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혜경 李惠敬

1960년생. 1982년 『세계의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그 집 앞』 『틈새』 『너 없는 그 자리』, 장편 『길 위의 집』 『저녁이 깊다』 『기억의 습지』 등이 있음.

kedieng @ gmail.com

 

 

 

타나 토라자, 죽은 이를 위한 축제

 

 

이태 동안 살았던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전, 내가 목표로 잡은 여행지는 술라웨시섬의 타나 토라자( Tana Toraja)다. 한번도 못 가본 곳.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으로 나오니 웬 남자가 따라 나온다.

“타나 토라자에 가느냐? 내일 아침 열시경 그곳에서 장례식이 있다, 우리가 데려다주겠다.”

그는 끈질기게 따라붙지만, 나는 그에게서 연락처만 받고 공항을 빠져나온다. 택시 카운터에서 시내까지 가는 티켓을 끊는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좀 먼 편이다. 길가에서 다리를 꽁꽁 묶어 우북하게 쌓아놓은 게 더미를 보기도 하고, 펄펄 뛰는 생선을 파는 것도 본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다.

시내로 들어가서 몇군데 숙박업소를 둘러본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지만 바닥에 깔린 카펫 때문에 포기한다. 카펫은 호흡기가 약한 나에겐 불편하다. 근처의 쇼핑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KFC에서 닭 요리를 시켜서 먹는다. 여기까지 와서 KFC라니, 나는 속으로 내가 속물임을 인정한다. 나오다가 베차를 잡는다. 자전거 페달로 움직이는 베차는 이곳에서 흔한 탈것이다. 이곳의 베차는 족자카르타의 것에 비하면 몹시 작다. 사람이 몸을 웅크려야 할 만큼 작다. 천장도 둥글지 않고 되로 깎은 듯 일직선이다. 바퀴를 감싼 틀도 두번 꺾은 직선이다. 천장도 둥글고 바퀴틀도 둥글게 휘어진 족자카르타의 베차가, 그곳 또는 자바섬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키가 크지 않고 부드럽고 단단하게 생긴 청년의 베차를 탄다.

“나는 숙소를 찾고 있어요.”

“이곳엔 호텔이 많아요. 천천히 찾을 수 있어요.”

청년은 여기저기 데려다준다. 내가 방을 보는 동안, 청년은 베차에서 기다린다. 한낮의 땡볕 아래. 삶 …… 저 땡볕 아래 노동으로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푸른 청춘. 결국 나는 깨끗한 방을 찾아낸다. 하루 10불 정도인 숙소. 환전소에서 돈을 바꿔서 숙소비를 치른다. 체크인하고 나와서 생선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어딘가 물었더니, 중국계인 듯한 호텔 식당 주인은 자기네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테이블이 네개 남짓한 식당이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먹고 싶어요. 우선 산책부터 하고요.”

거기에서 바다 쪽으로 한 블록 걸어가니까 식당이 나온다. 커다랗고 텅 빈 홀. 물걸레로 막 바닥을 훔치고 난 것처럼 습한 기운이 감도는 어둑한 홀이다. “밥 먹을 수 있나요?” 물었더니 된다고 한다. ‘달고 새콤한 소스를 끼얹은 생선 요리’를 주문한다. 통째로 나온 커다란 생선은 살의 결이 쫄깃하니 맛있다. 이따금 복병처럼 가시가 나오지만. 어둑하고 습기 찬, 아무도 없는 커다란 식당. 정면에 밴드를 위한 스테이지까지 있지만 그곳은 비어 있다. 이곳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면서 그게 또 마음에 든다.

부른 배로 천천히 걸어 석양이 아름답다는 마카사르만(灣)으로 나가본다. 해는 일출 때처럼 급히 떨어진다. 수평선에서 가로로 벌어진, 손으로 가로결을 뜯어놓은 것 같은 구름 사이로 해의 붉고 환한 빛이, 하늘엔 파랑, 비취색, 옥색, 붉은색, 주황색…… 온갖 색이 다 흩어져 있다. 하루의 노역을 마친 배는 검은 음영만으로 사람들을 드러낸 채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그 노역과 무관하게 즐기는 모터보트. 발정한 듯한 모터보트는 파도 위를 겅중거린다.

