽의 장남이 나타나 차남이 제사를 북쪽으로 보낸 이야기가 이산가족 상봉 후의 추석 화제 기사이다.5 한편 어머니는 북에 간 아들을 그리워하던 심정을 담은 시로 아들을 통곡하게 하고, 북의 계관시인은 「어머니」라는 시로 울음바다를 만들었다.6 역사적 가족 상봉이 있던 날 신문 1면은 온통 ‘노인이 된 아들 눈물 닦아주는 노모’의 사진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신문 하단이나 한귀퉁이에는 감동적 사연만 있지 않다. 상봉자 명단이 알려지면서 적십자사에 걸려온 전화에는 북에 아들을 두고 월남한 뒤 이혼하고 각자 가정을 꾸렸는데 북의 아들이 가족상봉 신청을 하자 “아버지 성을 물려받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만나느냐”는 아버지 쪽 가족의 주장에 어머니 쪽은 가슴앓이만 한다는 사연이 접수되었다. 그리고 북한에 아내와 자식을 두고 월남한 사람과 결혼해 3남매를 낳고 50평생을 보낸 한 70대 할머니가 “요샌 바깥사람이 나와 우리 아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재산도 불쌍하게 살아온 북의 가족들에게 다 물려주겠다’고 한다”는 하소연을 해오기도 했다.7

한편 “50년 수절 하며 당신만 기다린” 또는 “3일 자고 떠난 남편 50년 기다린”8 부인들이 1,2차 상봉 때 모두 화제가 된 반면, 10년이나 35년밖에 수절하지 못한 부인들은 ‘미안해서’ 상봉장소에 나오지 않아 화제에 올랐다. 남쪽 언론에서는 아들을 두고 내려와 재혼해서도 서로 아이도 갖지 않은 부부가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남편은 상봉기간중 남에 와서 재혼해 얻은 부인과 북에 남아 50년간 재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부인을 함께 싸안고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한편 남편이 왔다는데 재가했기 때문에 ‘미안해서’ 상봉을 거절하며 상봉장소 주변을 맴돌던 한 부인의 얼굴을 가린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북에서 재혼한 그 남편은 “이해하디요”를 연발하는 아량을 베풀었고. 2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신청자 북측명단이 나왔던 날 저녁 프라임타임 뉴스시간에 TV 화면은 ‘50년 수절’이라는 대문짝만한 글씨에 번쩍번쩍한 스포트를 주면서, 북측 상봉신청자의 남쪽 가족 중 유복자 딸과 50년간 수절한 부인을 비춰주었다. ‘50년 수절’한 부인에게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좋겠다”고 말했고 그 부인은 “좋아요?”라고 되물었다. 50년 만에 남편을 만나는 일이 과연 “좋은 일인가?”라고 이 시골 부인은 담담하게 되묻고 있었다. 부인은 울지 않았고 유복자 딸만 울고 있었다.

페미니스트그룹 일부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가족드라마화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9 그러나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드라마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구조가 극 안에서 드러나지 않은 데 있다. 아니 갈등구조를 드러내는 대신 이를 은폐하는 메타포를 동원한 데 있다. 피와 눈물의 메타포. 미디어의 보도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피와 눈물로 그동안의 모든 문제를 감싸안는 아니 덮어버리겠다는 언설의 정치성이다. 여기서 피와 눈물이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눈물로 형상화되거나 구체화된 것은 별로 특기할 일도 아닐지 모르겠다. 피와 눈물은 국가·민족과 고향, 초남성적 국가와 초여성적 모성, 이념에 산 아버지(아들)와 울고 견디는 어머니(딸), 남과 북에 모두 자식을 둔 남편과 50년씩 수절한 아내로 끝없이 확장된다. 후자는 전자를 때로 감춰주고 때로 정당화시켜준다. 따라서 우리는 ‘피와 눈물’의 드라마 대신 눈물의 드라마만 보게 되고

  1. 일반인들은 정상회담보다 이산가족 상봉에 더 관심을 보였다. 실제 이산가족 생중계 시청률이 남북정상회담 생중계 시청률을 훨씬 상회했다(『중앙일보』 『한국일보』 2000.8.17).
  2. 예를 들면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눈물의 드라마’가 펼쳐져……”(『조선일보』 2000.8.19) 또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또하나의 드라마”(『한국일보』 2000.8.16), “이산가족 상봉은 각본 없는 드라마”(『중앙일보』 2000.8.16) 등 도하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눈물의 드라마’로 표현하였다.
  3. 10대 일간지에서 2000년 1월 1일부터 2001년 4월 30일까지 다룬 남북이산가족 기사 색인을 보면 1천건 중 어머니를 소재로 한 기사가 587건, 아버지 497건, 성묘와 차례상 99건, 수절 45건 등이지만, 사진이 들어간 기사나 화제의 기사는 단연 ‘어머니’와 ‘수절’이라는 소재에 집중되어 있다.
  4. 『경향신문』 2000.12.2.
  5. 『조선일보』 2000.9.10.
  6. 『경향신문』 2000.12.2.
  7. 『동아일보』 2000.8.12.
  8. 『한국일보』 2000.10.9.
  9. 『여/성이론』 3호(2000)에 실린 좌담 「탈분단시대의 가족과 여성—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며」에는 ‘이산가족 상봉은 한민족의 ‘패밀리드라마?’’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