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국영 林國榮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2017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등이 있음.

dlarnrdud89@naver.com

 

 

 

태의 열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성경 시편 127편 3절

 

 

지난 명절, 오래간만에 고향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던 내 앞에 불쑥 아버지가 나타났다. 시골 상권에 마땅한 술집이 없었던 터라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아버지는 아무래도 작정하고 나를 찾아 헤맨 모양이었다. 소주 두병을 넘게 마신 나보다 취기가 올라 있던 그는 나를 윽박지른 뒤 억지로 차에 태웠다. 반발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녹내장으로 눈이 아프다며 야밤에도 절대 벗지 않는 라이방 선글라스, 리바이스 청바지와 그 안에 집어넣은 구제 폴로셔츠 그리고 입에 문 말보로 레드. 환갑이 되어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아들아, 넌 오늘 뒈졌다.”

노련한 음주운전 실력으로 집으로 향하는 내내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라 멸문의 원수를 대하듯 상스러운 욕을 쏟아부었다. 아버지에게 안부 연락도 일절 않고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호로새끼라는 말이 장황하게 부풀려졌다. 틀린 말은 없었다. 나는 지난 몇년간 아버지를 피했다. 명절에 본가를 찾더라도 아버지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간 틈을 타 어머니에게만 얼굴을 비추고 지척에 홀로 사시는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린 뒤 인천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버리곤 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만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이 이거 하나뿐은 아니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버지를 죽여버릴 것 같아서’라고 실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중앙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차를 몰던 그때 스피커에서 올드 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레너드 스키너드의 「프리버드」였다. 아버지는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 웃는 낯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 안 그러냐, 아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어머니는 침실에 잠들어 계셨다. 한바탕 푸닥거리를 늘어놓은 아버지는 웃음을 흘리며 나를 거실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술과 잔을 꺼내왔다. 서른이 넘도록 아버지와 대작을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나와 아버지는 이미 취할 대로 취해 있었고 술잔을 몇번 더 비우기까지 하자 문제는 해결됐다. 황당하게도 아버지는 가족으로서는 최악일지 몰라도 술친구로는 최적이었다. 어떤 점이 그러하냐면, 어떤 말에도 웃어준다는 것이 그랬다. 농담이 오가지 않는 술자리란 메시아가 등장하지 않는 신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원은 취중에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진즉 깨친 것일지도 몰랐다.

“기억하세요, 아버지?”

“뭐? 뭐 말인데?”

“그때 있었던 일 있잖아요. 그때 아버지가……”

긴 세월 알고 지낸 사이끼리—가족을 두고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오랜만에 만나서 나누는 대화란 대체로 과거에 관한 이야기인지라 나는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현재에서 과거로, 어릴 적 이야기를 한 뒤 더 어릴 적 이야기로 옮겨갔다.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에 관한 기억들, 농담으로라도 추억이라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안줏거리 삼기로 결심했다. 한편으론, 모순된 말이지만 내가 지금 건네는 농담을 다만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길 바라는 심정도 있었다.

“십년 전 겨울,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죠. 인근 공사장에서 찾아온 덤프에 주유를 하고 있는데 낯익은 SUV 한대가 앞을 지나쳤어요. 얼어붙은 노면 위를 비틀거리며 역주행하고 있었죠. 그리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아우디를 받아버렸어요. 와, 저거 큰일 났다. 트럭 기사 아저씨와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구경했죠. 그때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습니다. 네 아버지가 또 사고 쳤다! 왜 엄마?라고 대꾸를 한 순간 교통사고를 낸 SUV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낀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셨죠.”

“야 인마! 언제 적 얘길 하는 거야? 술이나 마셔! 넌 오늘 뒈졌어!”

