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코로나19가 던진 과제들

 

탈성장 전환의 요구와 돌봄이라는 화두

 

 

백영경 白英瓊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배틀그라운드』 『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 『프랑켄슈타인의 일상』(이상 공저), 역서 『유토피스틱스』 등이 있음.

paix@jejunu.ac.kr

 

 

전환의 요구와 한국판 뉴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역대 가장 긴 장마가 이어지면서 폭우와 홍수, 폭염 피해를 남겼다. 환경단체 기후위기 전북비상행동의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해시태그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인수공통 감염병의 유례없는 확산이나 빈발하는 기후재난이 올해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른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현재 당면한 위기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닥쳐오는 변화에 단순히 적응하는 것을 넘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각 정당이 앞다투어 기후위기에 따른 생태계 파괴와 사회경제적 위기의 동시해결을 목표로 한다는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은 것도 이같은 분위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한국판 뉴딜은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고 밝히면서,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사회에서 포용사회로”의 변화를 약속했다. 소위 ‘K-방역’의 성공을 발판 삼아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이루어내겠다는 비전을 선포한 것이다.

대전환이라는 이름에는 못 미칠지라도 이미 코로나19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던 정책이 실시되고, 근본적인 변화를 논의하는 장이 열렸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가구별 지급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이 실현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대공황기의 전면적인 사회경제적 개입정책에서 유래한 뉴딜(New Deal)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사회주체들 간의 새로운 사회계약 혹은 ‘새판 짜기’를 의미한다.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을 결합한다는 ‘한국판 뉴딜’ 역시 코로나19 위기가 역설적으로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의 개혁을 진전시키고 새로운 판을 짤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연이어 닥치는 재난을 감당하기도 만만치 않은 마당에 제대로 된 새판 짜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로서는 한국판 뉴딜이 기후위기가 촉구하는 삶의 근본적인 대전환으로 이어질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우선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뉴딜펀드는 16조원 규모의 국민참여형으로 조성되며, “금융투자시장에 새로운 투자기회와 활력을 제공하고 국민들께 안정적인 재산증식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1임을 표방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시중의 유동자금을 뉴딜 사업 쪽으로 끌어오는 데 유용할 수는 있겠으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디지털 산업과 에너지 벤처를 육성한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민간펀드에 소액투자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모양새는 한국판 뉴딜 자체가 오래된 경제성장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2

 

 

돌봄의 위기 외면하는 ‘새판 짜기’

 

한국판 뉴딜에 대한 거센 비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방역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코로나19로 제기된 사회적 과제들을 풀어가겠다고 천명했음에도, 돌봄 위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응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3 한국사회는 낮은 출생률에서 드러나듯이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심각한 사회재생산 위기를 겪고 있었거니와 그 핵심은 돌봄의 위기였다. 감염병 확산 우려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사회적 돌봄의 실종은 가뜩이나 취약한 돌봄체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문을 닫고 초·중·고등학교까지 개학이 연기되었으며, 장애인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시설 운영이 잇달아 중단됐다. 누군가는 코로나19로 느리고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당장 돌봐야 할 유아나 아동이나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혼란의 시작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돌봄의 책임이 가족 구성원, 그 가운데서도 여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돌봄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4 예년에 비해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줄어들었지만, 이는 학대와 폭력이 줄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드러낼 기회마저 적어졌기 때문이며 현장에서 체감하기로는 위험에 처한 이들이 늘었다는 보고도 나왔다. 예컨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교사 등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상황을 살피기 어려워진 것이다.5 가정 내에서 아동을 돌보기 어려운 경우 긴급 돌봄이 제공되었다고는 하나, 정부가 취한 유연근무제 및 가족돌봄휴가 지원 정책은 기본적으로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우는 경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온라인 수업과 등교수업의 병행 속에서 혼자 있는 초등학생의 수가 두배로 늘었고, 이러한 돌봄의 공백이 학습 격차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는 현실6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여성고용률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큰 폭으로 하락했고, 여성 비경제활동 비율은 더 급격하게 증가했다.7

K-방역의 경우에도 병상이나 시설 및 인프라 부족, 마스크나 방호복 같은 소모품 부족 못지않게 의료에서의 돌봄 공백이 문제였다. 의료인들은 극심한 인력부족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2차 유행이 올 경우에는 현재와 같은 의료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8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도 중단될 수 없는 필수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 가운데는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의료인 외에도 요양원과 중증장애인시설 등 집단거주시설의 돌봄노동자, 긴급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교사, 수많은 식당의 노동자,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늘어나는 상담 업무를 수행하는 콜센터 노동자 등이 있고, 이들은 모두 K-방역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왔다. 이러한 필수노동 가운데 많은 부분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이 다시 가족 돌봄의 부담마저 지고 있다는 사실은 방역을 위해서라도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제까지 묵인되어온 차별과 불평등을 개선해야 하는 주된 논거가 된다.9

