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 시대 문학/담론이 묻는 것

 

타자의 인식과 공공성의 성찰

전성태와 공선옥의 소설을 중심으로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cyndi89@naver.com

 

 

1. 이방인의 서사가 갖는 의미

 

여행자의 꿈과 기억을 몽환적으로 서술한 배수아(裵琇亞)의 단편소설 「무종」(『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에는 국적과 성별을 초월한 매력적인 이방인 예술가가 등장한다. “글을 쓸 수 있는 새로운 셋방”(167면)을 자신의 주거지로 명명하는 주인공은 어떤 집단과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스스로를 인식한다.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이방인 예술가 뒤에 숨은 또 한명의 이방인의 존재다. 그는 “그 어느 사건도 시작되기 이전”(160면)의 주인공의 기억 속에 잠시 출현했다가 사라진 외국인 택시운전사다.

작품 낭독회가 열리는 ‘무종의 탑’에 가기 위해 택시에 탑승한 주인공과 모형비행기 수집가에게 제대로 길을 안내하지 못해서 온갖 경멸과 무시를 받은 이 외국인 운전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거울에 비친 운전사의 모습은 주인공이 예전에 낯선 도시의 동물원에서 만났던 외로운 아프리카인을 연상시킨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웅얼거”리며 “바람이 쉭쉭거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151면)만 내어 승객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누구나 안다는 ‘무종의 탑’을 알지 못해 ‘구제불능’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운행을 포기하지 않는 외국인을 향해 주인공은 ‘문학’이란 단어를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경멸을 보낸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생명이 없는 회색”(152면)으로 변해가는 운전사는 일그러진 위협적인 모습으로 글쓰기의 주체 앞에 현현한다. 그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가 직면한 불투명한 타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강렬하게 번들거리는 눈빛, 이유 없는 웃음, 무례한 질문은 근사할 수 있는 여행길조차 불편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는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정작 선명한 실체로서 작품 속에 포착되기 어려운 낯선 타자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의 서사 저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외국인 운전사는 최근 한국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출현하는 ‘소속 없는’ 존재들의 모습을 현시한다. 이들은 여행자의 고독과 자유의 뒤편에 숨어 있던 진정한 이방인이다. 「무종」에서 외국인으로 설정된 이러한 이방인의 모습은 어떤 공동체나 집단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외의 삶이 실체로서 우리 삶에 개입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배수아의 소설을 포함하여 최근의 한국 소설들은 ‘외국인, 난민, 이주민, 탈북자, 혼혈인’ 등의 구체적 명명을 통해 소속과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는 다양한 이방인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고통과 박탈의 경험을 표현하는 이방인의 서사는 월경의 상상력과 더불어 2000년대 한국소설의 새로운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소속 없는’ 이방인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평하게 누려야 할 제도적 권리와 인간적 존중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환기한다. 특히 이들이 제기하는 ‘국가 없음’의 문제는 성, 인종, 계급 등의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되어온 타자의 문제를 가장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사유의 장으로 불러들인다. 국가의 바깥에서 국가의 질서가 갖는 억압성을 일깨우는 타자적 상상력은 최근의 한국소설이 고민하는 미학적 실천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문학의 영역에서 거론되는 타자의 상상력이 갖는 새로운 의미가 있다면 차별과 배제의 규칙에 대한 논의들을 공공적인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있을 것이다. 타자의 삶에 대한 인식은 그것을 공동의 몫으로 사유하는 정치적 장을 필요로 한다. 이는 폭넓은 의미에서의 공공성(publicness)을 문학적으로 새롭게 검토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것”1임을 알려주는 공공성의 성찰은 타자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사유하는 긴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공적 영역(public realm)에서 ‘타인의 현존’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근거로 복수성(plurality)을 언급한다. 그의 설명에 기대자면 공적 영역에서 실재성(reality)을 보증하는 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본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언제나 ‘같은 대상’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공적 영역은 “수많은 측면과 관점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2에 기초함으로써 실재성을 갖는 것이다.

아렌트가 바라본 공공성은 개별 존재의 차이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사물들이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될 수 있을 때, 그래서 그 사물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극도의 다양성 속에서도 동일한 것을 볼 경우에만 세계의 실재성은 진정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나타날 수 있다”라는 아렌트의 발언은 공공성과 타자의 사유를 연결짓는 중요한 맥락을 암시한다.3

최근의 한국소설에 나타난 이방인에 대한 관심과 월경의 서사는 공공성을 통해 타자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사유하려는 문학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때 공공성의 사유는 합의나 화해를 전제하지 않으며, 소통이나 연대 역시 존재들의 직접적인 행위나 발화로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사유는 존재들이 현상하는 공동의 공간에 드리워진 보편적이고 집합적인 가치관의 기준을 돌아보는 데 궁극적인 목적을 지닌다. 그 과정은 자기의 외부에 출현하는 타자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안에 숨은 타자를 발견하는 지점까지 나아가기를 요청한다.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살필 전성태(全成太)와 공선옥(孔善玉)의 근작들은 이러한 타자의 인식을 문학적 성찰의 심화과정으로 포함하는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깊다. 그간 사회현실의 문제에 직핍해 소외된 계층의 삶을 주시해온 두 작가는 월경과 이방인의 서사를 통해 작품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경계 밖으로 시선을 확장한 전성태의 소설은 몽골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방인과 타자의 문제를 다룬다. 빈궁한 모성의 현실을 바탕으로 주변부의 삶에 대한 애정적인 시선을 드러내온 공선옥의 소설에서도 이방인과 타자의 문제는 핵심적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두 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월경 서사와 이방인의 문제를 살펴보는 작업은 최근의 한국소설이 모색하는 공공성의 사유에 대한 탐색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2. 경계의 안과 밖에서 만나는 타자-전성태의 소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와 자연의 삶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매향』(1999)에서 출발한 전성태의 소설세계는 『국경을 넘는 일』(2005)에서부터 국경과 국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근작 『늑대』(2009)에서 월경의 서사는 몽골의 현재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늑대』가 다루는 이방인의 서사는 국가와 국경이라는 사법적이고 제도적인 공간의 탐색을 포함하여 한국의 자본주의적 일상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몽

  1.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이진우·태정호 옮김, 한길사 2008, 102~105면.
  2. 같은 책 110면.
  3. 같은 책 111면. 여기서 아렌트가 설명한 공공성은 전체주의라는 당시의 사회적 지배체제를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맥락을 갖는다. 아렌트가 공공성을 규명하기 위해 전제하는 공/사 영역의 구별은 별도의 세심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한 예로 주디스 버틀러는 “아렌트가 촉구하는 공적 영역은 공/사 구분 위에서만 가능한 것”(주디스 버틀러·가야트리 스피박 대담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주해연 옮김, 산책자 2008, 29면) 이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악셀 호네트는 아렌트가 논의하는 공공적 정치의 영역이 “고대 폴리스에 대한 이상적 서술”(악셀 호네트 『정의의 타자』, 문성훈 외 옮김, 나남 2009, 66면)을 전제한다고 비판한다. 두 논자는 이러한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아렌트의 논의가 정치적 공공성의 붕괴가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실천적 통찰력을 불러일으킬 중요한 문제제기라는 데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