이튿날 숙소에서 아침에 마가린과 아마도 파파야 잼일 성싶은, 단맛조차 미지근한 잼을 발라 빵을 먹고 나온다. 밤의 흔적일 노점상들의 수레가 아직도 남아 있다. 과일 수레, 어묵과 비슷한 박소를 파는 수레, 그리고 아이스크림 수레, 음료수 수레…… 방죽엔 사람들이 물새처럼 앉아서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이다. 날마다 보는 바다를, 아침마다 내다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속이 비치지 않는 더러운 물속에서 사람들은 옷을 입은 채 물장구를 친다. 이건 아침을 새로 맞는 세례의식과도 같다. 그중의 몇몇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나는 미끄러운 방죽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사진을 찍는다. 아까부터 말을 걸던,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실없이 뒤를 쫓던 남자를 물리치기 위해 나는 딴전을 피운다. 베차를 타고 우중판당 박물관으로 가는데, 사람들은 베차 운전수에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고, 베차 운전수는 속없이 우중판당 박물관으로 간다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십분도 채 안 되어 그곳에 도착한다. 입구의 경비실에서 바나나잎에 싼 밥을 먹던 사람에게 불려 가 이름을 적는다. 박물관은 오전 여덟시에 문을 연다. 거의 한시간 남짓 남았다. 나는 그동안 경내를 구경한다. 1545년, 고와왕 때 세워진, 처음엔 흙벽돌이었다 나중에 돌로 쌓은 성곽.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요새로 지었다는 건물. 안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A자 형태인데, 동편과 서편,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은 박물관으로 쓰였다. 마당 가운데엔 3층 높이쯤 되는 회벽 건물이 있고, 미음자 형태의 건물 뒤편으로는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성곽은 돌로 지은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곽 높이까지, 성곽 바깥편 마을의 집 지붕들이 높이 올라와 있다. 이 정도 높이로 방어가 가능했을까? 궁금해진다. 오토바이로 먼저 와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남자에게 나는 말한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한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할 때는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다. 그러니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달라.”

나름대로 단호하게 말했더니 남자는 뜻밖이다 싶게 선선히 물러간다.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다. 박물관이 문을 여는 시각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려 하니 잔돈은 모자라고 큰돈밖에 없다. 매표소에 있던 사람은 단체 할인표를 끊어준다. 박물관에서 물으면 ‘잔돈이 없어서 이 표를 끊어주었다’라고 말하라고 일러준다. 친절하고 소박한 마음. 목조 2층 진열실. 맞은편으로 가서 미니어처 프람바난 사원을 본다. 현재의 프람바난 가장자리까지 많은 탑들이 늘어서 있다. 다섯겹 또는 네겹으로. 로로 종그랑을 위시한 주탑을 둘러싼 탑들. 옛날 돈을 진열해놓은 곳에선 오늘날과 표기법이 다른 돈들을 본다. ratus가 ratoes로, rupiah가 roepiah로 표기된 돈들. 아마도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표기법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어쩌면 이 건물도 그 시기에 지어졌을 것이다. 아래층의 도자기실로 들어가려다가, 창살 너머를 내다본다. 고요한 그늘뿐인 실내와 달리, 잘 다듬어진 정원에는 벌써 아침 볕이 그득하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다. 가슴 철렁해지는, 남자의 애절한 노래.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노래를 듣는다. 흙바닥에 얼굴을 묻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혼곤한 낮잠. 터미널로 나를 데려다주기로 한 택시는 아홉시에 오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밤새 달리다보면, 새벽에 타나 토라자에 닿는다고 들었다.

타나 토라자로 가는 버스 터미널은 밤인데도 흥청거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묵은 피로들이 공기 중에 비듬처럼 떠다닌다. 돈 내고 전화할 수 있는 와르텔에 가서 족자카르타에 있는 친구 B에게 전화한다. 떠나오기 전, 그녀와 함께 디엥고원에 갔었다. 그녀는 족자에서 만난 좋은 친구였다. 이제 아주 떠난다는 감상 때문이었나? 아니면 이곳에서 나 홀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감상이었을까? 짧은 통화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내가 탄 자리엔 발받이가 고장 났고, 그래서 배낭을 발밑에 두고 거기에 발을 올린다. 내 옆자리, 창가 쪽에는 암본 태생이라는, 타나 토라자에서 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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