즉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시민들의 일상에서 돌봄의 위기는 감염의 공포만큼이나 직접적인 재난 경험이었기에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이 문제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10 ‘언택트’가 새로운 ‘노멀’이며 디지털 기술이 감염병 위기의 해결책이기 때문에 새판 짜기에서도 이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주류적 시각은 돌봄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전환을 주장한다고 해서 돌봄노동이 공식 경제체제로 편입되어 다른 노동과 동등한 시장가치로 인정받기를 목표로 하지는 않으며,11 기존의 성장지상주의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작동할 수 있도록 돌봄을 통해 보조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물론 돌봄노동에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시장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를 상상함에 있어서 돌봄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단지 기존 체제 내에서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과는 다르다. 서로 의존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돌봄 중심의 시각은 그 자체로 성장과 이윤을 지상목표로 삼는 체제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란 성장 자체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이며, 어떤 새판을 짤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페미니스트 탈성장론과 돌봄사회

 

코로나19 이후 사회전환의 원리로서 돌봄이 부각된 것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최근에 탈성장론 내에서 돌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탈성장론은 성장지상주의에서 탈피해, 에너지와 물질의 사용을 자발적으로 줄이고 가치를 재조정하며 제도를 바꾸어 인간과 생태계에 대한 해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미 돌봄과 친연성이 있다.12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세계적 감염병의 유행은 탈성장론 내에서 페미니스트 그룹을 중심으로 “돌봄 찬(care-full) 탈성장”을 내세우는 공동행동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페미니즘들과 탈성장연대’(Feminisms and Degrowth Alliance, FaDA)13와, 올해 말 출간 예정인 『탈성장론』(The Case for Degrowth)을 공동집필하고 있는 수전 폴슨,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요르고스 칼리스 4인14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돌봄소득과 정의로운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FaDA는 현재의 위기가 건강의 위기인 동시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경제적 위기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돌봄과 생명 재생산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물권은 모두 위기에 처해 있고, 코로나19는 역사적 파열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달리사와 칼리스를 비롯한 탈성장론자들은 코로나19라는 도전에 직면하여 무엇보다 먼저 고통받고 있는 가족, 친구, 동료 시민들을 돌보고 마음을 써야 하며, 성장신화에서 벗어나 그 투쟁의 공간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끼리 서로 챙기고 돌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모두는 한계와 취약성을 가진 존재이며, 이는 곧 우리가 서로를 돌봐야 하고 돌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근거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지금의 팬데믹은 그동안의 사회적 기반의 잠식 및 복지 축소 등이 초래한 결과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금도 무한한 성장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기후위기를 입증하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조차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을 지향하면서 경제를 서둘러 가동시키려고 시도하는 데 분노한다.

탈성장에 대한 커다란 오해 가운데 하나는 기존 체제 내에서 마이너스 성장이 이루어지는 역성장과 탈성장을 혼동하는 것이다. 탈성장은 성장률을 기준으로 경제활동을 평가하는 체제 자체와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연대 속에서 검소한 풍요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15 따라서 코로나19처럼 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발생한 성장의 둔화나 경제축소는 탈성장이라 볼 수 없다. 탈성장은 삶의 방향을 바꾸려는 의지와 노력에 수반되는 전환이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의지와 노력을 이끌어낼 사회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혹자는 탈성장론이 추구하는 협동, 공유, 돌봄은 모두 뜻깊은 가치실천의 영역이지만 이를 통해 과연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그에 대해 탈성장론자들은 당장의 성취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해도 이러한 실천들이 전환을 위한 토대이자 중요한 훈련이 된다고 본다.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노동, 형평성 있는 관계, 연대에 기초한 공동체, 자연에 대한 존중, 공생의 가치 등은 이를 실천해나가는 과정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으며, 과정을 생략한 성취는 있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평등·부정의로 가득한 세계에서 누구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는 보여준다. 따라서 돌봄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지고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연대와 자발적인 부조들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하고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계 노동자들과 돌봄노동자들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노동 없이는 방역이 지속될 수 없듯이 감염병의 대유행 속에서도 그나마 일상이 유지되는 것은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취약한 부분을 먼저 찾아서 돌보는 사람들 덕분이다.

