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 출생.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으로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장편소설로 『먼길』 등이 있음.

 

 

 

칼에 찔린 자국

 

 

그날 아침, 그는 출근길의 차 안에서, 경부고속도로에서 일어났다는 12중 연쇄추돌사고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에서 그런 뉴스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여자리포터의 보도에 이어 남자아나운서의 과장된 탄식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안전운전하십시오. 나 하나만의 생명이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곧 그의 귀에 익숙한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는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시간이 오래 흘렀음에도 그는 여전히 그런 뉴스를 태연하게 들을 수가 없었다. 습관처럼 얼굴에 미열이 오르고 뒷머리가 띵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 그에게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시간강사 노릇으로 일주일에 세번씩 고속도로를 타야만 하던 무렵이었다. 그 일주일 중의 하루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전주로, 다시 전주에서 서울로 정신없이 액쎌을 밟아대야만 하는 형편이었는데, 그 한학기 동안 그가 뗀 범칙금 딱지만 해도 다섯 장이 넘었다.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틀어도 차창의 전면으로 쏟아져들어오는 햇살의 열기를 이길 수가 없던 오후 한시쯤으로 기억된다. 깜빡 졸았는가 싶었는데 경찰차가 쫓아오는 것이 룸미러로 보였고, 그는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암행경찰의 속도단속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똥줄이 타게 바빴지만 그는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고, 경찰은 그에게 뺑소니의 혐의까지 씌워가며 뒷돈의 액수를 높이려 들었다.

그가 암행단속에 걸려준 덕분으로, 도로는 이제 정상속도 아래로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과의 실랑이에 짜증이 난 그가 도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낡은 은색 프라이드의 운전자 하나가 그를 바라보며 빙글거리는 것이 언뜻 보였다. 그와 경찰에게 보란 듯이, 프라이드는 도저히 고속도로의 주행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게 기어가듯 꽁무니를 보였다.

대여섯 대의 차량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쭈그러들고 뒤틀려 있는 연쇄추돌의 현장을 그가 목격한 것은 그로부터 10킬로쯤을 진행한 뒤였다. 고속도로 한복판이 까닭없이 정체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사고구나,라는 직감은 쉽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가 정작 그 현장을 지나치게 되었을 때, 그는 느리게 진행하는 다른 차들의 운전자들처럼 그 현장을 향해 길게 목을 빼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가급적 그 현장을 빨리 지나쳐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나 경찰차와 견인차 앰뷸런스가 둘러싼 사고차량들 사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낡은 은색 프라이드를 목격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은색 프라이드는 완전히 박살이 나다시피 했는데, 우그러들어 열리지 않는 운전석 문의 깨진 유리창 바깥으로 팔 하나가 덜렁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햇살은 여전히 이글거렸고, 덜렁거리는 팔목 위에서 은빛 시계가 쨍, 하고 빛났다.

그날,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거른 채 진행한 오후 강의 도중, 그는 메슥거림을 참지 못하고 휴지로 입을 틀어막은 채 거품 같은 위액을 조금 토해냈다. 그가 퀭하게 눈물 고인 눈을 창가로 돌렸을 때,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던 해가 막 떨어져내리며 피같이 붉은 노을빛을 번져놓고 있었다. 생은, 무상했다. 그후 오래도록, 그는 그날 강의실에서 보았던 붉은 노을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그 일’이 벌어졌을 때, 그러고 나서 그가, 자신은 생에 대해서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느닷없이 떠올린 것 역시 그 붉은 노을빛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라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더이상 그 노을빛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치거나 병적인 메슥거림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 노을빛을 떠올렸고, 다만 바라보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12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듣던 날 저녁, 그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술집에서 형사들에게 연행되었다. 동료교수들과의 회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다가 문득 들어가기 좋은 술집이 보여 혼자서나마 맥주 한잔만 더 할 생각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학장이 회식자리에 함께 있는 바람에 양껏 마시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아내와 냉전중이라 집에 일찍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도 있었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급했다. 그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맥주 두 병을 먼저 시켜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형사들은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그는 경찰서로 끌려갔고, 그곳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살인미수용의자로 연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여자, 알아? 몰라요?”

반말도 아니고 경어체도 아닌 형사의 물음 앞에서 말보다 입이 먼저 막혀 뭐라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그의 앞에 사진이 한장 놓였는데, 그 낯선 얼굴을 그는 차마 모른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정황만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도 말했을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안다고…… 분명히 안다고. 그러나 모르겠다고, 이 여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그러나 잠시 후 그가 한 대꾸는 고작 이러했다.

“난 교숩니다. 국립대학의 현직 교수예요.”

어쩌자고 그런 대꾸가 나왔을까. 난 이 여자를 모른다든가,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살인은커녕 그 여자의 몸에 손끝 하나 댄 적이 없다고 항변을 했어야 옳았겠으나, 그는 자신이 교수신분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무혐의를 주장하려 들었다.

그가 그 직함을 얻은 것은 고작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교수라는, 그 직함을 얻기 전까지 그는 자그마치 8년이란 세월을 보따리장수라 불리는 시간강사로 보냈으며, 그 이전의 몇년은 오로지 학위 따는 데에만 바쳤다. 그의 동기와 후배들이 차례로 교수직에 입성하고, 혹은 차장 부장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지방의 이 대학 저 대학을 전전했다. 그의 삶이 온갖 도로 위에서 기름과 함께 쏟아부어지는 동안, 그의 청춘도 그가 가졌던 첫번째 차처럼 폐차되어갔다. 그러니 이제와서는 그렇게 하여 얻은 교수직함이 그의 인생에 대한 항변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는 거듭 말했고, 그의 신분증을 종류대로 차례로 제시했으나 형사는 그의 항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가 들렀던 술집의 마담이 일주일 전에 바로 자기 술집 앞에서 칼에 찔렸다고 했다. 대로변에 위치한 술집이었음에도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담은 일주일째 사경을 헤매는 중이고,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사람은 그 술집의 여종업원이라고 했다. 사건이 있던 당일, 그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그가 마담에게 욕심을 부리다가, 심하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여종업원이 보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날, 그가 화장실이 급해 술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술집 종업원이 그를 알아보았고, 마침 종업원의 보충진술을 듣기 위해 그 술집에 들어서던 참인 형사들에게 연행된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에게는 주장할 만한 알리바이가 전혀 없었다. 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는 사건이 있던 날 자신이 그 술집에서 술을 마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피해자의 사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