우리는 낄낄 웃었다. 당시 아버지는 무면허에 만취 상태였고 그 사고로 얻은 빚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수감됐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더 옛날 얘기도 있어요. 풀벌레가 울고 별이 빛나던 여름의 깊은 밤이었죠. 아버지는 갑자기 인천으로 돌아가겠다며 초등학생이던 저를 잠에서 깨워 차에 태웠어요. 물론 취해 계셨고 사력을 다해 막는 어머니를 뿌리친 뒤 기어이 액셀을 밟았죠. 출발하고 조금 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셨던지 아버지는 어떤 구멍가게 앞에서 차를 멈췄어요. 그리고 돈을 쥐여주며 소주와 담배를 사 오라고, 가는 김에 제가 좋아하는 과자도 하나 집어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죠. 물건을 고르는 동안 아버지는 차를 몰고 떠났어요. 아버지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늦은 밤이었고 집까지 걸어서 한시간 거리였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날 깜빡 잊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가능하면 이대로 아버지가 나를 영원히 기억해내지 못하길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뒤 걸어서 한시간가량 떨어진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직 근처에 머물고 있을지 모를 아버지에게 발견될까봐 가로등 빛을 피해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그런데 저 멀리 언덕 언저리가 캠프파이어 하듯 환한 거예요. 길은 하나뿐이었고 저는 밝은 곳을 찾는 날벌레처럼 불빛을 향했죠. 그곳엔 불타오르는 포클레인과 전면이 박살 난 아버지의 지프차가 있었어요.”

마이클 베이가 감독한 인디 영화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배경을 등지고 아버지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피도 닦지 않은 채 담배를 피웠다. 그때도 라이방을 쓰고 있었다. 아직 녹내장이 발견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아버지는 겁을 집어먹고 다가오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더니 선글라스를 밑으로 내리고 이렇게 말했다. 차에 타고 있지 않았나? 이 대목을 짚을 때 아버지는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이번에는 따라 웃지 않았다. 무면허 만취 상태였고 역주행이었다. 아버지는 그 일로도 수감됐다. 그렇다고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은 또 아니었다.

곧 앰뷸런스가 올 거니까 기다려라. 아버지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지프차 조수석에 나를 앉혔다. 박살 난 유리창 파편들을 아버지가 옷소매로 쓸어버린 뒤였다. 아버지는 내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서 소주를 꺼내 뚜껑을 땄다. 달리는 마라토너가 물을 마시듯 술을 삼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바스락거리는 과자 겉봉을 매만졌다.

“짜식아, 아버지는 절대 안 죽는다!”

“알죠. 잘 알죠.”

“그런데 아들, 혹시 내가 운전하다가 바다에 빠진 얘기 했던가?”

“바다요?”

“그래, 바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잠이 와서 눈을 몇번 감았다 떴더니 앞이 새까맣더라고. 이미 차체가 바닷물에 반쯤 잠겨 있었던 거지.”

“그랬군요. 거기에선 또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아버지는 눈매를 찡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했다.

“글쎄, 그냥 정신을 차리고 나니, 집이었다.”

 

이날의 술자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내가 오늘 과거의 어디까지 되짚어 얘기할 수 있을까, 어떤 얘기면 아버지가 웃음을 멈출까 하는 이상한 오기가 아슬아슬한 지점에 가닿을 즈음 한가지 물음을 던지면서였다.

“상자 말이에요. 단면이 거칠고 손때가 많이 탄 물건이었어요. 제가 열살 남짓일 때였던가? 아들아, 여기 뭐가 들어 있는지 아느냐, 하고 물으셨죠. 그러곤 대답도 듣지 않으시고 너는 모를 거야, 절대 모를 거야,라고 말씀했어요. 그 모습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서 언제고 묻고 싶었어요.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있었던 거예요? 권총이나 대마라도 있었던 거 아니에요?”

우발적으로 꺼낸 이야기였다. 이제 와서는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 특별히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란, 그런 일을 기억한단 말이냐?라며 놀라거나,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또다시 호탕하게 웃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갑자기 지난 일을 훑는 듯 골똘한 표정을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걸이 TV 밑 문갑을 뒤적거리더니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왔다.

이 대목부터 나의 지난 명절이 본격적으로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평온하고 행복해야 할 명절 연휴가 악몽처럼 변모하는 일 또한 내겐 익숙하다면 익숙한 일이었다.

내가 아직 유소년이었을 시기, 우리 가족은 구정과 추석이 되면 인천의 친할머니 댁을 찾았다. 친할머니가 주문한 치킨과 피자를 내가 열심히 먹어치우는 동안 맏며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