물론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자들도 개인들의 자발성만으로는 ‘돌봄 찬 사회’가 이룩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드러낸 것처럼 주거와 같은 삶의 기본조건이 시장에 맡겨질 때, 공생의 낙관은 위협을 받는다. 그러므로 돌봄이 원리가 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민적 연대를 촉진하고 강화시켜줄 급진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그전에는 현실성 없다고 여겨져온 새로운 정책들이 도입되고 실행되는 경우를 목격 중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러한 정책들에 더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사례들을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정책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재난소득과 실업 혹은 상병(傷病) 수당이 지급되면서 보편기본소득 논의가 힘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것은 정부 예산으로 국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지출이 증가하는 데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줄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현재 미국에서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억만장자세’16와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보편기본소득의 재원을 조달하는 것도 논의해봄직하다. 나아가 기본소득 지급을 밑거름 삼아 필수노동을 중심으로 사회 전체를 재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재원 조달보다 더 큰 걸림돌은 현재 경제체제하에서는 시장에서의 행위가 중지·교란되면 다른 모든 영역이 타격을 받거나 심지어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으며, 이 경우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탈성장론자들은 재난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성장 위주의 시장의존 경제 비중을 줄이되 그 과정에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처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장기적으로 산업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개입하면서 축소 대상이 되는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전환 과정에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탄광, 자동차, 항공 등의 산업에 대한 공공지원을 줄이는 한편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해고를 어렵게 하는 조건을 걸 필요가 있다. 이때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은 연대, 필요충족, 돌봄의 원리다.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 중 하나로 탈성장론자들은 세금을 현재와 같이 소득에 부과할 게 아니라 오염과 불평등에 대해 부과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실가스 배출과 물·공기 오염, 자원 채굴, 극단적인 고소득과 부의 축적 등에 과세하는 것은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의 중요한 일부다.

코로나19로 보편기본소득 관련 논의가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의 주장이 다소 일반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주장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각 가구 및 공동체의 복지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되는 비임금노동과 젠더화된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이들은 우리 자신과 타인들, 그리고 주변과 환경을 돌보기 위한 사람들의 능력에 공통의 부를 투자함으로써 연대와 형평성을 강화하고자 하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 돌봄소득을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복합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일수록 다른 무엇보다 삶의 기본이 중요하며, 오늘날 경제 여러 분야에서 탈성장을 진전시키는 것과 돌봄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확보 및 개선하는 것은 함께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돌봄 찬 사회’를 위해서는 삶의 기본적인 필요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재구조화하며, 가정을 단순히 비생산적인 소비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생산 및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있다. 또한 환경의 재생을 돕고, 각기 다른 강점과 취약성을 가진 존재들 사이의 연대에 기반을 둔 필요충족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자들은 돌봄노동에 대한 재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방편이자 돌봄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수단으로서 보편돌봄소득을 요구하는 것이다.17

 

 

돌봄민주주의와 돌봄뉴딜을 넘어서

 

코로나19 이후 한국에서 부상하는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논의는 이제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재평가 없이는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 탈성장 논의와 통하는 바가 있다. 김현미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확인하는 진실은 인간이란 돌봄과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개인의 희생이 아닌 협력적 공공의 개입을 통해 돌봄이 이뤄질 때 가장 공평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의 가치가 여전히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되고, 이런 노동을 여성이나 이주자의 일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면서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적 사회 구성은 이제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들의 경험과 희망이 직업의 재설계와 대안적 사회기획에 반영될 때, 인간과 동료 종의 공존, 인간 사이의 평등에 다가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18

이렇게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라는 요구는 돌봄의 책임을 민주주의적으로 분배하자는 돌봄민주주의19나 ‘돌봄뉴딜’에 대한 요구20로 표출된다. 배진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는,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돌봄노동이 불안정한 지위와 낮은 처우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떠맡겨지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가치로서의 돌봄, 시스템으로서의 강화된 돌봄 공공성, 그리고 성평등”을 중심으로 한 ‘돌봄뉴딜’을 요청한다.21 신경아는 “팬데믹 시대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인 여성노동자들을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여성노동자의 경제적 조건을 개선해야 하며, 차별적 관행을 폐지하고 성별임금 격차를 줄일 것을 요구한다.22 김현미 역시 “환경, 보건의료와 교육 분야는 삶의 질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진, 보건의료행정, 요양, 간병, 위생 등을 모두 포괄하는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의 설계, 공교육·사교육과 탈제도화된 교육을 연결하는 시공간적 통합 교육 시스템의 구성을 통해 여성의 일자리를 전문화·안정화하는 동시에 성별 분업을 해체할 수 있다”23라고 하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비를 성별 분업 해체와 여성 일자리의 문제로 연결한다.

