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 테러, 전쟁 그리고 그후

 

테러 전후의 미국경제

‘신경제’의 종언과 금융주도 자본주의의 행방

 

 

전창환 全鋹煥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편저로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공편) 『현대자본주의의 미래와 조절이론』 등이 있음. jch6577@hucc.hanshin.ac.kr

 

 

1. 머리말

 

할리우드 공상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테러장면이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군사화의 심장부인 세계무역쎈터 건물과 국방부에서 ‘실제상황’으로 재현되면서, 전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불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신형무기의 실험과 군비확대에 안달하던 부시정부는 테러행위에 대한 확증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서둘러 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에 나섬으로써 무고한 시민들만 희생되고 있다.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보복공격에 대한 추가테러 경고가 끊이지 않을 조짐을 보여, 향후 미국경제와 세계의 정치경제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1990년대 중·후반 3〜4%대의 고성장─낮은 실업률─저인플레─고주가─강한 달러로 표현된 미국경제의 선순환(善循環)이 신경제의 열풍을 일으켰지만, 2000년 중·후반 이후 IT 관련 부문에서의 과잉투자와 수익률 하락 그리고 나스닥 주가의 대폭락으로 미국 신경제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미국경제가 침체로 돌입한 직후 발생한 테러사태는 향후 세계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다른 한편 탈냉전 이후 종족간 갈등, 종교분쟁, 인종차별 등 국지적 분쟁이 심화되는 틈을 타 미국은 석유·천연가스 등 핵심자원에 대한 지배력 확보, 인권옹호라는 구실하에 과거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군사개입을 주도하고 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70년대 미국이 포드주의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세계화로 돌파하고자 했던 데 있다고 본다. 2000년대 초반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미국의 금융주도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군사적 개입 강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내적 딜레머 또한 테러사태 이후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관건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2. 포드주의의 위기와 금융주도 자본주의의 도래 

 

전후 황금기 미국 자본주의는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을 뉴딜관료·경영자·노동자 간의 연합을 통해 일정하게 통제함으로써 크게 번창할 수 있었다. 1920년대 말 대공황 이후 제정된 30년대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은 금융기관 자체의 거대화 및 법인기업과의 유착을 차단함으로써, 경영자 자본주의를 뿌리내리게 하고 경영자의 권한과 재량권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영국의 케인즈(J.M. Keynes)와 미국 재무부차관이었던 화이트(D. White)가 우여곡절 끝에 단기 투기자본의 운동을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 그 결과 선진각국은 거시정책의 자율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본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전후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는 대내적으로는 관리된 금융씨스템과 대외적으로는 노동 및 발전 친화적인 국제체제에 힘입어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국의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는 경영자의 방만한 경영, 테일러주의적 노동편성 자체의 한계, 그리고 관리된 금융씨스템의 인플레 유발경향 등으로 인해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60년대 말 노동생산성 상승의 둔화가 인플레를 수반한 이윤율 하락으로 발현되면서 포드주의적 경영자 자본주의는 급속히 해체되는 경향을 보였다. 생산성이 둔화되고 인플레가 심화됨에 따라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 수준으로까지 떨어지자, 한동안 무기력한 금리생활자로 남아 있던 주주들이나 금융자산 보유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타협의 여지가 아주 협소해졌다. 또한 미국의 인플레는 고정환율의 달러본위제 게임룰과 근본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브레튼-우즈(Bretton-Woods)체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가장 발빠르게 대처한 세력들은 금리생활자, 주주, 자산가 및 채권자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금융자본이었다. 이들은 정부에 각종 대내외적 금융규제의 철폐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플러스의 실질이자율 보장에도 강한 집착을 보였다. 예금금리 상한 철폐, 금융업무 구분규제 철폐 및 완화, 단기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 철폐, 주식매매 수수료 자유화, 종업원 퇴직소득 보장법(ERISA)의 제정에 따른 수탁자의 책임과 자율성 강화 등 7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되고 있는 일련의 금융자유화 조치는 금융자본의 요구와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했던 미국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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