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촛점 | 타이완은 어디로

 

쳔 꽝싱 陳光興

1957년 타이완 타이뻬이 출생. 타이완 칭화(淸華)대학 아시아태평양·문화연구실 교수. Inter-Asia Cultural Studies 공동 편집주간.

 

 

타이완 독립운동의 종결?

 

 

이번 타이완의 총통선거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따라서 타이완 사람들은 이번 선거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전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치열하고 자극적인 선거였다는 데 예외없이 동의할 것이다. 그야말로 밀고 당기는 과정의 연속이었는데, 지진(地震), 신표전략[新票案],1 리 위안져(李遠哲) 충격2 등 일련의 사건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각 후보들에 대한 지지율에 결정적 변화를 몰고왔다. 이번 선거는 한차례의 정치선거였을 뿐만 아니라 또다른 측면에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개입 그 자체였다. 언론매체들은 지지후보의 불일치로 빚어진 가정불화, 친구간의 절교, 연인의 이별 사례를 끊임없이 보도했고, 선거일을 전후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의사를 찾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외없이 선거의 회오리바람에 말려들었기 때문에, 자신을 객관화시켜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1996년 총통선거 때는 선거일 전에 대세가 이미 결판나 리 떵후이(李登輝)의 당선이 확정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사가 지지율의 높고 낮음에 있었던 데 비하면, 이번 선거에서는 어느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 퍽 이채로웠다. 선거일 3〜4일 전에야 비로소 리 위안져와 기업가들이 쳔 슈이뼨(陳水扁)을 지지함으로써 선거국면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으며, 유사 이래 최대 규모로 치러진 몇차례의 군중집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민당(國民黨) 일색의 대세가 물건너가고 민진당(民進黨)의 정권장악을 위한 준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선거의 결과는 민진당 후보 쳔 슈이뼨 39%, 무소속(원래 국민당원) 후보 쑹 츄위(宋楚瑜) 36%, 국민당 후보 롄 쟌(連戰) 23% 득표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당은 참패했고, 상대 후보들과의 격차 또한 뭇사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쳔·쑹 두 후보의 득표수도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결과적으로 3인 경쟁구도에서 기보(棄保)3 전략이 확실히 주효했음이 확인되었다. 선거결과는 왕왕 블랙홀과 같아서 정확한 해석을 불허하는데, 다만 표면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좀더 선명해지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상당히 두드러졌다.

지난 3월 중순쯤 총통선거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점에 장기간 남한의 민주화운동 및 사회운동에 몸담아온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는데, 타이완의 선거분위기에 우려를 표명하는 내용이었다. 그에 따르면 87년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당초 김대중(金大中)은 4인 경합구도에서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재야세력의 반정부운동의 전통으로 인해 능히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사실상 그런 예측은 근거없는 낙관임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집권당이 계속 통치하게 됨으로써 민주화운동의 퇴보를 초래했으며, 김대중은 장장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것도 타협을 거쳐, 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만일 민진당의 쳔 슈이뼨이 무소속 쑹 츄이와 연합한다면 국민당을 격파하고 타이완의 민주화운동을 성큼 앞당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국민당의 롄 쟌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총통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천 슈이뼨과 그의 러닝메이트 뤼 슈렌

총통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천 슈이뼨과 그의 러닝메이트 뤼 슈롄

 

나는 쳔·쑹 두 후보의 연합 가능성이 왜 희박한지를 갖은 말로 설명해야만 했다. 쑹이 대표하는 것은 옛 국민당이자 지금의 신국민당인데 사실은 상당히 보수적이며, 타이완의 족군(族群, 출신지역별·종족별 집단)민족주의 분위기 속에서 장기간 작용해온 성적모순(省籍矛盾)4 이 근본적으로 쳔 슈이뼨의 망동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다행히도 그의 예측은 현실화되지 않았고, 쳔 슈이뼨이 승리하면서 타이완에서 초거대 일당독재가 종식되었다. 적어도 상징적인 측면에서 타이완지역의 민주화운동은 단절 없이 한발 더 전진한 셈이다. 그러나 반대진영간에 은밀히 축하를 주고받는 가운데서, 이런 표면적인 ‘전진’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다시 말해 새로운 정세는 어떠한 위기를 암시하는가?

제3세계 독립운동 및 아시아 각국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민진당의 승리는 탈냉전 추세의 일환으로서 언젠가는 도래하리라고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근 5년 사이에 아시아 여러 지역, 즉 일본·남한·인도·인도네시아 등에서 잇따

  1. 특정후보의 흑색자금줄을 폭로하거나 스캔들을 부각시킴으로써 그 지지층을 파괴하는 선거전략. 이번 선거에서 쑹 츄위가 공금횡령 스캔들 폭로로 타격을 입고 초반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한 채 낙선했다. 이하 옮긴이 주는 〔 〕로 표시함.
  2. 타이완 최초의 노벨상수상자(화학 부문)로서 타이완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리 위안져가 총통선거 닷새 전인 지난 4월 13일 민진당 후보 쳔 슈이뼨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박빙의 판세를 쳔후보 쪽으로 기울게 한 사건.
  3. A후보의 당선이 불가능하고 C후보는 낙선희망 후보일 경우 B후보에게 표를 주어야 한다는 전략적 선거방법. 이번 선거에서 지지기반이 비슷한 세 후보 모두 자신의 당선 가능성과 정당성을 홍보하는 선거전략으로 활용했다.
  4. 타이완에는 타이완성 호적 여부를 기준으로 지역주의 정서가 존재하는데, 이는 1947년 국민당이 타이완에 진주하는 과정에서 타이완 주민과 충돌을 빚으면서 일으킨 ‘2·28사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50〜60년대의 쟝 졔스(蔣介石)정부의 백색테러로 갈등이 심화되고, 타이완성(省) 출신은 장기간 정·관·군 고위직에 진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