한국의 성차별적인 노동시장과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할 때 돌봄의 성평등한 나눔과 여성노동의 지위 향상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24 또한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그림자노동’을 누가 수행하는가는 민주주의의 문제로서도 핵심적이다.25 더구나 정부 주도의 ‘한국판 뉴딜’은 물론 탈성장의 전망에 입각하여 생태적·사회적 대전환을 제기하면서도 돌봄의 문제를 도외시하곤 하는 한국의 담론 현실에서,26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전망에 돌봄의 민주화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소중하다. 그럼에도 지금의 돌봄민주주의나 돌봄뉴딜 논의에서 아쉬운 점은 코로나19의 원인을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자원에 대한 약탈 및 착취로 진단하면서도 과연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체제하에서 돌봄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돌봄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여성 일자리의 중요성이나 성별 분업의 해체 필요성을 결론으로 한정 지으면서 돌봄의 민주화가 어떻게 체제전환 및 생태적 대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대안적인 삶을 주장하면서 돌봄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돌봄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 자본주의체제와 성장주의의 한계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개입해야 한다. 또한 돌봄노동을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간 여성운동이 익숙하게 상정해온 범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고 평가받지 못한 돌봄노동 영역은 가사노동이나 사람 돌봄노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들어서는 생산과 소비에 포함되지 않는 설비 및 시설의 유지·수리·정비 작업 등의 노동도 돌봄노동으로서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27 김용균씨 사망사건에서 드러났듯, 보수 및 정비 노동이 압도적으로 비정규직에게 맡겨져 사고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그간 이윤과 밀접하지 못하다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들을 돌봄노동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돌봄에 대한 인식을 성장주의에 저항하는 가치로서 확장해줄 뿐 아니라, 돌봄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서도 새로운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처한 돌봄의 위기는 주로 여성들이 돌봄을 떠맡고 있다는 ‘책임 분배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돌봄의 의미가 특정 노동 영역으로 축소되어버렸다는 ‘의미의 위기’이기도 하다. 돌봄의 민주화가 대전환의 중요한 의제로서 제대로 힘을 얻고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돌봄의 다양한 측면을 실행하는 세력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돌봄은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고 그 책임에 합당한 크고 작은 실천까지 감당하는 일이어야 하며, 따라서 누구도 면제될 수 없는 일이다. 즉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며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때 변화란 대전환의 일부가 아니라 그 자체가 대전환이다.

 

 

  1. 금융위원회 제16차 경제중대본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2020.8.11)에서 나온 손병두 부위원장의 발언. 「정부까지 뉴딜펀드 띄우기…손병두 “안정적 재산 증식 기회 제공”」, 중앙일보 2020.8.12.
  2. 김현미 「코로나19와 재난의 불평등: 자본과 남성 중심의 해법에 반대한다」, 김은실 엮음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휴머니스트 2020.
  3. 홍찬숙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 다른백년 2020.6.2.
  4. 김현미 「두 달여 ‘멈춤’에 심화된 성차별」, 한국일보 2020.5.6.
  5. 강선아 「아동학대 감소? 코로나가 숨겼다!」, 경남도민일보 2020.7.28.
  6. 최윤경 「코로나19 육아분야 대응체계 점검: 어린이집·유치원 휴원 장기화에 따른 자녀돌봄 현황 및 향후 과제」, 『육아정책Brief』 81호, 2020.4.
  7. 전기택 「코로나19 확산과 여성고용」, 『젠더리뷰』 2020년 여름호.
  8. 최은경 「팬데믹 시기는 새로운 의료를 예비하는가」, 『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
  9. 신경아 「재난 앞에 선 여성 노동자: 팬데믹 시대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이들을 위하여」,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10. 오하나 「인류 살리기로서의 돌봄에 대한 상상」, 추지현 엮음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돌베개 2020.
  11. 추지현 「시공간에 대한 상이한 감각」, 같은 책.
  12. 탈성장(degrowth)에 대한 안내서로는 자코모 달리사 외 엮음 『탈성장 개념어 사전』, 강이현 옮김, 그물코 2018을 참조. 성장에 대한 비판으로서 탈성장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이다. 당시 급속한 경제성장이 초래한 환경오염과 이에 따른 환경운동의 부상은 성장이라는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삶을 조직하는 지상명제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서 탈성장이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는 유의해야 한다. 탈성장은 성장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서 나온 개념이며, 지속 가능한 삶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모색하기 위한 실천이기도 했다. 따라서 탈성장론은 하나의 단일한 담론 체계로 볼 수 없으며 성장주의로부터의 탈피라는 목표 아래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한 복잡한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탈성장이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중요해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1999년에 시작한 반(反)자본주의 운동은 미국 및 유럽에서 다양한 대안운동이 형성·확산되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한국에서도 성장에 대한 비판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탈성장 논의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조혜경 「탈성장(degrowth)의 이론적 기초」, 녹색당 정책위원회 ‘탈성장 세미나’ 발제문, 2017.7.27.
  13. 페미니즘과 탈성장 논의 사이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학자·활동가들의 네트워크로, 2016년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제5차 국제 탈성장 컨퍼런스에서 시작되었다.
  14. Susan Paulson, Giacomo D’Alisa, Federico Demaria, and Giorgos Kallis with Feminisms and Degrowth Alliance, “From pandemic toward care-full degrowth,” Interface : a journal for and about social movements, 2020.4.30.
  15. 세르주 라뚜슈(Serge Latouche)는 “탈성장은 그 자체로 대안은 아니며 대안들의 모태”라고 말한다. “그것은 경제 전체주의의 방탄복을 벗기며 운명의 다양성과 창조의 공간으로 이끄는 인간의 모험이다. 그것은 세상을 단일한 형태로 만들며 문화를 죽이는 원리의 원천이 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혹은 마르쿠제가 말한 단면적 인간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무성장’사회는 유럽, 아프리카, 혹은 남미나 텍사스, 치아파스나 세네갈, 멕시코에서 다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성과 복합성을 양성하고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탈성장사회 모델의 비법을 손에 쥐고 제안할 수는 없는 일이고, 모든 지속가능한 비생산주의 사회에 대한 근본요소와 구체적인 전환 프로그램을 그릴 수는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탈성장의 길」, 김신양 옮김, 『모심과 살림』 2015년 겨울호.
  16. 예컨대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 등 민주당 상원의원 3인은 ‘억만장자들이 부담하게 하라’는 제목의 법안을 발의하여, 억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기간 동안 늘어난 재산 중 60%를 세금으로 걷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코로나로 865조원 불린 미 억만장자들… 2008년 닮은 꼴 재산 증식」, 한겨레 2020.8.16.
  17. FaDA, “Collaborative Feminist Degrowth: Pandemic as an Opening for a Care-Full Radical Transformation,” www.degrowth.info, 2020.4.
  18. 김현미 「코로나19와 재난의 불평등: 자본과 남성 중심의 해법에 반대한다」, 앞의 책 79~80면.
  19. 돌봄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서는 조안 C. 트론토 『돌봄 민주주의』, 김희강·나상원 옮김, 아포리아 2014를 참조할 것. 트론토는 돌봄을 ‘가능한 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세상을 바로잡고 지속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종(種)의 활동’으로 정의한다. 그는 이제까지 성별화된 형태로 수행되어온 돌봄노동이 많은 무임승차자를 양산했음을 지적하면서 돌봄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함께 돌봄’(caring with), 즉 정의·평등·자유에 대한 돌봄의 민주적 기여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돌봄민주주의 개념을 문학비평에 활용한 최근의 글로는 신샛별 「불평등 서사의 정치적 효능감, 그리고 ‘돌봄 민주주의’를 향하여」, 『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 참조.
  20. 여성가족부 주최 ‘코로나19 이후 여성 일자리 변화와 정책 전망’ 토론회(2020.6.18) 중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의 발언. 「돌봄은 여성의 몫?…노동시장 성별격차 완화하자」, 복지타임즈 2020.7.15.
  21. 배진경 「성평등 노동과 ‘돌봄 뉴딜’을 위한 제언」, 여성가족부·한국여성정책연구원 주최 ‘코로나-19 관련 여성·가족 분야별 릴레이 토론회’(2020.6.11) 자료집 『코로나-19의 여성노동 위기 현황과 정책과제 모색』.
  22. 신경아, 앞의 책 84~85면.
  23. 김현미, 앞의 책 80면.
  24. 황덕순 「돌봄노동자의 특성과 근로조건」, 『노동리뷰』 2013년 3월호.
  25. 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 노승영 옮김, 사월의책 2015.
  26. 안효상 「인류세 시대의 기본소득: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위하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토론회 ‘생태적 전환을 고려한 기본소득’ 발제문, 2020.4.11.
  27. David J. Denis, “ Why do maintenance and repair matter?” Chapter 27,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ActorNetwork Theory, London/New York: Routledge 201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